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민중의 노래"는 어디에!
씁쓸한 혁명의 추억? "성난 민중의 노래"는 어디에!
[프랑스혁명의 두 가지 해석] 막스 갈로와 육영수
양희영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0-04 오후 7: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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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자크 루소 탄생 300주년이던 작년(2012년) 가을, 평자는 "루소와 프랑스혁명"이라는 논문 발표에 토론자로 나선 적이 있다. 토론이 끝나기도 전에 청중석에서 두 사람이 조급해하며 손을 들었다. 발표자와 토론자에 대한 훈계에 가까웠던 질문의 요지는 "프랑스혁명은 그동안 좌편향으로 연구되어 왔다. 혁명은 결국 로베스피에르 한 사람이 사회계약론을 이용해 전횡을 휘두른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였다. 원로 학자인줄 알았던 두 사람은 알고 보니 학회와는 무관한 방문객이었다. 혁명을 감당하기에 세상은 너무 지쳐버린 것일까?
올해로 여든 셋이 된 프랑스의 작가 겸 역사가 막스 갈로가 2008년에 발표한 <프랑스 대혁명>(박상준 옮김, 민음사 펴냄)를 읽다가 그 질문자들이 떠올랐다.
▲ <프랑스 대혁명>(막스 갈로 지음, 박상준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생애 백 번째 책이라는 이 대중적 역사서에서 갈로는 혁명기 10년(1789~1799)의 숱한 장면을 마치 세밀화 그리듯, 또는 카메라를 들이대듯 생생하게 잡아낸다. 의도치 않게 혁명의 멍석을 깔아준 국왕 루이 16세부터 쿠데타로 혁명을 마무리한 보나파르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혁명의 주·조·단역들과 그들이 뱉어낸 말, 그들이 일으키거나 휩쓸린 사건들이 프랑스 한림원에 입성한 저자의 필력에 실려 광풍처럼 책 전체를 내달린다. 아, 그런데도 필자는 책을 읽는 내내 지루했다! 왜일까?
필자가 이 책의 내용을 거의 알고 있는 프랑스혁명사 전공자여서? 아니다. 지루한 것은 갈로가 혁명을 바라보는 관점, 소개하는 방식에서 드러나는 진부함 때문이다. 이 책의 두 주인공은 선량하지만 무력한 국왕 루이 16세와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그리고 옆에서 본 듯 세밀하게 묘사되는 '폭력'이다.
갈로는 루이 16세의 처형을 묘사하는 일곱 쪽의 프롤로그로 책을 시작하고 루이 16세가 할아버지 루이 15세의 뒤를 이어 왕으로 즉위하는 1774년에서 본문을 시작한다. 튀르고, 네케르, 칼론의 엇비슷한 재정개혁이 연이어 시도되었다가 좌초되는 구체제 말의 막다른 위기뿐 아니라 삼부회(1789년 5월 개원)가 국민의회로 변모하여 입법의회(1791년 10월 개원), 국민공회(1792년 9월 개원)로 이어지는 혁명 초기 상황의 전개가 루이 16세를 중심으로 그의 시각으로 서술된다. 실상 그는 바스티유 함락 이후 사건들의 거센 물살에 휩쓸려 혁명의 주변부로 내동댕이쳐져 버렸는데 말이다.
갈로는 마치 그 자신 루이 16세의 환생인 듯, 또는 사자의 목소리를 전하는 영매인 듯 왕의 생각과 감정을 직간접 화법으로 이어가며 그를 이해하고 공감하려 한다. 물론 갈로에게 있어서도 "루이"는 개혁을 밀어붙일 의지도 수완도 없는 우유부단한 인물이었고, 혁명이 시작된 후에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의회와 민중의 요구를 받아주는 척하면서 뒤로는 나라를 버리고 국민을 전쟁에 끌어들이는 이중플레이를 마다하지 않는 비겁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갈로는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루이"는 프랑스의 왕이었다. 그가 어떻게 수백 년 이어진 그의 왕조를 자신의 손에서 마감하도록 내버려둘 수 있었겠는가? 교회의 맏딸 프랑스가 성직자를 박해하는 법에 그가 어떻게 서명할 수 있었겠는가? 그가 어떻게 달리 행동할 수 있었겠는가?
