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떨어져도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
일본 비데오를 신물이 나올 정도로 최근 두어 주 동안 보아왔다. 봐도 봐도 끝이 없는데, 한 100편을 감상했을까? 장님 劍客(검객)이 1850년대의 일본의 부패상을 보여주는 영화 및 TV의 연속물이다. 1962년에 처음 선을 보였던 옛 것을 다 봤더니, 또 新作(신작)이라며 이름을 바꿔 부르는 것들을 Youtube에서 공짜로 보여주고 있다. 그만큼 인기가 좋았다는 이야기다.
가장 최근 것이 1979이던데, 38년이 지난 거니까 거저 보여줄 만도 하지를. 그러면서 광고수입을 보자는 덕에 요즘 심심하게 지내는 처지라서 시간도 때우고, 일본말도 배우고. 또 영문의 자막으로 영어도 익히고...나로선 하여간에 재미 있는 데야. 그 제목으로 말하면, "Zatoich the Blind"
처음에는 낮에서 밤까지, 그것도 자정에 이르도록 심취했던 이유는 이러하다. 나는 일본의 검도에 관심을 가지고 그 전통적 제작과정을 여러번 유심히 관찰해왔다. 그 중에 곡선형의 칼을 katana라 부른다. 사무라이들 거의 전부가 그걸 들고 설치는데 이 non-fiction의 연출에도 이런 칼들이 무수히 등장한다.
그러나 Zatoich 만은 곧은 칼날을 휘두르는데 수십명이 대들더라도 예민한 감각으로 기똥차게 칼을 휘둘러서 모두 죽여버린다. 믿기지 않는다 마는 하여간에 그게 예술인지 창작인지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殺氣(살기)를 느껴서 칼날이 자동적으로 그 상대에게 간다는 이바구인데, 하여간에 항상 happy ending으로 끝나는 것이 맘에 들고, 더군다나 압박하고 수탈하는 '야꾸자' 놈들을 속시원히 제거하는 데야 더 할 말이 이까시오? 남어지는 군소리지비.
물론 칼질로 수많은 영혼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장면의 연속이다. 그들이 비록 당시 幕府(막부) 정치구조에서 토탄에 빠지도록 백성을 착취하는 그 몇몇의 부랑자들을 위하여 졸개들이 입에 풀칠하려고 목숨을 초개같이 알고 싸우다가 파리같이 넘어가는 꼴은 결코 좋은 광경은 아니다.
비록 가상의 영상이라도 당시의 일본의 백성이 이런 처참한 정치구도에서 신음하고 살았다는 것이 조선에서 중앙관리들이 시골백성을 욹어먹으려고 '네 죄를 네가 알렸다'고 주워패고, 정식으로 허가받고 강탈해먹던 탐관오리들의 짓들과 매우 유사한 것을 발견한다.
우리들에게는 홍길동전이 있다. 허균(許筠, 1569년~1618년)이 중국의 수호지에서 영감을 받았다 하고, 끝장에 가서는 일본의 오끼나와로 급기야 도망했다고 역사가들이 말하니 순전한 창작이 아닐지도 모른다. 당대에는 중국,한국 및 일본에 흔히 있었던 것이나 아닐지.
참고: 임진왜란이 1592년에서 1598년까지 진행됐으니 일본 무사들과 일본백성들이 어떻게 사무라이 무리들에게서 압박받고 살았는 가를 알지 않았을까? 임진왜란 직전 일본통신사의 서장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허성(許筬)은 그의 이복형이고, 후에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마테오리치'에게서 세례를 받은 첫 조선사람있다고. 실상 李應試(이응시)라고 Wikipedia의 Mateo Ricci편에 적혀있고 마는. 어떤 것이 맞는지?
이 비데오들에서 일본과 조선이 다른 점이 있다. 일본은 야꾸자라는 私組職(사조직)을 관리가 눈감아 주고 같이 해먹는데 비해서 조선의 관리는 그들 자신이 백성을 괴롭히고 착취하는 것이 다르다.
또 하나는 이들을 일망타진하는데 있어서 일개 눈먼 장님이 단번에 말끔히 청소하는 것이 시원하다. 예전에 양주동이란 분이 한국사람을 평하면서 "은근과 끈기"가 있어서 좋았다고 하더군. 그래서 그런지 안창호선생이 L.A.에서 상투튼 한인들이 멱살을 틀어쥐고 하루 종일(?) 밀었다 놨다 하는 푸경을 보고 한탄을 했다고.
그 분은 어째서 이국땅에서 동포끼리 늘 싸워야 하는가를 않좋게 본 것이겠지만 일본사람들의 모습은 매우 '앗싸리'하다는 것이다. 수틀리면 한 칼에 죽이고 살리고 하면서 당면의 문제를 그 때 그 자리에서 피로써 결말을 본다. I like that.
또 한가지는 "잎이 떨어져도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주인공이 들고 다니는 대나무 물통에 (漢字)한자로 그렇게 써있었다. 아시겠지만 일본말은 漢文이 고상하게 쓰이고 중국의 고전을 매우 숭상하는지라 이런 老子的 혹은 불교적인 문자가 큰 의미를 싣고 있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은 어떠냐? 문대통이 뭘 하고자 하든 그 분이 예전에 어떤 정치노선을 밟았다고 떠들어 댄다. 국내에서 국외에서나......한국의 낙엽이 지는 것이 어찌 門(문)이 열려서 떨어진다는 건지? 계절이 바뀌어서 가을이 되면 나무들이 겨울차비를 하려고 제 몸의 일부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럴 적에 바람이 불어서 落下(낙하)한다고 바람을 탓한다면 이 사람이 자연의 理致(이치)를 몰라서 그러는가? 한국에서 욕하는 댓글은 많아도 문대통을 두둔하는 글은 전무한데 그의 인기는 항상 70%를 넘기고 있다고 의아해하는 분이 계시다. 그럼 댓글이 바람이라면 통계는 계절이겠네. 도무지 무슨 소리들을 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군 그랴. 내 참......
