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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편-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正體

2019.04.19

'인터넽'시대의 국제무역과 자본이동이 미국형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하고 있다. 전세계가 새로운 경제체제를 요구하는 이유는 딸라를 국제결제수단으로 삼기에는 미국경제가 너무 허약해 졌다는 데에 기인한다. 딸라는 더 이상 국제화폐의 역활을 감당할 만한 가치유지의 능력을 이미 상실했다. 이로써 각 나라 화폐가치의 기준이 유동적인 변동환률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세계2차대전 끝에 국제화한 미국과 유럽 및 일본 등등의 자본가들이 이런 국제간의 환률차액을 노리고 수억 딸라의 換投機(환투기)가 순시간에 국경을 넘나들면서 그 나라의 경제뿐 아니라, IMF 그리고 미국의 재부성 관리들을 곤경에 몰아넣고 있다. 


資本이란 무었인가?


'칼 맑스'(Karl Marx 1818~1883)가 이 질문을 던지고 19년 만인 1867년에 'Das Capital' 즉 "자본론"이란 책을 세상에 내어 놓았다. 그의 생각은 Adam Smith와 David Ricardo의 古典(고전)경제학을 이어받은 가격형성의 논난에서 '노동이란 무었이며, 무었이 그 가치를 결정하는가'를 알아보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아버지가 변호사가 되기를 원했으나 '헤겔'의 역사철학에 심취하면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였다. 그의 첫 직장은 지방의 한 신문의 주필이었다. 사회정의의 극열한 논조로 인하여 失職(실직)하고는 불란서 '파리'에 가서 共産主義(공산주의)모임의 초창기에 그 운동에 가담하였다. 마침 그런 활동에서 만난 '엥겔'의 권면으로 경제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엥겔'이란 사람은 영국의 산업혁명에서 재미보던 산업자본가로서 '맑스'를 죽는 날까지 경제적으로 도와주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맑스'는 자본가와 대항하여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구호아래에서 자본주의는 결국 멸망할 것을 예고했었다. 그는 대영제국의 도서관에 파뭍쳐서 19년 동안 수많은 양의 책을 읽고 나서, "노동의 가치"를 이론적으로 설명했고, 그가 죽고 나서 엥겔스가 그의 유고를 정리했다.


그가 활동하던 시대는 산업혁명이 꽃피던 시절이었다. 산업가들이나 금융인들에게는 좋은 세월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는 불공정의 사회정의와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하여 각종 기계들 앞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또한 원자재를 공급하던 식민지들이나 여타의 후진국들에게는 '제국주의'의 유산인 식민지주의(Colonialism)으로 정복당했고 또 수탈당했다. 일본도 1868년의 명치유신이래 이런 식민지 운동에 늦을쎄라 한국과 만주를 무력으로 강점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 강대국들 간에도 '이웃거지 만들기'의 무역전쟁에 열심하였다.


'칼 맑스'는 공산주의에 사상적 이념을 제공하였다. 共産(공산)이란 뭔가? '국민이 나랏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한다'는 말이다. 자본가도 노동자도 따로 없는 평등의 이상적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가 이런 꿈을 그리던 이유는 예수님이 그를 따르던 자들과 모든 소유를 함께 나누어 살았다는, 소위 Religious Community (신앙의 공동체)란 신약성경의 단어에서 유래한다. 이런 사상이 유럽 산업국가들 전역에서 풍미하던 시절에 '러시아'황제 '짜르'를 알살하려다 불란서로 도망왔던 '레닌'에게 혁명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했던 것이다. 


그러나 쏘련은 거기에 "농민"이란 말을 추가했다. 왜냐하면 쏘련은 공장이 많지 않았고 대지주들만 풍성했기 때문이다. "노동자, 농민들이여..." 어디서 많이 들어본 口呼(구호)이다. '칼 맑스'는 '레닌'이 이런 농민의 구호를 외치는 것을 못 마땅해 했었다. 러시아도 산업혁명으로 인한 자본가들의 잔혹한 착취를 경험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트롳쯔키"도 같은 생각을 하다가 '멕시코 씨티'에서 '스타린'에게 암살당했다.


'칼 맑스'가 구태어 공장생산의 노동을 주장한 이유가 있다. 어떤 생산품을 만들려면 자본가와 은행들의 돈이 공장부지, 건물, 기계를 설치하고 원자재를 구입해 놓고 일꾼을 모집한다. 이들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그들의 육체와 지적능력을 활용하여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을 만들게 된다. 그 물건들은 일정한 생산기간을 거쳐서 시장에 나오는데, 자본가들이 처음 계산하기에는 이런 값을 메기면 이런 이윤이 만들어 질 것이란 예상 하에 생산활동을 시작했다. 


