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서방의 횡설수설(Who am I?)
==
일전 왜 I(나) 는
[ God, King ]과 같이 영어 문장에서 위치가 어디든 대문자(capitalize)로 쓰는가 하는 것과
다시 I 는 1 인칭이고 나의 몸뚱이는 나의 것이니 같은 1인칭으로 쓰지 않고
왜 3인칭으로 영어를 쓰는지..
.
에 대해 궁금해서 혹 이 마당에 아시는 분이 있으면 하고 글을 올렸는데 아직은 정답(?)이 보이지 않는다.
.
여러분의 좋은 가르침을 기대하면서 나의 생각을 정리해본다.
.
나의 생각은 이렇다.
I 를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본다.
하나는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의 나(I)와
다른 것은 형이하학적인 관점에서의 나(I)로 나누어 본다.
생각(1) :
여기서 “ I ” 는 고귀함과 절대성을 가진 어떤 관찰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나”를 의미한다고 본다. 한글로 치면 “참 나”라고 하겠다.
불교의 “천상천하 유아독존”과 상통한다고 본다.
그런데 여긴 논리의 모순(?)이 생긴다.
왜 내 몸뚱인 역시 나 인데 어찌 I 와 구분을 하는가 하는 것에
예를 들어보면 I am sick. I feel sad. 이라고 했을 땐 내가 아니고 누구란 말인가?
여긴 내 몸뚱이가 아프고 슬프고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생각(2) :
한 인간으로 봐서 "나"는
내가 있어야 우리가 있듯 내가 없는 곳엔 아무것도 없다는 뜻으로 본다.
결론:
그래서 이 I 도 한글에서 나라고 부르면서 “참 나”가 따로 있다고 보는 종교적이랄까 철학적이랄까 그런 관점에서 “나”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나를 이끌고 다니는 육신의 나가 있어 혼란스럽지만 그렇게 둘의 의미가 섞이어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래엔 혜민스님의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좋은 말씀이 있어
원고 수정 없이 일부를 가지고 왔다.
그런데 아래 글을 오래 새기고 또 새겨도 나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 아래는 중앙일보에 올린 스님의 글 일 부 임 ==
.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해야 진정한 나를 경험할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우선 내가 아닌 것들을 하나하나씩 제거하면서 마지막까지 무엇이 남는지를 찾아보는 것이다.
.
예를 들어 내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보라색 꽃이 있는데 이 꽃은 내가 아니다. 왜냐면 이 꽃은 관찰되기 때문이다. 즉 진정한 나는 대상화돼 관찰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관찰되는 모든 것은 대상(object)이지 내(subject)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몸도 진정한 의미의 내가 아니다. 왜냐면 몸 역시 꽃처럼 관찰되기 때문이다. 몸 어디가 어떻게 생겼고 어떤 모양이고 하는 것들은 내 안에서 바라보며 관찰할 수 있다.
.
똑같은 논리로 보면 우리 감정이나 생각도 역시 진정한 나는 아니다. 감정이나 생각도 올라오고 사라지는 것들이 관찰되기 때문이다. 화가 났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화가 풀려 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기억과 같은 생각도 마찬가지로 구름처럼 일어났다 어느덧 자기 스스로 사라진다는 것이 관찰된다. 만약 감정이나 생각이 진정한 나였다면 그러한 감정이나 생각이 사라질 때 나 또한 함께 사라져야 하지 않는가.
.
그렇다면 몸도 아니고 감정도 아니고 생각도 아닌 진정한 나는 무엇인가.
나의 경우 몸, 감정, 생각과 나를 동일시하는 버릇을 잠시 내려놓으니 그것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면서 남겨놓는 자유로운 빈 공간들이 있었다.
.
그 자유로운 텅 빈 공간은 몸 안쪽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몸 밖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시작과 끝, 안과 밖의 구분이 없다.
.
공간이라고 표현을 하지만 그 공간이 묘하게도 살아서 감정이나 생각이 일어나면 바로 안다. 하지만 그 자체는 앎의 대상이 없기 때문에 모르는 채로 온전히 자유롭다.
==
이 글에서 난
[-- 그것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면서 남겨놓는 자유로운 빈 공간들이 있었다. ]라는 결론에서 난 생각이 멎고 말았다.
