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독교 교회말고 예수를 따른다
Paul2의 말씀을 이해합니다. 내 나름으로 풀이하자면 기독교의 터전이 곧 교회로 잘못 인식되었다. 단지 예수를 따르는 사람의 마음 속에,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몇 사람이 모인 곳에 내가 있다고 성경에 쓰여있다고 하셨오.
내가 몇일 전에 한 말, 즉 "기독교는 싫어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읍니다. 기독교는 사도바울이 시작한 새로운 종교형태이고, 그것을 로마의 위정자와 제사장들이 교회라는 집단으로 바꿔서 믿는 자들을 속박하는 단체를 지금까지 운영해왔고, 지금도 그래 하고 있다고 나는 봅니다.
소위 신학이란 것이 이런 체제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어요. 가장 배타적인 형태로 서양에서는 아예 그 설 자리를 잃었고, 한국 만이 무속신앙으로 둔갑된 것이 우매한 백성들이 여호와를 구주로 받들고 있지요. 나는 결코 이러한 무당의 굿거리 판에서 귀신을 섬기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것이 교회이건 성당이건.......나무를 보려면 열매를 보라고. 대형교회가 바로 그 무당의 열매이고 온갓 범죄를 목사들이 저지르고 있오. 그게 어찌 바른 교회 및 바른 신학이 가르치는 예수의 기쁨 소식입니까? 정신이 바로 박힌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요.
내가 왜 이런 소리를 하는가?
그 첫째 이유는 Borg, Marcus J.라는 신교의 신학자가 쓴 "Meeting Jesus Again for the First Time"이란 책을 두어번 읽고 나서 생각을 달리했던 결과입네다. 부제로 "The Historical Jesus and the Heart of Contemporary Faith"라고. 해석하면 '역사적 예수와 현대 믿음의 심장'이라 할까요?
이 사람은 예수가 당대에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성직자들 및 로마정권에 부역하는 '사도개'그룹(Sadducees)과 '팔리새인(Phalisee)들이 聖潔主義(성결주의)를 내세워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들을 착취하는 현실에 반발하면서 그 기득세력에 과감히 도전하는 정신적 혁명을 시도했다고 Marcus는 주장하고 있다.
실제의 한 예로써 예루살렘 성전 앞에서 돈을 바꾸는 환전상들의 좌판을 뒤집어 엎었던 사례가 그 하나다. 당시에는 제사장들이 정치도 겸하고 있어서 유태인들이 추수한 것이나 염소나 양, 심지어 비둘기까지 제사상에 헌납하였다. 그것도 험이 없는 최상의 것으로......이것을 뒷문으로 팔아서 자기들 금고에 넣는, 마치 오늘 날의 중앙은행의 역활을 했었다.
이러한 착취의 현실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정신적인 하늘나라로 도피시키는 방법을 이들에게 깨닯은 자로서 설파하였던 바다. 따라서 AD312년 경에 '콘스탄틴 大帝가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AD380년에 Theodosius I세 황제가 국교로 선포되었던 바, 西로마가 AD486년에 망했고, 東로마는 AD1453년에 Bizantine 로마로 기독교 국가로서 종말을 고했다.
그 공백을 기독교의 교회가 메꾸면서 중세기의 암흑시대로 들어갔다. 암흑이란 오직 기독교 교리 이외의 어떤 생각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엎치락 둣치락 끝에 남은 푸리탄의 흔적이 미국에서 꽃을 피웠고, 그들의 선교사들이 한국땅에 교회라는 믿음의 전당을 세워나가다가 지금은 포화상태에 이른다.
그 저변에는 한국의 토속신앙이 접착되어서 한국의 무지한 사람들이 기독교라는 미신을 믿고 있다. 이는 마치 불교가 중국에서 老-蔣사상으로 둔갑된 같은 행보를 걷고 있는 것과 같다.