어차피 <프랑스 대혁명>은 각주와 참고문헌으로 정확한 전거를 제시하는 학술서가 아니다. 문제는 이런 이해와 공감의 대상이 오직 루이 16세뿐이라는 것이다. 나머지는 야심에 따라 진흙탕을 구르며 빵과 피에 굶주려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나중에는 서로 죽고 죽이는 한 줌 혁명가와 군중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제1권의 부제는 갈로가 붙인 '민중과 국왕'보다는 차라리 '국왕과 타자들' 또는 '국왕과 그 적들'이 더 적절해 보인다.
이 '타자들'의 행동은 '폭력'으로 요약된다. 입에 담기 어려운 무자비한 처형과 다양한 방식의 시신 훼손이 바스티유 함락에서 10월 봉기, 8월 10일 봉기, 9월 학살, 공포정치, 백색 공포정치로 이어진다. 물론 이런 폭력은 갈로의 창작물이 아니다. 그러나 매 봉기의 엽기적 폭언과 폭력이 수십 쪽에 걸쳐 친절하게 기술되고, 프롤로그를 빼고도 국왕의 재판과 처형에 40쪽이 할애되는 동안 봉건제 폐지에는 단 한 쪽, 인권선언과 공화국 원년 헌법에는 각각 반쪽이 부여된다. 정파 투쟁이 극렬해지는 제2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에베르파와 당통파의 숙청, 테르미도르 쿠데타와 로베스피에르의 몰락에서 작가의 모든 필력은 폭력 묘사에 할애된다.
▲ 톰 후퍼의 2012년 영화 <레 미제라블>. ⓒ워킹 타이틀
갈로의 혁명사는 민중 폭력을 혐오하는 혁명에 대한 우파적 선입견에 충실히 부응하면서 그간 축적된 혁명사 연구의 어떤 학문적 성과도 수용하지 않는다. 그의 혁명사에서는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부르주아 혁명가들의 개성도 목표도, 의회 법령들을 통한 성취도 발견할 수 없으며, 더욱이 봉기의 주역이기에 앞서 민중협회와 구(區)회의들을 통해 처음으로 정치적 발언권을 얻었던 상퀼로트(혁명기 민중)의 기대도 이상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 근래에 혁명적 폭력의 배후로 역사가들에게 빈번히 소환되는 국민주권이니 인간재생의 담론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그의 시선은 프랑스가 아니라 파리의 거리와 의회에(그나마 특정 측면에) 고정되어 있다. 그에게 혁명은 오직 폭력으로 귀결되고, 그 점에서 프랑스는 이미 바스티유 함락에서부터 공포정치 속에 살고 있었던 셈이므로 그로서는 혁명 내부의 수많은 결들을 헤아릴 수도, 혁명이 폭력의 심연으로 빠져드는 원인도 탐색할 수 없다. 그의 혁명은 겉으로는 역동적이지만 실상은 완고하고 정체된, 참으로 비역사적인 방식으로 서술된다.
갈로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다채로운 이력의 소유자이다. 그는 젊은 시절 공산당 입당과 탈당을 거쳐 문필과 방송으로 명성을 얻었고, 1970년 미테랑을 만나 그의 열렬한 지지자가 된 후 1981년 사회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0년간 사회당을 대표하는 유럽 의회 의원으로 활동했던 그는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신자유주의 우파 정치인 니콜라 사르코지 지지를 선언하고 그의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노문필가의 정치적 선회와 역사인식 변화의 연관을 생각하며 그가 1968년에 쓴 로베스피에르의 전기와 1984년에 쓴 장 조레스의 전기 <장 조레스, 그의 삶>(노서경 옮김, 당대 펴냄)을 다시 찾아 들었다. 두 전기에서 갈로는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고자 애썼지만 약점과 상처투성이였으며 끝내 비극적 최후를 맞은 두 좌파 정치가의 글과 행적을 예의 그 흡인력 강한 필치로 꼼꼼히 복원하고 분석하고 이해하고자 분투하고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을 읽으며 그립고 아쉬웠던 뭔가가 그 전기들 안에 있었다.
