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평님에게 질문.
이평님에게 한마디 질문하였다.
그럼 뉴욕으로 이민 와서 정말 보람 있는 일을 하였다고 자부하는 일은 무엇이 있습니까?
이평님 왈: "미국 특허를 받아서 박사라는 말을 들을 때와 미주 독도운동의 첫 주자로서 역할을 인정 받았을때"라 할수있다.
그것 때문에 많은 흑사병자(질투자)들이 들러붙어 유치하며 비열한 짓거리 해대고 있다 는데 왜 그리 생각합니까?
이웃이 논사면 배 아프다는 말이 있다. 말이 쉬워 특허 받는 일이지 그게 보통일이 아니다. 아이디어가 간단하다 해도 일단 비용이 한건 당 1만 불정도는 각오해야 하며 아이디어 산출에서 특허 받는 기간 까지 대략 3년 정도이며 그 기간 동안 초보 발명은 피를 말린다.
그 짓에 장장 30년 정도 시달렸으나 가치 있는 상품을 창작 해 내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말하자면 대게의 개인 발명자들은 특허증을 획득하였으나 샘플형태의 Prototype은 만들지 못하고 좌절하는 반면 나의 발명품들은 모두 직접 만들었다는 것에 더 많은 자부심을 가진다고 보면 된다.
특허는 그러하고,
독도 관련도 그렇다.
2005년 시네마현의 독도조례 사건에 의분하여 이평이 '독도는 한국땅'사진 디자인을 미주 최초로 모든 시간 비용들을 자비로 홍보물자 제작하여 유포 한 것이 미주 독도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 이평이 최초로 치고 나오긴 하였으나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 할지 몰라 시행착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며 네 친구가 발명자 기질이 있어서 그런지 모든 일을 근원적으로 해결하려는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한동안 핵심적 안건을 산출하지 못해 많은 고뇌의 시간들도 있었다.
그러다 2009년 아마도 9월경 '한국해'관련 글을 접하고 나서는 이 길로 가야 하겠다는 방향을 잡게 되었고 바로 한국해 로고 디자인 작업에 들어갔다.
당연히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으나 결국 자음'ㅎ'를 중심으로 그러한 디자인을 정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유투비에 올라져 있는 관련 동영상은 이평이 직접 항의 시위에 참여하였고 현장의 자료들을 조합하여 평화선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았으니 이 작품은 그야말로 눈물겨운 창작품인 고로 그 어느 누가 제작한 화려한 관련 동영상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의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또한 생명의 물줄기를 내려 보내는 배경으로 "평화존중"은 커다란 항의 적 호소가 담겨있어 운동의 기반이 되었고 '인간 중심'철학적 가치를 돋보이게 한 창작품이므로 이에 대한 논란도 거듭되는 가운데 이평의 홍보 전략은 자연히 전 세계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어찌 보람된 일이 아니며 영광된 일이 아니겠는가!
미국에서 이룩한 이러한 창작품들이 가장 자랑스럽고 영광일 수밖에 없으며, 이외 통칭 권익신장 관련 이웃돕기 등 모두 합하면 약 50여회 정도이나, 그러한 창작품을 제작 해내면 작자의 직위는 창작자에 의지에 따라 결정해도 인정을 해줘야 하는 것이 현대를 사는 깨어있는 문화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 여러분, 이러한 이평을 그토록 비열하게 모함하며 짓밟아서야 되겠습니까?
그럼 뉴욕으로 이민 와서 정말 보람 있는 일을 하였다고 자부하는 일은 무엇이 있습니까?
이평님 왈: "미국 특허를 받아서 박사라는 말을 들을 때와 미주 독도운동의 첫 주자로서 역할을 인정 받았을때"라 할수있다.
그것 때문에 많은 흑사병자(질투자)들이 들러붙어 유치하며 비열한 짓거리 해대고 있다 는데 왜 그리 생각합니까?
이웃이 논사면 배 아프다는 말이 있다. 말이 쉬워 특허 받는 일이지 그게 보통일이 아니다. 아이디어가 간단하다 해도 일단 비용이 한건 당 1만 불정도는 각오해야 하며 아이디어 산출에서 특허 받는 기간 까지 대략 3년 정도이며 그 기간 동안 초보 발명은 피를 말린다.
그 짓에 장장 30년 정도 시달렸으나 가치 있는 상품을 창작 해 내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말하자면 대게의 개인 발명자들은 특허증을 획득하였으나 샘플형태의 Prototype은 만들지 못하고 좌절하는 반면 나의 발명품들은 모두 직접 만들었다는 것에 더 많은 자부심을 가진다고 보면 된다.
특허는 그러하고,
독도 관련도 그렇다.
2005년 시네마현의 독도조례 사건에 의분하여 이평이 '독도는 한국땅'사진 디자인을 미주 최초로 모든 시간 비용들을 자비로 홍보물자 제작하여 유포 한 것이 미주 독도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 이평이 최초로 치고 나오긴 하였으나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 할지 몰라 시행착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며 네 친구가 발명자 기질이 있어서 그런지 모든 일을 근원적으로 해결하려는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한동안 핵심적 안건을 산출하지 못해 많은 고뇌의 시간들도 있었다.
그러다 2009년 아마도 9월경 '한국해'관련 글을 접하고 나서는 이 길로 가야 하겠다는 방향을 잡게 되었고 바로 한국해 로고 디자인 작업에 들어갔다.
당연히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으나 결국 자음'ㅎ'를 중심으로 그러한 디자인을 정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유투비에 올라져 있는 관련 동영상은 이평이 직접 항의 시위에 참여하였고 현장의 자료들을 조합하여 평화선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았으니 이 작품은 그야말로 눈물겨운 창작품인 고로 그 어느 누가 제작한 화려한 관련 동영상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의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또한 생명의 물줄기를 내려 보내는 배경으로 "평화존중"은 커다란 항의 적 호소가 담겨있어 운동의 기반이 되었고 '인간 중심'철학적 가치를 돋보이게 한 창작품이므로 이에 대한 논란도 거듭되는 가운데 이평의 홍보 전략은 자연히 전 세계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어찌 보람된 일이 아니며 영광된 일이 아니겠는가!
미국에서 이룩한 이러한 창작품들이 가장 자랑스럽고 영광일 수밖에 없으며, 이외 통칭 권익신장 관련 이웃돕기 등 모두 합하면 약 50여회 정도이나, 그러한 창작품을 제작 해내면 작자의 직위는 창작자에 의지에 따라 결정해도 인정을 해줘야 하는 것이 현대를 사는 깨어있는 문화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 여러분, 이러한 이평을 그토록 비열하게 모함하며 짓밟아서야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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