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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사진 rainbows79 열린마당톡 2017.08.28 신고
기고 글 기독교와 민주주의에 대한 답 글입니다.
옆의 기고 글( 기독교와 민주주의)을 본 느낌이고 기독교인의 답변을 원하시니 답변합니다.
어제 다른 글에서 인용한 말입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인간의 조건에서 데카르트의 명제를 인용합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 한다라는 말을 나는 증오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명제를 비틉니다.
동의가 됩니다.
지금의 한국 보수사회와 미국의 보수 한인들의 생각을 적절히 대변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듭니다.

더불어서 미국의 극우보수인 스킨헤드와 KKK 단으로 대표되고 스티브 배넌과 미국의 현직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가 그 수장입니다.
기독교와 민주주의 인본주의 이러한 이념의 시발점이 되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그저 무지하다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캐톨릭교의 출발 달리 시작이라고 하겠습니다.

미국의 건국으로 돌아간다면 메이플라워로 대변되는 영국에서 박해받던
청교도들이 달리 소외계층입니다.
노예와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기위해서 맨 몸으로 토착민인 인디언과
싸우고 프랑스와 싸우고 이곳까지 따라온 영국의 압제와 높은 세금에서
벗어나고자 민병대를 조직하고 밭을 갈다 말고 총을들고 원주민과 영국의 군대와 싸워 이루어낸 나라입니다.
물론 건국이념은 기독교이고 그 건국 정신이 오늘도 이어집니다.
여러분들이 착각하는 것 개인의 자유를 최대힌 보장하기 위해 만든것이
종교와 언론과 사상의 자유입니다만 개인의 방종까지는 아닙니다.
이 나라를 건국한 이들이 오늘 학교에서 창조론은 사라지고 진화론만 남고 동성애를 말하는 것을 본다면 개탄해 마지않을 것입니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입니다.
그 시대의 통치자로서 생애의 초기에 그는 “신(神)의” 후원을 받을 필요를 느낍니다.
사라져 가는 로마의 신들은 그 역할을 해낼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의 로마는 다신교 즉 지금의 일본처럼 마구잡이 쨤뽕 신들의
난립입니다.
로마 제국은, 종교 및 그 밖의 제도들까지 쇠퇴해 가고 있었으며,그 제국을 다시 견고하게 하려면 무엇인가 새롭고 활력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그의 제국을 재조직하도록 교세가 확장돼가던 그리스도교를 이용하기로 합니다.로마 제국 어디에나 있던 그리스도교 교회들이 그의 정치적 기둥이 됩니다.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도교는 그 무렵에는 배교한 상태에 있었고 매우 부패되어 있었음에도부흥시키고 연합시키는 세력으로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제국을 지배하려는 자신의 웅대한 계획에 이바지하게 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추진하는 데 필요한 지지 세력을 얻기 위해 배도한 그리스도교의 기반을 택하면서, 하나의 가톨릭 즉 보편적인 종교 아래 백성을 연합시키기로 결심합니다.

달리 정치와 종교의 유착입니다.
이교도 관습과 축제들에 그리스도교 명칭들이 부여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에게는 이교 사제들이 누리는 지위와 보수와 영향력 있는 권력이 부여되었습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종교적인 화합을 추구하였던 콘스탄티누스는 교리적인 진리에 근거를 두는 것이 아니라 다수가 받아들이는지의 여부에 근거하여 여하한 반대 세력을 신속히 제압합니다.

정확히는 콘스탄티누스는 죽을 때까지 태양신 숭배자입니다.
캐톨릭은 태양신 + 기독교 + 모자 신봉교 이 3가지가 쨤뽕입니다.
그러니 중세시대와 지금의 건축물에도 그 흔적이 남습니다.

그 영향으로 성모 마리아와 아기예수의 동상이 캐톨릭 성당에 있고 태양신은 성당에 태양의 상징물들이 동그란 태양 모양들이 보통의 성당들에 다 있습니다.
아마도 동그란 모양에 태양이 이글거리는 모습의 장식물들을 보셨을 겁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것 자유 평등 인권 네 그러합니다.
그래서 야소가 서로 사랑하라고 하고 사화에서 소외된 층과
병자 , 약자를 돌보라 이러한 말씀을 선포하니 가짜 보수주의자들은
이 말씀을 두고 야소는 진보주의자라는 희한한 등식을 만들어냅니다.

