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이별, 영원한 이별
어설픈 이별, 영원한 이별
“누구세요.” 뉴욕에 사는 여동생 딸애 결혼식장에서 나를 기다리시던 어머니게서 내 손을 잡으시며 건네 말이다.
불과 일 년 전만 하더라도 부탁하신 것을 잊기라도 하면 젊은 애가 벌써 건망증이 웬 말이냐며 나무라셨다. 그런데, 몇 개월 사이에 기력이 갑자기 쇄신하시어 지인도 얼른 알아보지 못하신다고 한다. 당황하는 나를 보고 안심 시켰주기 위해 동생이 귀띔해 주었다. 전에는 주위에서 깜박인다는 말을 들으면 남의 일 같더니 이젠 나도 이 문제로 아내와 다툰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자료에 의하면 20세 초반까지는 기억세포가 성장하고, 그 후부터는 서서히 그리고 50세부터는 급격히 감소하며 60대에는 60%를 시작으로 90대에는 90%의 기억력이 소실된다고 한다. 이는 자연 현상이고 스트레스와 피로가 심하면 증세가 더욱 빨라지고 깊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기억 상실을 통해서 이별을 연습하는 것일까. 고통을 잊어버림은 축복이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건망증에 관한 유모는 우리를 서글프게 한다.
식을 마치고 동생 집에서 어머니 손을 잡고 그냥 나란히 누웠다. 나도 모르게 차가운 눈물이 얼굴에 흐르고 있었다. 갓 시집 올 시 예쁜 색시로 별명이 붙여졌다는 어머니의 손이 앙상한 뼈마디에 거칠고 진이 다 빠진 피부만 손에 잡혔다. 나는 순간 가슴이 조여 숨이 멎는 듯했다. 잠시 어머니의 삶이 눈에 스치면서 어느새 잠이 들고 말았다. 분명 꿈은 안 이련데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혼자 말을 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부탁의 말씀, 기도의 말씀이 분명하여 이별을 고하는 것 같았다
이튿날 동생 집을 나서면서 건강하게 잘 지내시라고 인사드리니 나를 꼭 안으시며 내 걱정하지 말고 네 나 잘 지내라고 오히려 당부하셨다. 노모에게는 나는 아직 보살펴야 할 자식임이 틀림없었다. 차가 집에서 멀어 져 가는데 거울 속에서 어머니께서 손을 흔드시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돌아가서 어머니 추우니 들어가시라며 안으로 모셨는데 다시 밖에서 내 차를 계속 바라보고 계셨다. 나는 차마 속력을 낼 수가 없었다. 아마도 마지막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계신 것 같았다.
엘에이로 돌아왔다. 전화벨 소리에 유난히 신경이 써진다. 짜증이 나던 광고 전화가 이제는 안도의 소식처럼 들렸다. 며칠 후 아침 전화벨 소리가 유난히 요란하다. 광고 전화일 것이라면서도 예감이 심상치 않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께서 아침 식사 후 뒤뜰을 산책하다 잔디에 앉아 잠시 쉬시더니 옆으로 누우시며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지금은 한 줌의 재로 고향에 계신 아버지 곁에 계신다. 91세 사시는 동안 의사를 찾으신 기억이 거의 없이 건강하게 사셨다. 어찌 아프지 않으셨겠는가. 병원비를 생각하시면서 참고 견디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화를 내시는 모습이 내 기억에는 거의 없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오늘만 날이냐고 하시며 섭섭할 때 수저를 놓아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내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은 어머니가 주신 선물이 분명하다. 언젠가 앞뜰에 눈을 치우고 계시는데 90세 가까운 할머니가 눈을 치우는 모습이 안쓰러워서인지 한 백인 아저씨가 차를 멈추고 대신 모두 치워주었다고 한다. 내가 심심해서 하는 일인데 공연이 참견한다며 영어를 몰라 설명은 못 하고 그냥 탱큐만 연발하셨다면서 웃으시는 기억이 생생하다. 움직임만이 살아있는 증거라시며 일감을 찾고 만드시며 분주하게 사셨다.
그러시던 어머니께서 기다리던 아들을 보고 “누구세요.”라고 물으셨다. 갑작스러운 그 말 한마디가 그날 나의 가슴을 두드리며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손을 꼭 잡고 얼마나 흘렀을까. 잠시 후 기억이 살아나셨다. 어머니는 다시 말을 이었다. “왜 이제 왔어. 어제부터 기다렸어.” 아기 때 손수 키운 손녀딸과 아내의 손을 어루만지며 환한 웃음에 나는 안도의 숨을 쉬게 되었다. 이제 얼마 못 사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옆에 꼭 붙어서 ‘이는 불편이 없으신지, 보청기는 작동이 잘 되는지, 안경도 잘 맞는지.’ 등 건강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것이 어머니와의 진솔한 마지막 대화일 줄이야.
이렇게 어머니와 나는 영영 헤어졌다. 우리는 모두 세상에서 영원한 이별을 맞이하려 '건망증, 깜박임, 침해, 기억 없음'이라는 이름으로 연습하며 사는지도 모른다. 나도 훗날 반가운 이를 보고 ‘누구세요.’라고 말하면 어쩌나.