(중요한 번역 문제 두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번역자는 책 내내 '국민(nation)'을 국가로 번역했다. 물론 그렇게 번역해야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국민'이 맞다. '국민'은 프랑스혁명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므로 반드시 바꿔주어야 한다. 혁명기 민중과 병사들이 외친 것은 "국민만세"이지 "국가만세"가 아니다.
또 그라빌리에 '지부', 피크 '지부' 등에서 '지부'는 section으로, '구(區)'라고 번역된다. 파리는 1789년 60개 구(district), 1790년 48개 구(section)로 구획되었고 '구'회의는 민중 투사들의 주요 거점이자 혁명기 민주주의의 요람이었다.)
▲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육영수 지음, 돌베개 펴냄). ⓒ돌베개
<프랑스 대혁명>와 거의 같은 시기에 프랑스혁명에 관한 또 다른 책이 출간되었다. 반갑게도 국내 서양사 연구자 육영수 교수가 1997~2013년 사이에 쓴 글을 모아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 : 프랑스혁명의 문화사>(돌베개 펴냄)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그 동안 저자가 국내 프랑스혁명사 연구에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모색했던 글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책 제목이 예사롭지 않은데, 제목을 풀어 책의 요지를 전달하자면, 프랑스혁명은 여성, 노동과 복지, 유색인을 배반했고, 그동안 역사가들은 그 점을 은폐해왔으며 이제 우리는 혁명의 문화사를 통해 저항의 기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사회경제적 구조와 계급 구도로 혁명을 분석하는 전통적 시민혁명론에 대한 비판에 토대를 두고 있는데, 이러한 비판에서 출발한 이른바 수정주의적 혁명사는 서양학계에서 이미 새로운 주류로 자리 잡았다.
아쉬운 점은 재기발랄한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저자 자신 게릴라식 문제 제기에 그칠 뿐 문제의식을 본격적인 실증적 연구로 채워 넣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책 역시 옛 원고의 먼지를 털고 덧칠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기초공사로 골격을 다시 세우고 전체 조망을 재조정했다고 밝힌 것과는 달리, 평자가 판단하기로는 내용과 시야가 각 글의 발표 당시로부터 크게 나아가지 않은 듯하다.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1부는 '우리가 알고 있던 프랑스혁명은 없다'라는 표제 아래 서양·백인·남성적 편견으로 서술된 기존해석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2부 '영상으로 서술한 프랑스혁명'에서 프랑스혁명에 관한 세 편의 극영화 <메리쿠르>, <슈앙>, <나폴레옹>을 살펴본 후, 3부 '프랑스혁명의 문화적 전환'에서는 프랑스혁명을 '문화적 사건'으로 재조명한 해외 연구들을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먼저 혁명은 여성을 배반했다. 수많은 여성이 집회와 봉기에 참여하고 클럽을 조직해 혁명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혁명은 여성에게 능동시민의 지위도, 참정권도, 무장권도 허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혁명이 가장 급진화한 시기에 자코뱅은 여성의 정치활동을 법으로 금지했다. 나아가 남성 역사가들은 프랑스혁명의 실패를 가톨릭 여성들의 퇴행적 역사의식과 반혁명 행위 탓으로 몰아간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남성도 반혁명에 적극 동조했으므로 혁명의 실패를 여성 탓으로 비난하는 것은 근거 없는 마녀사냥이라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을 인용한다. 여성의 시각에서 혁명을 읽어내고자 노력하는 것은 필요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여성사의 시각에서 중요한 것은 "여성이 혁명의 적이었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은 혁명을 지지하기도 했고, 반대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혁명이든 반혁명이든 여성이 '주체'로서, 부추김, 선동, 퇴행성 탓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판단에 따라 참여함으로써 혁명을 자신의 무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성을 위한 혁명은 없다'라거나 '혁명은 여성을 배반했다'는 표제는 이미 혁명을 남성과 동일시하고 여성을 혁명의 타자로 전제한다. "자코뱅 정권에 버림받고 나폴레옹에게 따귀 맞고 부르봉 왕정복고기에 숨죽여 지내야만 했던 여성들의 억울한 원혼"(51쪽)에 관심을 갖는 것은 감사한 일이나, 여성을 시공초월의 희생자로 보는 시각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다음으로 저자는 '노동과 복지를 위한 프랑스혁명은 없다'는 제목 아래 그 논거로 혁명기의 세 인권선언을 소개한다. 그 중 저자의 논지와 관련해 중요한 것은 산악파가 민중봉기를 통해 권력을 독점한 후 선포한 1793년(혁명력 1년)의 인권선언일 것이다.
