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서방의 세상이야기(절(寺)에 안 가는 이유(결론)
===
인간이란 알고 보면 연약하기 그지없다.
말로는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네 나 할 것 없이 약한 게 사실이고 보니 그래서 종교단체를 찾지 않나 싶다.
결론부터 말을 해보면 종교는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이민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왜냐, 사람이 살다가 보면 비뚤어지고 사리판단이 흐려질 때가 있다.
이 때 나를 잡아주는 것이 바로 자기가 믿는 종교에서 바른 답을 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를 갖는다고 해서 반드시 해당 종교의 조직에 들어가 같이 무리를 짓는 것은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본다.
조직에 들어가 어떤 한 무리가 되면 그 무리들 끼리는 “우리”라는 틀로 묶여 버린다.
이 “우리”라는 용어는 그 집단 내에선 문제가 없지만 그 무리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의 울(타리)에서 배척하게 된다.
여기서 편이 갈라지고 편이 갈라지면 믿지 않으려하고 경원시 하면서 종내는 깊은 골짜기로 빠지게 만든다.
해서 종교를 가지데
너무 그 종교 조직과 같이 깊이 행동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특히나 그 종교는 나의 삶을 바르게 하기 위한 내적인 의존처가 되어야지 뜬 구름 잡는 식의 내세가 어떤 것인지 설명도 못 하면서 내세가 어떻고 한다면 이건 정말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내가 불교를 나름대로 깊이 공부를 해보고자 한 것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바른 삶인지 그리고 언젠가 내가 없어지면 나의 자식들은 나를 어떻게 볼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그 바른 길을 찾아보고자 이런 저런 불교 서적도 뒤적이고 절에도 나가고 했었다.
이젠 나가고 싶지 않다. 절에 나가지 않는다고 불자가 아니라는 건 아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는 불자이다.
해서 불자로서 남들이 하지 않는 것 몇 가지를 난 반드시 하고 있다. 그 예로 이 마당에 댓글이나 답 글에선 경어를 쓰지 않은 일이 없다.
이는 까딱하다보면 감정에 치우친 글이 될 까봐 그걸 잡아주는 길은 경어, 즉 예의를 스스로 지키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경어를 쓰니 나는 어떤 사람이요 하는 뜻은 천만만만이고 조금이라도 찰나찰나에 풀어지려는 나를 잡아보자는 자구적인 방안일 뿐이다.
불교에선 증득(證得)이란 용어가 있다.
이는 바른 지혜로 진리를 깨달아 얻음을 말한다. ( Enlightenment through realization of truth.)
이 증득이란 글을 얻기 전에
하루는 산에 오르면서 여러 꽃을 보면서 느낀 게 어떤 꽃은 우리가 그 이름을 붙이지 않은 것 즉 무명초라는 것이 있다.
해서 이렇게 이름도 없이 한 생(식물)을 살다가 말라 죽게 되면 옆에 있는 다른 식물들에게 보양이 되는 즉 거름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풀 한포기도 저렇게 살다 가는데 인간이란 나는 무엇을 하다가,
떠나고 나면 무엇을 남길 것이며 그간 나에게 알게 모르게 도와준 많은 이들에게 뭣을 갚고 간단 말인가 하는 걸 생각하고
그 이후론 봄엔 산이나 길을 걸으면서 눈앞에 새 싹이 보이면 피할 수 있으면 차마 알고는 밟을 수 없어 피해 가곤 하는 버릇이 생겼다.
무슨 종교를 믿는 다는 것 중요치 않다.
무엇이 바른 길인지 깊이깊이 생각하고 바르게만 믿는다면 좋겠다.
한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도
언론, 교육, 종교가 바로 서 있으면 어떤 위험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나는 종교가 어른들의 채찍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바르게 살 수 있게
바른 생각을 갖게 하고
여기에 잘 못이 있으면 기꺼이 채찍을 들어 주는 것이 현 종교의 순 기능이 되었으면 한다.