만일 그 기대치와 어긋나면 손해를 보게되고, 맞아 떨어지면 돈이 벌려서 노동자에게 임금을 주고 빌린 은행돈을 이자와 함께 환불하게 된다. 그 남어지를 자본가들이 챙긴다. 이 남어지라는 "잉여의 가치"란 과연 무었이냐? 영어로 'Surplus of labor' 라고 '칼 맑스'는 규정했다. 이것이 축적되어서 資本(자본)이 됐다는 것이다. 결국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궁극적으로 자본가들의 자본이 됐다는 논조다. 공산주의자들이 "단결하자"는 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노동자-농민이 착취를 당했다는 얘기다. 이런 생산 공정상의 이윤을 과연 자본가들이 착취했다고 봐야 할까?


자본가는 몇개월 또는 몇년 앞의 일을 예상해서 은행의 돈을 빌렸고, 그로써 공장을 운영했다. 미래의 위험부담 끝에 다행히 기대대로 이득이 생겨서 공장을 계속 운영하며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마련해 준다. 그렇다면 자본가가 자기 몫을 이윤으로 챙기는 것이 과연 노동자 및 농민을 착취하는 것인가? 


'러시아'의 경우는 로마시대 이래로 農奴制度(농노제도)를 천여년 시행해 오고 있었다. 그런 노예노동에서는 황제와 그 일당에 도전하여 노동자-농민들이 단결하여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고 본다. 그래서 '러시아' 공산혁명이 있었던 바이고, 그들이 이상적 공평의 공산경제를 70년 실험해 봤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개인의 욕심에서 경제활동이 시작된다는 기본적인 人性(인성)을 무시한 경제제도는 제대로 움직여질 수가 없었다. 


집어친지가 20여년이 좀 넘고 있는 이제에, 북한이 지금도 같은 짓에 매달려 있는 이유가 무었인가? 共産사상을 일당독재의 구실로 삼고 인민들을 착취하려는 이유가 아니고 무었인가? 자본가 대신에 김씨 가족이 왕으로 군림하면서 심지어 남한민족에게 까지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게 하고 있다. 그런데 남조선의 땅에는 이런 "재산공평의 단꿈"을 깨지 못하는 자들이 아직도 '수두룩 닥상'이라고 하니 웃기는 일이다. 


위에 말한 자본형성을 "생산자본" (production capital)이라 정의한다. 다음에 은행이 빌려주는 자본을 "금융자본" (finance capital), 그리고 "가짜자본" (fictitious capital)이라는 자본이 따로 있다고 '칼 맑스'가 말했다. 


3번째의 "가짜자본"이 2008년에 있었던 미국의 경제파탄을 불러 일으켰던 변칙금융의 장본인이었다. 무슨 妙策(묘책)이 없는가를 찾아내기 위하여 여러 학자들이 다시금 '칼 맑스'의 Das Capital 을 들춰내기 사작했단다.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려면 화폐, 즉 우리들이 좋아하는 "돈이란 動物"의 성격을 규명해야 한다고... '칼 맑스'도 그랬으니까... 이것을 공부하는 것이 경제학에서 말하는 "화페금융론"이다.


돈은 價格(가격)의 基準(기준)이고, 交換(교환)의 수단이며 또한 價値(가치)의 보유이다. 옛날에 物物交換(물물교환)의 시절에는 시장에서 당사자 間(간)에 필요한 물건을 서로 주고 받았다. 만일에 필요한 물건을 발견하지 못하면 다음 장날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화폐는 늘 價値(가치)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 때나 장소에 구애없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사고 또 팔 수가 있다. 여기서 판다는 말은 "가치의 보유"를 판다는 말한다. 즉 은행이 하는 일이 이런 credit-money(예금자의 가치)를 수표로 내어주며 팔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國際的(국제적) 장터에서는 문제가 달라진다. 첫째 돈이 價格의 基準이라 했는데, 가늠하는 환률이 늘 변동하면 어떻게 나라 끼리의 화폐율을 정할 수가 있겠나?  따라서 交換의 수단으로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또한 "價値의 창고"라고 했으면 처음 넣어둔 대로 그냥 남아 있어야 하는데 인플레 또는 디플레로 썩어 나가서야 어찌 그 화폐가치를 원래대로 유지할 수가 있겠는가? 이런 이유로 해서 金本位制(금본위제)에 그토록 오랬동안 매달려 왔던 바였고, 미국이 끝까지 버티다가 1971년에 손을 들게 되었다. 세계의 화폐시장에서 혼란이 생겼고, 이 난장판에서 재미보는 사람들 때문에 지금 갈팡질팡하게 된다는 얘기는 이미 여러차례 거듭했다. 말하는 나 자신이 지겨울 정도다.


