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합시다 노래 - Boney M ~ Rivers of Babylon
열씨미 토론 했으니 노래나 합시다.

옆에 기사 보니 미주 한인들은 60%가 외국인 며느리와 사위를 본답니다.
어차피 거슬러 올라가면 다 카인의 후예들....

에덴은 이라크인가?
이라크 땅은 성경의 「창세기」에 등장한다.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시었는데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티그리스강)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유프라테스강)더라.(창 2:8~14)
이라크 땅에는 에덴동산에서 시작한 두 개의 강이 있다. 이스라엘의 북왕국은 기원전 722년 이라크의 북부 앗수르 제국에 망하는데, 요나 선지가 선교한 니느웨가 이라크 땅에 있다. 특히 「다니엘서」에서는 기원전 605년 바벨론 군대를 이끌고 갈그미스(Carchemish) 전투에서 이집트를 물리친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왕이 등장한다.그는 전쟁에서 패하고 후퇴하는 이집트 군대를 추격해 시리아와 팔레스타인까지 영토를 확장한다. 그가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왕으로 즉위하기 위해 바벨론으로 갔다가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와 그해 9월 예루살렘을 공격할 때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잡혀간다.이라크 전 대통령인 사담 후세인은 아랍 무슬림들의 원수인 이스라엘과 대적하면서 자신이 느부갓네살의 후예라고 자처하기도 했다. 「다니엘서」는 아람어를 사용하는 이스라엘 독자를 위하여 2장 4절 후반부부터 7장 28절까지는 아람어로 씌어 있다. 유대인들이 오랜 세월 이라크에 살았고, 오늘날 아시리아 기독교 교회에는 아람어를 사용하는 아시리아(이라크인들은 아슈르라고 함) 종족이 있다.이라크라는 단어는 '연안'이란 뜻이다. 터키에서 시작된 티그리스 강은 모술과 오늘날 순니파들이 주로 살고 있는 티그리트와 사마라와 바그다드를 지나 쿠트와 아마라로 흐른다. 그리고 시리아를 지나오는 유프라테스강이 알 라마디와 시아의 성지 카르발라와 나자프 옆을 지나 나시리야를 거쳐 바스라 북쪽에서 두 강이 만나 페르시아만(걸프만)으로 흘러간다. 순니파와 시아파가 두 강을 각각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 '두 강 사이의 땅'을 메소포타미아라고 한다. 이라크의 동쪽은 이란, 북쪽은 터키, 서쪽은 요르단, 남쪽은 쿠웨이트 그리고 서남쪽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국경을 접하고 있다.

관련해서 여러 가수가 이스라엘 민족의 아픔을 노래 합니다.

먼저 명품 좋아하시는 여러분을 위해서 이태리어로 Nabucodonosor 라고 쓴답니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그러나 이 이름이 너무 길기 때문에이 오페라는 편리하게 Nabucco로 축소하였답니다.
예루살렘에서 포로로 잡혔던 히브리인들은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이 노래를 부르며 시온을 그리는 마음을 달랬습니다.

“가라,내 마음이여,금빛 날개를 타고…”

예루살렘에 돌아가기를 애절하게 갈망하는 합창 이었습니다.
이 오페라 나부코에서는 특히 이 "노예들의 합창이 가장 유명 합니다"노예들의 합창"은 당시 오스트리아 지배 밑에 있던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감동을 줌과 동시에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오랜 분열과 오스트리아의 압제에서 벗어나 통일된 국가를 만들고자 하는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조국애를 일깨우고 강한 활력을 불어 넣은 곡 1842년 이 작품이 초연될 당시 이탈리아인들에게는 작품 속 줄거리가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암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국민의 애국심을 강하게 자극했습니다. 이탈리아 통일 운동 때에 거의 이태리 국가처럼 불렸고. 베르디의 장례식에 불린 노래이기도 합니다. 일종의 이태리 "국민찬가"입니다

스웨덴 출신의 혼성 그룹 아바도 불러 이스라엘 민족의 아픔을 노래 합니다
바빌론 기슭, 거기에 앉아 / 시온을 생각하며 눈물 흘렸다. / 그 언덕 버드나무 가지 위에 / 우리의 수금 걸어 놓고서. (시편 137, 1~2)

나나무스끄리도 부르고 저는 이것을 권합니다 신나니까!
Boney M ~ Rivers of Babylon

바빌론유수
[BabylonianCaptivity, ─幽囚 ]

BC 597~BC 538년 이스라엘의 유다왕국 사람들이 신(新)바빌로니아의 바빌론으로 포로가 되어 이주한 사건.

