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의)를 모르거나 알아도 구경하기냐?
義(의)에 주리고 목마른 者는 福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요. -마태복음 5장 6절-
누가복음 6장 21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이오."
같은 의미의 뜻을 약간 다른 '뉴앙스'로 얘기 하기 때문에, 악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지난번 “애통하는 자”의 두번째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네번째에서도 마태와 누가의 집필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학자들이 지적하기를, 무리들을 한자리에 뫃아놓고 단숨에 전하려 했던 마태에 비하여, 누가는 예수님이 보신 하늘나라의 비밀들을 이곳 저곳에 나누어서 적용하고 있다고. 문화적 배경의 차이를 염두에 두다가 보니 이렇게 된 것이 아닐까. 마태는 유태인들을, 그리고 누가는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리라. (참고 1)
또 한가지는 '누가'의 구절에서 “지금” 즉 “Now”라는 단어를 집어넣고 있는 것이 색다르다. 어제가 아니고 내일도 아닌, “지금의 내 삶 속에서”라는 의미를 강조한 것 같다.
'義(의)'라고 하면 사회정의(Social Justice)를 말하는 것으로 알았었다. “자기의 영혼을 구하고 난 다음에 내 이웃 내 나라의 올바른 길을 찾는다”고... 마치 孔子(공자)의 修身濟家(수신제가)의 정신 처럼 말이다. 실제로 그런 의미로 복음화를 부르짓는 운동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 새로운 것은 “義”를 社會正義 (사회정의:Social Justice)나 혹은 Righteousness 로 확대부연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얼마전 까지 '해방신학'이니 '민중신학'이니 하며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正義사회구현 카토릭사제단'이라던가, 아니면 從北派(종북파)들을 대변했다고 할까... 하는 분들이 거리로 나와서 촛불을 밝힌 사례도 있었던 것을 우리가 기억한다. 따라서 ‘義’의 문제를 가볍게 다뤄서는 않될 것 같다.
하여간에, 미국에서 신약학자로 잘 알려진 Marcus Borg란 분은 유태-기독교 정신세계(신-구약성경)의 흐름을 3 가지로 나누었다. 첫째가 '애급에서의 노예생활과 바비론에서 포로상태에서의 해방(解放), 두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天國이란 고향”으로의 귀환(歸還: 즉 복음화), 셋째로 성직자(Priest)들의 聖殿(성전)으로 具體化 (구체화)의 과정으로 간략히 정리하고 있다.
그런 순서로 볼때 예수님은 “純潔主義 (순결주의: Kosher정신)은 사랑(Love)에 입각한 하나님의 義를 배반한 율법주의라고 생각했단다. 결국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주의로 만들어진 聖殿(성전)의 기득권자들의 착취제도에 반항한 사회정의(Social Justice)를 주장하다가 혁명가로서 목숨을 바쳤다고 했다.
“義 ”란 말은 新-舊約(신-구약)을 통털어서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다고... "Righteous"의 의미를 이사야書 51장 1절에 까지 소급해서 定義(정의)하신 분이 계신다. Rev. Charmaine Braatvedt란 분이다. 2006년 1월 22일(일)에 설교하신 것을 인터넽에서 발견했는데, “義를 쫒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들을지어다" 를 인용하면서 '배고프고 목이 마르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생리적 요구겠는가? 그것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각함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와 같은 절실한 요구로” 이 義를 추구하여야 한다는 거다.
그럼, “Righteousness”란 도대체 무었인가?
'위키페디아'에서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하나님의 삶을 즐겁게 사는 사람은 '당당하다'고..., 시편 2장에서 “오직 여호아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를 주야로 묵상하는자”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옳은 말씀이다. 주야로 묵상하지 않으면서도 어찌 거저 달라고 할 수가 있나? 특히 공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인것 같다. <참고 2>
1519년에 '마틴 루터'가 남긴 설교가 눈에 띄어서 읽어보니, 그는 “義”에는 세가지 면에서 고찰해 봐야 한다고 했다. 그 첫째가 “그리스도의 義”, 다음 “우리 자신이 의로운가,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열매와 역사가 과연 義로운가”로 나누어 생각한다고 했다. 장황하게 성경구절을 인용하고 있는데, 두번째에서 우리의 罪(죄)를 얘기하고 있고, 세번째의 근거로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恩惠(은혜)로” 義로워진다고 말했다.
또 이런 말이 보인다. "The rightness judged by the standard of God’s law in love, both within himself and in the world , while living rightly with God."... (“하나님의 법 안에서 자기와 밖깥세상에서 하나님과 함께 바르게 당당하게 사는 것...)
八福의 네번째를 한 말로 정의해 보자. 권력, 명예, 금력, 잘 난것, 그리고 性慾(성욕) 등등의 세상적인 것을 갈구하는 “자기 본위의 義” (Self-rightneousness)의 허기짐과 목마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그같은 육체적 갈급함 같이 하나님을 찾는 (Seeking) 정열과 의욕(Will Power)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따르며 살아야 “하나님 나라”를 접하고 그 안에서 영원히 살 수가 있다고 한다.
<참고 1> 오늘의 “義에 주리고”를 말하는 누가는 21절에서 마태의 “애통하는 자”를 한 절에 담고있다. 그리고, 다시 22절에서 “義를 위하여 핍박받는 者”를 말씀하고 있다.
<참고 2> 본래의 영문을 그대로 옮기면, <“Righteousness (also called rectitude) is an important theological concept in Judaism and Christianity. It is an attribute that implies that a person's actions are justified, and can have the connotation that the person has been "judged" or "reckoned" as leading a life that is pleasing to God. Righteousness is also used as an attribute for God. Psalm 2 speaks of one being shielded by God and receiving favor because of righteousness.”>
禪涅槃
누가복음 6장 21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이오."