야소의 입장에서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고 모두가 동등한 그의 창조물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선포를 하십니다.
아무리 말장난이라 해도 야소는 진보주의자라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여성평등과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인으로서의 답입니다.

먼저 여성평등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아담의 외로움을 덜기위해서 서로 의지하라고 창조하신 것이 이브입니다.
달리 우리의 어머니가 되고 누이가 되고 생의 동반자가 됩니다.
성경 그 어디에도 여성을 차별하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동성애입니다.
분명히 세상을 창조 하실 때에 음과 양 달리 남성과 여성의 결합을 원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비유를 보시면 아십니다.
이를 두고 제 멋대로의 해석은 한마디로 신의 뜻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생각됩니다.
정상인이 못되니 불쌍하다 돌봄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드는데 인권의 차원이고 마땅히 존중받아야한다?
그것이 아니고 정신적인 치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세상의 이치에도 어긋난다는 생각입니다.

만물은 음과 양의 조화로서 이 우주가 운행 된다는 옛 성현들의 깨달음을 그들에게 상기시켜 주고 싶은 생각이고 그 순리를 역행한다면 소돔과 고모라의 종말만이 그들을 기다린다는 생각입니다.
현대의 물리학으로도 증명되는 사실입니다.
우주의 운행 원리인 인력과 중력입니다.
최소 단위인 핵과 주위를 도는 전자 달리 음과 양입니다.

