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목사의 권총 자살을 슬퍼하며…"
몇년전에 씨애틀에서 있었던 타인종 목회자 전국 연합회 수련회에 갔을 때 만난 박 목사님은 한국의 공군사관학교를 다니다가 부모님을 따라 이민을 왔고, 이십중반에 미국인 회사에서 직장생활 하다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여 신학대학원을 나와서 미국인 목회를 나왔노라고 했다.
성품이 소탈하고 호감이 가는 인상이라 명함을 교환하고 종종 연락하기로 했으나, 전국 목회자 모임에서 두어번 뵌 일외는 별달리 소식이 이어지지 않다가 그 후에 권총자살로 인생을 마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에 의하면, 그 목사님의 아버님은 자살로 아들을 잃은 설움에 북받쳐 서럽게 우시더라고 했다. 그런데 그 아버님은 장성한 아들과의 관계가 소원했던지 지난 10년간 아들이 목사가 되어 아이오아주에서 살고 있었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없친데 곂친 격으로, 박 목사님은 부인과의 관계가 원만치 못했던지 부인은 아이들을 데리고 타주로 이주해 버렸고, 목사님은 시골 미국인 교회의 목사관에서 혼자 지내며, 고독과 외로움을 이기지 못한 채 권총 자살로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최근의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미국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전체 목회자들의 삼분의 일가량은 목회생활에서 의미와 보람을 갖고 일하며, 삼분의 일은 목회가 싫지도 좋지도 않아 그럭저럭 목회하며, 나머지 삼분의 일은 병적인 우울증 (clinically depressed)에 빠져 있다고 한다.
박 목사님도 목회협력위원회(SPRC)에 자신이 우울증에 시달려 항우울제 약을 먹고 있다는 보고를 한 바 있다고 했다. 우울증은 현대인의 감기라고 할만큼 흔한 마음의 병이라, 웬만한 우울증은 치료하지 않아도, 스스로 나아지는 수도 있겠으나, 본인이나 타인을 해칠 마음이 들 정도로 판단력이 흐려질 정도로 우울해 지면, 주위의 친구들이나,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현명한 일이 아닐까 한다.
마더 테레사가 말한 바, “외로움은 서양 사회의 문둥병(Loneliness is the leprosy of the Western society.)”라고 했듯이, 개인주의가 발달된 서양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고립되어 외롭고 우울하기 쉬운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 목회자는 외로운 사람이다. 목회자가 개인적인 고뇌를 털어 내 놓을 수 있는 가까운 사람이 많지 않고, 목회자가 평신도들에게 우는 소리를 할 수 없기에, 목회자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다.
미국 연합감리교회에 속한 35,000개의 교회중에 10,000개의 교회가 주일 낮예배 평균 출석이 35명 미만 이란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다. 작은 교회에서 박봉을 받으며 묵묵히 목회하는 목사님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부모님의 격려를 받고, 아내의 사랑과 자식의 존경을 받으며 목회를 하는게 목회자들에게는 큰 위로와 용기가 될 것이다. 목회자의 가정이 화목하고 협력하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나,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완벽한 가정은 허구일 뿐, 불완전한 가정, 깨어진 가정이 이 세상에 더 많지 않을까?
성경에 나오는 위인들의 가정도 그리 원만해 보이지 않는다. 가인과 아벨은 형제간에 살인사건이 일어 났으며, 룻과 딸들, 시아버지인 유다와 며느리 다말은 근친상간을 했고, 다윗과 압살롬은 부자간의 반역전쟁으로 아들인 압살롬이 죽었으며, 삼손은 애인 데릴라에게 배신을 당해 눈이 뽑힌 채 죽음을 맞았고,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사기를 당했으며, 요셉은 형제들에게서 왕따를 당해 죽음직전 까지 갔다.
목회자의 가정에도, 불화와 다툼, 별거와 이혼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일이 생기면, 목회자이기 때문에 더욱 죄책감에 시달린 채 속으로 앓다가, 우울증이 깊어져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깨어지고 부숴진 가정에서, 최선을 다해 화목과 평화를 도모하고자 애써야 하겠지만, 노력을 해서도 안된다면, 부부사이의 별거 아니라 이혼을 했더라도, 부모자식간, 형제간에 의가 끊어 졌더라도, 자괴감과 죄책감에 빠져 인생을 포기하기전에, 한번 더 희망을 하나님께 두어 보자. 성경에는, “네 부모가 너를 버려도, 여호와 하나님은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시편 27:10)고 했다. (Though my father and mother forsake me, the Lord will receive me)
요한 웨슬레 목사님은 부인과 사이가 나빠져 별거에 들어갔고, 부인이 죽은 후, 이주일이 지난 후에야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은 부인 장례식에도 가지 않고, “내가 싫어서 쫓아 보냈냐? 지가 싫어서 나갔지. 그렇게 살다 죽었구나. 어쩔 수 없지 뭐”라고 했다 한다. 그 후 요한 웨슬레 목사님은 홀애비로 살면서도 기죽지 않고 88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돌아 가셨다. 돌아가시기 이틀전에,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것”. (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사람에게 너무 의지하여 실망하지 말고,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었으면 한다.
공자님은, “세상이 나를 알아 주지 않는다 해도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은 군자(君子)”라고 했다. 영국교회에서 쫓겨나고, 별거로 끝난 결혼생활에도 기죽지 않고 씩씩하게 88세의 천수(天壽)를 누리고 가신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 서양의 군자(君子)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