같은 의미의 뜻을 약간 다른 '뉴앙스'로 얘기 하기 때문에, 악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지난번 “애통하는 자”의 두번째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네번째에서도 마태와 누가의 집필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학자들이 지적하기를, 무리들을 한자리에 뫃아놓고 단숨에 전하려 했던 마태에 비하여, 누가는 예수님이 보신 하늘나라의 비밀들을 이곳 저곳에 나누어서 적용하고 있다고. 문화적 배경의 차이를 염두에 두다가 보니 이렇게 된 것이 아닐까. 마태는 유태인들을, 그리고 누가는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리라. (참고 1)
또 한가지는 '누가'의 구절에서 “지금” 즉 “Now”라는 단어를 집어넣고 있는 것이 색다르다. 어제가 아니고 내일도 아닌, “지금의 내 삶 속에서”라는 의미를 강조한 것 같다.
'義(의)'라고 하면 사회정의(Social Justice)를 말하는 것으로 알았었다. “자기의 영혼을 구하고 난 다음에 내 이웃 내 나라의 올바른 길을 찾는다”고... 마치 孔子(공자)의 修身濟家(수신제가)의 정신 처럼 말이다. 실제로 그런 의미로 복음화를 부르짓는 운동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 새로운 것은 “義”를 社會正義 (사회정의:Social Justice)나 혹은 Righteousness 로 확대부연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얼마전 까지 '해방신학'이니 '민중신학'이니 하며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正義사회구현 카토릭사제단'이라던가, 아니면 從北派(종북파)들을 대변했다고 할까... 하는 분들이 거리로 나와서 촛불을 밝힌 사례도 있었던 것을 우리가 기억한다. 따라서 ‘義’의 문제를 가볍게 다뤄서는 않될 것 같다.
하여간에, 미국에서 신약학자로 잘 알려진 Marcus Borg란 분은 유태-기독교 정신세계(신-구약성경)의 흐름을 3 가지로 나누었다. 첫째가 '애급에서의 노예생활과 바비론에서 포로상태에서의 해방(解放), 두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天國이란 고향”으로의 귀환(歸還: 즉 복음화), 셋째로 성직자(Priest)들의 聖殿(성전)으로 具體化 (구체화)의 과정으로 간략히 정리하고 있다.
그런 순서로 볼때 예수님은 “純潔主義 (순결주의: Kosher정신)은 사랑(Love)에 입각한 하나님의 義를 배반한 율법주의라고 생각했단다. 결국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주의로 만들어진 聖殿(성전)의 기득권자들의 착취제도에 반항한 사회정의(Social Justice)를 주장하다가 혁명가로서 목숨을 바쳤다고 했다.
“義 ”란 말은 新-舊約(신-구약)을 통털어서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다고... "Righteous"의 의미를 이사야書 51장 1절에 까지 소급해서 定義(정의)하신 분이 계신다. Rev. Charmaine Braatvedt란 분이다. 2006년 1월 22일(일)에 설교하신 것을 인터넽에서 발견했는데, “義를 쫒으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들을지어다" 를 인용하면서 '배고프고 목이 마르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생리적 요구겠는가? 그것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각함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와 같은 절실한 요구로” 이 義를 추구하여야 한다는 거다.
그럼, “Righteousness”란 도대체 무었인가?
'위키페디아'에서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하나님의 삶을 즐겁게 사는 사람은 '당당하다'고..., 시편 2장에서 “오직 여호아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를 주야로 묵상하는자”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옳은 말씀이다. 주야로 묵상하지 않으면서도 어찌 거저 달라고 할 수가 있나? 특히 공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인것 같다. <참고 2>
1519년에 '마틴 루터'가 남긴 설교가 눈에 띄어서 읽어보니, 그는 “義”에는 세가지 면에서 고찰해 봐야 한다고 했다. 그 첫째가 “그리스도의 義”, 다음 “우리 자신이 의로운가,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열매와 역사가 과연 義로운가”로 나누어 생각한다고 했다. 장황하게 성경구절을 인용하고 있는데, 두번째에서 우리의 罪(죄)를 얘기하고 있고, 세번째의 근거로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恩惠(은혜)로” 義로워진다고 말했다.
또 이런 말이 보인다. "The rightness judged by the standard of God’s law in love, both within himself and in the world , while living rightly with God."... (“하나님의 법 안에서 자기와 밖깥세상에서 하나님과 함께 바르게 당당하게 사는 것...)
八福의 네번째를 한 말로 정의해 보자. 권력, 명예, 금력, 잘 난것, 그리고 性慾(성욕) 등등의 세상적인 것을 갈구하는 “자기 본위의 義” (Self-rightneousness)의 허기짐과 목마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그같은 육체적 갈급함 같이 하나님을 찾는 (Seeking) 정열과 의욕(Will Power)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따르며 살아야 “하나님 나라”를 접하고 그 안에서 영원히 살 수가 있다고 한다.
<참고 1> 오늘의 “義에 주리고”를 말하는 누가는 21절에서 마태의 “애통하는 자”를 한 절에 담고있다. 그리고, 다시 22절에서 “義를 위하여 핍박받는 者”를 말씀하고 있다.
<참고 2> 본래의 영문을 그대로 옮기면, <“Righteousness (also called rectitude) is an important theological concept in Judaism and Christianity. It is an attribute that implies that a person's actions are justified, and can have the connotation that the person has been "judged" or "reckoned" as leading a life that is pleasing to God. Righteousness is also used as an attribute for God. Psalm 2 speaks of one being shielded by God and receiving favor because of righteous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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