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방사능 누출…원전 직원은 도망치고 도쿄전력·정부는 무책임
쓰나미 다음날, 진짜 재앙이 시작됐다
멜트다운 / 오시카 야스아키 지음·한승동 옮김 / 양철북 펴냄
日 후쿠시마 방사능 누출…원전 직원은 도망치고 도쿄전력·정부는 무책임
1년간 탐사취재한 기자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 그들이 日을 망쳤다"
기사입력 2013.09.27 16:04:58 | 최종수정 2013.09.27 17:2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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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재앙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에는 관측 사상 네 번째로 강한 규모 9.0의 지진이 강타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 벌어진 재앙은 목격하는 이들조차 공포에 질리게 할 만큼 거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인명을 휩쓴 쓰나미가 덮친 이튿날, 어쩌면 더 위험한 재앙이 찾아왔다.
12일부터 15일까지 후쿠시마 제1원전이 잇따라 폭발했다. 하지만 일본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고를 책임져야 할 도쿄전력과 경제산업성 원자력안전보안원은 기자회견에서 마치 남 일처럼 사고를 브리핑했다. 책임을 회피하는 도쿄전력 경영진, 국비로 부담하는 걸 꺼린 재무성 관료들, 도쿄전력에 2조엔을 대출해주고도 채권 보전에만 필사적이었던 은행가들, 정치인들의 모습은 보신주의와 `모럴해저드`의 전형이었다. 그들 모두 `멜트다운`됐다고 진단하며 오시카 야스아키는 가능한 한 모든 것을 기록해두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이 책은 태어났다.
아사히신문 경제지 기자가 쓴 `멜트다운`은 사고 직후부터 1년간 관련자 125명을 탐사 취재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왜 일어나게 됐고, 그들의 초동 대처가 어떠했으며, 이후 배상금 문제 등은 어떤 과정을 거쳐 처리됐는지와 같은 사고의 본질적인 문제를 다룬다. 출간 후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켜 지난해 고단샤 논픽션상을 수상했다.
책이 되살려내는 그날의 기억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다. 섭씨 6도 기온에 남동쪽에서 미풍이 불어오던 날이었다. 지진이 강타하면서 후쿠시마 제1원전 사무실은 유리가 깨지고, 천장 패널이 떨어지고, 건물 안이 엉망이 됐다. 1971년 가동되기 시작한 원자로는 통상 30~40년에 불과한 수명을 훌쩍 넘긴 노후 시설이었다. 치명적인 것은 이곳에 전력을 공급하는 27번 철탑이 무너져내린 데 있었다. 이로 인해 원전은 외부에서 오는 전원이 모두 끊겼다.
사무동에 있던 직원들은 다행히 일주일 전 행해진 피난훈련 덕에 신속하게 내진설계중요동으로 피난할 수 있었다. 이곳 원전 1~5호기는 미국 GE가 만든 `마크1`. 가장 낡은 1호기에는 긴급상황 시 노심을 냉각하는 비상복수기(수증기로 냉각시켜 물로 되돌리는 장치)가 달려 있었다. 하지만 이 장치를 직접 작동시켜 본 사람은 없었다. 복수기 가동은 불과 11분 만에 중단됐고, 비상용 냉각수 주입 장치도 10여 분 만에 인위적으로 중단돼버렸다.
바로 그 순간 높이 4m짜리 쓰나미 1파가 덮쳤다. 지진 발생 40분 만이었다. 당황한 작업 요원들은 높은 곳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8분 뒤 높이 15m인 2파가 몰려왔다. 콘크리트로 만든 10m 높이 방조제가 산산조각이 날 정도로 강력한 쓰나미였다. 제1원전이 막아낼 수 있는 쓰나미 높이는 겨우 5.7m에 불과했다.
원전이 탁류에 잠겨버리자 작업 요원들은 방사능 누출을 막는 이중문을 활짝 열고 도망쳤다. 6호기를 제외한 원전 1~5호기는 일제히 긴급 정지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비상디젤발전기는 6호기를 제외하고 모두 물에 잠겨버렸다. 원전을 냉각시킬 방도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예상할 수 있는 모든 최악의 상황을 훨씬 뛰어넘는 사태였다. 그렇게 원전은 녹아내렸다. 사고 직후 대기 중에 방출된 방사성 물질은 히로시마 원폭 168개에 맞먹는 엄청난 규모였다.