언제
BC 597~BC 538년
누가
이스라엘의 유다왕국 사람들
어떻게
예루살렘 함락, 이스라엘의 유다왕국 사람들이 신(新)바빌로니아의 바빌론으로 포로가 되어 이주한 사건

BC 601년 신바빌로니아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유다왕국에 공격하여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BC 597년 유대인을 바빌론에 포로로 데려갔다. 이것이 첫 번째 유수이며 두번째는 BC 586년의 일로, 예루살렘은 함락되어 완전히 파괴되고 당시의 왕 제데키아(시드키야)는 제리코(예리고)에서 붙잡혀 맹인이 되었으며, 대부분의 주민이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세번째는 BC 582년의 일로, 유다의 모든 고대도시가 파괴되고 주민도 포로가 되었다. 잡혀간 유대인은 지구라트 건설에 동원되었다.《예레미야》 52장 30절에 의하면 포로의 수는 전후 3회에 걸쳐 4,600명이라고 기록되었으나 이것은 남자만의 수일 것이며, 부녀자를 포함하면 4만 5,0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당시 유다의 총인구는 약 25만으로 추정되며, 포로는 왕국 사회의 중핵층인 귀족 ·군인 ·공인(工人) 등이었다. 이 포로는 BC 538년 페르시아의 키로스 2세의 포고로서 귀환이 허용되었다. 포로는 바빌론에서 종교적 자유는 허용되었으나, 예루살렘 신전에서와 같은 제의(祭儀)는 할 수 없었다. 대신 안식일 예배가 중심이 되어 회당(會堂)에서의 율법낭독과 기도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예배의식이 비롯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 모세시대에서 그들의 시대까지의 역사인 《신명기(申命記)》에서 《열왕기(列王記)》까지가 편찬되었다. 5세기 후반에 느헤미야 ·에즈라 등이 귀국하면서 새로운 법전(法典)이 나오고 민족이 재건되었으며, 유대교가 성립되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일대 시련이었으나, 약 반 세기 동안 포로들은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도 바빌로니아의 문화에 접하여, 구약성서의 근간이 된 헤브라이의 여러 문서를 집성하였다. 또한 팔레스타인에서의 유다인 공동체 회복의 원동력이 되었다.

또 사람들은 의논하였다. "어서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우리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주님께서 땅에 내려오시어 사람들이 이렇게 세운 도시와 탑을 보시고 생각하셨다."사람들이 한 종족이라 말이 같아서 안 되겠구나. 이것은 사람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에 지나지 않겠지. 앞으로 하려고만 하면 못할 일이 없겠구나. 당장 땅에 내려가서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놓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해야겠다."주님께서는 사람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도시를 세우던 일을 그만두었다. 주님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놓아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고 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다.


창세기 11장 4~9절 (공동번역)
성경 속 바벨탑의 실제 모델은 마르두크의 지구라트. 바빌론의 공중정원을 건설한 왕으로 유명한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명령으로 신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에 지어 진 건축물이다. 높이와 넓이가 무려 90m를 넘는, 현재로서도 거대하고 당시에는 상상조차 못할 거대한 건축물이었고, 지구라트의 건설 목적도 조금이라도 하늘에 가까이 다가가 그곳에서 제사를 지내는 왕이나 신관들이 보다 신과 가까워지는 것이었다.꼭대기에는 제단이 있는 신전이 있는데 바빌론의 문과 같은 푸른 벽돌로 장식되어 매우 아름다웠다고 전해진다.
하늘에 닿은 인간 욕망
원래는 신의 발 받침대 바빌로니아는 원래 「신의 문」(bab-ili)이라는 뜻이다. 또 고대 도시의 한 복판에 지어진 바벨탑은 하늘과 지상이 통하는 스타게이트였다. 일찍이 바빌로니아에 터를 잡았던 수메르 인들은 높은 산이나 언덕마다 탑을 빼곡하게 올리면서 신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올 때 발을 내딛을 받침대로 여겼다고 한다. 그리고 바벨탑이 그 전통을 이어받았다. 구약의 예언자 다니엘도 이곳 바벨탑 그늘 아래로 자주 지나다녔을 것이다.바벨탑을 목격한 사람은 또 있었다. 기원전 458년 바빌로니아를 방문한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는 『네모반듯한 밑그림에 탑이 서 있었는데, 탑 위에 탑이 올라붙고, 그 위에 또 다른 탑이 올라붙는 식으로 모두 여덟 개의 탑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는데… 맨 꼭대기 탑 위에는 신전이 세워져 있었다』고 전한다(역사 I, 181~183). 모두 벽돌을 구워서 쌓은 탑이었고, 꼭대기의 신전은 지붕에다 파란 유약을 발라서 구운 기와와 황금을 씌워서 멀리서 도시로 들어서는 나그네의 눈을 눈부시게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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