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한 세상 살던 어떤 발자취 (제1편)

2019.02.12

1978년 11월의 어느날은 추수감사절 (Thanksgiving Day)이었다. 이로 인하여 집에서 쉬었다. 아침을 먹고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이 날이 공휴일인지라, 일을 벌린다는 것도 뭣하고 해서 '다이닝룸'의 창가에 서서 초겨울의 빈 뒷뜰과 앙상해진 나무가지들을 내다 보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서글퍼졌다. 한국에 내가 지금 산다면 이런 명절에 이처럼 멍하니 밖을 내다보며 서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엄습해 왔던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지금 참 외로운 인생을 살고 있구나 하고......


이런 기분에 빠졌던지 얼마 않돼서 마침 집사람의 고교 동창네 집에 초대되었다. 한 20여분 달려간 그 집에는 이곳 대학에 교환교수로 온 건국대학의 역사학 교수와 그의 부인인 서울여대의 두 교수 부부를 환영하는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그 집주인은 서울공대 화공과 출신으로 이곳에서 박사학위를 받고는 '모빌'이란 석유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또 한 여자는 불란서의 '솔본느'에서 공부했다는데, 얼마전에 남편을 사별한 과부였고, 또 한 사람과 그 부인은 C.C.C (Campus Crusade for Christ: 일명,한국대학생선교회)의 찬양대에서 활약했던 앨토의 좋은 음성을 가진 여성이었다. 


'솔본느'출신 말고는 인근에 '한인장로교회'에 다닌다 하면서, 나 보고도 그 교회로 나오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민와서 5년 만에 이곳에 집을 장만한지도 이미 두어 해가 지났음에도, 주위에 아는 사람도 없이 쓸쓸히 지내던 차라, '프린스톤' 대학구내 한 쪽에 있다는 그 교회를 나가기 시작하였다. 이로써 기독교란 신앙의 첫 발을 내어 디디게 되었던 것이다. 얼마 되지않아 찬양대에도 참가하며, 성경공부라든가, 기타 모임에도 열심히 가담하면서 초보자로서 기독교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찬양대에 참가했으니 뭔가 제대로 소리를 내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계유지의 현장이 인근도시에 있었던 지라 매일 50 마일을 달려 갔다가 저녁에 집으로 되돌아 왔다. (하루 왕복 100마일) 이 시간을 멍하게 보낼 것이 아니라 목청 가다듬는 기회로 삼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페라' 아리아의 '카세트'테이프'를 끼어넣고 따라 불렀다. 뜻 모르는 가락이나 좋아하던 음악이라서 발성연습도 하고 기분도 내는 시간으로 활용했다. 찬양대의 문제는 이렇게 해결했다. 문제는 기독교 신앙의 교리문제에 있었다.


무조건 믿으라! 그런데 그게 안됐다. '곧이곳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상한 것은 누구 하나 시원하게 답해주는 사람들이 거기엔 없었다. 미심쩍어서 물으면 뭐라고 설명들을 하는데 쉽게 납득이 가지않았다. 나한테 문제가 되는 점들을 질문하고 나대로 이해하는 것들을 그들에게 말해보았다. 내게는 도무지 씨가 먹은 설명이 아니더군. 목사 뿐만 아니라 장로라는 사람들과 주고 받은 대화에서 말이다.


언젠가 성경공부의 모임에서 내가 이런 말을 했다. "공산주의 사상(Communism)'은 예수님이 사역하실때 그 따르던 제자들이 재산을 "공동소유 했던 전례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박 장로란 분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얼굴을 불키면서 나를 노려보았다.


"당신이 어떻게 기독교를 공산주의에 비유한다는 건가?" 싸울듯이 삿대질을 하며 이처럼 소리를 질렀다. 갑작스런 이같은 감정폭발에 대경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양반처럼 착하고 얌전한 장로를 내가 본적이 없었다 바였던지라 정신을 가다듬고 내가 무슨 말을 잘못 말했나를 다시 되돌아 보았다.


책에서 읽은 것을 그대로 아는척 했던 것인데, 이처럼의 예상치 않은 불상사가 발생하고 말았다. 나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이 분이 더욱 성을 냈다. 무식해서 이러는 것을 내가 어찌 하겠는가...? 목사님에게 얼굴을 돌렸다. 매우 난처하다는 건지... 말없이 그냥 앉아만 있었다.


이것은 극단적인 경우라 하겠다. 일반적으로 교회의 장로라 해서 밤낮으로 묵상하고 공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무슨 신학교의 여름강좌를 다녀왔다는 말은 간혹 들었지만, 강단에서 설교를 듣는 그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목사란 직업적인의 말을 듣는 것을 한 걸음 더 내쳐서 뭔가 그 이상의 어떤 진리를 자신이 탐구하는 노력이 없어 보였다.


도무지 생각을 않는 거라. 의심쩍인 생각을 하면 그 모임에서 붙어날 수가 없으니 "청지기의 현명함"을 최대로 활용해야 한다는 건지...교리의 본질이 무었이며 어떤 과정을 거처서 내게 지금 전달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자 하면 않될까? 믿음대로 된다고 하니 무조건 믿어야 하겠지만서도. 그러질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구원인지 뭔지를 받을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교인들이 대체로 무식하다는 것을 차차 알게 되었다. 내가 뭐를 잘못 믿는가?


禪涅槃


2/12/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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