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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몇 번째인지 모르는 체포영장1

2018.09.11

몇 번째인지 모르는 체포영장1

 

명광일

 

 

1997년 여름이다. 동네는 골목 신문들이 난타전을 벌이던 시절이다. 신문은 신문대로 한인회는 한인회대로 지역은 지역 출신대로 신 삼국지를 펼치던 때다. 여긴 전통적으로 백제 쪽이 떼거리다. 그래서 콜로라도는 투박한 남도 사투리가 어디보다 강하다.

 

이민 역사도 거즌 절반 미군기지출신 언니 누이들이 선봉에 섰다. 유학은 돈 좀 있는 꼴통들이 주로 왔다. 다시 말해 머리는 있고 공부는 하기 싫고 스펙은 있어야겠고 해서 온 왕자와 공주님들이 좀 있었다는 얘기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열공 하는 분들이 대체로 늘어난다.

 

나는 자동차 사업을 했다. 정비와 중고차를 매매했다. 한인회 일원으로 잡다한 일도 했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또 해어지던 때다. 나이 서른여섯 겁 없던 시절이다.

 

어느 무더운 저녁이었다. 아는 지인을 만났다. 자동차 때문이었다. 지인은 귀국하며 타던 차를 팔겠다고 연락이 왔다. 문제 많은 차였다. 식사 겸 일잔 걸치기 위해 모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와 나는 말이 잘 되 일이 성사됐다. 술을 마셨다. 소주를 마셨다.

 

카페는 자리가 채워지며 아는 이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아는 신문기자 둘이 나타났다. 남녀였다. 그때까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던 기자들이다. 남자 기자는 나보다 어렸지만 여기자는 동년배였다. 나는 요즘 저들에 불편했었다. 내가 소속된 단체에 우호적이지 않은 기사 때문이었다. 여기자가 먼저 내게 잽을 날렸다.

 

-초저녁부터 술이라 좋네

-초저녁 그런가, 술 마시는 저녁도 따로 있나

-요즘 우리 신문에 광고 안 해 서운해

-그건 광고주 맘, 신문이 신문다우면 말래도 하지

-그럼 우리 신문은 신문이 아니란 말야

-그건 늬들이 더 잘 알 것 아냐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최 기자가 끼어들었다

-콜로라도에 저희만큼 발로 뛰며 올바로 전하는 신문 없습니다

-그런가, 훌륭하네

 

나는 술맛이 가셔 지인을 데리고 딴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이 그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니 그냥 보내기 그랬다. 그는 내 단골이었다. 우리는 진짜 술집으로 갔다. 술과 여자가 있고 노래가 있는 곳이다. 마시면 한 곡조 뽑아야 직성이 풀렸다.

 

지난번 마시다 남은 술과 안주가 나왔다. 여러 경로를 타고 이곳까지 굴러온 이야기 많은 여인 둘도 같이 따라 나왔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며칠 전 한국에서 왔다. 시나리오다. 풋풋한 새내기란 뜻. 많이 사랑해 달라는 뜻을 내포한다.

 

나는 그 집에 가도 그들 없이 마셨다. 그게 나의 전통이었다. 하지만 오너들 부탁은 물리치지 못했다. 그들도 돈을 벌어야 하니 부탁을 했다. 거꾸로 그들은 내 고객이기도 했다. 팁보다 더러운 소문이 싫어 멀리했는데 나도 남자, 취하면 본능이 발동한다. 노래 한 곡조 뽑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무슨 소리가 들렸다.

 

-노래 죽이는데 명 사장, 앵콜,

 

아까 그 년놈이었다. 업소 광고 때문에 들렸다가 다시 만난 것이다. 나는 그들을 자리로 불렀다. 둘은 순순히 우리 자리로 왔다.

 

-장 기자 술 하겠나

-딱 한 잔만 할게, 다시 가봐야 할 곳이 있어

-그래라

-최 기자 술 하겠나

-저는 운전합니다

-알았어, 편한 시간에 편하게 일잔 하자구

-참 명 사장님, 정말 우리 신문에 광고 안 하세요

-, 광고 얘기 더는 하지마, 술맛 떨어져

-근데 왜 말끝마다 반말이세요

-너 자꾸 깐죽댈래

-야 명 사장, 너는 늘 말버릇이 그래

-아니 이것덜이 오늘 날 잡았나 합동으로

-이것덜, , 너 말 다 했어

 

바락바락 여자가 대들었다. 남자도 중간 중간 헛웃음 날렸다. 우당탕탕, 잠시 내 자리에서 혼란이 왔다. 뭔가 눈앞에 왔다 갔다. 뜯어말린 사람들에 둘은 밖으로 나갔다.

 

나는 남은 술 입에 털어 넣고 지인을 먼저 보냈다. 분을 가시며 술을 더 마셨다. 곧 경찰 둘이 들이닥쳤다. 내게 일어날 것을 명령했다. 나는 앉아있었다. 다시 명령 하고 둘은 자세를 취했다. 나는 일어섰다.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나를 강제로 끌어 밖에 세워둔 자기들 차 앞쪽에 밀쳤다.

