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까기 마사오(개정희)의 실체
나는 개정희가 단군이래 최고의 지도자이고 한국을 경제 대국으로 이끈 민족지도자로 교육받고 세뇌당했었다.
그러나..그가 기회주의의 화신임을 알게 되는 순간 인간 쓰레기로..
일제 강제징용자의 밀린임금과 이자 포기각서에 싸인하는 댓가로 일본 전경련으로 부터 6600만불 뒤로 혼자 꿀꺽한 사기꾼임음 아는 순간 개쓰레기로...
광복군 출신으로 항시 다까기에게 열등감을 주었던 장준하 선생 살인교사를 내린것을 확인하는 순간 천인공노할 살인범으로....
일본관동군에서 남로당 빨갱이 군사총책으로 다시 국방군으로 세번 말을
갈아타며.. 끝까지 살아남아 부귀영화를 누리다 미 CIA 요원 김재규의 손에 처단당한.... 기회주의자들의 최고 우상이 되버린...친일, 종미 반민족 쓰레기들의
우상.. 수구 꼴통의 아버지..그 쓰레기의 실체를 파헤쳐본다.
남로당 빨갱이 군사총책으로 드러나자 동료 32명의 명단을 밀고.. 전원 사형시키고 자신은 그 대신 살아남은.. 배신의 화신... 다까기 마사오..그 차가운 냉혈 부정부패 독재 살인범을... 우상화하는 대한민국... 그걸 또 충실히 믿는..종미,친일 수구 꼴통들... 후세의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 .다까기를 광화문에서 화형 시키는 것을 건의한다. 수많은 청년들이 독립을 위해 만주에서 쓰려져 갈때.. 다까기는 일본을 위해서 목숨바칠테니 제발 뽑아달라고 혈서까지 썼다. 이런 개 쓰발....다까기는 그저 기회주의 세포가 온몸에 흐르는..부귀영화와 독재에 미친 반민족 개 쓰레기였을뿐..그 이상도 아니다..쿠데타후 한국경제를 부패로 돈만 챙겨먹으며 말아먹자 미국이 이러다 한국이 공산화되는것을 막기 위해 짜준 경제 계획과 엄청난 물량공세에 그나마 한국은 살아남기 시작한것을..나도 이점에선 미국에 호의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도움떄문이었지..경제에 무식했던 다까기 떄문이 아니란 말이다..한국경제를 박정희의 기적으로 포장하는거..더 이상 꼴사나와숴 못보겠다.그저 미국이 짜준 계획을 충실히 따랐을뿐.. 안따르면 제거하겠다는 미국의 협박에 개정희는 시달리다..결국..미국의 손에 처단당한다. 기회주의의 화신도.. 말년에..기회주의 세포가 좀 늙어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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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까기 마사오(개정희)가 한일협약당시 일본요정에 들어가 일본 관료들을 형님이라고 칭하고 술취해 일본 군가를 부르고
일본 관동군에서 사단장을 한 사람을 만나자 마자 90도로 절을 해서 대동한
한국 외교관까지 당황시키며 국제 개 망신을 시킨..... 뼈속까지.. 친일 쓰레기였던 독재자..다까기..
그 신문에 기사 까지 났던 ...다까기 마사오 혈서 사건의 실체를 파헤친다.
만주신문 기사 번역문 (다까기 마사오)
혈서(血書) 군관지원 - 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부터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고 피로 쓴 반지(半紙)가 봉입(封入)된 등기로 송부되어 관계자(係員)를 깊이 감격시켰다. 동봉된 편지에는
(전략)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하지만 무리가 있더라도 아무쪼록 국군(만주국군-편집자 주)에 채용시켜 주실 수 없겠습니까.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중략)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 : 편집자 주)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후략)
라고 펜으로 쓴 달필로 보이는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23세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
(『만주신문』 1939.3.31. 7면)
그러나..그가 기회주의의 화신임을 알게 되는 순간 인간 쓰레기로..
일제 강제징용자의 밀린임금과 이자 포기각서에 싸인하는 댓가로 일본 전경련으로 부터 6600만불 뒤로 혼자 꿀꺽한 사기꾼임음 아는 순간 개쓰레기로...
광복군 출신으로 항시 다까기에게 열등감을 주었던 장준하 선생 살인교사를 내린것을 확인하는 순간 천인공노할 살인범으로....
일본관동군에서 남로당 빨갱이 군사총책으로 다시 국방군으로 세번 말을
갈아타며.. 끝까지 살아남아 부귀영화를 누리다 미 CIA 요원 김재규의 손에 처단당한.... 기회주의자들의 최고 우상이 되버린...친일, 종미 반민족 쓰레기들의
우상.. 수구 꼴통의 아버지..그 쓰레기의 실체를 파헤쳐본다.
남로당 빨갱이 군사총책으로 드러나자 동료 32명의 명단을 밀고.. 전원 사형시키고 자신은 그 대신 살아남은.. 배신의 화신... 다까기 마사오..그 차가운 냉혈 부정부패 독재 살인범을... 우상화하는 대한민국... 그걸 또 충실히 믿는..종미,친일 수구 꼴통들... 후세의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 .다까기를 광화문에서 화형 시키는 것을 건의한다. 수많은 청년들이 독립을 위해 만주에서 쓰려져 갈때.. 다까기는 일본을 위해서 목숨바칠테니 제발 뽑아달라고 혈서까지 썼다. 이런 개 쓰발....다까기는 그저 기회주의 세포가 온몸에 흐르는..부귀영화와 독재에 미친 반민족 개 쓰레기였을뿐..그 이상도 아니다..쿠데타후 한국경제를 부패로 돈만 챙겨먹으며 말아먹자 미국이 이러다 한국이 공산화되는것을 막기 위해 짜준 경제 계획과 엄청난 물량공세에 그나마 한국은 살아남기 시작한것을..나도 이점에선 미국에 호의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도움떄문이었지..경제에 무식했던 다까기 떄문이 아니란 말이다..한국경제를 박정희의 기적으로 포장하는거..더 이상 꼴사나와숴 못보겠다.그저 미국이 짜준 계획을 충실히 따랐을뿐.. 안따르면 제거하겠다는 미국의 협박에 개정희는 시달리다..결국..미국의 손에 처단당한다. 기회주의의 화신도.. 말년에..기회주의 세포가 좀 늙어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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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까기 마사오(개정희)가 한일협약당시 일본요정에 들어가 일본 관료들을 형님이라고 칭하고 술취해 일본 군가를 부르고
일본 관동군에서 사단장을 한 사람을 만나자 마자 90도로 절을 해서 대동한
한국 외교관까지 당황시키며 국제 개 망신을 시킨..... 뼈속까지.. 친일 쓰레기였던 독재자..다까기..
그 신문에 기사 까지 났던 ...다까기 마사오 혈서 사건의 실체를 파헤친다.
만주신문 기사 번역문 (다까기 마사오)
혈서(血書) 군관지원 - 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부터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고 피로 쓴 반지(半紙)가 봉입(封入)된 등기로 송부되어 관계자(係員)를 깊이 감격시켰다. 동봉된 편지에는
(전략)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하지만 무리가 있더라도 아무쪼록 국군(만주국군-편집자 주)에 채용시켜 주실 수 없겠습니까.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중략)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 : 편집자 주)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후략)
라고 펜으로 쓴 달필로 보이는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23세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
(『만주신문』 1939.3.31.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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