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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를 뒤틀어, 날선 역동성으로 다시 태어나다
날짜 2018-05-15

양평군‘서니 사이드 박스’는 2대째 영화의상 감독으로 일하는 권유진씨가 모친과 함께 살기 위해 지은 집이다. 홍석규 사진작가 제공.

넓은 주방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어머니 방과 아들의 방이 있다. 두 방 사이에 화장실을 놓아 유사시에 대비할 수 있게 했다. 홍석규 사진작가 제공.


‘영화인의 집’이란 통상 어떤 모습일까. 영화처럼 비현실적인, 혹은 영화처럼 현실적인 것일까.

권유진 영화의상 감독의 집은 현실 중에서도 현실이다. 어머니에 이어 2대째 영화의상 디자이너로 일하는 권 감독은 지난해 경기 양평군 한적한 곳에 모친과 함께 살 집을 지었다. 집 옆 창고에는 지금까지 만든 의상이 미어터질 기세로 들어 차 있고, 집 뒤 작업실에는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마당 나무엔 배우들이 입을 바지와 저고리가 주렁주렁 널려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풍경이 햇살 아래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지는 곳, ‘서니 사이드 박스’다.

어머니와 아들, 2대째 영화의상 디자이너로

한국 영화 의상계에서 권 감독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1985)을 시작으로 영화 의상에 발을 들인 그는 지금까지 ‘변호인’(2013), ‘광해’(2012),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명량’(2014), ‘웰컴 투 동막골’(2005), ‘국제시장’(2014) 등 셀 수 없이 많은 히트작의 의상을 제작했다. 올해 아흔 넷인 어머니 이해윤 여사는 1950년대부터 활동한 한국 영화의상 디자이너 1세대다. 두 사람이 영화의상에 매달린 시간을 합치면 110년.

그러나 시간의 무게도 옷 무게만큼은 못했다. 지금의 땅은 이해윤 여사가 수십 년 전, 옷 보관할 곳을 찾으면서 터를 잡게 된 곳이다. “원래는 창고였어요. 절반은 거주공간으로 쓰고 나머지 빈 곳엔 지금까지 만든 영화의상을 빼곡하게 채워놨었죠. 원체 옷을 버리질 못하세요.” 설계를 맡은 황창록 스타시스 대표의 말이다. 영화 미술감독을 하다가 건축으로 전향한 황 대표는 2003년 ‘청풍명월’의 작업을 하다가 권 감독을 만났다. 그때의 인연으로 집을 부탁하게 된 게 약 2년 전. 단열도 채광도 안 된 창고 위에는 안 쓰는 컨테이너 3동이 널브러져 있었다. 권 감독은 이곳을 “사람이 살 수 있게 만들어 달라”고 했다.

“원래 집을 짓는다면 무덤 모양으로 하고 싶었어요. 죽을 때 되면 문만 딱 닫을 수 있게. 그럼 왕릉이잖아(웃음).” 평생 영화 속에서 살던 권 감독에게 집 짓기 같은 건 농담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나이가 아흔이 넘으면서 그의 삶에도 현실이 비집고 들어왔다. “노인네 다니기 편하게 문턱 없애고, 안전바 설치하고, 여차하면 바로 어머니 방으로 갈 수 있게 내 방이랑 중간에 화장실 놔달라고 했죠. 이것저것 요구사항이 많았어요.”

서울 작업실을 철수하고 이곳으로 옮겨오는 터라 사무실, 작업실, 직원들이 머물 공간까지 필요했다. 설계를 총괄한 한선희 스타시스 디자인 팀장은 산적한 과제들 앞에서 가장 먼저 집의 방향을 남쪽으로 틀기로 했다. “빛이 안 들어와 어둡고 침침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집이 건축주들의 유쾌한 성격과 너무 안 어울렸어요. 햇볕이 듬뿍 드는 밝고 따뜻한 공간으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는 건물 위 방치된 컨테이너들에 주목했다. 직원들의 임시 숙소로 사용할 곳이었다. 3동의 컨테이너에 색을 칠하고 창문을 낸 뒤 남쪽을 향하도록 재배치했다. 건물과 부러 어긋나게 놓여 뾰족뾰족하게 튀어나온 컨테이너의 외곽선은 그대로 1층 외벽의 선이 됐다. 건물을 깎고 돌출시켜 본래 컨테이너와 같은 모양이었던 것처럼 외벽 일부를 재구성한 것. 덤덤했던 직사각형의 건물은 마치 온 힘을 다해 남쪽으로 몸을 튼 듯 역동적이고 날 선 모양으로 변했다.

온 힘을 다해 몸을 튼 듯… 햇살 가득한 집

건물과 컨테이너가 뒤틀리면서 생긴 공간은 2층에선 테라스가 되고 1층에선 캐노피와 작은 마당을 이룬다. “적은 예산 안에서 집과 컨테이너를 같이 활용할 방법을 찾다가 재미있는 삼각형의 공간들을 얻게 된 거죠. 실내 모든 공간이 남향 창을 갖게 된 건 물론이고요.”

직사각형을 포기한다는 건 면적을 잃는다는 의미다. 대부분의 집들이 지루함을 참고 직각 모서리를 유지하는 이유다. 서니 사이드 박스가 독특한 외형을 가질 수 있었던 데는 건축주의 ‘무관심’이 한 몫을 했다. 권 감독은 애초에 집의 외관에 대해선 일체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를 묻자 “나도 누가 내 옷 갖고 뭐라 하면 찢어버리는데?”라고 반문했다.

“집이 성질 있어 보이잖아요. 전 집이나 차는 무조건 ‘편한 게 최고’라는 주의지만, 어머니에 이어 2대째 영화 일을 하고 있는데 이왕이면 ‘영화인의 집’처럼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회의나 피팅하러 감독, 배우들이 많이 오는데 이제까지 한 번에 못 찾아온 사람이 없어요. 멀리서 보고 이상하게 생겼다 싶으면 그냥 오는 거야(웃음).”

집 안을 가득 채웠던 옷은 건물 옆 2.5층 높이의 창고로 옮겼다. 실내는 화장실로 연결된 어머니 방과 아들 방, 그리고 요리가 취미인 아들을 위한 넓은 주방으로 간결하게 구성됐다.

남쪽을 향해 활짝 열린 어머니의 방엔 아직도 재봉틀이 놓여 있다. 권 감독에 따르면 아직 “현역”이다. “제 회사(해인 엔터테인먼트) 소속이에요. 용돈 드린다고 했더니 ‘일하는데 왜 용돈 주냐, 월급 달라’ 하셔서 월급 드려요.”

권 감독의 방엔 재봉틀 대신 ‘제단’이 놓여 있다. 술을 좋아하는 그를 위해 건축가가 만들어준 작은 실내 평상이다. 창 밖을 바라보며 술 한 잔 기울이면서 의상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라고 만든 곳이지만 지금은 부친의 사진을 비롯한 온갖 물건으로 발 디딜 틈도 없다. 서운함을 표하는 한 팀장에게 그는 “내가 정우성이냐”는 핀잔으로 답했다.

매주 서울과 양평을 오가며 작업한 지 어느덧 1년, 시간이 쌓이는 속도만큼 의상도 빠르게 쌓였다. 집도 빠르게 어질러지는 중이다. 처음 반짝 반짝했던 집은 의상, 원단, 실, 영화 포스터에 묻혀 지금 살아남은 건 외관 정도다. 그러나 현실이 밀고 들어올수록 점점 더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지는 건 영화의 속성 때문일 것이다. “집은 사람을 닮게 돼 있다”는 집주인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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