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은 헛소리 하는 데가 아니다
학교교육은 마치 기와를 만들어 내는 과정과 같다. 흙을 빚어 틀에 올려놓고 암개와와 숫개와를 구별하여 일정한 형태로 구워낸다. 암컷은 아래에, 숫컷은 위로 덮히게 깔아놓으면 물샐 틈이 없는 지붕이 완성된다.
젓은 진흙을 제대로 말리고 굽지 못하면 갈라지거나 약하게 출하되어 의도했던 용도를 다하지 못하고 더미에 버려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사람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는 교육제도란 틀이 좋아야 하고, 다음으로 학교가 좋아야 하고, 배우는 학생의 질이 좋아야 하고, 선생이 실력이 있어야 하고, 나아가 가르치는 내용이 좋아야 한다.
나는 남부럽지 않은 학교를 층층이 마친 사람이다. 그것도 한국에서 알아주는 그런 교육과정을 거쳤다만 실상 사회에 나와서 시도와 실수(trial and error)를 거듭하면서 구성원으로서의 자질을 겨우 충족시키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완성품으로서 제 구실을 다 못하고 이제 내 인생길의 황혼을 맞는다. 후회되는 것이 참으로 많다.
누구를 탓하랴. 기와공장이 아무리 잘 돌아가도 결국 흙의 주성분이 문제가 되겠지. 여기서 원재료란 것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갖추어져야 할 좋은 가정환경과 부모의 염색체(DNA)를 말한다. 길을 떠나서 목적지를 찾아가는 기본을 학교가 가르처 주지만 현실의 갈림길에서 어떻게 처지에 맞게 잘 개발하느냐는 자기가 해내야 할 몫이다.
열린마당은 어떤가? 형형색색의 다른 공정을 거친 사람들이 자기 특유의 모양새를 이곳에서 자랑한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공동체가 규격품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마치 지붕에서 물이 새지 않으려면 암-수가 잘 덮여야 하듯이......
여기서 지붕이란 것은 열당이고, 기와라는 것은 글이다. 독자가 필자들의 염색체를 구애할 이유가 없다. 단지 그가 정규 기와공장을 거쳐서 사회에서 인정하는 잣대의 제품이냐 아니냐가 문제된다. 다시 말해서 문장을 구성하는 요건을 잘 지켜주었는가를 따진다. 그 요구를 통과하지 못하면 불합격품으로 취급되어 그 가치를 상실하고 쓰레기로 처리된다.
그런데 한국은 인터넽시대에 걸맞는 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무슨 말이냐? 작문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았던 거라. 선다형이나 암기식을 위주로 하다보니 생각할 줄을 모른다. 남의 것이 좋다 나쁘다는 것 정도는 알아볼 줄은 알지. 필요하면 도적질하는 것으로 대체하고 말았다.
'천리길도 한걸음 부터'란 말대로 자기 만의 글을 쓰기 시작하시라. 첫 술에 배가 부를 수가 없듯이 남들 같은 좋은 문장이 나오지 않을 수 밖에. 이럴 때에 권토중래(捲土重來)라던가, '고생 끝에 낙(樂)이와요'란 말이 그럴듯하게 받아진다. 어찌 해보지도 않고 좌절한다는 건가? 지름길은 없다. 결국 자주 써봐야 한다.
왜 그런 고생을 하느냐구요? 늙은이는 현명해진다는 뜻에 걸맞게 평생에 모은 그 지혜를 후배들에게 남겨야 할 의무도 있고 또 하다보면 재미도 있게 마련이다.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다가 가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긴 그런 깨닯음도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겠지만.
내가 아는 고교 및 대학동창들의 상당수가 의사는 있어도 이를 글로써 표현할 줄을 모른다. 미국에서는 유치원서 부터 작문을 시작해서 수많은 책들로 정신적이나 물질적으로 오늘날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삼성이나 현대자동차나 L.G.가 흉내내는 짓들을 보라. 창조가 없다. 그리고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마치 열당의 일부 인사들처럼......
禪涅槃
2017-05-14 06:07:42
젓은 진흙을 제대로 말리고 굽지 못하면 갈라지거나 약하게 출하되어 의도했던 용도를 다하지 못하고 더미에 버려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사람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는 교육제도란 틀이 좋아야 하고, 다음으로 학교가 좋아야 하고, 배우는 학생의 질이 좋아야 하고, 선생이 실력이 있어야 하고, 나아가 가르치는 내용이 좋아야 한다.
나는 남부럽지 않은 학교를 층층이 마친 사람이다. 그것도 한국에서 알아주는 그런 교육과정을 거쳤다만 실상 사회에 나와서 시도와 실수(trial and error)를 거듭하면서 구성원으로서의 자질을 겨우 충족시키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완성품으로서 제 구실을 다 못하고 이제 내 인생길의 황혼을 맞는다. 후회되는 것이 참으로 많다.
누구를 탓하랴. 기와공장이 아무리 잘 돌아가도 결국 흙의 주성분이 문제가 되겠지. 여기서 원재료란 것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갖추어져야 할 좋은 가정환경과 부모의 염색체(DNA)를 말한다. 길을 떠나서 목적지를 찾아가는 기본을 학교가 가르처 주지만 현실의 갈림길에서 어떻게 처지에 맞게 잘 개발하느냐는 자기가 해내야 할 몫이다.
열린마당은 어떤가? 형형색색의 다른 공정을 거친 사람들이 자기 특유의 모양새를 이곳에서 자랑한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공동체가 규격품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마치 지붕에서 물이 새지 않으려면 암-수가 잘 덮여야 하듯이......
여기서 지붕이란 것은 열당이고, 기와라는 것은 글이다. 독자가 필자들의 염색체를 구애할 이유가 없다. 단지 그가 정규 기와공장을 거쳐서 사회에서 인정하는 잣대의 제품이냐 아니냐가 문제된다. 다시 말해서 문장을 구성하는 요건을 잘 지켜주었는가를 따진다. 그 요구를 통과하지 못하면 불합격품으로 취급되어 그 가치를 상실하고 쓰레기로 처리된다.
그런데 한국은 인터넽시대에 걸맞는 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무슨 말이냐? 작문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았던 거라. 선다형이나 암기식을 위주로 하다보니 생각할 줄을 모른다. 남의 것이 좋다 나쁘다는 것 정도는 알아볼 줄은 알지. 필요하면 도적질하는 것으로 대체하고 말았다.
'천리길도 한걸음 부터'란 말대로 자기 만의 글을 쓰기 시작하시라. 첫 술에 배가 부를 수가 없듯이 남들 같은 좋은 문장이 나오지 않을 수 밖에. 이럴 때에 권토중래(捲土重來)라던가, '고생 끝에 낙(樂)이와요'란 말이 그럴듯하게 받아진다. 어찌 해보지도 않고 좌절한다는 건가? 지름길은 없다. 결국 자주 써봐야 한다.
왜 그런 고생을 하느냐구요? 늙은이는 현명해진다는 뜻에 걸맞게 평생에 모은 그 지혜를 후배들에게 남겨야 할 의무도 있고 또 하다보면 재미도 있게 마련이다.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다가 가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긴 그런 깨닯음도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겠지만.
내가 아는 고교 및 대학동창들의 상당수가 의사는 있어도 이를 글로써 표현할 줄을 모른다. 미국에서는 유치원서 부터 작문을 시작해서 수많은 책들로 정신적이나 물질적으로 오늘날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삼성이나 현대자동차나 L.G.가 흉내내는 짓들을 보라. 창조가 없다. 그리고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마치 열당의 일부 인사들처럼......
禪涅槃
2017-05-14 06: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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