그 이유는 나의 공부가 덜 되어 그렇겠지만 난 그 공간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역시 난 아직 멀었나 봐!
일전 왜 I(나) 는
[ God, King ]과 같이 영어 문장에서 위치가 어디든 대문자(capitalize)로 쓰는가 하는 것과
다시 I 는 1 인칭이고 나의 몸뚱이는 나의 것이니 같은 1인칭으로 쓰지 않고
왜 3인칭으로 영어를 쓰는지..
.
에 대해 궁금해서 혹 이 마당에 아시는 분이 있으면 하고 글을 올렸는데 아직은 정답(?)이 보이지 않는다.
.
여러분의 좋은 가르침을 기대하면서 나의 생각을 정리해본다.
.
나의 생각은 이렇다.
I 를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본다.
하나는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의 나(I)와
다른 것은 형이하학적인 관점에서의 나(I)로 나누어 본다.
생각(1) :
여기서 “ I ” 는 고귀함과 절대성을 가진 어떤 관찰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나”를 의미한다고 본다. 한글로 치면 “참 나”라고 하겠다.
불교의 “천상천하 유아독존”과 상통한다고 본다.
그런데 여긴 논리의 모순(?)이 생긴다.
왜 내 몸뚱인 역시 나 인데 어찌 I 와 구분을 하는가 하는 것에
예를 들어보면 I am sick. I feel sad. 이라고 했을 땐 내가 아니고 누구란 말인가?
여긴 내 몸뚱이가 아프고 슬프고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생각(2) :
한 인간으로 봐서 "나"는
내가 있어야 우리가 있듯 내가 없는 곳엔 아무것도 없다는 뜻으로 본다.
결론:
그래서 이 I 도 한글에서 나라고 부르면서 “참 나”가 따로 있다고 보는 종교적이랄까 철학적이랄까 그런 관점에서 “나”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나를 이끌고 다니는 육신의 나가 있어 혼란스럽지만 그렇게 둘의 의미가 섞이어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래엔 혜민스님의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좋은 말씀이 있어
원고 수정 없이 일부를 가지고 왔다.
그런데 아래 글을 오래 새기고 또 새겨도 나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 아래는 중앙일보에 올린 스님의 글 일 부 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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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해야 진정한 나를 경험할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우선 내가 아닌 것들을 하나하나씩 제거하면서 마지막까지 무엇이 남는지를 찾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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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내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보라색 꽃이 있는데 이 꽃은 내가 아니다. 왜냐면 이 꽃은 관찰되기 때문이다. 즉 진정한 나는 대상화돼 관찰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관찰되는 모든 것은 대상(object)이지 내(subject)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몸도 진정한 의미의 내가 아니다. 왜냐면 몸 역시 꽃처럼 관찰되기 때문이다. 몸 어디가 어떻게 생겼고 어떤 모양이고 하는 것들은 내 안에서 바라보며 관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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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논리로 보면 우리 감정이나 생각도 역시 진정한 나는 아니다. 감정이나 생각도 올라오고 사라지는 것들이 관찰되기 때문이다. 화가 났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화가 풀려 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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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같은 생각도 마찬가지로 구름처럼 일어났다 어느덧 자기 스스로 사라진다는 것이 관찰된다. 만약 감정이나 생각이 진정한 나였다면 그러한 감정이나 생각이 사라질 때 나 또한 함께 사라져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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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몸도 아니고 감정도 아니고 생각도 아닌 진정한 나는 무엇인가.
나의 경우 몸, 감정, 생각과 나를 동일시하는 버릇을 잠시 내려놓으니 그것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면서 남겨놓는 자유로운 빈 공간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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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유로운 텅 빈 공간은 몸 안쪽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몸 밖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시작과 끝, 안과 밖의 구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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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라고 표현을 하지만 그 공간이 묘하게도 살아서 감정이나 생각이 일어나면 바로 안다. 하지만 그 자체는 앎의 대상이 없기 때문에 모르는 채로 온전히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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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난
[-- 그것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면서 남겨놓는 자유로운 빈 공간들이 있었다. ]라는 결론에서 난 생각이 멎고 말았다.
그 이유는 나의 공부가 덜 되어 그렇겠지만 난 그 공간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역시 난 아직 멀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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