내가 예수를 좋아하는 것은 그의 가르침을 좋아하는 것이고, 이것이 '토마스經'(The Gospel of Thomas)과 같은 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나와 예수의 중간에 정신적 중매자로써 교회목사가 들어서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禪涅槃
내가 몇일 전에 한 말, 즉 "기독교는 싫어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읍니다. 기독교는 사도바울이 시작한 새로운 종교형태이고, 그것을 로마의 위정자와 제사장들이 교회라는 집단으로 바꿔서 믿는 자들을 속박하는 단체를 지금까지 운영해왔고, 지금도 그래 하고 있다고 나는 봅니다.
소위 신학이란 것이 이런 체제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어요. 가장 배타적인 형태로 서양에서는 아예 그 설 자리를 잃었고, 한국 만이 무속신앙으로 둔갑된 것이 우매한 백성들이 여호와를 구주로 받들고 있지요. 나는 결코 이러한 무당의 굿거리 판에서 귀신을 섬기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것이 교회이건 성당이건.......나무를 보려면 열매를 보라고. 대형교회가 바로 그 무당의 열매이고 온갓 범죄를 목사들이 저지르고 있오. 그게 어찌 바른 교회 및 바른 신학이 가르치는 예수의 기쁨 소식입니까? 정신이 바로 박힌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요.
내가 왜 이런 소리를 하는가?
그 첫째 이유는 Borg, Marcus J.라는 신교의 신학자가 쓴 "Meeting Jesus Again for the First Time"이란 책을 두어번 읽고 나서 생각을 달리했던 결과입네다. 부제로 "The Historical Jesus and the Heart of Contemporary Faith"라고. 해석하면 '역사적 예수와 현대 믿음의 심장'이라 할까요?
이 사람은 예수가 당대에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성직자들 및 로마정권에 부역하는 '사도개'그룹(Sadducees)과 '팔리새인(Phalisee)들이 聖潔主義(성결주의)를 내세워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들을 착취하는 현실에 반발하면서 그 기득세력에 과감히 도전하는 정신적 혁명을 시도했다고 Marcus는 주장하고 있다.
실제의 한 예로써 예루살렘 성전 앞에서 돈을 바꾸는 환전상들의 좌판을 뒤집어 엎었던 사례가 그 하나다. 당시에는 제사장들이 정치도 겸하고 있어서 유태인들이 추수한 것이나 염소나 양, 심지어 비둘기까지 제사상에 헌납하였다. 그것도 험이 없는 최상의 것으로......이것을 뒷문으로 팔아서 자기들 금고에 넣는, 마치 오늘 날의 중앙은행의 역활을 했었다.
이러한 착취의 현실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정신적인 하늘나라로 도피시키는 방법을 이들에게 깨닯은 자로서 설파하였던 바다. 따라서 AD312년 경에 '콘스탄틴 大帝가 기독교 신자가 되었고, AD380년에 Theodosius I세 황제가 국교로 선포되었던 바, 西로마가 AD486년에 망했고, 東로마는 AD1453년에 Bizantine 로마로 기독교 국가로서 종말을 고했다.
그 공백을 기독교의 교회가 메꾸면서 중세기의 암흑시대로 들어갔다. 암흑이란 오직 기독교 교리 이외의 어떤 생각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후 엎치락 둣치락 끝에 남은 푸리탄의 흔적이 미국에서 꽃을 피웠고, 그들의 선교사들이 한국땅에 교회라는 믿음의 전당을 세워나가다가 지금은 포화상태에 이른다.
그 저변에는 한국의 토속신앙이 접착되어서 한국의 무지한 사람들이 기독교라는 미신을 믿고 있다. 이는 마치 불교가 중국에서 老-蔣사상으로 둔갑된 같은 행보를 걷고 있는 것과 같다.
내가 예수를 좋아하는 것은 그의 가르침을 좋아하는 것이고, 이것이 '토마스經'(The Gospel of Thomas)과 같은 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나와 예수의 중간에 정신적 중매자로써 교회목사가 들어서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禪涅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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