“누구세요.” 뉴욕에 사는 여동생 딸애 결혼식장에서 나를 기다리시던 어머니게서 내 손을 잡으시며 건네 말이다.
불과 일 년 전만 하더라도 부탁하신 것을 잊기라도 하면 젊은 애가 벌써 건망증이 웬 말이냐며 나무라셨다. 그런데, 몇 개월 사이에 기력이 갑자기 쇄신하시어 지인도 얼른 알아보지 못하신다고 한다. 당황하는 나를 보고 안심 시켰주기 위해 동생이 귀띔해 주었다. 전에는 주위에서 깜박인다는 말을 들으면 남의 일 같더니 이젠 나도 이 문제로 아내와 다툰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자료에 의하면 20세 초반까지는 기억세포가 성장하고, 그 후부터는 서서히 그리고 50세부터는 급격히 감소하며 60대에는 60%를 시작으로 90대에는 90%의 기억력이 소실된다고 한다. 이는 자연 현상이고 스트레스와 피로가 심하면 증세가 더욱 빨라지고 깊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기억 상실을 통해서 이별을 연습하는 것일까. 고통을 잊어버림은 축복이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건망증에 관한 유모는 우리를 서글프게 한다.
식을 마치고 동생 집에서 어머니 손을 잡고 그냥 나란히 누웠다. 나도 모르게 차가운 눈물이 얼굴에 흐르고 있었다. 갓 시집 올 시 예쁜 색시로 별명이 붙여졌다는 어머니의 손이 앙상한 뼈마디에 거칠고 진이 다 빠진 피부만 손에 잡혔다. 나는 순간 가슴이 조여 숨이 멎는 듯했다. 잠시 어머니의 삶이 눈에 스치면서 어느새 잠이 들고 말았다. 분명 꿈은 안 이련데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혼자 말을 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부탁의 말씀, 기도의 말씀이 분명하여 이별을 고하는 것 같았다
이튿날 동생 집을 나서면서 건강하게 잘 지내시라고 인사드리니 나를 꼭 안으시며 내 걱정하지 말고 네 나 잘 지내라고 오히려 당부하셨다. 노모에게는 나는 아직 보살펴야 할 자식임이 틀림없었다. 차가 집에서 멀어 져 가는데 거울 속에서 어머니께서 손을 흔드시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돌아가서 어머니 추우니 들어가시라며 안으로 모셨는데 다시 밖에서 내 차를 계속 바라보고 계셨다. 나는 차마 속력을 낼 수가 없었다. 아마도 마지막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계신 것 같았다.
엘에이로 돌아왔다. 전화벨 소리에 유난히 신경이 써진다. 짜증이 나던 광고 전화가 이제는 안도의 소식처럼 들렸다. 며칠 후 아침 전화벨 소리가 유난히 요란하다. 광고 전화일 것이라면서도 예감이 심상치 않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께서 아침 식사 후 뒤뜰을 산책하다 잔디에 앉아 잠시 쉬시더니 옆으로 누우시며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지금은 한 줌의 재로 고향에 계신 아버지 곁에 계신다. 91세 사시는 동안 의사를 찾으신 기억이 거의 없이 건강하게 사셨다. 어찌 아프지 않으셨겠는가. 병원비를 생각하시면서 참고 견디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화를 내시는 모습이 내 기억에는 거의 없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오늘만 날이냐고 하시며 섭섭할 때 수저를 놓아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내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은 어머니가 주신 선물이 분명하다. 언젠가 앞뜰에 눈을 치우고 계시는데 90세 가까운 할머니가 눈을 치우는 모습이 안쓰러워서인지 한 백인 아저씨가 차를 멈추고 대신 모두 치워주었다고 한다. 내가 심심해서 하는 일인데 공연이 참견한다며 영어를 몰라 설명은 못 하고 그냥 탱큐만 연발하셨다면서 웃으시는 기억이 생생하다. 움직임만이 살아있는 증거라시며 일감을 찾고 만드시며 분주하게 사셨다.
그러시던 어머니께서 기다리던 아들을 보고 “누구세요.”라고 물으셨다. 갑작스러운 그 말 한마디가 그날 나의 가슴을 두드리며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손을 꼭 잡고 얼마나 흘렀을까. 잠시 후 기억이 살아나셨다. 어머니는 다시 말을 이었다. “왜 이제 왔어. 어제부터 기다렸어.” 아기 때 손수 키운 손녀딸과 아내의 손을 어루만지며 환한 웃음에 나는 안도의 숨을 쉬게 되었다. 이제 얼마 못 사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옆에 꼭 붙어서 ‘이는 불편이 없으신지, 보청기는 작동이 잘 되는지, 안경도 잘 맞는지.’ 등 건강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것이 어머니와의 진솔한 마지막 대화일 줄이야.
이렇게 어머니와 나는 영영 헤어졌다. 우리는 모두 세상에서 영원한 이별을 맞이하려 '건망증, 깜박임, 침해, 기억 없음'이라는 이름으로 연습하며 사는지도 모른다. 나도 훗날 반가운 이를 보고 ‘누구세요.’라고 말하면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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