永遠(영원)이란 瞬間(순간)
나는 창밖의 땅거미가 드리워가는 초저녘을 좋아한다. 겨울의 짧은 해가 지금 서쪽으로 기울어간다. 붉은 하늘가를 붉으므레 구름 사이로 물들인다. 그리고 뒷뜰의 殘雪(잔설) 위로 어둠이 슬며시 찾아온다.
조용히 바라다 보느니 어드듯 한때의 어두워가는 情趣(정취)가 땅위를 깔면 나는 커튼을 닫는다. 밖의 세계가 가리워지고 내 맘의 하룻밤의 세계가 시작된다. 바쁘게 살던 젊은 사람들은 하루를 그냥 넘기기가 어려운듯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겠지만, 나같은 늙은이는 책을 붙들고 따듯한 이불 속으로 기어든다. 어느듯 꿈 속으로 들어가서 이것 저것 또 다른 세상을 구경하다가 새벽을 맞는다. 또 하나의 새날이 왔다.
이렇게 하며 살아온지 여러해......때가 왔다가 또 갔다. 오늘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잘 익은 김치를 즐겼다. 참 맛이 잘 들었다. 내 집사람이 서너주 전에 담근 김치가 바야흐로 그 진맛을 발휘하는 그런 때가 온 것이다. 나는 밥과 국을 다 먹고도 계속해서 김치를 집어먹었다.
김치에도 때가 있었다. 너무 빨리 꺼내 먹으면 싱싱한 맛은 있어도 덜 익은 '사라다'라고 할까, 그런 풋내가 풍성하다. 냉장고에서 서서히 오래 익다가 보면 오늘 저녁의 진짜 김치 맛이 나온다. 이것도 빨리 먹지 않으면 시어지기 시작해서 식초로 결국 변해 가겠지만, 나는 그때에 멸치를 넣고 김치국을 끊이든가 아니면 돼지고기와 싸먹으면 또한 일품의 침이 흐른다.
사람사는 데에도 때가 있다는 말을 남긴 사람이 있다. 괜히 나이나 세어보며 그 때에 적절한 삶을 살지 못하면 죽을 날만 기다린다고 할 수 있다. 영국에 20세기 초에 유명한 James Bond式의 탐정소설을 시작시킨 Somerset Maugham란 문장가가 있었다. 그는 의학을 공부하고 심심풀이로 글을 쓰기 시작해었다. 의외로 자기에게 글쓰는 재주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침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군의 정보부에서 일하다가 종전후에 탐정소설을 썼는데 반응이 좋았었다. 그런 덕택으로 경제적 여유가 생겨서 태평양의 작은 섬인 Tahiti으로 여행을 떠났었다. 그곳에서 Paul Gauguin이란 인상파 화가의 옛자취를 발견하고 그 사람의 일생을 그린 "Moon and Six Pence"을 쓰게 되었고, 그 소설로 그가 유명해 졌었다.
그가 말하기를, 20代에는 아름다워야 하고, 30代에는 힘이 쎄야하고, 40代에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50代에는 이름을 날려야 하고, 60代에는 현명해야 한다. 만일 20代에 아름답지 못하고, 30代에 힘이 쎄지 못하고, 40代에 돈을 벌지 못하고, 50代에 이름을 날리지 못하고, 60代에 현명치 못하면...그는 영원히 아름답지 못하고, 힘이 쎄지 못하고, 돈을 벌지 못하고, 이름을 날리지 못하고, 현명하지도 못할 것이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한국의 초대 외무부 장관했던 변영태씨 한테서 영어 독해를 배우던 시간에 이런 글귀를 공부하게 되었고, 그 때에 이 말을 매우 인상깊게 받아서 오늘도 이런 얘기를 여기에 남기고 있다.
세상에는 다 때가 있다. 올때가 있고 또 갈때가 있다. 교회에서 매주 '사도신경'을 외우며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내가 얼마 전에 "때가 찼다"라는 제목에서 하나님의 때와 우리의 때가 얼마나 다른가를 얘기했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이 날 이 때에 "영원히 살아온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또한 "몸이 다시 살아서" 몇백년 전의 내 조상이 지금도 걸어다니는 것도 볼 수 없었다.
지금도 가끔 꿈 속에서 뵈옵는 내 어머니 조차 내 곁에 계시지 않으신다. 지금 다시 살아나시면 내가 그때 그 시절에 못다한 정성과 애정을 다시 돌리면서 효도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런 생각을 하면 내 가슴이 아파온다.
그런 것이 현실이다. 그러면 왜 우리는 "영원히 산다"고 하는가? 원래 "영원"이란 시간의 無限(무한)을 말하는 개념이 아니다. "시간을 느끼지 않는 찰라"......그것이 영원이다. 시간이란 정신적인 것이다. 一刻이 如三秋(일각이 여삼추)란 말처럼 순간이 긴 가을저녁과 같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한편 仙女(선녀)와 같이 산 몇년이 순간일 수도 있는 그런 느낌 혹은 체험을 "영원"이라고 부른다.
언제가 "지금을 살라"라는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우리는 과거에 집착하여 현재를 살고 있고, 무지개의 끝을 찾는 미래를 산다. 오늘이란 없다. 내가 오늘 초저녁에 땅꺼미가 땅을 슬며시 끌며 넘어가는 겨울의 노울을 바라보는 순간은 나에게 영원한 순간이었다. 이런 순간의 연속을 내가 살면, 얼마나 좋은 인생일까를 지금 생각해 본다.