이 인권선언은 인간의 보편적 권리와 소유권의 신성불가침성을 선포한 1789년 선언에서 더 나아가 "사회는 불행한 시민에게 노동을 제공해주거나 노동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자들에게는 생존수단을 보장해줌으로써 생계의 의무를 지닌다"고 선언했다. 그것은 지롱드파인 콩도르세의 초안과 산악파인 로베스피에르의 초안을 모두 수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테르미도르 쿠데타로 산악파가 몰락한 이후 잔존 국민공회가 선포한 1795년의 인권선언은 "소유권의 유지 여부에 전 사회질서가 달려 있다"고 선언하고 노동권과 공공부조권을 배제했다.
'빵과 혁명력 1년의 인권선언'은 테르미도르 이후 19세기 중엽까지 노동자와 사회주의자들의 끈질긴 구호이자 요구였다. 혁명기 마지막 인권선언이 그것을 부정했다고 해서 노동과 복지를 위한 프랑스혁명은 없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까? 그런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상퀼로트의 역할과 혁명의 급진화, 그에 따라 고조된 노동권과 소유권을 둘러싼 산악파 담론과 의회 내 논쟁, 제정된 헌법을 시행할 수 없었던 상황 등이 검토되어야 한다. 그럴 때 세 인권선언은 프랑스혁명이 어디까지 나아갔고 어느 지점에서 왜 멈추었는지 드러내준다. 독자에게 강한 임팩트를 주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뽑았겠지만 저자는 세 인권선언의 특징을 열거하는데 그칠 뿐 제목을 책임 있게 입증하지 않는다.
▲ 아벨 강스의 1927년 영화 <나폴레옹>.
마지막으로 저자는 프랑스 식민지 생도맹그의 혁명을 통해 아이티가 탄생하는 과정을 요약한 후 노예제도의 철폐는 "인권선언의 자연스럽고 보편주의적인 결과라기보다 제국주의 충돌이 낳은 부산물"(75쪽)이었다고 지적한다. 또한 삼부회에 제출된 진정서들로 미루어보건대 유색인의 자유와 해방은 애초부터 혁명의 프로그램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자코뱅 지도자 역시 노예해방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유색인을 위한 프랑스혁명은 없다"는 것이다.
