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술은 새 부대에
조정래 목사의 세상사는 이야기 (122): 새 술은 새 부대에
저는 바둑을 둘 줄 모르지만, 이번에 한국에서 바둑을 제일 잘 하고 세계에서도 두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천재기사 이세돌씨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Deep Mind가 바둑대결을 벌인다는 기사를 읽고 어떻게 될까 궁금했습니다. 이세돌기사는 “내가 이긴다. 다섯번의 대국에서 한판이라도 지면 내가 진거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신문에 보니, 이세돌기사가 첫판에서 졌다고 합니다. 차라리 이세돌기사가 “길고 짧은 것은 대어 보아야 안다. 어찌 될지 모른다.”고 겸손히 말했더라면 체면이라도 살았을텐데, “내가 이긴다”고 호언장담했다가 첫판부터 지게 되어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인공지능을 가진 컴퓨터가 세계최고의 바둑 기사를 이겼다니 충격이 보통이 아닙니다. 사람이 바둑을 아무리 잘 두어도 컴퓨터를 당해 낼 수 없으니 바둑을 열심히 두어 봐야 뭣하나 하는 생각때문에 바둑인구가 줄어 들지 않을까 염려된다는 말도 있고, 어떤 분은 “어차피 인간이 만든 자동차와 인간이 달리기 시합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인공지능의 우수성을 받아 들이자”하는 말씀도 하시더군요.
세상이 무서운 속도로 변화, 발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한국과 미국에서 떨어져 사는 사람들이 화면을 보며 통화를 하는 것은 공상과학소설에나 나옴직 했는데, 이제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불과 십년전만 해도 저는 전화기와 카메라 그리고 주소록이 입력된 전자수첩 그리고 음성녹음기를 따로 들고 다니느라 번거로왔는데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에 이 모든 기능이 다 들어 있으니 편리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합니다.
세상이 빠르게 바뀌어 가는데 종교도 계속 진화하고 발전해야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지혜와 행복을 주고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 글을 읽으신 어느 분이, “조목사의 글이 슬슬 WCC의 혼합종교를 닮아 간다. 염려된다”고 하신 분이 있던데, 그런 염려를 하시는 분들은 제 글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목사님들의 글들과 설교들이 인터넷과 Youtube에 넘쳐 나는데 그런 분들의 글과 설교를 읽으면 될텐데, 저처럼 진보적인 목사의 글을 읽고 기분 상해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저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가장 큰 계명인, “경천애인사상”, 즉,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계명에 대해서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성경말씀에 대해서는 추호의 양보도 할 마음이 없으니, 저도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면이 있는 목사라고 봅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 낸 교리, 신학, 신조등에 대해서는 저는 절대적인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목사가 이런 말을 해서 죄송하지만, 저는 삼위일체교리, 동정녀 탄생, 예수의 대속죽음, 육체부활, “예수만 믿어야 천당간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런 것 보다는 “정직하게 살자. 겸손하게 살자. 친절하게 살자.”등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WCC의 종교다원주의적인 입장을 좋아하고 옹호합니다. 종교다원주의에 반대되는 개념이 종교일원주의가 되겠지요? 종교일원주의는 “내 종교만 옳고 네 종교는 틀렸다”는 입장일 것입니다. 영어로는 “Exclusivism” 즉, “배타주의”가 되겠습니다. ISIS와 같은 이슬람 광신자들이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이런 배타주의적인 생각에 갇혀서 지낸다고 봅니다.
배타주의보다 약간 진보한 입장이, “Inclusivism”, 즉, “포용주의” 입장일 것입니다. 포용주의는, “예수를 통해 베풀어진 인류구원이 다른 종교인들에게도 유효하다.”는 너그러운 입장입니다. 그런데, 이 포용주의의 이면에는 “내 종교가 너의 종교보다 우월하다.”는 건방진 면이 있습니다.
포용주의보다 한발 더 진보한 입장이 “종교 다원주의” (Religious Pluralism)일 것입니다. 종교 다원주의는 “내 종교도 중요한 만큼, 네 종교도 중요하다”는 상호존중의 입장이라고 봅니다. 제 생각으로는, “내 종교만 옳고, 네 종교는 틀렸다”는 배타주의의 입장이나, “내 종교는 우월하니 네 종교를 인정해 주겠다.”는 포용주의의 입장보다는, “내 종교가 귀중한 만큼, 네 종교도 귀중하니, 서로 배우고 협력하여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앞당기자.”하는 종교다원주의의 입장이 낫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이 온 세계종교들을 말살하고, 이슬람 종교로 세계를 통일하려는 것을 반대하는 것처럼, 저는 기독교가 세계를 제패하여 다른 종교들을 말살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세계의 종교들이 혼합하여 원시시대로 퇴행하자는 것이 아니고, 세계의 종교들이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여 평화로운 세상으로 만드는데 이바지 하자는 종교다원주의를 나쁘게 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봅니다.
