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륵(鷄肋)
소시적 만화와 황당한 무협소설을 읽다가 한 단계 Upgrade된 게 삼국지였다. 무슨 뜻이나 알고 읽는 게 아니라 그냥 읽다가 유비이나 관우, 장비, 이런 등장인물이 나오면 그냥 재미있어 하였는데...
내용 중, 삼고초려니 삼고지례라 하여 유비가 제갈을 찾아간 이야기는 유명하거니와 제갈은 유비가 초야에 묻혀 지내는 자신을 세번이나 찾아온 수고에 대한 보답으로 적벽대전에서 조조 진영의 전투함들을 불 싸질러 유비에게 대승을 안겨주었다.
이후 촉의 정사(政事)는 대소를 막론하고 모두 제갈량에 의해 결정되었으나, 워낙 허약체질이라 ‘죽은 제갈 산 사마 쫓다’당시에 이미 죽었는데 죽을때 하늘을 보면서 “너르고 너른 하늘아, 너에게도 끝 간 데가 있더냐?”이라 하였다. 당시 (약 200전후) 천기(기상예보)와 주술도 가능했다는 제갈이 이런 말을 하면서 죽었다는 것이 좀 실망스럽기도 하다.
하여간 인간 제갈량은 漢의 정통사상 훈도를 이어받아 유학의 기풍을 지녔고, 군자의 풍모를 지녔으며 그의 출사표에서 자신의 사상적 철학을 언급하메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瘁 死而後已) '온 몸이 부서질 때까지 노력하여 죽은 후에야 그만둘 뿐이다' 하였다. 반면, 사마는 조조의 ‘내가 천하인에 등을 돌릴지라도, 천하인이 나에게 등을 돌리게 하지는 않겠다’는 사상을 가지고 처세나 교전에서 가장먼저 자기 자신의 안위, 성패공과를 생각했다. 즉, 매사에 신중했다는 말이다.
조조와 사마는 부자(父子)지간이거니와 “국궁진췌 사이후이”의 제갈이는 결국 자그마한 촉(蜀)하나 지킨것에 그친 반면, 조조는 “조위 태조 무황제 조조”(曹魏 太祖 武皇帝 曹操)로 우뚝 서게 되었다.
조조의 유명한 고사중의 하나가 계륵(鷄肋)이다.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먹을 것이 없다.’ 이러한 의미라 하는데 열당의
조조는
그야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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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깥타.
내용 중, 삼고초려니 삼고지례라 하여 유비가 제갈을 찾아간 이야기는 유명하거니와 제갈은 유비가 초야에 묻혀 지내는 자신을 세번이나 찾아온 수고에 대한 보답으로 적벽대전에서 조조 진영의 전투함들을 불 싸질러 유비에게 대승을 안겨주었다.
이후 촉의 정사(政事)는 대소를 막론하고 모두 제갈량에 의해 결정되었으나, 워낙 허약체질이라 ‘죽은 제갈 산 사마 쫓다’당시에 이미 죽었는데 죽을때 하늘을 보면서 “너르고 너른 하늘아, 너에게도 끝 간 데가 있더냐?”이라 하였다. 당시 (약 200전후) 천기(기상예보)와 주술도 가능했다는 제갈이 이런 말을 하면서 죽었다는 것이 좀 실망스럽기도 하다.
하여간 인간 제갈량은 漢의 정통사상 훈도를 이어받아 유학의 기풍을 지녔고, 군자의 풍모를 지녔으며 그의 출사표에서 자신의 사상적 철학을 언급하메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瘁 死而後已) '온 몸이 부서질 때까지 노력하여 죽은 후에야 그만둘 뿐이다' 하였다. 반면, 사마는 조조의 ‘내가 천하인에 등을 돌릴지라도, 천하인이 나에게 등을 돌리게 하지는 않겠다’는 사상을 가지고 처세나 교전에서 가장먼저 자기 자신의 안위, 성패공과를 생각했다. 즉, 매사에 신중했다는 말이다.
조조와 사마는 부자(父子)지간이거니와 “국궁진췌 사이후이”의 제갈이는 결국 자그마한 촉(蜀)하나 지킨것에 그친 반면, 조조는 “조위 태조 무황제 조조”(曹魏 太祖 武皇帝 曹操)로 우뚝 서게 되었다.
조조의 유명한 고사중의 하나가 계륵(鷄肋)이다.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먹을 것이 없다.’ 이러한 의미라 하는데 열당의
조조는
그야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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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깥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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