하지만 한심한 것은 사고 이후 벌어진 일이다. 서로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이전투구`만이 남았다. 미증유의 사고였지만, 위험 가능성은 예견돼온 상황이었다. 도쿄전력은 불과 사고 4일 전 높이가 10m 이상인 쓰나미가 원전을 강타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가 올라왔지만 사전에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원전에 균열이 갔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자료를 조작하기도 했다.
사고 발생 직후에는 총리관저와 사고 현장 사이에 통화 내용을 도청해 정보를 교란했다. 노심이 녹아내려 방사능이 누출됐다는 사실도 두 달이나 숨겼다. 심지어 원자력손해배상법 16조를 통해 배상 책임을 국가에 돌리기까지 했다.
관료집단과 은행도 무책임했다. 경제산업성은 개혁파 관료 의견을 묵살하고, 도쿄전력 주거래은행이자 엄청난 돈을 융자해준 미쓰이스미토모 은행이 제안한 원전배상기구를 설립해 도쿄전력이 직접 배상하지 않는 안을 선택했다.
사고 이후 탈원전으로 정치적 입장을 선회한 간 나오토 총리가 낸 `탈원전 및 기존 에너지 기본계획 백지화`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당인 민주당에는 내분이 일어났고, 자민당의 아베 신조 전 총리는 간 총리 사퇴를 요구해 결국 내각이 총사직했다. 저자는 이러한 `도쿄전력 구제 계획`으로 인해 경제산업성과 전력업계가 만들어놓은 질서는 흔들리지 않았고,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고발한다.
치밀한 취재로 사고 직후 상황을 분 단위로 생생하게 되살려내는 묘사가 압권이다. 기시감이 드는 장면은 도쿄전력을 점령한 `원전 마피아`들이 사고나 기기 결함을 은폐하고 자신들 이익을 위해서만 똘똘 뭉치는 부분이다.
원전 비리로 매년 여름 전력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 모습과 겹쳐 보였다.
책이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원전 사고는 예측할 수 없으며, 아무도 책임져주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이기심이 더 큰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섬뜩한 사실이다.
멜트다운 / 오시카 야스아키 지음·한승동 옮김 / 양철북 펴냄
日 후쿠시마 방사능 누출…원전 직원은 도망치고 도쿄전력·정부는 무책임
1년간 탐사취재한 기자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 그들이 日을 망쳤다"
기사입력 2013.09.27 16:04:58 | 최종수정 2013.09.27 17:2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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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부터 15일까지 후쿠시마 제1원전이 잇따라 폭발했다. 하지만 일본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고를 책임져야 할 도쿄전력과 경제산업성 원자력안전보안원은 기자회견에서 마치 남 일처럼 사고를 브리핑했다. 책임을 회피하는 도쿄전력 경영진, 국비로 부담하는 걸 꺼린 재무성 관료들, 도쿄전력에 2조엔을 대출해주고도 채권 보전에만 필사적이었던 은행가들, 정치인들의 모습은 보신주의와 `모럴해저드`의 전형이었다. 그들 모두 `멜트다운`됐다고 진단하며 오시카 야스아키는 가능한 한 모든 것을 기록해두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이 책은 태어났다.
아사히신문 경제지 기자가 쓴 `멜트다운`은 사고 직후부터 1년간 관련자 125명을 탐사 취재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왜 일어나게 됐고, 그들의 초동 대처가 어떠했으며, 이후 배상금 문제 등은 어떤 과정을 거쳐 처리됐는지와 같은 사고의 본질적인 문제를 다룬다. 출간 후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켜 지난해 고단샤 논픽션상을 수상했다.