아래는 퍼온 글이고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서양 중세 사회의 형성1) 프랑크왕국과 로마교회의 제휴는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그 역사적 의의는 무엇인가?프랑크족은 원주지인 라인강하류지역으로부터 팽창하는 형태로 서남쪽으로 진출하여 갈리아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그 주변지역으로 세력을 확대시켰다. 그러나 프랑크왕국이 영토의 확대와 함께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은 로마계 주민들과의 융합을 꾀하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로마캐톨릭교를 수용해야 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력을 더욱 확장하여 마침내는 서로마제국의 부흥까지도 성취함으로써 서유럽사회에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 게르만문화와 로마문화를 그리스도 신앙과 결부시켜 새로운 유럽문화를 이룩할 기반을 닦아야 했다.이 무렵 로마교회도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중대한 위협에 직면하고 있었다. 5세기 말에 서로마제국이 멸망하자 로마교회도 동로마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나 그후 차츰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풀교회와 분리하여 독자적인 지위를 얻게 되었고, 서유럽주민들은 그들의 정신적 지주를 로마 주교에게서 찾게 되어 그는 차츰 교황으로서 추앙받게 되었다.더욱이 우상숭배에 관한 교리상의 이견은 동로마제국과 로마교황과의 사이를 갈라놓게 한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북이탈리아의 롬바르드족이 팽창을 계속하자 로마교황은 몹씨 불안한 상태에 놓이게 되고, 자연 프랑크왕국의 지원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피핀이 새로이 카롤링거 왕조의 왕위에 오를 뜻을 전하자 교황은 이를 승인하고 직접 프랑크왕국으로 건너가 피핀에게 塗油式을 거행해 줌으로써 그의 왕좌를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다. 피핀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롬바르디아족을 격파하고 라벤나를 포함한 중부이탈리아의 영토를 교황에게 기증하였다.(756) 이것이 교황령의 기원이다.교황 레오 3세는 800년 크리스마스 날 로마를 방문하여 피핀의 아들 찰스대제에게 서로마제국의 제관을 씌워주었다. 이는 민족이동 이후의 유럽의 혼란이 안정되고 그리스도교회를 매개로 로마=게르만적인 중세유럽의 새로운 질서가 수립되었음을 뜻한다.2) 유럽 봉건제도 성립의 요인은 무엇이며, 그 특색은?유럽은 4세기 말엽부터 10세기말에 이르기까지 약 600년 동안 내부의 혼란과 외부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무질서 상태가 계속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無力한 자는 생명과 재산을 보존하기 위하여 武力이 있는 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각지에 武力을 가진 자들이 대두하여 이들이 치안을 유지하고 외적의 침입을 막아 사실상의 지배자가 되었다.이러한 정치적 상황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국면 또한 봉건사회의 성립을 촉진시켰다. 그것은 로마 말기부터 시작되어 민족이동 후에 가속된 현상으로 사회의 전반적인 농촌화와 자연경제로의 후퇴였다. 다시 말하면 상공업의 쇠퇴, 화폐사용의 소멸, 상공업 중심으로서의 도시의 소멸 등이 유럽을 자연경제로 돌아가게 하고 사회를 농촌화시켰으며, 이에 따라 토지가 가장 중요한 재산형태로 되었던 것이다.이러한 상황 속에서 결국 싸울 줄 아는 전사와 토지의 소유자가 사회의 지배층으로 군림하게 되고 나머지 일반인이나 무력한 자는 전사계층의 보호 밑에 그들의 토지를 경작하는 예속적인 존재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들 무사들의 지배체제로서 자라난 것이 중세 유럽의 봉건제도였다.서유럽 봉건제도의 중요한 특징은 그것이 하나의 군사제도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는 점이다. 혼란상태 하에서 무력을 가진 자들은 일종의 사적 도당(Companion)을 형성하였다. 그 도당의 우두머리를 주군(lord)이라 하고 그 종자를 봉신(vassal)이라 하였다. 이러한 주군과 봉신 사이의 종속관계를 주종제(vassalage)라 하였는데 이것이야말로 봉건제도의 핵심적 관계였다. 이 주종제도의 한 측면인 개인적 보호관계는 로마사회의 보호자와 피보호자관계인 클리엔테이지(clientage)에서 볼 수 있으며, 이보다 더 주종제도와 유사한 것은 게르만사회에서의 종사제(commitatus)였다.주종제에 입각한 봉건적 군신관계는 봉신이 주군에게 臣誓(homage)와 충성의 예식을 드린 후 주군이 그에게 授封(investure)의 절차를 베품으로써 성립되었다. 이렇게 맺은 군신관계는 쌍무적 계약관계였다. 따라서 어느 한편 이 계약사항을 어기는 경우 원칙적으로 그 관계는 파기할 수 있는 것이었다.유럽봉건제도의 또 하나의 특징은 주종제적 군사조직이 점차 국가의 공적기구로 발전해 갔다는 점이다. 국가와 사회가 혼란에 빠졌을 때 그러한 사적 국가조직이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일을 맡아서 했으며, 왕권에 통제되지 않은 지방적 조직이었으며, 따라서 그것은 지방분권이었다. 모든 봉신은 자기 봉토 안에서 영주로서의 배타적인 권한 즉, 징세, 치안, 재판의 권한과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일에 있어서 그들의 주군, 궁극적으로 국왕이라도 이에 개입할 수 없었다. 