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내기 다매내기 맛좋은 고래괴기
열린마당의 유지이신 알렉스슨상이 대구내기라 해서 옛적, 내가 어렸을 때의 대구에서 있었던 추억에 한동안 잠겼다가 자판을 잡고 말았다. 대구는 내가 피난갔던 제2의 고향에 해당한다.
특히 어린시절에 그곳에서 보냈던 3년 간은 내게 있어서 참으로 목가적인 추억이 아닐 수 없다. 힘겨운 피난시절이었지만 童心(동심)이 한껏 꽃피울 적에 격었던 기억이 아직도 머리에 삼삼하게 피어오른다.
처음 그곳에서 방 한칸을 빌려서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보려했더니 윗 제목의 푸대접이랄까 지방차별을 당했던 남어지 소위된 처음이 되었고, 마침 피난온 자녀들만 가르치는 피난국민학교가 옛 영남대학교 앞의 부지에 차려져서 3년간 서울애들과 만이 공부할 수가 있었다.
대구사투리, 거기다가 '맛좋은 고래괴기... 그 말씨 자체도 생소했고 놀려대는 거깃 사람들과 노는 것조차 별로였던지라 대구출신의 동무는 아예 없이 서울로 왔다. 요새는 초등학교라 부른다만 당시의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지만해야 했는데 경북중학교나 대구사범도 좋다고 했으나 좋다는 한 중학교에 지망했다.
2차로는 청량리 밖에 있다는 어떤 시시한 학교를 써넣었는데 참으로 철없는 아찔한 짓이었다. 내 집은 광화문 근처 도렴동이었는데 당시에 어쩌자고 교통도 불편하고 이름조차 없는 학교를 1차에서 떨어지면 가겠다는 거였던가? 내 부모는 아예 어디가 어딘지를 모르던 판이라서 내 동무들이 좋다는 곳을 선택했고 다행이 그나 나나 입학이 됐으니 오늘의 내가 있는게 아닌가?
그때 거기 영남대학 앞으로 다니려면 봄에는 보리밭을 지나게 됐었는데 보릿이삭을 잘라서 소매 속에 넣고 걸으면 그것이 겨드랑까지 올라갔고, 왕잠자리 암놈을 잡아서 막대기의 실끝에 매어 "오다리 청청"하면서 돌려대면 숫넘을 잡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여름에는 근처의 영산못에서 물을 빼면 붕어가 등을 보이는지라 그 갯벌바닥에 들어가서 손으로 그것을 잡았던 기억이 있다. 그걸 잡아서 집에 가져왔는지 모르나 잡고자 하면 큰 물고기가 내 작은 손을 밀치고 다라나 버리기도 했다.
어떤 때는 앞산 비행장의 변두리에 앉아서 경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광경을 넉없이 바라다 보기도 했고, 아주 더운 날은 앞산의 개울에 가서 목욕을 했지를. 말이 산골물이지만 사람들로 붐벼서 물을 튀겨보기도 어렵웠다. 알다시피 대구란 곳은 분지라서 한국에서 가장 더운 곳이다.
대구의 서쪽에 방천이란 곳에서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였고, 그 앞으로 괴암들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좌우벽을 짚고 내려가 보기도 했었는데 가끔 참으로 위험한 짓을 했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대구의 동쪽으로는 남대천이라 하던가 하는 강건너 저 멀리에 팔공산이 높이 펼쳐저 있었고, 그 앞의 동촌비행장을 미군이 쓰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 사과밭이 있고 마침 내 같은 반 동무네 집도 있어서 거기에 가서 풋사과를 따먹은 적이 있다. 얼마나 시던지 지금도 사과를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고 마는. 그 아이네 집에는 창녀들이 여렀있었는데 좋은 직업이 아니란 생각을 했었다. 거기서 남쪽으로 경산이란 사과고장이 있다고 하더라.
대구란 고장은 비만 오면 고무신을 벗기도록 진흙밭으로 변했고, 똥뚜깐도 두개의 나무다리만 있어서 잘못하면 똥다리에 미끄러져서 그 밑의 똥통에 빠지기가 일수였다. 내가 빠졌던 기억은 없으나 매우 위험한 일을 매일 치뤄야 했었다.
약전골목이란 데로 들어서면 한약재의 냄새가 크를 벌름거리게 만들었는데, 긴 골목길은 수백년의 역사가 서려있는 곳이라 하더만 한약을 다려먹을 일은 없어서 그곳에서 뭐를 산적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구는 경상도에서도 양반들이 많이 거주했던 곳이라서 그런지 부산사투리보다는 좀 느리고 나름의 품격을 갖춘 그런 말씨라고 하더군.
언젠가 내 처의 고향인 포항에서 서울행 기차를 대구에서 갈아타는 기회에 예전의 남산동에서 살던 곳을 일부러 찾아갔더니 고래당 같은 개와집들로 꽉차있어서 도저히 옛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세월이 가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더만 대구의 모습도 많이 변했겠지? 전국이 아파트 건물로 꽉차있는 세상이니 거기도 고층건물의 정글이 되어있으리라. 결코 좋다고 나는 보지 않는다. 사람은 자연과 가까이 살아야 정서도 좋으련만 아파트에 살면서 편한 것만을 중요시하는 속세의 유행을 어찌 봐주어야 할지.