책이 되살려내는 그날의 기억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다. 섭씨 6도 기온에 남동쪽에서 미풍이 불어오던 날이었다. 지진이 강타하면서 후쿠시마 제1원전 사무실은 유리가 깨지고, 천장 패널이 떨어지고, 건물 안이 엉망이 됐다. 1971년 가동되기 시작한 원자로는 통상 30~40년에 불과한 수명을 훌쩍 넘긴 노후 시설이었다. 치명적인 것은 이곳에 전력을 공급하는 27번 철탑이 무너져내린 데 있었다. 이로 인해 원전은 외부에서 오는 전원이 모두 끊겼다.
사무동에 있던 직원들은 다행히 일주일 전 행해진 피난훈련 덕에 신속하게 내진설계중요동으로 피난할 수 있었다. 이곳 원전 1~5호기는 미국 GE가 만든 `마크1`. 가장 낡은 1호기에는 긴급상황 시 노심을 냉각하는 비상복수기(수증기로 냉각시켜 물로 되돌리는 장치)가 달려 있었다. 하지만 이 장치를 직접 작동시켜 본 사람은 없었다. 복수기 가동은 불과 11분 만에 중단됐고, 비상용 냉각수 주입 장치도 10여 분 만에 인위적으로 중단돼버렸다.
바로 그 순간 높이 4m짜리 쓰나미 1파가 덮쳤다. 지진 발생 40분 만이었다. 당황한 작업 요원들은 높은 곳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8분 뒤 높이 15m인 2파가 몰려왔다. 콘크리트로 만든 10m 높이 방조제가 산산조각이 날 정도로 강력한 쓰나미였다. 제1원전이 막아낼 수 있는 쓰나미 높이는 겨우 5.7m에 불과했다.
원전이 탁류에 잠겨버리자 작업 요원들은 방사능 누출을 막는 이중문을 활짝 열고 도망쳤다. 6호기를 제외한 원전 1~5호기는 일제히 긴급 정지했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비상디젤발전기는 6호기를 제외하고 모두 물에 잠겨버렸다. 원전을 냉각시킬 방도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예상할 수 있는 모든 최악의 상황을 훨씬 뛰어넘는 사태였다. 그렇게 원전은 녹아내렸다. 사고 직후 대기 중에 방출된 방사성 물질은 히로시마 원폭 168개에 맞먹는 엄청난 규모였다.
하지만 한심한 것은 사고 이후 벌어진 일이다. 서로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이전투구`만이 남았다. 미증유의 사고였지만, 위험 가능성은 예견돼온 상황이었다. 도쿄전력은 불과 사고 4일 전 높이가 10m 이상인 쓰나미가 원전을 강타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서가 올라왔지만 사전에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원전에 균열이 갔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자료를 조작하기도 했다.
사고 발생 직후에는 총리관저와 사고 현장 사이에 통화 내용을 도청해 정보를 교란했다. 노심이 녹아내려 방사능이 누출됐다는 사실도 두 달이나 숨겼다. 심지어 원자력손해배상법 16조를 통해 배상 책임을 국가에 돌리기까지 했다.
관료집단과 은행도 무책임했다. 경제산업성은 개혁파 관료 의견을 묵살하고, 도쿄전력 주거래은행이자 엄청난 돈을 융자해준 미쓰이스미토모 은행이 제안한 원전배상기구를 설립해 도쿄전력이 직접 배상하지 않는 안을 선택했다.
사고 이후 탈원전으로 정치적 입장을 선회한 간 나오토 총리가 낸 `탈원전 및 기존 에너지 기본계획 백지화`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당인 민주당에는 내분이 일어났고, 자민당의 아베 신조 전 총리는 간 총리 사퇴를 요구해 결국 내각이 총사직했다. 저자는 이러한 `도쿄전력 구제 계획`으로 인해 경제산업성과 전력업계가 만들어놓은 질서는 흔들리지 않았고,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고발한다.
치밀한 취재로 사고 직후 상황을 분 단위로 생생하게 되살려내는 묘사가 압권이다. 기시감이 드는 장면은 도쿄전력을 점령한 `원전 마피아`들이 사고나 기기 결함을 은폐하고 자신들 이익을 위해서만 똘똘 뭉치는 부분이다.
원전 비리로 매년 여름 전력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 모습과 겹쳐 보였다.
책이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원전 사고는 예측할 수 없으며, 아무도 책임져주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이기심이 더 큰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섬뜩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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