 

저만치 그 년놈들이 보였다. 나는 그 여기자가 신고한 것을 눈치챘다. 그녀는 고소의 명수였다. 누구도 그녀에게 시비 걸지 않았다.

 

너는 지금 사람을 때렸고, 경찰 명령에 불복종한 죄로 체포한다.’ 고 험상궂은 경관 하나가 말하고 수갑을 채웠다. 그래도 좀 큰소리로 뒤통수에 대고 미란다 원칙도 떠들었다. 그들은 곧 나를 태워 경찰서로 갔다. 다시 소지품과 옷 신발이 벗겨지고 죄수복을 갈아입었다. 마침 나를 아는 경관 하나 다가왔다.

 

그 시간에 그가 근무한 건 불행이었다. 그는 나를 왼손만 수갑을 채워 내가 앉아있던 긴 의자에 묶었다. 그는 자기 자리로 가지 않았다. 내 앞에 서서 깐죽대기 시작했다. 놀리는 거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나와 우호적이었다. 아들과 살며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들러 자기 차를 손봤다. 하지만 인연이 끊기면 남보다 더한 철저한 남이 된다. 백인들이 더했다.

 

-오 형제여, 너 다시 들어올 줄 알았다.

-네 얼굴 보기 싫다 저리 꺼져라

-오늘은 웬일이냐

-너 잡으러 왔다 씨발놈아(요건 한국말로)

-이거 읽어보고 사인해라 쿠커(내가 사람들 요리 요리조리 잘도 한다고 저 새끼가 붙인 별명이다)

오른손으로 받은 인쇄용지에 사인을 강요받았다. 거의 10장이 넘었다. 대충 훑으니 죄목이 12가지 됐다. 나는 사인을 거부했다. 변호사와 상의한 후에 하겠다고 하고 바닥에 집어 던졌다. 동시에 나의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손과 발을 뒤로 묶었다. 자기들 얼굴을 갈린 것이었다. 나중에 해코지당하지 않으려는 의도다. 여긴 미친놈들 복수의 칼날 갈리면 총구에 불을 뿜는다.

 

나는 네 발 묶여 팔려가는 돼지처럼 뒤로 들려 독방에 갇혔다. 갇히기 전 끈을 풀고 두 놈이 두 번 팔과 손목을 강하게 비틀었다. 고통이 극심했다. 팔과 손목이 부러져 나가는 것 같았다. 그들이 나가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팔과 어깨에 힘이 빠졌다. 천장 모서리에 감시 카메라가 있었다.

 

나는 20분 후 간신히 손을 들어 올려 가운뎃손가락을 카메라에 갔다 댔다. 그리고 우리말 욕이란 욕은 죄다 퍼부었다. 혼자 그렇게 놀다 지쳐 잠이 들었다.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 경관이 밥을 갖다 줬다. 이른 아침이었다. 한입 집어 먹고 우유만 마셨다. 어제 꺾인 손목이 얼얼했다. 저들은 전문가였다. 상처하나 남기지 않았다.

 

변호사 면회가 들어왔다. 나는 지난밤 사실들을 모두 고자질했다. 그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말을 받았다. 아내가 밤에 변호사에게 연락 같이 들어와 보석금을 냈으나 그들은 나를 풀어 주지 않았다. 변호사와 면회 후 나는 나갈 수 있었다. 재판날짜는 한 달 후 잡혔다.

 

동네 골목 신문들은 난리 블루스가 아니었다. 조그만 동네에 한인 인구보다 신문이 많을 때다. 그들은 나를 두고 탱고, 지르박, 차차차, 돌아가며 가지가지 춤을 췄다. 나의 가장 험상궂은 민낯 어디서 찍었는지 전면에 올려놓고 시리즈로 나를 씹었다.

 

깡패 명광일 잡혀가다’ ‘기자 폭행에 연루 된 명 모 씨 감옥에 가다소문은 뻥튀기며 돌고 돌았다. 나는 덴버에서 제일 나쁜 놈이 됐다.

 

여기자 장 기자는 스스로 손톱으로 젖가슴에 상처를 냈다. 사진이 있었다. 목에 긁힌 자국이 여럿 있었다. 고 기자는 안경이 부러지고 코와 눈에 상처가 있었다. 내가 했는지 안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젖가슴 상처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그곳에 상처 낸 역사가 없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들과 합의로 소는 취하했으나 경찰과 시민의 소는 남아 있어 나는 재판을 받았다.

 

변호사가 고군분투했다. 술집 의리의 여전사들도 증인으로 채택 싸울 만했다. 싸움이란, 잘못은 인정하되 부풀리고 거짓 기재된 죄목을 없애는 일이었다. 나는 어글리 코리안들 여론이 끓고 있어 재판날짜를 최대한 연기했다. 해를 넘겼다.


경찰과 우리는 서로 양보했다
. 감옥에 가는 대신 벌금과 엄청난 시간 사회봉사로 최종 판결을 받았다. 그렇게 나를 씹던 골목 신문은 조용했다. 정말 씨발 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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