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승부수라도 걸린듯 조마조마했든
첫째아들 대학입학 허가가 다행히도 만족한곳으로 정해졌었다..
부지런히 챙긴 기숙사 짐 들을 차에 가득싵고
제법 먼길 때문에 이른 새벽에 떠나 7시간 달려 가는길이
여행길이라도 돼는듯 즐겁기도 했었다.
막상 도착한 2인용 기숙사방은 손바닥 만해서
가지고간 냉장고 책상 소파 나부랭이 들을 들여놓키가 쉬운일 이 못됐다.
그것도 잠깐
대충 대충 정리해주고 장거리를 돌아와야 하기에
선듯 내키지않았지만
곧 돌아서야만 했다..
생전 처음 이별을 해본것이다.
속이 있는지 없는지
새로만난 친구들이 좋아 그런지
헤어지는 엄마 아빠 에겐 별다른 애절함이 없는듯해
섭섭 하면서도 다행이다 생각했었다.
덤덤히 돌아선듯한데 차안에서 훌쩍이는 집사람을 보니
나도 찌언 할수 밖에 없었다
밤 늧게 도착해 덩그렇케 비어 있는 아들 방을 보니
마음이 허전함은 피할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그 아들은 우리 곁에 있어주질 안했다
방학이 돼어도 잠깐 들를뿐
제행사가 분주해 바쁘게 돌아가니 딴 식구가 됐다.
졸업후
직장도 대도시에서 잡으니 우리가 찿아 가야 만날기회가 얻어진다
더욱이
제색씨 만나 장가간후론 완전한 이별이였다.
제식구가 한짐이다.
통화때마다 거의 전부가 저희들 새끼 이야기뿐이다.
손자 손녀 이야기 끝날 무렵에야 우리안부를 조금 넣는다.
그래도 다행스럽다.
전화라도 해주니 고맙기만하다.
그때
데면 데면 했든 이별이 마즈막 인줄은
나이들어 살다보니 알게됐다.
몇일전 손자 가 탓마스(DARTMOUTH) 대학에 간다고
집사람이 준비한 저녁을 온식구가 했다.
며누리가 스맛폰을 두고 갔다며 돌아가다 다시왔다.
;NOAH 가 차안에서 울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헤어지는것이 슬프다며
그렇치 않해도 떠나보내고 서운해 하든차 였는데
그만 내가 눈물을 보인다.나이가 들어서 그런가보다.
그래
너희도 보스톤에서 NOAH와 헤어지면
그게 마즈막 이별인줄을
살다보면 깨닫는다..
그냥 평범하게 살아온듯 한데
자식농사는 괜찬은듯 하다
손자가 눈물을 흘렸다 하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