틀리지 않다. 그러나 "애초부터" 혁명의 프로그램에 들어 있던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과연 애초에 "혁명의 프로그램"이란 것이 있기나 했던가? 게다가 인류사의 중요한 무엇인가를 인권선언의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결과"로 획득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가? 아이티의 유색인과 노예는 자신들의 전통 위에서 프랑스혁명과 조우했고 그것을 통해 스스로의 혁명, 아이티혁명을 만들어냈으며 그것은 프랑스혁명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만큼이나 그것에 영향을 미쳤다. 중요한 것은 그 구체적인 양상과 과정,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며 이미 수많은 식민지 연구가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혁명이 시작될 때 여성, 노동, 노예에 주목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이들은 혁명의 상승 과정에서 주역으로 대두하여 혁명의 새로운 동력을 이끌어 냈고 그 결과 여러 층위의 혁명을 만들어 냈다. 그런 점에서 여성을 위한, 노동을 위한, 노예와 유색인을 위한 혁명이 없다고 비판하는 것은 초점을 벗어난 것이다. 프랑스혁명 안에는 여성의 혁명, 노동의 혁명, 노예와 유색인의 혁명이 존재하고 바로 그것이 연구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어리석게 혁명의 추억에 더는 매달리지 않기 위해 원조혁명의 앞과 뒤를 재점검"할 것을 촉구한다. 재점검의 결론이 위에 살펴본 '혁명의 배반'이다. 어쨌든 저자가 혁명의 배반을 확인했다면 이제 어찌할 것인가? 그 답은 책의 본문이 아니라 저자의 에필로그에 있다. 저자는 푸코에 의지해 "동질적이며 목적론적인 낡은 혁명관으로부터 저항의 기억을 구출해" 작고 이름 없는 혁명들의 중요성을 재조명할 것을 주장한다.
'혁명의 배반'의 대구를 이루는 '저항의 기억'과 '작고 이름 없는 혁명들'은 이 책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는가? 아마도 저자는 저항의 기억을 구출할 대안적 혁명사 서술을 책의 3부에서 소개하는 혁명기 담론, 축제, 기념물 연구, 일상정치문화사 연구, 바스티유 감옥과 '라 마르세예즈' 변천사 연구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이들 각각의 주제는 매우 흥미로울 뿐 아니라 문화적 소재를 통해 혁명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이들 문화사 연구가 과연 '저항의 기억'이라는 주제에 값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저항의 기억은 문화사가 아니라 차라리 저자가 배반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 노동자, 노예와 유색인의 혁명사로 돌아감으로써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실상 프랑스혁명에 대한 저자의 관점은 에필로그를 읽고서야 명료해진다. 동시에 이 책의 문제도 정리된다. 프랑스혁명에 대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저자의 에세이인 머리말과 에필로그에서 육성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본문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논문들은 저자의 에세이를 실증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하고 이미 축적된 연구 성과를 충실히 따라가지도 않는다.
결국, 프랑스혁명에 대한 이 두 책은 모두 씁쓸하다. 하나는 혁명을 모독하느라 왕에게 골몰하고, 다른 하나는 혁명의 '배반'을 내세우며 결실 없이 비장하다. 혁명에서 폭력만을 부각해 자신의 새로운 정치적 신념을 드러내기만 하는 갈로의 책이 꽤 한심하다면, 애초 혁명이 지닌 역동성과 복합성을 깨부순 뒤 근사한 강령적 선들을 마구 그려 넣는 육영수의 책은 참 심심하다. 그렇게 해서는 프랑스 혁명기 다양한 민중들의 절규와 아우성, 웅성거림과 속삭임을 제대로 들을 수 없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과거의 혁명을 그렇게 형해화해서 이해하면 현재 민중의 다양한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귀도 어느새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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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영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프랑스혁명의 두 가지 해석] 막스 갈로와 육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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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10-04 오후 7: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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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여든 셋이 된 프랑스의 작가 겸 역사가 막스 갈로가 2008년에 발표한 <프랑스 대혁명>(박상준 옮김, 민음사 펴냄)를 읽다가 그 질문자들이 떠올랐다.
▲ <프랑스 대혁명>(막스 갈로 지음, 박상준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생애 백 번째 책이라는 이 대중적 역사서에서 갈로는 혁명기 10년(1789~1799)의 숱한 장면을 마치 세밀화 그리듯, 또는 카메라를 들이대듯 생생하게 잡아낸다. 의도치 않게 혁명의 멍석을 깔아준 국왕 루이 16세부터 쿠데타로 혁명을 마무리한 보나파르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혁명의 주·조·단역들과 그들이 뱉어낸 말, 그들이 일으키거나 휩쓸린 사건들이 프랑스 한림원에 입성한 저자의 필력에 실려 광풍처럼 책 전체를 내달린다. 아, 그런데도 필자는 책을 읽는 내내 지루했다! 왜일까?