禪涅槃
특히 어린시절에 그곳에서 보냈던 3년 간은 내게 있어서 참으로 목가적인 추억이 아닐 수 없다. 힘겨운 피난시절이었지만 童心(동심)이 한껏 꽃피울 적에 격었던 기억이 아직도 머리에 삼삼하게 피어오른다.
처음 그곳에서 방 한칸을 빌려서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보려했더니 윗 제목의 푸대접이랄까 지방차별을 당했던 남어지 소위된 처음이 되었고, 마침 피난온 자녀들만 가르치는 피난국민학교가 옛 영남대학교 앞의 부지에 차려져서 3년간 서울애들과 만이 공부할 수가 있었다.
대구사투리, 거기다가 '맛좋은 고래괴기... 그 말씨 자체도 생소했고 놀려대는 거깃 사람들과 노는 것조차 별로였던지라 대구출신의 동무는 아예 없이 서울로 왔다. 요새는 초등학교라 부른다만 당시의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지만해야 했는데 경북중학교나 대구사범도 좋다고 했으나 좋다는 한 중학교에 지망했다.
2차로는 청량리 밖에 있다는 어떤 시시한 학교를 써넣었는데 참으로 철없는 아찔한 짓이었다. 내 집은 광화문 근처 도렴동이었는데 당시에 어쩌자고 교통도 불편하고 이름조차 없는 학교를 1차에서 떨어지면 가겠다는 거였던가? 내 부모는 아예 어디가 어딘지를 모르던 판이라서 내 동무들이 좋다는 곳을 선택했고 다행이 그나 나나 입학이 됐으니 오늘의 내가 있는게 아닌가?
그때 거기 영남대학 앞으로 다니려면 봄에는 보리밭을 지나게 됐었는데 보릿이삭을 잘라서 소매 속에 넣고 걸으면 그것이 겨드랑까지 올라갔고, 왕잠자리 암놈을 잡아서 막대기의 실끝에 매어 "오다리 청청"하면서 돌려대면 숫넘을 잡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여름에는 근처의 영산못에서 물을 빼면 붕어가 등을 보이는지라 그 갯벌바닥에 들어가서 손으로 그것을 잡았던 기억이 있다. 그걸 잡아서 집에 가져왔는지 모르나 잡고자 하면 큰 물고기가 내 작은 손을 밀치고 다라나 버리기도 했다.
어떤 때는 앞산 비행장의 변두리에 앉아서 경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광경을 넉없이 바라다 보기도 했고, 아주 더운 날은 앞산의 개울에 가서 목욕을 했지를. 말이 산골물이지만 사람들로 붐벼서 물을 튀겨보기도 어렵웠다. 알다시피 대구란 곳은 분지라서 한국에서 가장 더운 곳이다.
대구의 서쪽에 방천이란 곳에서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였고, 그 앞으로 괴암들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좌우벽을 짚고 내려가 보기도 했었는데 가끔 참으로 위험한 짓을 했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대구의 동쪽으로는 남대천이라 하던가 하는 강건너 저 멀리에 팔공산이 높이 펼쳐저 있었고, 그 앞의 동촌비행장을 미군이 쓰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 사과밭이 있고 마침 내 같은 반 동무네 집도 있어서 거기에 가서 풋사과를 따먹은 적이 있다. 얼마나 시던지 지금도 사과를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고 마는. 그 아이네 집에는 창녀들이 여렀있었는데 좋은 직업이 아니란 생각을 했었다. 거기서 남쪽으로 경산이란 사과고장이 있다고 하더라.
대구란 고장은 비만 오면 고무신을 벗기도록 진흙밭으로 변했고, 똥뚜깐도 두개의 나무다리만 있어서 잘못하면 똥다리에 미끄러져서 그 밑의 똥통에 빠지기가 일수였다. 내가 빠졌던 기억은 없으나 매우 위험한 일을 매일 치뤄야 했었다.
약전골목이란 데로 들어서면 한약재의 냄새가 크를 벌름거리게 만들었는데, 긴 골목길은 수백년의 역사가 서려있는 곳이라 하더만 한약을 다려먹을 일은 없어서 그곳에서 뭐를 산적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구는 경상도에서도 양반들이 많이 거주했던 곳이라서 그런지 부산사투리보다는 좀 느리고 나름의 품격을 갖춘 그런 말씨라고 하더군.
언젠가 내 처의 고향인 포항에서 서울행 기차를 대구에서 갈아타는 기회에 예전의 남산동에서 살던 곳을 일부러 찾아갔더니 고래당 같은 개와집들로 꽉차있어서 도저히 옛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세월이 가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더만 대구의 모습도 많이 변했겠지? 전국이 아파트 건물로 꽉차있는 세상이니 거기도 고층건물의 정글이 되어있으리라. 결코 좋다고 나는 보지 않는다. 사람은 자연과 가까이 살아야 정서도 좋으련만 아파트에 살면서 편한 것만을 중요시하는 속세의 유행을 어찌 봐주어야 할지.
禪涅槃

좋아요 0
태그
DISCLAIMER
이곳에 게시된 글들은 에이전트 혹은 사용자가 자유롭게 올린 게시물입니다. 커뮤니티 내용을 확인하고 참여에 따른 법적, 경제적, 기타 문제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케이타운 1번가는 해당 컨텐츠에 대해 어떠한 의견이나 대표성을 가지지 않으며, 커뮤니티 서비스에 게재된 정보에 의해 입은 손해나 피해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