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의 외로운 검객
오합지졸 (烏合之卒) 이란 말은; 까마귀떼가 모인 것 처럼 질서도 없고 훈련되지도 않은 어중이 떠중이들로서의 병졸이라는 뜻으로, 군기도 없고 전투력도 없이 머리숫자만 채우는 많은 무리를 말하는데, 항상 제대로 된 검술을 연마한 장수가 휘두르는 한번의 칼부림에 수명 혹은 수십명이 추풍낙엽 처럼 쓰러져 버린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기억해야 할 한가지는, 옛부터 어진 검객은 항상 양날 검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가능하면 칼날이 아닌 칼등으로 가격하여 불필요한 살생을 피했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양날 검을 사용하는 검객은 덤비는 적들을 모조리 쓸어 버리겠다고 하는 무자비함의 정신이 깃들어 있어서, 필요 이상의 살생을 자행하였다고 한다.
글을 쓰는 것에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는 이유는 굳이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어느 누가 남긴 말이 아니더라도, 펜을 들어 어떤 사람을, 인격적으로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어쩌면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면 너무 심한 표현일지는 몰라도, 곰곰히 생각해 보면, 우리의 역사의 기억속에는 크고 작은 펜의 횡포를 추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더우기 요새같이 블로그나 열린마당 혹은 게시판… 등이 발단된 시대에는 더욱더 펜의 횡포가 적지않은 사회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우리민족은 진정한 민주주의에 익숙하지 않은 민족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자유에는 항상 책임이 뒤따르는 것인데, 준법정신에 익숙하지 못한 국민들에게는 자유 민주주의가 방종의 기회가 될 수 있으므로 오히려 사회악의 온상이 될 수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어쩌면 한국적 민주주의가 아직까지는 필요 하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갖는 이유는, 알아서 하라고 하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고, 보는 사람이 없으면 불법도 서슴치 않는 일에 많은 사람이 익숙해져있는 것 같고, 보는 사람이 있어도 직접 관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네가 왜 참견이냐? 할 수도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 아닌가!
이런 모든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미완성의 국민성 때문이 아닐까? 배를 위한 음식은 넘쳐 날 지 모르나 마음의 양식은 아직도 보릿고개를 넘지 못하고 있는 것 때문이 아닐까? 라고 한다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남다른 지성과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열린마당 같은 곳에서 펜을 휘두를 때에 아무리 많은 적들이 덤벼도 칼등으로 가격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칼에 의한 상처 보다 펜에 의한 상처가 더 깊고 오래 갈 수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럴 수 없다면 그는 최고의 지성일 수도 없고, 악의 무리를 평정하고 황혼이 물든 석양에 길을 떠나야 하는 정의의 어진 검객일 수도 없으며, 자식들이나 후배들이 선망하는 인생의 선배도 될 수 없고 다만 대열을 이탈한 한 오합지졸일 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석양이 물들 즈음 길을 떠나야 하는 어진 검객은 항상 외로움의 길을 가는 멋진 여운을 남기리라.
-쌍칼-
글을 쓰는 것에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는 이유는 굳이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어느 누가 남긴 말이 아니더라도, 펜을 들어 어떤 사람을, 인격적으로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어쩌면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면 너무 심한 표현일지는 몰라도, 곰곰히 생각해 보면, 우리의 역사의 기억속에는 크고 작은 펜의 횡포를 추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더우기 요새같이 블로그나 열린마당 혹은 게시판… 등이 발단된 시대에는 더욱더 펜의 횡포가 적지않은 사회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우리민족은 진정한 민주주의에 익숙하지 않은 민족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자유에는 항상 책임이 뒤따르는 것인데, 준법정신에 익숙하지 못한 국민들에게는 자유 민주주의가 방종의 기회가 될 수 있으므로 오히려 사회악의 온상이 될 수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어쩌면 한국적 민주주의가 아직까지는 필요 하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갖는 이유는, 알아서 하라고 하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고, 보는 사람이 없으면 불법도 서슴치 않는 일에 많은 사람이 익숙해져있는 것 같고, 보는 사람이 있어도 직접 관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네가 왜 참견이냐? 할 수도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 아닌가!
이런 모든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미완성의 국민성 때문이 아닐까? 배를 위한 음식은 넘쳐 날 지 모르나 마음의 양식은 아직도 보릿고개를 넘지 못하고 있는 것 때문이 아닐까? 라고 한다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남다른 지성과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열린마당 같은 곳에서 펜을 휘두를 때에 아무리 많은 적들이 덤벼도 칼등으로 가격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칼에 의한 상처 보다 펜에 의한 상처가 더 깊고 오래 갈 수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럴 수 없다면 그는 최고의 지성일 수도 없고, 악의 무리를 평정하고 황혼이 물든 석양에 길을 떠나야 하는 정의의 어진 검객일 수도 없으며, 자식들이나 후배들이 선망하는 인생의 선배도 될 수 없고 다만 대열을 이탈한 한 오합지졸일 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석양이 물들 즈음 길을 떠나야 하는 어진 검객은 항상 외로움의 길을 가는 멋진 여운을 남기리라.
-쌍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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