필자가 이 책의 내용을 거의 알고 있는 프랑스혁명사 전공자여서? 아니다. 지루한 것은 갈로가 혁명을 바라보는 관점, 소개하는 방식에서 드러나는 진부함 때문이다. 이 책의 두 주인공은 선량하지만 무력한 국왕 루이 16세와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그리고 옆에서 본 듯 세밀하게 묘사되는 '폭력'이다.
갈로는 루이 16세의 처형을 묘사하는 일곱 쪽의 프롤로그로 책을 시작하고 루이 16세가 할아버지 루이 15세의 뒤를 이어 왕으로 즉위하는 1774년에서 본문을 시작한다. 튀르고, 네케르, 칼론의 엇비슷한 재정개혁이 연이어 시도되었다가 좌초되는 구체제 말의 막다른 위기뿐 아니라 삼부회(1789년 5월 개원)가 국민의회로 변모하여 입법의회(1791년 10월 개원), 국민공회(1792년 9월 개원)로 이어지는 혁명 초기 상황의 전개가 루이 16세를 중심으로 그의 시각으로 서술된다. 실상 그는 바스티유 함락 이후 사건들의 거센 물살에 휩쓸려 혁명의 주변부로 내동댕이쳐져 버렸는데 말이다.
갈로는 마치 그 자신 루이 16세의 환생인 듯, 또는 사자의 목소리를 전하는 영매인 듯 왕의 생각과 감정을 직간접 화법으로 이어가며 그를 이해하고 공감하려 한다. 물론 갈로에게 있어서도 "루이"는 개혁을 밀어붙일 의지도 수완도 없는 우유부단한 인물이었고, 혁명이 시작된 후에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의회와 민중의 요구를 받아주는 척하면서 뒤로는 나라를 버리고 국민을 전쟁에 끌어들이는 이중플레이를 마다하지 않는 비겁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갈로는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루이"는 프랑스의 왕이었다. 그가 어떻게 수백 년 이어진 그의 왕조를 자신의 손에서 마감하도록 내버려둘 수 있었겠는가? 교회의 맏딸 프랑스가 성직자를 박해하는 법에 그가 어떻게 서명할 수 있었겠는가? 그가 어떻게 달리 행동할 수 있었겠는가?
어차피 <프랑스 대혁명>은 각주와 참고문헌으로 정확한 전거를 제시하는 학술서가 아니다. 문제는 이런 이해와 공감의 대상이 오직 루이 16세뿐이라는 것이다. 나머지는 야심에 따라 진흙탕을 구르며 빵과 피에 굶주려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나중에는 서로 죽고 죽이는 한 줌 혁명가와 군중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제1권의 부제는 갈로가 붙인 '민중과 국왕'보다는 차라리 '국왕과 타자들' 또는 '국왕과 그 적들'이 더 적절해 보인다.
이 '타자들'의 행동은 '폭력'으로 요약된다. 입에 담기 어려운 무자비한 처형과 다양한 방식의 시신 훼손이 바스티유 함락에서 10월 봉기, 8월 10일 봉기, 9월 학살, 공포정치, 백색 공포정치로 이어진다. 물론 이런 폭력은 갈로의 창작물이 아니다. 그러나 매 봉기의 엽기적 폭언과 폭력이 수십 쪽에 걸쳐 친절하게 기술되고, 프롤로그를 빼고도 국왕의 재판과 처형에 40쪽이 할애되는 동안 봉건제 폐지에는 단 한 쪽, 인권선언과 공화국 원년 헌법에는 각각 반쪽이 부여된다. 정파 투쟁이 극렬해지는 제2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에베르파와 당통파의 숙청, 테르미도르 쿠데타와 로베스피에르의 몰락에서 작가의 모든 필력은 폭력 묘사에 할애된다.
