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든지 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라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가복음 8장 24절-
"자신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십자가를 지라"
같은 장 23절에서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예수 자신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일로써 자신을 죽이고 3일 만에 부활하는 일이고 베드로는 예수가 죽임 받을 일을 하지 말아달라는 것은 "사람의 일"이었다. 따라서 "하늘나라의 일을 수행하려면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
그러하다면 예수를 믿는다는 교인들이 해야 할 일은 매우 분명하다. 자기를 부인하고 세상살이에서 생기는 온갓 어려움을 십자가의 고통으로 기꺼이 이겨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원하고 바라는 세상의 축복이 아니란 말씀......그중에 救援(구원)받는 것이 들어간다.
救援이란 뭐냐? 한글사전에 "인류를 죄악과 고통과 죽음에서 건져 내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했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이 갈망하는 救援이란 것은 그러한 고통과 죽음에서 자기를 살려달라고 한다. 어찌 구원파의 유병언과 그를 따르는 자들 뿐이랴 마는.
심지어 열당의 어떤 이는 이래 말한다. "도덕이나 윤리를 위하여 예수를 믿지 않는다. 그런 거라면 차라리 도덕이나 윤리책을 읽겠다"고 공언한 바가 있다. <참고: #12400번의 댓글 제2호- bibliatell[2017-08-16] "그리스도교의 목적은 영혼구원이다. 이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나는 성경책을 버리고 도덕과 윤리책을 피고 배울 것이다."> 나아가서 그는 이미 "구원받았다"고. 참고: #12547의 8번 댓글- bibliatel 2017-08-31 <..."구원은 이미 받았고요"...> 이름조차 "성경을 말한다"로 하고 있는 분의 말씀이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영혼의 구원이란 것은 뭐가 충족돼야 하는데, 그것은 자신을 버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어찌 성경책을 통달하고 교회에서 요구하는 온갓 조건들, 10의 1조 헌금과 아낌없는 주일연보, 주일예배에 반드시 참석하고, 새벽기도에 빠지지 않고, 수양회에서 대성통곡으로 회개하고, 동료교인들의 희로애락에 동참하고, 목사님 받들기를 신주 모시듯 하고......그런 것이 아니란 말씀이외다.
한가지 빠뜨린 것이 있네. 성경책을 걸레가 되도록 빨간 줄을 처놓고 보아란 듯이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사람들 치고 성경이 가르치려는 근본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들어간다. '한마디 한 구절'이 버릴 것이 없다고 우기다가 보니 2000년의 생각에서 단 한치도 달라진 것이 없다. 남어지는 다 이단이라 얘긴데. 세상은 늘 변하거늘 생각의 틀은 한 곳에 머물고, 그것마저 제대로 소화하고 실천을 않으니 무슨 소용이 있다는 건가?
세상살이가 "험하고도 괴로운 것"이 사실이다. 이런 物的(물적) 및 精神的 고통을 십자가로 달게 받는 것 만이 구원받는 지름길이요, 더불어 소위 天堂(천당)이란 데를 갈 수가 있다. "줍씨옵소서"라고, 거저 공짜로 하나도 손해보는 일 없이 손바닥이 발바닥이 되도록 빈다고 될 일이 아니란 말쌈.
나를 버려야 합네다. 이것이 바로 佛敎(불교)의 가르침이고, 예수님의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외다. 자기라는 것이 살아 꿈틀거리는 한 절대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이로 인하여 온갓 죄악을 저지르고, 그 결과로 죽음을 맞이 하는 겁니다. 자기의 본전을 헤아리고 있으면 죽도 밥, 더구나 救援이란 것은 그림의 떡이다~ 그겁니다요.
그 알량한 救源을 얻으려고 유병언이를 힘들게 따를 필요가 없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보살피고, 무시기 일에도 오래 참으며, 이익을 구하지 말아야 하고, 교만하여 윗자리에 앉지 말아야 하며,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뻐하며, 주어진 여건을 항상 감사하여야 하며, 늘 자신이 이러한 고된 십자가를 지고 살 적에 혹 미흡한 것이 없을까 염려하여 조용한 시간을 내어 기도를 해야 합니다레. 뭔가 감이 갑니까?
그래서 불교도는 끝없는 고행과 마음을 비우는 수행을 몸소 실천하고 있거늘 나이롱 신자는 '닐니리야 니나노 '케싸문서 "오직 입으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꼬 믿기만 하면' 은혜가 줄줄이 넝쿨째로 떨어진다고 해서 주야로 안녕하세요를 외쳐댄다. 그게 사랑의 표증이라면서......해야 할 십자가는 남들을 위하여 필요한 말이고, 자기에게는 전혀 해당사항이 아니라누먼. 아이구! 이 백성을 어찌 구원할 것인가? 참으로 암담하고나.