禪涅槃
조용히 바라다 보느니 어드듯 한때의 어두워가는 情趣(정취)가 땅위를 깔면 나는 커튼을 닫는다. 밖의 세계가 가리워지고 내 맘의 하룻밤의 세계가 시작된다. 바쁘게 살던 젊은 사람들은 하루를 그냥 넘기기가 어려운듯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겠지만, 나같은 늙은이는 책을 붙들고 따듯한 이불 속으로 기어든다. 어느듯 꿈 속으로 들어가서 이것 저것 또 다른 세상을 구경하다가 새벽을 맞는다. 또 하나의 새날이 왔다.
이렇게 하며 살아온지 여러해......때가 왔다가 또 갔다. 오늘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잘 익은 김치를 즐겼다. 참 맛이 잘 들었다. 내 집사람이 서너주 전에 담근 김치가 바야흐로 그 진맛을 발휘하는 그런 때가 온 것이다. 나는 밥과 국을 다 먹고도 계속해서 김치를 집어먹었다.
김치에도 때가 있었다. 너무 빨리 꺼내 먹으면 싱싱한 맛은 있어도 덜 익은 '사라다'라고 할까, 그런 풋내가 풍성하다. 냉장고에서 서서히 오래 익다가 보면 오늘 저녁의 진짜 김치 맛이 나온다. 이것도 빨리 먹지 않으면 시어지기 시작해서 식초로 결국 변해 가겠지만, 나는 그때에 멸치를 넣고 김치국을 끊이든가 아니면 돼지고기와 싸먹으면 또한 일품의 침이 흐른다.
사람사는 데에도 때가 있다는 말을 남긴 사람이 있다. 괜히 나이나 세어보며 그 때에 적절한 삶을 살지 못하면 죽을 날만 기다린다고 할 수 있다. 영국에 20세기 초에 유명한 James Bond式의 탐정소설을 시작시킨 Somerset Maugham란 문장가가 있었다. 그는 의학을 공부하고 심심풀이로 글을 쓰기 시작해었다. 의외로 자기에게 글쓰는 재주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침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군의 정보부에서 일하다가 종전후에 탐정소설을 썼는데 반응이 좋았었다. 그런 덕택으로 경제적 여유가 생겨서 태평양의 작은 섬인 Tahiti으로 여행을 떠났었다. 그곳에서 Paul Gauguin이란 인상파 화가의 옛자취를 발견하고 그 사람의 일생을 그린 "Moon and Six Pence"을 쓰게 되었고, 그 소설로 그가 유명해 졌었다.
그가 말하기를, 20代에는 아름다워야 하고, 30代에는 힘이 쎄야하고, 40代에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50代에는 이름을 날려야 하고, 60代에는 현명해야 한다. 만일 20代에 아름답지 못하고, 30代에 힘이 쎄지 못하고, 40代에 돈을 벌지 못하고, 50代에 이름을 날리지 못하고, 60代에 현명치 못하면...그는 영원히 아름답지 못하고, 힘이 쎄지 못하고, 돈을 벌지 못하고, 이름을 날리지 못하고, 현명하지도 못할 것이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한국의 초대 외무부 장관했던 변영태씨 한테서 영어 독해를 배우던 시간에 이런 글귀를 공부하게 되었고, 그 때에 이 말을 매우 인상깊게 받아서 오늘도 이런 얘기를 여기에 남기고 있다.
세상에는 다 때가 있다. 올때가 있고 또 갈때가 있다. 교회에서 매주 '사도신경'을 외우며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내가 얼마 전에 "때가 찼다"라는 제목에서 하나님의 때와 우리의 때가 얼마나 다른가를 얘기했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이 날 이 때에 "영원히 살아온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또한 "몸이 다시 살아서" 몇백년 전의 내 조상이 지금도 걸어다니는 것도 볼 수 없었다.
지금도 가끔 꿈 속에서 뵈옵는 내 어머니 조차 내 곁에 계시지 않으신다. 지금 다시 살아나시면 내가 그때 그 시절에 못다한 정성과 애정을 다시 돌리면서 효도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런 생각을 하면 내 가슴이 아파온다.
그런 것이 현실이다. 그러면 왜 우리는 "영원히 산다"고 하는가? 원래 "영원"이란 시간의 無限(무한)을 말하는 개념이 아니다. "시간을 느끼지 않는 찰라"......그것이 영원이다. 시간이란 정신적인 것이다. 一刻이 如三秋(일각이 여삼추)란 말처럼 순간이 긴 가을저녁과 같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한편 仙女(선녀)와 같이 산 몇년이 순간일 수도 있는 그런 느낌 혹은 체험을 "영원"이라고 부른다.
언제가 "지금을 살라"라는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우리는 과거에 집착하여 현재를 살고 있고, 무지개의 끝을 찾는 미래를 산다. 오늘이란 없다. 내가 오늘 초저녁에 땅꺼미가 땅을 슬며시 끌며 넘어가는 겨울의 노울을 바라보는 순간은 나에게 영원한 순간이었다. 이런 순간의 연속을 내가 살면, 얼마나 좋은 인생일까를 지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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