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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loads/images/user/76553095aec2eabf34889df26cdb4f00.jpg coyotebush 열린마당톡 2019.04.12 신고
[55회] 5천명 사상자 낸 베트남 파병 강행
베트남에 많은 군대를 파병한 미국은 날이 갈수록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영국 등 동맹국들도 군대파병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박정희는 1961년 케네디와 회담에서 “한국정부는 월남(베트남)에 파병할 용의가 있다”고 제의한 바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사돈이 먼저 한 격이 되었다. 고립에 몰린 미국은 박정희에게 ‘약속’을 요구했다.

한민족은 유사 이래 한 번도 타국을 침략한 적이 없었다.

숱한 외침을 당하고도 결코 타국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았다. 고려 때 몽골(元)의 일본 정벌에 동참한 일이 있었지만, 강제 동원된 비자발성이었다. 해서 한민족은 ‘평화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왔다. 그런데 박정희 정권에서 이 전통은 깨졌고, 국제사회로부터 ‘미국의 용병’이라는 지탄을 받게 되었다.

박정희는 야당과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요청으로 베트남전에 파병, 참전했다. 베트남 참전은 한국 역사상 초유의 해외전쟁의 참전이라 할 수 있다.

박정희 정부는 1964년 7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베트남 공화국 지원을 위한 국군부대의 해외파병 동의안’을 제출하여 통과시켰다. 의료지원 등 비전투부대 파병안이다. 그러나 전투부대 파병안은 1965년 8월 13일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공화당 단독으로 변칙처리하였다.

한국군이 처음으로 베트남전에 투입된 것은 1963년 9월 11일, 남부 베트남 정부로부터 지원요청을 받은 직후의 일이었다. 이때는 불과 130명 규모의 의무부대와 10명의 태권도 교관이 전부였다. 그 후 다시 지원요청을 받아 1964년 2월 14일 2천 명 규모의 비전투부대인 공병대 중심의 병력이 파견되었다. 이때만 해도 국내외적으로 크게 말썽이 없었다.

2천 명 규모의 국군병력을 파병하기 위해 정부에서 제출한 동의안은 국회에서 무난히 통과되었다. 그러나 1965년 6월 26일 베트남과 미국정부의 요청을 받고 정부가 전투부대 파병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일반 국민과 학생들 사이에도 반대의견이 적지 않았고, 국회 내에서는 여야의 입장을 초월해 반대의견이 쏟아졌다.

박정희는 파병의 명분으로 6ㆍ25 때 자유우방의 도움으로 공산침략을 격퇴시킨 우리가 한 우방국이 공산침략에 희생되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리고 6ㆍ25 이래의 혈맹인 미국을 도와 베트남전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 우리의 도리라고 선전했다.

박정희는 책략적인 리더쉽을 갖고 있었다.

1965년 7월 2일 심복인 여당소속 차지철을 청와대로 불렀다. 대미 교섭을 위해 반대의견을 제시하라는 주문이었다. 실제로 차지철은 반대발언을 계속하고, 이것이 소신을 갖게 돼 지나칠 정도가 되자 박정희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박정희는 여당 의원의 반대론을 등에 업고 미국과 교섭을 벌여 유리한 협상을 한 것이다.

반세기 후 박근혜는 실효성은 물론 중국의 엄청난 보복이 예상되는 사드를 한국으로 들여오면서 반대하는 국민과 야당을 ‘종북’으로 비판할 뿐 박정희식의 실익도 챙기지 못한 ‘맹탕’이란 비판이 따랐다.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에는 경제적 측면에서 한ㆍ미ㆍ일 밀월 3각 협력체제가 선전되었고, 군사적 측면에서 주한미군을 빼내어 베트남에 보내겠다는 미국의 위협도 따랐다.

1964년 9월 소규모 비전투 부대로부터 시작된 한국의 베트남전 개입은 1973년 3월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8년 5개월 동안 지속되었는데, 공식적으로 5차례에 걸쳐 군대를 파견했다. 한국은 이 기간 베트남에 평균 5만 명 수준의 병력을 유지했으며 교대근무를 통해 베트남에 파견된 한국군대의 총수는 약 32만 명에 달했다.

베트남에 파병된 주요부대는 1965년에는 미국 측의 추가파병 요청과 그에 따른 보상조치인 이른바 <브라운 각서>를 조건으로 2만 명 규모의 백마부대가 추가 파병되었다.

