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소설 "꺼져줄래요, 전남편 씨", 주인공은 "온주주는" & "하서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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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를 게 없는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만삭이 된 배를 안고서 아이 방에서 새롭게 장만한 아이 옷들을 소중히 개며 곧 있을 만남을 그려보는 그런 평범한 날. 호들갑스러운 고용인들의 목소리가 평온한 일상을 깨기 전까지는.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고?”
나비의 날갯짓처럼 사뿐사뿐 움직이던 손이 허공에서 우뚝 멈추었다. 온주주는 조용히 고용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발소리를 죽이며 조용히 움직이던 고용인들이 오늘따라 부산스레 움직이는 거 하며 평소보다 들떠있는 분위기는 저가 잘못 들은 게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아 온주주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배내옷을 정리하던 손끝도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몽롱한 의식 속에서 애정이라고는 꼬물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첫날밤을 보내고서 집을 나간 그녀의 남편, 하서준은 여태 코빼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곧 태어날 아이에 대한 애정만큼은 있는 것 같아 온주주는 안도되었다.
“아가야, 아빠도 너희들을 만나고 싶은가 봐. 너희도 기쁘지? 엄마도 기뻐.”
온주주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치며 우뚝 솟은 배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이팝꽃 같이 맑게 피어난 얼굴은 기뻐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이틀 뒤, 지난 열 달 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하 씨 가문의 큰 도련님이 돌아왔다.
온주주는 고대하던 초인종 소리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서 종종걸음으로 뛰어내려갔다.
하지만 설렌 발걸음이 계단 입구에서 우뚝 멈추었다. 꿈에도 그리던 남자는 혼자가 아니었다. 온주주의 안색이 새파랗게 굳어졌다.
“하서준,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네 처 출산을 옆에서 도우러 오라 한 거지, 저 여자를 이 집에 들이라 한 줄 알아?”
“무슨 짓인지는 아버지가 더 잘 아시잖습니까. 처음부터 반대했던 결혼이었습니다. 제가 결혼하고 싶은 여자는 오직 지금 제 옆에 있는 고여름뿐입니다!”
잘 조각된 조형물 같은 얼굴이 한겨울 빙하처럼 서늘한 빛을 냈다. 제 아버지를 노려보는 검은 눈동자가 위험하게 번뜩였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하 씨 어르신의 노성이 집안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고얀 놈! 네 아이가 곧 태어날 마당에 그런 소리가 나와?!”
“제가 못할 말을 했습니까? 신혼 첫날밤에 제 술에 약을 타지 않았더라면 생기지도 않았을 아이입니다. 애초에 태어날 자격도 없는 아이라고요!”
“…”
그 한 마디에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쿵 하는 심장의 울림이 귓가에 닿았다. 온주주는 순간적으로 눈앞이 캄캄해지고 머릿속이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온주주 주위에만 모든 흐름이 멈춘 듯했다.
태어날 자격이 없는 아이…
그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가슴을 난도질했다.
온주주의 몸이 쓰러질 듯 위태롭게 휘청거렸다.
“꺄악! 사모님! 사모님 하혈해요!!”
“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리가 난 방향으로 향했다.
일층 거실에서 대치 중이던 부자도 화들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고서 위쪽을 바라보았다.
온주주의 공허한 눈빛과 텅 비어버린 듯한 얼굴에서 부풀어 오른 복부를 향하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새하얀 다리를 타고 뚝뚝 흘러내리던 굵은 핏방울이 바닥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하서준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하서준, 참… 대단한 사랑을 하는구나. 네 자식의 시신을 짓밟고 얻은 행복이 과연 오래갈까? 남은 인생… 편히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아?”
서슬 퍼런 시선으로 하서준을 노려보며 잇새로 짓씹듯 내뱉는 온주주의 모습에 하서준의 눈가가 옅게 경련했다.
온주주가 그와 결혼하고서 처음 입 밖에 낸 말이었다.
하서준이 무언가 말을 하려 입을 열기도 전, 그 한마디를 간신히 내뱉고서 의식을 잃은 온주주는 바닥 위로 풀썩 쓰러졌다. 그녀를 닮아 창백한 원피스가 붉게 물들었다.
“빨리 구급차 불러! 빨리!!”
“…”
몇 분 뒤, 일사불란한 구급 대원들에 의해 온주주는 쏜살같이 병원으로 옮겨졌다.
“서준아, 너무 걱정하지 마. 너 때문이 아니야. 지금이 무슨 시대인데 정략결혼이 말이 돼? 그것도 그렇게 비열한 방법으로. 그 여자 저주하는 거 봤어? 서준…”
모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조용해진 거실에서 고여름이 하서준의 주의를 끌려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미처 말을 잇기도 전에 평소 고여름에게 화 한 번 낸 적 없었던 하서준의 매서운 눈초리가 날아와 꽂혔다.
“닥쳐! 네가 뭔데 감히 하 씨 가문의 일에 이래라 저래라야?!”
서릿발같은 음성이 고여름의 말머리를 잘랐다. 서슬 퍼런 기세에 화들짝 놀란 고여름은 냉큼 입을 닫았다.
온주주, 이 천한 년! 하 씨 가문에는 다시 발을 들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아니, 차라리 산실에서 죽어. 아이와 같이 죽어버려…
한 시간 뒤, 병원.
“죄송합니다, 하 씨 어르신. 저희로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산모분 출혈이 너무 심해 결국 운명하셨습니다. 뱃속에 있는 세쌍둥이 중 하나는 의식이 돌아왔지만 나머지 아이들은… 정말 죄송합니다.”
마침내 수술실에서 나온 산부인과 의사가 수술실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하 씨 가문의 사람들을 발견하고는 묵직한 목소리로 비통한 소식을 전했다.
출산하다 억울하게 죽은 며느리 생각만 해도 원통한데 금쪽같은 손주도 둘씩이나 잃었다.
미어진 가슴을 움켜쥐고서 울분을 토하던 하 씨 어르신은 결국 극심한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어르신! 어르신!!”
“…”
그 시각, 고여름을 데리고 하 씨 가문을 나온 하서준은 개인 소유의 펜트하우스로 향하는 중이었다.
비서에게서 다급하게 걸려온 전화 한 통에 핸들 위에서 유려하게 움직이던 하서준의 손이 순간 멈칫했다.
“죽었다고?”
“네. 원래도 몸이 안 좋으셨다고 합니다. 거기다 출혈도 심하셔서 병원 측에서도 손쓸 새가 없었답니다. 다행히 세 아이 중 하나는 살려냈는데 아들이랍니다. 어르신께서 데려가셨습니다.”
비서는 그 사실과 함께 흰색 천으로 덮인 병상의 사진을 찍어 보냈다. 천 위로 솟은 형태가 영락없는 어른 하나와 갓난 아이 둘의 모습이었다.
사진을 빠르게 훑어보던 하서진의 눈동자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끼익-”
유려하게 달리던 차가 굉음을 내며 도로 한가운데에서 그대로 멈춰 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