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 고국을 뒤로 하고 Kal 을 타다.(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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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감(懷疑感/skepticism)(4) :
지연(地緣), 혈연(血緣), 출신(出身)(?) 이 또 문제다.......
정말 치유하기 어려운 망국병원(亡國病原)인 학연, 지연, 혈연, 출신,
나라는 남북으로 두 동강, 동서로 두 동강,
여기다 사회 일반에 깊이 박힌 일류병, 성급함, 저버린 배려, 각종 모임에서
우리(?)라는 용어로 너와 나를 갈라놓고 자신을 감추는 행태 등이
가세가 되니 정말 내가 뭣 때문에 나의 일생을 공직자로 끝을 내야 하는 가?
바닷물을 지키는 건 염도 3.5%라고 한다.
난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런 염분의 위치를 감내할 능력도 없거니와
왜 그렇게 어렵게 살아야 하는지 의구심이 쌓여 갔다.
한 나라도 마찬가지다. 5%의 집단이 국가를 움직인다고 했다.
공직자는 따지고 보면 그 5% 집단의 하수인의 범주를 넘지 못한다고 느꼈다.
회의감(懷疑感/skepticism)(5) :
바른 삶에 대한 회의?
한 인간이 태어나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어떻게 해야 가정도 무난하게 끌고 가면서
훗날 나의 삶도 그리 초라하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이런 생각이 깊어지고 잦아지는 과정에 미국의 드라마
초원의 집(Little House on the Prairie)을 보면서 “바로 저거야! 저렇게 살고파....”
더욱이나 당시 아들이 5~6살 이었는데 노는 곳이 어린이 놀이터 였다.
여긴 미끄럼틀 등이 쇠로 만든 것들로 빽빽이 서 있고 그 옆 공간은 아주 작아
애들이 그 시설들 밑 사이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놀고 있는 걸 보고는
저러다 다치면 어쩌나 싶은 마음이 아주 날 불안하게 했었다.
그렇다고 거기서 놀지 말라 하면 어디 가서 놀 때도 없고..
어떤 날은 목욕탕(공중)에 같이 가면 냉탕에 들어가 거기서 좋다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헤엄을 치는 걸 보고는 정말 안쓰러웠다.
어디 넒은 곳에 데려가서 놀게 해주면 좋으련만 그게 아니니...
이럴 때마다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해서 딸아인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인데 주말에 산행을 하면 꼭 대리고 올라가고 했다.
한국에서 본 “초원의 집”이란 이름의 드라마 ;
미국 서부의 한 농가의 삶, 그 속에서 아이들이 자연 속 풀밭을 이리 저리
거리낌 없이 뛰어 다니던 그 장면을 보고 생각했지..
애들을 위해선 이런 곳, 멀리 보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가자!
나란 인간은 여기서 던져버리자!
그저 아버지로서의, 가장으로서의 할 일만 남아있다.
[초원의 집 이야기] / ( Little House in the Big Woods )
수많은 외국 TV 시리즈물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안방으로 들어왔지만,
막 컬러 TV가 보급되기 시작했던 70년대 말에는
몇 안 되는 TV 시리즈물이 안방극장에서 큰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넓게 펼쳐진 푸른 초원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미국 개척시대 한 가족의 이야기는
전 국민적 사랑을 받으며 인기 시리즈로 등극했는데,
그 원작이 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자전적 소설 『초원의 집』이다.
총 9권으로 구성된 책은 미국 개척시대에 희망을 품고 서부로 넘어가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잉걸스 가족의 이야기를 둘째 딸 로라에서 그려낸 소설이다.
1~4권(총 9권)은 로라의 어린이 시절 위스콘신 숲 속에서 태어나
서부로 넘어가기까지의 이야기로 본다.
드라마 중의 아빠는 사람이 북적대는 곳보다는 사슴과 토끼가 자유롭게 뛰놀고,
언제든지 신선한 열매와 과일을 얻을 수 있는 자연 한복판을 좋아해서
숲 속 한가운데에 집을 마련한다.
그리고 아빠와 엄마 사이에는 메리, 로라, 캐리, 그레이스
네 명의 딸이 차례로 태어나 숲 속에서 자연과 함께 자라난다.
이 가족의 살아가는 이야기 중 가장 사람들을 사로잡는 매력은
바로 자급자족의 생활에 대한 풍부하고 세밀한 묘사라고 본다.
오직 한 가족만 숲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이들은 모든 의식주를
직접 자신들의 손으로 해결해야만 한다.
이 드라마는 당시의 나의 마음을 그렇게도 잡아 끌 수가 없었다.
이 걸 보면서 얻은 게 남들이 말하길 그 좋다는 그 자리 공직을
내 발로 차 버리고 무엇이라도 하면서 드라마의 아빠 같은 생활로
드라마의 아이들처럼 키워주고 죽자.
설혹 내가 이민을 가서 성공을 하지 못 하더라도 아이들의 영어문제와
미국시민권만 해결 해 줘서 저들 스스로가 살아갈 수 있게 하고 떠나가자.
해서 이민을 오기로 결정하고 영어와 몇 가지 기술,
1. 자동차 수리 2. 침술 3. 제빵 기술을 -- 근 2년에 걸쳐 배웠었다.
배고픔의 고통이 어떤 건지는 굶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사람의 벌 중에 가장 심한 고통을 주는 게 굶어 죽이는 아사(餓死) 라고 한다.
무거운 것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몸에 부치는지 모른다.
이 얘긴 자식들한테도 하지 않는다. 한이 맺힌 못 난 애비로 보일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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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부모가 해 주는 따뜻한 밥 먹고 도시락 사서 가방에 넣고 반듯한 교복에 교모를 쓰고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 때 난 공장엘 다녔다.
공장에서 밤 근무를 하게 되면 다들 자는 밤 휴식 시간에도
통신 강의록으로 난 공부를 했었다.
그 때 사장에게 들켜 왜 잠을 자지 않는가 하고 혼이 나기도 했었지...
“일 잘하라고 쉬고 자게 하는 것이지 네 공부 하라고 시간을 주는 게 아니다!”
라고 했었다. 그 분은 평양도 분이었지... 평안도 사투리가 무서웠다.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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