저는 국민학교 다닐 때 보수적인 교회에 다녔는데, 마산 무학산에 있던 절을 지나갈 때 절 마당에 서 있던 스님에게, “예수믿고 천당가라”고 외치고 도망가다가 잡혀서 “엎드려 뻣쳐”로 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신학대학에 가서 생각해 보니, “예수 믿는 사람만 천당에 간다”는 말이 이치에 닿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믿는다고 성경책을 끼고 다니며 사기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교를 믿는 사람들중에는 정직하고 착한 사람이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예수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삶”을 살고, 부처님을 믿는 사람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순종하여 “마음의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리고, 온 삼라만상에 자비심을 베풀며 사는 삶”을 살면 된다고 봅니다.
권투선수 Muhammad Ali는 “20살 청년때 가졌던 생각을 50살때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30년의 인생을 헛살은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A man who views the world the same at fifty as he did at twenty has wasted thirty years of his life.) 인생을 살면서 생각이 진화하고 발전하면서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져야지, 예전에 배웠던 것만 고집해서는 발전이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유태교에서는, “하나님을 어떤 형상이나 우상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면서 무한하신 하나님을 유한한 인간의 조각상이나 그림이나 심지어 교리와 신조에 가두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불교에서는 “살불살조” (殺佛殺祖), 즉,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스승을 만나면 스승을 죽이라”고 하면서, “부처님이건 스승이건 거기에 갇힌 노예가 되지 말고 자유롭고 독창적인 사람이 되라.”고 격려합니다.
Hermann Hesse는, “다시 태어나려는 사람은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He who wants to be born again must break egg.) 이를 불교에서는 “파격”(破格)이라고 한답니다. “격식을 깨어 버릴 때 새로운 것이 창조”되는 수가 종종 있다고 봅니다.
예수께서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종교의 진리를 변하는 시대에 맞게 재해석을 해야 “살아 있는 진리”가 되지, 진리를 전통과 교리에 예속시켜서는 안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저는 바둑을 둘 줄 모르지만, 이번에 한국에서 바둑을 제일 잘 하고 세계에서도 두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천재기사 이세돌씨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Deep Mind가 바둑대결을 벌인다는 기사를 읽고 어떻게 될까 궁금했습니다. 이세돌기사는 “내가 이긴다. 다섯번의 대국에서 한판이라도 지면 내가 진거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신문에 보니, 이세돌기사가 첫판에서 졌다고 합니다. 차라리 이세돌기사가 “길고 짧은 것은 대어 보아야 안다. 어찌 될지 모른다.”고 겸손히 말했더라면 체면이라도 살았을텐데, “내가 이긴다”고 호언장담했다가 첫판부터 지게 되어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인공지능을 가진 컴퓨터가 세계최고의 바둑 기사를 이겼다니 충격이 보통이 아닙니다. 사람이 바둑을 아무리 잘 두어도 컴퓨터를 당해 낼 수 없으니 바둑을 열심히 두어 봐야 뭣하나 하는 생각때문에 바둑인구가 줄어 들지 않을까 염려된다는 말도 있고, 어떤 분은 “어차피 인간이 만든 자동차와 인간이 달리기 시합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인공지능의 우수성을 받아 들이자”하는 말씀도 하시더군요.
세상이 무서운 속도로 변화, 발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한국과 미국에서 떨어져 사는 사람들이 화면을 보며 통화를 하는 것은 공상과학소설에나 나옴직 했는데, 이제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불과 십년전만 해도 저는 전화기와 카메라 그리고 주소록이 입력된 전자수첩 그리고 음성녹음기를 따로 들고 다니느라 번거로왔는데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에 이 모든 기능이 다 들어 있으니 편리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합니다.