이른바 그들은 불입권(immunity)을 가지고 있었다.3) 중세 유럽에서 그리스도교의 세력은 어떻게 확대되었는가?중세사회는 봉건적인 기사계급에 의해서만 지배된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특권신분인 교회성직자계층에 의해서도 지배되고 있었다. 기사들이 정치적, 현세적 지배층이었다면, 성직자들은 종교적 정신적 지배층을 이루고 있었다. 이 두 지배계층은 상호 제휴하여 함께 성장하고 함께 지배하다가 함께 쇠퇴하여 갔던 것이다.로마카톨릭교회는 서유럽에 봉건제가 자리를 굳혀가고 있을 무렵에 프랑크 왕국과 제휴하여 서유럽일대를 그리스도교화 하여 그 정신적 권위를 확립하여 갔다. 로마교회는 이교도의 개종을 통해서 정신적, 종교적 면에서만 높아진 것은 아니었다. 각지의 유력한 교회는 국왕이나 제후, 그 밖의 신자들로부터 많은 토지를 기증 받아 대토지소유자가 되었으며,이러한 교회는 정치적 세속적으로도 제후와 마찬가지로 토지와 주민들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로마교회의 세력은 막강하여 그 주교는 서유럽 모든 교회의 수장이 되고 그 아래 대주교, 주교, 수도원장 등 성직자의 階序制(계서제, hierarchy)가 성립하였다.그러나 교회의 세속세력이 확대됨과 동시에 서유럽 중심지의 교회들은 타락의 양상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10세기초에 들어서 성직자 중에는 교회의 정화를 주장하는 자들이 나타나 수도원의 개혁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교회의 타락의 근원이 교회의 세속화에 있으며, 교회세속화의 근본원인은 성직임명권이 국왕이나 제후 등 세속지배자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11세기 말엽에 클리뉘 출신의 수도사 힐데브란트(Hildebrand)가 교황 그레고리 7세로 등위하여 교회의 개혁 차원에서 성직자의 결혼과 성직매매를 금지하고, 성직의 임명권을 세속지배자들의 손에서 빼앗아 교황이 집행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독일교회의 실제 지배권을 가지고 있던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이해관계와 정면으로 충돌하였다.이래서 황제 하인리히 4세와 교황 사이에 성직의 서임을 둘러싸고 이른바 서임권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결국 독일제후의 지지를 얻지 못한 황제가 이탈리아의 카노사(Canossa)에서 교황에게 사죄함으로써 일단락 되었다.(1077)聖俗의 싸움은 그후로도 계속되었으나 어느 편도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하였다. 1122년에 마침내 황제 하인리히 5세와 교황 칼릭스투스 2세(Calixtus 11) 사이에 타협이 이루어졌다. 이것이 보름스협약으로서, 이 헙약에 의하여 국왕은 주교임명권을 포기하지만 주교는 국왕의 봉신이 되어야만 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교권의 우월은 일시적인 현상이었고 11세기 이후 중세사회는 대체로 聖俗의 兩權이 함께 지배한 사회였다 할 것이다.4) 중세 비잔틴문화의 특색은 무엇이며, 그것은 서유럽문화와 어떠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가?서로마제국이 멸망한 뒤의 서유럽에서는 봉건제도가 성장하여 지방분권적인 체제가 성립되고, 로마교회의 세력이 신장하여 세속권과 맞서게 되었으나, 콘스탄티노풀을 수도로 한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은 황제의 권력이 그대로 유지되어 황제교황주의적인 전제정치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유스티아누스제의 재위시대인 6세기 중엽의 약 반세기(527-565) 기간은 비잔틴제국의 황금기였으나 그의 사후 약화하기 시작하여 8세기 말엽 이후 제국은 겨우 발칸반도의 남단과 소아시아만을 가진 소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수도 콘스탄티노풀은 여전히 고수되었으며, 영토는 줄었지만, 제국이 그리스계 주민들을 중심으로 구성됨으로써 통일성이나 동질성은 더욱 공고해졌다. 그것은 로마적 제국에서 그리스적, 헬레니즘적 제국으로 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향은 비잔틴 제국의 정치제도, 경제제도, 종교,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나타났는데 그 단적인 표현은 라틴어 대신 그리스어가 제국의 공용어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에서 잘 나타나 있다.더욱이 황제 레오 3세의 우상금지령을 계기로 11세기 중엽에는 동서교회가 완전히 분리되기에 이르렀으며, 이후 비잔틴제국에서는 황제교황주의를 받아들인 그리스정교의 전통이 비잔틴문화의 중요한 특질을 이루었다.종래 서유럽인들은 비잔틴제국의 역사적 의의와 비잔틴 문화의 가치를 별로 높이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정교문화권에 대한 로마카톨릭문화권의 편견에서 나온 것이다.비잔틴제국의 역사적 의의는 이슬람교도들의 침입으로부터 그리스도교 세계를 오랫동안 지켜왔으며 그것을 통해 고대문화의 유산이 보존되고 계승되어 서유럽 르네상스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잔틴 제국은 중세를 통해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고전 그리스문화와 헬레니즘문화였으며, 거기에 그리스정교가 결합되었고 거기에 동방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라틴적, 게르만적, 로마카톨릭적인 서유럽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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