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age 나라 대불)
글로벌화(해외로부터의 문화 유입)와 동시에 일어나는 역병(악성 유행병).
원래, 나라(奈良時代 710-794) 시대에 대불(大仏)이 건립 된것도, 천도(遷都)가 반복된 것도,
지금과 같은 "전염병의 유행"이 주 원인이었다.
"백성의 절반 이상이 사망했다."숭신천황(崇神天皇) 즉위 5년,
"일본은 옛부터 천재지변(天災)가 많았다"는 등의 말을 자주 듣지만, 실제로
화재나 지진보다, 당시의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있던 것은 "역병"이었다고 한다.
역병의 유행은 일과성의 화재나 천재지변보다 무섭고 두려웠으며 지금이라면 좀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예를 들어 일본 최고 역사서인 '일본서기(日本書紀.720년 간행된 역사서)'에는
숭신천황(崇神天皇) 즉위 5년(3세기초기) "국내에 역병이 대량 발생해 백성의 절반 이상이
사망했다"는 기술이 있다.
백성의 절반이 사망. 두렵고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당시 중국에서는 마침 후한(後漢)이 멸망했을 무렵이다.아마도 중국 본토의
혼란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한반도나 일본에 온 사람이 대량으로 있었을 것이다.
어느 시대건, 글로벌화,즉 문화의 교류와 역병의 유행은 하나의 세트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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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가 진행된 나라시대(奈良時代), 견당사(遣唐使)가 가져온 역병
세계화가 한층 더 진행되어 나라시대(奈良時代),덴표(天平) 9년(737년) 역병이 폭발적으로 퍼졌다.
견당사(遣唐使.당나라에 보낸 사절), 견신라사(遣新羅使.668년이후 통일신라에 보낸 사절)에 의해
많은 문화가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에 의해 전염병도 같이 유입되었다.
역병(천연두였다라고도 한다)은 규슈(九州)에 널리 퍼졌다.
얼마나 역병이 맹위를 떨쳤냐하면 일본역사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후지와라(藤原) 사형제(무치마로, 후사사키, 우마카이, 마로)가 떠오른다.
당시 위정자로 권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던 사형제 모두가 역병으로 돌연사 해버린것이다.
당시 완전히 후지와라 일가에 농란당하고 있었던 정권내부에선 , "뭐. 네 명 다!? 죽었다고 !?]라고
발칵 뒤집혀졌다.이 갑작스런 죽음을 두려워한 사람들은 "후지와라 사형제를 자해로 몰아넣은
나가야왕(長屋王.귀족출신.후지와라4형제의 음모로 자살)의 저주......?"라는 소문까지 돌게 되었다.
이 역병은 후지와라 사형제에 그치지 않고 당시 정치를 맡고 있던 귀족들에게 급소히 전파되어
약 1/3이 죽었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총리대신이나 각 부처장관의 공직자의 1/3이 사망하는 것이었다.
"삼밀(三密.밀폐.밀집.밀접)"이 나라시대에 알려져 있었다면, 일본의 역사는 바뀌었을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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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수도를 떠나고 싶다"가 아닌 "수도를 옮기고 싶다"라
그러나 '삼밀'을 알지 못해 나가야왕(長屋王)의 저주를 두려워한 성무천황(聖武天皇.701-756)은
'불교'의 전파와 '수도의 천도'에 평생을 쏟아 붓는다.
나라의 대불을 지은 것은 성무천황이고, 평성경(平城京.현재의 나라시)을 비롯하여 수차례 도읍을 옮긴 것도
성무천황이다.(지진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결국 평경성로 도읍이 정착됨).
"왜 이렇게 자주 수도를 옮겼지......"라고 후세 사람은 의아해하지만,록다운(lock down) 따위의
선택사항조차도 없었던 시절, "어쨌든 도읍지로부터 떠나고 싶다!" "도읍지를 옮기고 싶다!"라고 하는
충동이 불러일으켰음에 틀림없다.
게다가 감염증의 확대를 막기 위해, 당시 , 수백명의 승려가 궁중에서 독경(読経)하면서 기원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 환경도, 지금 생각하면 완전히 "삼밀"상태이다).
그런 가운데 , 감염증에 시달리던 나라 시대에 불교는 국가의 종교가 되어 수많은 절이 건립되었다.
역시 감염증이 이렇게까지 퍼지지 않았다면 일본의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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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분의 "귀신은 밖"의 진짜 의미는?
*절분(節分)매년 2월3일에 행하지는 전통행사.특히 콩을 뿌리는 습관이 있으며
콩을 뿌려서 귀신을 쫒아내어 1년내내 건강하고 가내의 평안을 비는 행사.
덧붙여서 나라 시대의 노래집인 "만요집(万葉集.최초의 시가집.4,500수 이상의 시가 수록됨)"에는,
당시 유행하던 감염증이 "귀병(鬼病)"이라고 하는 말로 등장하고 있다.
'귀병'이란 원래 불전(仏典) 용어로 '귀신에 홀린 병'을 일컫는 말인데,
거기서부터 역병을 뜻하게 되었다.
춘분 날 행사에서 "귀신은 밖으로.."라고 하면서 콩을 뿌리는 습관이 있는데..
"귀신"이란 바로 "역귀"를 가르킨다.
원래 중국의 궁중에서 행해졌고 , 이것이 "츠이나(追難)" 라는 이름의 절분의 행사가
전국으로 퍼지게 되었으며 "츠이나(追難)"에서는, 도깨비의 모습으로 분장한 사람이 역병으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악귀"로 여겨졌다
즉 역병을 불러오는 귀신을 쫓는 행사가 절분이었던 것이다.
"감염증은 밖으로 물러나가라.. ". 그것은 절분행사인
"귀신은 밖으로...(鬼は外、福は内)"과 같은 의미였다.
당연히 당장 귀신이 밖에 나가줬으면 좋겠다.
."만요집(万葉集)"에도 여행 도중에 들른 섬에서, 감염증에 걸려 돌아가신 분을 위한 노래를
수록하고 있는데, 이런 생각이 실려 있다.
"시간이 지나고, 달도 지나면, 오늘 돌아올까 내일 돌아올까 하고 집사람은 기다리고 있는데,
당신은 아직도 귀향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고향에도 돌아가지 못한채, 그 섬에서 잠든 채인가......".
정말 애달픈 노래다.
나라시대와 달리 지금은 의료 지식도 기술도 있지만, 그런데도 "가족"을 만나지 못한 상태로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또한 만나고 싶은 '가족'이 없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가능한 한 빨리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이 진정되어 , 모두가 웃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절실히 생각나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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