禪涅槃
"자신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십자가를 지라"
같은 장 23절에서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예수 자신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일로써 자신을 죽이고 3일 만에 부활하는 일이고 베드로는 예수가 죽임 받을 일을 하지 말아달라는 것은 "사람의 일"이었다. 따라서 "하늘나라의 일을 수행하려면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
그러하다면 예수를 믿는다는 교인들이 해야 할 일은 매우 분명하다. 자기를 부인하고 세상살이에서 생기는 온갓 어려움을 십자가의 고통으로 기꺼이 이겨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원하고 바라는 세상의 축복이 아니란 말씀......그중에 救援(구원)받는 것이 들어간다.
救援이란 뭐냐? 한글사전에 "인류를 죄악과 고통과 죽음에서 건져 내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했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이 갈망하는 救援이란 것은 그러한 고통과 죽음에서 자기를 살려달라고 한다. 어찌 구원파의 유병언과 그를 따르는 자들 뿐이랴 마는.
심지어 열당의 어떤 이는 이래 말한다. "도덕이나 윤리를 위하여 예수를 믿지 않는다. 그런 거라면 차라리 도덕이나 윤리책을 읽겠다"고 공언한 바가 있다. <참고: #12400번의 댓글 제2호- bibliatell[2017-08-16] "그리스도교의 목적은 영혼구원이다. 이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나는 성경책을 버리고 도덕과 윤리책을 피고 배울 것이다."> 나아가서 그는 이미 "구원받았다"고. 참고: #12547의 8번 댓글- bibliatel 2017-08-31 <..."구원은 이미 받았고요"...> 이름조차 "성경을 말한다"로 하고 있는 분의 말씀이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영혼의 구원이란 것은 뭐가 충족돼야 하는데, 그것은 자신을 버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어찌 성경책을 통달하고 교회에서 요구하는 온갓 조건들, 10의 1조 헌금과 아낌없는 주일연보, 주일예배에 반드시 참석하고, 새벽기도에 빠지지 않고, 수양회에서 대성통곡으로 회개하고, 동료교인들의 희로애락에 동참하고, 목사님 받들기를 신주 모시듯 하고......그런 것이 아니란 말씀이외다.
한가지 빠뜨린 것이 있네. 성경책을 걸레가 되도록 빨간 줄을 처놓고 보아란 듯이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사람들 치고 성경이 가르치려는 근본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들어간다. '한마디 한 구절'이 버릴 것이 없다고 우기다가 보니 2000년의 생각에서 단 한치도 달라진 것이 없다. 남어지는 다 이단이라 얘긴데. 세상은 늘 변하거늘 생각의 틀은 한 곳에 머물고, 그것마저 제대로 소화하고 실천을 않으니 무슨 소용이 있다는 건가?
세상살이가 "험하고도 괴로운 것"이 사실이다. 이런 物的(물적) 및 精神的 고통을 십자가로 달게 받는 것 만이 구원받는 지름길이요, 더불어 소위 天堂(천당)이란 데를 갈 수가 있다. "줍씨옵소서"라고, 거저 공짜로 하나도 손해보는 일 없이 손바닥이 발바닥이 되도록 빈다고 될 일이 아니란 말쌈.
나를 버려야 합네다. 이것이 바로 佛敎(불교)의 가르침이고, 예수님의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외다. 자기라는 것이 살아 꿈틀거리는 한 절대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이로 인하여 온갓 죄악을 저지르고, 그 결과로 죽음을 맞이 하는 겁니다. 자기의 본전을 헤아리고 있으면 죽도 밥, 더구나 救援이란 것은 그림의 떡이다~ 그겁니다요.
그 알량한 救源을 얻으려고 유병언이를 힘들게 따를 필요가 없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보살피고, 무시기 일에도 오래 참으며, 이익을 구하지 말아야 하고, 교만하여 윗자리에 앉지 말아야 하며,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뻐하며, 주어진 여건을 항상 감사하여야 하며, 늘 자신이 이러한 고된 십자가를 지고 살 적에 혹 미흡한 것이 없을까 염려하여 조용한 시간을 내어 기도를 해야 합니다레. 뭔가 감이 갑니까?
그래서 불교도는 끝없는 고행과 마음을 비우는 수행을 몸소 실천하고 있거늘 나이롱 신자는 '닐니리야 니나노 '케싸문서 "오직 입으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꼬 믿기만 하면' 은혜가 줄줄이 넝쿨째로 떨어진다고 해서 주야로 안녕하세요를 외쳐댄다. 그게 사랑의 표증이라면서......해야 할 십자가는 남들을 위하여 필요한 말이고, 자기에게는 전혀 해당사항이 아니라누먼. 아이구! 이 백성을 어찌 구원할 것인가? 참으로 암담하고나.
禪涅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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