베트남에 추가파병은 조약상의 의무에서가 아니라, 미국 측이 파병의 대가로 한국군의 전력증강과 경제개발에 소요되는 차관공여를 약속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었다.

미국은 한국군의 베트남 추가파병에 대한 보상조치로 14개항의 이른바 <브라운 각서>를 마련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① 추가파병에 따른 비용은 미국정부가 부담한다 ② 한국군 육군 17개 사단과 해병대 1개사단의 장비를 현대화한다 ③ 베트남 주둔 한국군을 위한 물자 용역은 가급적 한국에서 조달한다 ④ 베트남에서 실시되는 각종 건설ㆍ구호 등 제반사업에 한국인 업자를 참여시킨다 ⑤ 미국은 한국에 추가로 AID 차관과 군사원조를 제공하고, 베트남과 동남아시아로의 수출증대를 가능케 할 차관을 추가로 대여한다 ⑥ 한국이 탄약생산을 늘리는 데 필요한 자재를 제공한다는 것 등이다.

한국군은 베트남전에서 북베트남군 4만 1천여 명을 사살하고 7,438㎢를 ‘평정’했으며, 참전기간 동안 약 5천여 명의 사상자를 낸 것으로 집계되었다.

베트남전 기간 동안 노동력 진출은 1965년 1백 명 미만에서 1966년에는 무려 1만 명이 넘는 급격한 증가를 보여주었다. 1963년부터 1970년 6월 말까지 해외취업 실적 43,508명 가운데 베트남 취업이 24,294명으로, 선원을 제외한 해외취업자의 70%를 차지하고 있어 많은 고용증대를 가져왔다고 발표되었다.

한국은 베트남 전쟁기간 동안 이른바 ‘베트남 특수’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에 따라 얻어진 전시특수였다. 5만 5천 명 규모의 전투요원과 노무자, 기술자 등 민간인 1만 6천여 명이 베트남에 파견되고, 이에 따라 군납, 파월장병 송금, 파월기술자 송금 등으로 1966년에 6,949만 달러, 1966~1970년까지의 총액 6억 2,502만 달러 규모의 수익을 올렸다고 했다.

박정희 정부는 베트남 참전의 결과 총액으로 약 10억 달러의 외화를 획득하여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수행에 필요한 외자를 충당하여 연평균 12%의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국내적으로 새로운 독점자본 형성과 신흥재벌의 출현을 가져왔다. 한진그룹의 경우 1966~67년 1년간 베트남에서 71억 원을 벌여 ‘월남상사’라는 호칭을 들었다.

그러나 미군 봉급의 3분의 1 수준인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은 순전히 미국 측의 이해에 맞추어 추진되었고, 5천여 명의 무고한 청년의 희생을 가져왔으며, 공산국가와 제3세계, 심지어 다수의 친서방국가들로부터 미국의 ‘용병’이라는 비난을 받아왔을 뿐만 아니라 비동맹권 내에서 한국의 국제적 지위의 약화를 가져왔다.

전후에 드러난 후유증 또한 만만치 않았다. 파월장병ㆍ취업자들에 의한 현지 2세 문제와 고엽제 등으로 본인들은 물론 후세들에게까지 유전된 질환 등은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또한 베트남 일부 지역에는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들의 잔혹한 학살을 기록한 석비가 남아 있어, 아픈 상처를 보여주고 있다.

박정희는 미국이 원하는 한일국교정상화에 이어 모든 나라가 기피하는 전투사단까지 베트남에 파병하면서 미국정부로부터 극진한 환대를 받고 정권을 안정시켜 나갔다. 1965년 5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수행했던 외무장관 이동원의 기록이다.

10만 명을 헤아리는 환영인파 사이로 박 대통령은 리무진 방탄차를 타고 악대까지 앞세운 채 2마일의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한마디로 최고의 예우였다. 또한 뉴욕시 5번가의 번화가에서 벌어진 오색 꽃가루 행사는 미국 건국 이래 정치가에게 베푸는 것으로는 다섯 번째라 했다.

2차대전의 영웅 맥아더, 아이젠하워, 그리고 처칠과 대만의 손미령 여사에 이어 다섯 번째, 사실 이는 당시 미국이 얼마나 우리의 파병을 학수고대 했는가를 보여 준 단편에 불과했다. 그만큼 당시 교섭에서 유리한 쪽은 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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