앞에서 미국은 딸라를 국제통화로 유지하려던 발악을 "인간적 약점" 즉 자기네에게 주어진 특권인 무제한의 화폐발행(seigniorage)을 최대한 악용하여 딸라를 마구 뿌려대고 왔다. 그리고 그 돈으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남의 나라의 '생각할 권리'마저 빼았겠다면서 전쟁에 허덕이고 있다. 이 말은 나라마다 그 민족마다 고유한 전통과 특이한 역사적 배경을 말한다. 세계의 열강은 이 싸구려 딸라를 확보하려고 온갓 노력을 해왔다고 이미 말씀드렸다. 


남발된 딸라를 축적했던 독일, 일본, 중국 그리고 한국 등등의 부자나라들은 그 "價値보유"로 딸라가치가 점점 좀먹어 들어가자, 딸라貨의 가치가 더 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미국의 공채 즉 '빚의 증서'를 사들임으로써 自國시장에 나도는 딸라貨를 끊임없이 사들여서 그 희소가치를 올려야 했다. 미국이 딸라를 인쇄해내면서 이들 나라의 상품을 사주면, 이들 상대국들은 그 상품의 댓가로 "종이장의 約束書"(약속서: U.S.Treasury Bonds)를 사들이는 악순환이 거듭해왔다는 말씀도 했다.


미국으로서도 할 말이 있다. 환률을 실세대로 해서 미국도 이들 나라에게 적정선의 환률로써 미국상품을 팔게 해달라고 아무리 사정해도, 이들은 절대로 환률을 强勢(강세)로 올리는 것을 막무가내로 거부해 왔었다. 결과적으로 어떻게 됐는가? 미국은 세계의 상품을 더 이상 수입할 수 없는 지경에 오고 말았다. 그렇다고 독일이나 일본이 이런 역활을 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미국식 자본주의를 던저 버리고 다른 어떤 경제제도로 전활 할 수 있는 어떤 대체 경제체제도 없는 형편이다. 울며 겨자먹기로 지금까지 끌고 가는데, 앞으로도 수없이 이런 금융사태가 이런 저런 이유로 계속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미국이 이처럼 허약해져서 다른 나라들에게 구차하게 사정하다가 결국 팔을 비틀어가면서 딸라의 가치를 유지해야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미국은 원유를 수입해야 한다”는 사실에 있다. 미국의 GNP (Gross National Product)의 25% 이상의 딸라자금이 이 에네지 수입에 충당되고 있단다. 1944년 경에 IMF기구가 생길 때에는 에너지 공급국가였다. (2014년 이후로 미국은 shale oil을 추출함으로써 도리어 수출국으로 변모했고, 이로써 OPEC의 등골을 부수는 사태에 이른다.)


이런 와중에서 등장한 것이 Milton Freedman의 "자유주의 경제정책'이었다. 이 정책을 40대 미 대통령 Ronald Reagan(1981~1989)이 채택했다가, 10년 후인 44대 '오바마'가 2009년에 취임하면서 다시 Keynes이론대로 국가가 돈을 풀어서 공화당 놈들이 개판친 경제를 다시 바로 잡고자 나섰었다. 그가 집권한 8년이 그처럼 지나갔고, 이번에 45대로 Trump가 등장하여 다시 보호주의적 방향으로 물꼬를 트는 형국에 와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중국이 선진국들, 특히 미국의 자본으로 생필품을 거의 도적질하다시피 해서 마구 dumping하면서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였다. 그 이면에는 중국의 인민폐를 저평가해서 중국상품을 싸구려로 수출하는 정책을 써왔다. 한국도 중국의 등에 엎혀서 중간재를 공급하며 펑청거리고 있다 보니 중국의 눈치를 볼랴, 미국의 비위를 맞추랴.....엉거주춤으로 명목상의 세계 경제의 11등으로 나간다고 한다. 문재인 같은 容共主義者의 치하에서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2년 후에는 먹구름이 걷치려는지...... 다음 10편에 계속


禪涅槃

3/20/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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