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諧謔) 풍자(諷刺) 농담(弄談)
해학(諧謔, Humour 유머)은 사람들을 웃게 만들기 위한 말장난이자 의사소통의 한 형태이다. 인간사가 때로는 지루할 경우에 이를 잘 활용하면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새로운 차원에서 자신들을 되돌아 볼 수가 있다.
풍자(諷刺) 또한 웃음을 담은 것에서는 같으나 해학은 호감과 연민을 가진 무해한 익살의 웃음이라 하면 풍자는 사회적 결함이나 부조를 날카롭게 비꼬는 공격성의 차가운 웃음이라 할 수 있다. 해학은 현실의 모순이나 결함까지 수용하는 삶의 긍정적 태도인데 풍자는 문제점을 제시하고 비판하는 자세를 보인다. 이런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럼 농담(弄談) 또는 Joke는 뭐냐?
장난끼의 말로 타이밍에 맞춰 장내를 웃기면 분위기를 띄울 수 있다. 욕하려는 의도나 진심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진심을 담은 것이 등장할 때도 있다.
言中有骨(언중유골)의 농담을 그냥 웃지않는다면 받는 사람과는 금이 갔다는 것을 암시한다. 분위기를 파악못한 농담은 환영받지 못한다. 상대의 진지한 모습을 무시하고 계속하면 시비가 붙기가 十中八九(십중팔구)다. 딴지를 걸어놓고 내 앞으로 지나다니지 말라던가, 농담이라고 둘러대지를 말고 솔직하게 말실수를 저절렀다고 인정하는 편이 좋다.
고바우란 사회만평이 196-70년대에 동아일보의 인기물로 오랜동안 사랑을 받았다. 내 청년시절이었던지라 정치적인 것은 잘 이해가 않됐지만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자아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런 과거를 되살리는 이름인지라 현대판의 고바우도 그런 패러다임이랄까, 같은 맥락의 우수갯 소리를 한다는 것이 웃읍게 받아지지 않은 경우도 있다. 왜냐하면 남들의 치매성의 기억상실을 농담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구린데를 들춰내서 냄새를 피워서는 누구나 좋아할 리가 없다. 그런데 고바우는 그게 우스운 현상으로 생각되서 이 사람 저 사람을 손가락질 했던 것이다. 막상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같이 웃어주어야 하겠는데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현실에서 웃고 치우기는 너무 심각한 문제인거라.
신판 고바우가 어느 정도로 젊었는지는 모르나 본인 자신도 그런 것에 신경이 쓰여서 치매성의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나 아닌지? 기억력이란 것은 관심의 정도에 따라서 잘 기억되기도 하고 쉽게 망각되기도 한다. 꼭 늙어가는 증세가 아니란 말이다.
누구를 흉내내는 것까지는 이해되지만 사람을 웃기는 데에도 도(道:way)라는 것이 있다. 선배 고바우가 풍자에 열심이었다고 해서 그 제자가 같은 방식의 놀림에 매달려서는 시대를 잘못 살던가, 아니면 인격성의 부재가 아닐까?
이 마당이 열려있으니 다음부터는 유머나 농담의 물꼬를 터놓고 춤의 광대노릇을 해보시면 어떨까 합네다. 내 말은 그에 버금가는 즐거운 사설(辭說)을 토해보시라~ 그겁니다. 아니되면 할 수없고...
禪涅槃
풍자(諷刺) 또한 웃음을 담은 것에서는 같으나 해학은 호감과 연민을 가진 무해한 익살의 웃음이라 하면 풍자는 사회적 결함이나 부조를 날카롭게 비꼬는 공격성의 차가운 웃음이라 할 수 있다. 해학은 현실의 모순이나 결함까지 수용하는 삶의 긍정적 태도인데 풍자는 문제점을 제시하고 비판하는 자세를 보인다. 이런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럼 농담(弄談) 또는 Joke는 뭐냐?
장난끼의 말로 타이밍에 맞춰 장내를 웃기면 분위기를 띄울 수 있다. 욕하려는 의도나 진심이 없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진심을 담은 것이 등장할 때도 있다.
言中有骨(언중유골)의 농담을 그냥 웃지않는다면 받는 사람과는 금이 갔다는 것을 암시한다. 분위기를 파악못한 농담은 환영받지 못한다. 상대의 진지한 모습을 무시하고 계속하면 시비가 붙기가 十中八九(십중팔구)다. 딴지를 걸어놓고 내 앞으로 지나다니지 말라던가, 농담이라고 둘러대지를 말고 솔직하게 말실수를 저절렀다고 인정하는 편이 좋다.
고바우란 사회만평이 196-70년대에 동아일보의 인기물로 오랜동안 사랑을 받았다. 내 청년시절이었던지라 정치적인 것은 잘 이해가 않됐지만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자아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런 과거를 되살리는 이름인지라 현대판의 고바우도 그런 패러다임이랄까, 같은 맥락의 우수갯 소리를 한다는 것이 웃읍게 받아지지 않은 경우도 있다. 왜냐하면 남들의 치매성의 기억상실을 농담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구린데를 들춰내서 냄새를 피워서는 누구나 좋아할 리가 없다. 그런데 고바우는 그게 우스운 현상으로 생각되서 이 사람 저 사람을 손가락질 했던 것이다. 막상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같이 웃어주어야 하겠는데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현실에서 웃고 치우기는 너무 심각한 문제인거라.
신판 고바우가 어느 정도로 젊었는지는 모르나 본인 자신도 그런 것에 신경이 쓰여서 치매성의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나 아닌지? 기억력이란 것은 관심의 정도에 따라서 잘 기억되기도 하고 쉽게 망각되기도 한다. 꼭 늙어가는 증세가 아니란 말이다.
누구를 흉내내는 것까지는 이해되지만 사람을 웃기는 데에도 도(道:way)라는 것이 있다. 선배 고바우가 풍자에 열심이었다고 해서 그 제자가 같은 방식의 놀림에 매달려서는 시대를 잘못 살던가, 아니면 인격성의 부재가 아닐까?
이 마당이 열려있으니 다음부터는 유머나 농담의 물꼬를 터놓고 춤의 광대노릇을 해보시면 어떨까 합네다. 내 말은 그에 버금가는 즐거운 사설(辭說)을 토해보시라~ 그겁니다. 아니되면 할 수없고...
禪涅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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