=== 끝
좋은 저녁 되시기 바랍니다!
인간이란 알고 보면 연약하기 그지없다.
말로는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네 나 할 것 없이 약한 게 사실이고 보니 그래서 종교단체를 찾지 않나 싶다.
결론부터 말을 해보면 종교는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이민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왜냐, 사람이 살다가 보면 비뚤어지고 사리판단이 흐려질 때가 있다.
이 때 나를 잡아주는 것이 바로 자기가 믿는 종교에서 바른 답을 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를 갖는다고 해서 반드시 해당 종교의 조직에 들어가 같이 무리를 짓는 것은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본다.
조직에 들어가 어떤 한 무리가 되면 그 무리들 끼리는 “우리”라는 틀로 묶여 버린다.
이 “우리”라는 용어는 그 집단 내에선 문제가 없지만 그 무리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의 울(타리)에서 배척하게 된다.
여기서 편이 갈라지고 편이 갈라지면 믿지 않으려하고 경원시 하면서 종내는 깊은 골짜기로 빠지게 만든다.
해서 종교를 가지데
너무 그 종교 조직과 같이 깊이 행동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특히나 그 종교는 나의 삶을 바르게 하기 위한 내적인 의존처가 되어야지 뜬 구름 잡는 식의 내세가 어떤 것인지 설명도 못 하면서 내세가 어떻고 한다면 이건 정말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내가 불교를 나름대로 깊이 공부를 해보고자 한 것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바른 삶인지 그리고 언젠가 내가 없어지면 나의 자식들은 나를 어떻게 볼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그 바른 길을 찾아보고자 이런 저런 불교 서적도 뒤적이고 절에도 나가고 했었다.
이젠 나가고 싶지 않다. 절에 나가지 않는다고 불자가 아니라는 건 아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는 불자이다.
해서 불자로서 남들이 하지 않는 것 몇 가지를 난 반드시 하고 있다. 그 예로 이 마당에 댓글이나 답 글에선 경어를 쓰지 않은 일이 없다.
이는 까딱하다보면 감정에 치우친 글이 될 까봐 그걸 잡아주는 길은 경어, 즉 예의를 스스로 지키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경어를 쓰니 나는 어떤 사람이요 하는 뜻은 천만만만이고 조금이라도 찰나찰나에 풀어지려는 나를 잡아보자는 자구적인 방안일 뿐이다.
불교에선 증득(證得)이란 용어가 있다.
이는 바른 지혜로 진리를 깨달아 얻음을 말한다. ( Enlightenment through realization of truth.)
이 증득이란 글을 얻기 전에
하루는 산에 오르면서 여러 꽃을 보면서 느낀 게 어떤 꽃은 우리가 그 이름을 붙이지 않은 것 즉 무명초라는 것이 있다.
해서 이렇게 이름도 없이 한 생(식물)을 살다가 말라 죽게 되면 옆에 있는 다른 식물들에게 보양이 되는 즉 거름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풀 한포기도 저렇게 살다 가는데 인간이란 나는 무엇을 하다가,
떠나고 나면 무엇을 남길 것이며 그간 나에게 알게 모르게 도와준 많은 이들에게 뭣을 갚고 간단 말인가 하는 걸 생각하고
그 이후론 봄엔 산이나 길을 걸으면서 눈앞에 새 싹이 보이면 피할 수 있으면 차마 알고는 밟을 수 없어 피해 가곤 하는 버릇이 생겼다.
무슨 종교를 믿는 다는 것 중요치 않다.
무엇이 바른 길인지 깊이깊이 생각하고 바르게만 믿는다면 좋겠다.
한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해도
언론, 교육, 종교가 바로 서 있으면 어떤 위험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 나는 종교가 어른들의 채찍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바르게 살 수 있게
바른 생각을 갖게 하고
여기에 잘 못이 있으면 기꺼이 채찍을 들어 주는 것이 현 종교의 순 기능이 되었으면 한다.
=== 끝
좋은 저녁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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