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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 상처는 남고, 춤은 흐른다 — 도둑, 싯다르타, 발레의 이야기

2025.10.16


  전이었다주말 오후가족들과 저녁식사  쇼핑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사이 명의 도둑이  집에 들어와 모든  훔쳐갔다경찰도 오고CCTV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얼굴을 가린 그들은 놀라울 만큼 철저했다 옷장서랍작은 상자들까지오랜 세월 모아온 가방과 결혼예물그리고  안에 담긴 시간과 추억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도둑맞은 그날 이후 한동안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모든  귀찮았고몸은 움직였지만 마음은 멈춰 있었다훔쳐간 도둑들을 원망했고미워했고화가 났고허무했다 달이 지나도록  감정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문득 생각했다. ‘나는 무엇에 그렇게 집착하며 살았던 걸까?’ 문득 법정 스님이 탁상시계를 도둑맞았던 일화가 생각났다나도 스님처럼 담담할  있을까생각해보니아니었다내가 스스로 내려놓는 것과 남의 손에 의해 잃는 것은 전혀 다른 무소유의 개념이다그렇지만 그 상실감은 오히려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게 했다.


 마침 9월의 독서 모임  주제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였다왕의 아들로 태어나 모든 것을 가졌던 싯다르타는 세속의 풍요를 버리고 깨달음을 찾아 떠난다그의 여정  배사공 바수데바는 말한다. “강은 모든 것을 가르쳐준다강에는 모든 것이 있다.”  구절을 다시 읽으며 생각했다이번 일은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하나의 강이었는지도 모른다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멈추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이제는 조금 내려놓고 비워야 한다 강의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들렸다나에게 발레도 그랬다몸은  무대 위에 날고 있었지만마음은 멈춰 있었다완벽한 자세보다 중요한 것은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힘이다발레는  안의 상실과 고통을 품는 예술이며 속에서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운다.


 도둑맞은 허무한 마음에 여기저기 하소연하듯 이야기를 꺼냈더니의외로 도둑을 맞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명은  번쯤 그런 경험이 있었다그제야 알았다이것이  혼자만의 상처가 아니라는 것을누구에게나 상실은 찾아오고그때마다 삶은 우리에게 비우는 법을 가르친다.


 나는 도둑에게 빼앗기고싯다르타에게 배우고발레로 다시 일어선다나는 여전히 완전하지 않다그러나  불완전함 속에서 배운다잃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깨달음의 시작이었다강이 흐르듯  삶도 흐른다그리고 언젠가 나도 바수데바처럼 조용히 웃으며 말하리라. “ 모든 일은 나에게 필요한 배움이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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