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조약에는 '외교권 박탈'이라는 문구가 들어있어 사실상 을사조약으로 조선이 망하였고 백성들은 노예가 되었다.
을사조약 체결 직전 고종 조선의 황제가 관련 이슈 집행 신하들에게 '알아서 처리하라'하였다.
다시 말하면, 고종 황제 자신도 돈을 받고 '알아서 하라' 하였다. 을사 5적이니 7적이니 아무른 의미가 없다.
집권자 및 대신들 모두가 타락하여 나라를 일본에 팔아 넘긴것이다.
관련 문서에는 지출된 금액을 계산한 메모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기밀119호에 의해 기밀비 10만원'
'2만원을 황제의 수중에 납입'
'무기명예금증서로 심상훈을 통하여 궁중으로'
구완희 3000원 이하영 3000원
이지용 5000원 이근택 5000원
이완용 1만원 박제순 외 두 대신 1만5000원
계 6만1000원 차액 3만9000원
한마디로, 조약 체결 1주일 전에 황제 고종이 일본 공사로부터 2만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명분은 이토 히로부미 접대비이고, 이유는 ‘내탕금 궁핍 상태’였다. 태조 고 황제가 비바람 맞으며 힘들게 마련한 나라를 판, 명백한 수뢰(受賂)다.
2차대전> 광복 이후,
"1965년 한일기본조약(韓日基本條約)의 대가로 한국은 '유상 자금-무상자금' 및 차관을 합쳐 8억달러를 받았다.
여기에 논란의 강제징용 배상금도 포함되어 있다. 당시 일본측은 강제징용관련 피해자들에게 직접 보상 금액들을 지불하려했다. 그러나 경제재건을 우선시 하였던 제 3공화국은 "합의금 모두을 한국정부로 넘겨 달라 그리하면 후일 한국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피해액을 돌려 주겠다." 자료 출처: 뉴스 조선
제 3공화국은 국가 재건이라는 이유가 분명했고 실지로 그리하였다. 대한민국 자존심에 피 멍든 한일조약> 한국위안부의 피 눈물 달러> 젊은 피 월남 전사들, 그 모든 것을 다 바쳐 대한민국을 재건하여왔다.
어찌 '일본군 위안부' 그들만 인권이 있었으며 어찌 그들의 인생만 소중했다는 말인가!
위안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위안부의 인권을 갈취하며 노예처럼 부려 먹은 파렴치한 19대를 비롯하며 타락한 정의연-윤미향- 이용수는 무슨 권한으로 위안부의 인권을 갈취하며 단발머리 15세 소녀상들을 길바닥에 똥가랑이 쳐벌리게 하였는가?
위안부 인권?
개 뻑따구 같은 소리다.
국내외 '소녀상-기림비' 모두 모두 철거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