세상이 빠르게 바뀌어 가는데 종교도 계속 진화하고 발전해야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지혜와 행복을 주고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 글을 읽으신 어느 분이, “조목사의 글이 슬슬 WCC의 혼합종교를 닮아 간다. 염려된다”고 하신 분이 있던데, 그런 염려를 하시는 분들은 제 글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목사님들의 글들과 설교들이 인터넷과 Youtube에 넘쳐 나는데 그런 분들의 글과 설교를 읽으면 될텐데, 저처럼 진보적인 목사의 글을 읽고 기분 상해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저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가장 큰 계명인, “경천애인사상”, 즉,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계명에 대해서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성경말씀에 대해서는 추호의 양보도 할 마음이 없으니, 저도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면이 있는 목사라고 봅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 낸 교리, 신학, 신조등에 대해서는 저는 절대적인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목사가 이런 말을 해서 죄송하지만, 저는 삼위일체교리, 동정녀 탄생, 예수의 대속죽음, 육체부활, “예수만 믿어야 천당간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런 것 보다는 “정직하게 살자. 겸손하게 살자. 친절하게 살자.”등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WCC의 종교다원주의적인 입장을 좋아하고 옹호합니다. 종교다원주의에 반대되는 개념이 종교일원주의가 되겠지요? 종교일원주의는 “내 종교만 옳고 네 종교는 틀렸다”는 입장일 것입니다. 영어로는 “Exclusivism” 즉, “배타주의”가 되겠습니다. ISIS와 같은 이슬람 광신자들이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이런 배타주의적인 생각에 갇혀서 지낸다고 봅니다.
배타주의보다 약간 진보한 입장이, “Inclusivism”, 즉, “포용주의” 입장일 것입니다. 포용주의는, “예수를 통해 베풀어진 인류구원이 다른 종교인들에게도 유효하다.”는 너그러운 입장입니다. 그런데, 이 포용주의의 이면에는 “내 종교가 너의 종교보다 우월하다.”는 건방진 면이 있습니다.
포용주의보다 한발 더 진보한 입장이 “종교 다원주의” (Religious Pluralism)일 것입니다. 종교 다원주의는 “내 종교도 중요한 만큼, 네 종교도 중요하다”는 상호존중의 입장이라고 봅니다. 제 생각으로는, “내 종교만 옳고, 네 종교는 틀렸다”는 배타주의의 입장이나, “내 종교는 우월하니 네 종교를 인정해 주겠다.”는 포용주의의 입장보다는, “내 종교가 귀중한 만큼, 네 종교도 귀중하니, 서로 배우고 협력하여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앞당기자.”하는 종교다원주의의 입장이 낫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이 온 세계종교들을 말살하고, 이슬람 종교로 세계를 통일하려는 것을 반대하는 것처럼, 저는 기독교가 세계를 제패하여 다른 종교들을 말살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세계의 종교들이 혼합하여 원시시대로 퇴행하자는 것이 아니고, 세계의 종교들이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여 평화로운 세상으로 만드는데 이바지 하자는 종교다원주의를 나쁘게 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봅니다.
저는 국민학교 다닐 때 보수적인 교회에 다녔는데, 마산 무학산에 있던 절을 지나갈 때 절 마당에 서 있던 스님에게, “예수믿고 천당가라”고 외치고 도망가다가 잡혀서 “엎드려 뻣쳐”로 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신학대학에 가서 생각해 보니, “예수 믿는 사람만 천당에 간다”는 말이 이치에 닿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믿는다고 성경책을 끼고 다니며 사기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교를 믿는 사람들중에는 정직하고 착한 사람이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예수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삶”을 살고, 부처님을 믿는 사람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순종하여 “마음의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리고, 온 삼라만상에 자비심을 베풀며 사는 삶”을 살면 된다고 봅니다.
권투선수 Muhammad Ali는 “20살 청년때 가졌던 생각을 50살때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30년의 인생을 헛살은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A man who views the world the same at fifty as he did at twenty has wasted thirty years of his life.) 인생을 살면서 생각이 진화하고 발전하면서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져야지, 예전에 배웠던 것만 고집해서는 발전이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유태교에서는, “하나님을 어떤 형상이나 우상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면서 무한하신 하나님을 유한한 인간의 조각상이나 그림이나 심지어 교리와 신조에 가두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불교에서는 “살불살조” (殺佛殺祖), 즉,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스승을 만나면 스승을 죽이라”고 하면서, “부처님이건 스승이건 거기에 갇힌 노예가 되지 말고 자유롭고 독창적인 사람이 되라.”고 격려합니다.
Hermann Hesse는, “다시 태어나려는 사람은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He who wants to be born again must break egg.) 이를 불교에서는 “파격”(破格)이라고 한답니다. “격식을 깨어 버릴 때 새로운 것이 창조”되는 수가 종종 있다고 봅니다.
예수께서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종교의 진리를 변하는 시대에 맞게 재해석을 해야 “살아 있는 진리”가 되지, 진리를 전통과 교리에 예속시켜서는 안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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