禪涅槃
가장 최근 것이 1979이던데, 38년이 지난 거니까 거저 보여줄 만도 하지를. 그러면서 광고수입을 보자는 덕에 요즘 심심하게 지내는 처지라서 시간도 때우고, 일본말도 배우고. 또 영문의 자막으로 영어도 익히고...나로선 하여간에 재미 있는 데야. 그 제목으로 말하면, "Zatoich the Blind"
처음에는 낮에서 밤까지, 그것도 자정에 이르도록 심취했던 이유는 이러하다. 나는 일본의 검도에 관심을 가지고 그 전통적 제작과정을 여러번 유심히 관찰해왔다. 그 중에 곡선형의 칼을 katana라 부른다. 사무라이들 거의 전부가 그걸 들고 설치는데 이 non-fiction의 연출에도 이런 칼들이 무수히 등장한다.
그러나 Zatoich 만은 곧은 칼날을 휘두르는데 수십명이 대들더라도 예민한 감각으로 기똥차게 칼을 휘둘러서 모두 죽여버린다. 믿기지 않는다 마는 하여간에 그게 예술인지 창작인지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殺氣(살기)를 느껴서 칼날이 자동적으로 그 상대에게 간다는 이바구인데, 하여간에 항상 happy ending으로 끝나는 것이 맘에 들고, 더군다나 압박하고 수탈하는 '야꾸자' 놈들을 속시원히 제거하는 데야 더 할 말이 이까시오? 남어지는 군소리지비.
물론 칼질로 수많은 영혼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장면의 연속이다. 그들이 비록 당시 幕府(막부) 정치구조에서 토탄에 빠지도록 백성을 착취하는 그 몇몇의 부랑자들을 위하여 졸개들이 입에 풀칠하려고 목숨을 초개같이 알고 싸우다가 파리같이 넘어가는 꼴은 결코 좋은 광경은 아니다.
비록 가상의 영상이라도 당시의 일본의 백성이 이런 처참한 정치구도에서 신음하고 살았다는 것이 조선에서 중앙관리들이 시골백성을 욹어먹으려고 '네 죄를 네가 알렸다'고 주워패고, 정식으로 허가받고 강탈해먹던 탐관오리들의 짓들과 매우 유사한 것을 발견한다.
우리들에게는 홍길동전이 있다. 허균(許筠, 1569년~1618년)이 중국의 수호지에서 영감을 받았다 하고, 끝장에 가서는 일본의 오끼나와로 급기야 도망했다고 역사가들이 말하니 순전한 창작이 아닐지도 모른다. 당대에는 중국,한국 및 일본에 흔히 있었던 것이나 아닐지.
참고: 임진왜란이 1592년에서 1598년까지 진행됐으니 일본 무사들과 일본백성들이 어떻게 사무라이 무리들에게서 압박받고 살았는 가를 알지 않았을까? 임진왜란 직전 일본통신사의 서장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허성(許筬)은 그의 이복형이고, 후에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마테오리치'에게서 세례를 받은 첫 조선사람있다고. 실상 李應試(이응시)라고 Wikipedia의 Mateo Ricci편에 적혀있고 마는. 어떤 것이 맞는지?
이 비데오들에서 일본과 조선이 다른 점이 있다. 일본은 야꾸자라는 私組職(사조직)을 관리가 눈감아 주고 같이 해먹는데 비해서 조선의 관리는 그들 자신이 백성을 괴롭히고 착취하는 것이 다르다.
또 하나는 이들을 일망타진하는데 있어서 일개 눈먼 장님이 단번에 말끔히 청소하는 것이 시원하다. 예전에 양주동이란 분이 한국사람을 평하면서 "은근과 끈기"가 있어서 좋았다고 하더군. 그래서 그런지 안창호선생이 L.A.에서 상투튼 한인들이 멱살을 틀어쥐고 하루 종일(?) 밀었다 놨다 하는 푸경을 보고 한탄을 했다고.
그 분은 어째서 이국땅에서 동포끼리 늘 싸워야 하는가를 않좋게 본 것이겠지만 일본사람들의 모습은 매우 '앗싸리'하다는 것이다. 수틀리면 한 칼에 죽이고 살리고 하면서 당면의 문제를 그 때 그 자리에서 피로써 결말을 본다. I like that.
또 한가지는 "잎이 떨어져도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주인공이 들고 다니는 대나무 물통에 (漢字)한자로 그렇게 써있었다. 아시겠지만 일본말은 漢文이 고상하게 쓰이고 중국의 고전을 매우 숭상하는지라 이런 老子的 혹은 불교적인 문자가 큰 의미를 싣고 있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은 어떠냐? 문대통이 뭘 하고자 하든 그 분이 예전에 어떤 정치노선을 밟았다고 떠들어 댄다. 국내에서 국외에서나......한국의 낙엽이 지는 것이 어찌 門(문)이 열려서 떨어진다는 건지? 계절이 바뀌어서 가을이 되면 나무들이 겨울차비를 하려고 제 몸의 일부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럴 적에 바람이 불어서 落下(낙하)한다고 바람을 탓한다면 이 사람이 자연의 理致(이치)를 몰라서 그러는가? 한국에서 욕하는 댓글은 많아도 문대통을 두둔하는 글은 전무한데 그의 인기는 항상 70%를 넘기고 있다고 의아해하는 분이 계시다. 그럼 댓글이 바람이라면 통계는 계절이겠네. 도무지 무슨 소리들을 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군 그랴. 내 참......
禪涅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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