▲ 톰 후퍼의 2012년 영화 <레 미제라블>. ⓒ워킹 타이틀
갈로의 혁명사는 민중 폭력을 혐오하는 혁명에 대한 우파적 선입견에 충실히 부응하면서 그간 축적된 혁명사 연구의 어떤 학문적 성과도 수용하지 않는다. 그의 혁명사에서는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부르주아 혁명가들의 개성도 목표도, 의회 법령들을 통한 성취도 발견할 수 없으며, 더욱이 봉기의 주역이기에 앞서 민중협회와 구(區)회의들을 통해 처음으로 정치적 발언권을 얻었던 상퀼로트(혁명기 민중)의 기대도 이상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 근래에 혁명적 폭력의 배후로 역사가들에게 빈번히 소환되는 국민주권이니 인간재생의 담론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그의 시선은 프랑스가 아니라 파리의 거리와 의회에(그나마 특정 측면에) 고정되어 있다. 그에게 혁명은 오직 폭력으로 귀결되고, 그 점에서 프랑스는 이미 바스티유 함락에서부터 공포정치 속에 살고 있었던 셈이므로 그로서는 혁명 내부의 수많은 결들을 헤아릴 수도, 혁명이 폭력의 심연으로 빠져드는 원인도 탐색할 수 없다. 그의 혁명은 겉으로는 역동적이지만 실상은 완고하고 정체된, 참으로 비역사적인 방식으로 서술된다.
갈로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다채로운 이력의 소유자이다. 그는 젊은 시절 공산당 입당과 탈당을 거쳐 문필과 방송으로 명성을 얻었고, 1970년 미테랑을 만나 그의 열렬한 지지자가 된 후 1981년 사회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0년간 사회당을 대표하는 유럽 의회 의원으로 활동했던 그는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신자유주의 우파 정치인 니콜라 사르코지 지지를 선언하고 그의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노문필가의 정치적 선회와 역사인식 변화의 연관을 생각하며 그가 1968년에 쓴 로베스피에르의 전기와 1984년에 쓴 장 조레스의 전기 <장 조레스, 그의 삶>(노서경 옮김, 당대 펴냄)을 다시 찾아 들었다. 두 전기에서 갈로는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고자 애썼지만 약점과 상처투성이였으며 끝내 비극적 최후를 맞은 두 좌파 정치가의 글과 행적을 예의 그 흡인력 강한 필치로 꼼꼼히 복원하고 분석하고 이해하고자 분투하고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을 읽으며 그립고 아쉬웠던 뭔가가 그 전기들 안에 있었다.
(중요한 번역 문제 두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번역자는 책 내내 '국민(nation)'을 국가로 번역했다. 물론 그렇게 번역해야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국민'이 맞다. '국민'은 프랑스혁명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므로 반드시 바꿔주어야 한다. 혁명기 민중과 병사들이 외친 것은 "국민만세"이지 "국가만세"가 아니다.
또 그라빌리에 '지부', 피크 '지부' 등에서 '지부'는 section으로, '구(區)'라고 번역된다. 파리는 1789년 60개 구(district), 1790년 48개 구(section)로 구획되었고 '구'회의는 민중 투사들의 주요 거점이자 혁명기 민주주의의 요람이었다.)
▲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육영수 지음, 돌베개 펴냄). ⓒ돌베개
<프랑스 대혁명>와 거의 같은 시기에 프랑스혁명에 관한 또 다른 책이 출간되었다. 반갑게도 국내 서양사 연구자 육영수 교수가 1997~2013년 사이에 쓴 글을 모아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 : 프랑스혁명의 문화사>(돌베개 펴냄)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그 동안 저자가 국내 프랑스혁명사 연구에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모색했던 글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책 제목이 예사롭지 않은데, 제목을 풀어 책의 요지를 전달하자면, 프랑스혁명은 여성, 노동과 복지, 유색인을 배반했고, 그동안 역사가들은 그 점을 은폐해왔으며 이제 우리는 혁명의 문화사를 통해 저항의 기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사회경제적 구조와 계급 구도로 혁명을 분석하는 전통적 시민혁명론에 대한 비판에 토대를 두고 있는데, 이러한 비판에서 출발한 이른바 수정주의적 혁명사는 서양학계에서 이미 새로운 주류로 자리 잡았다.
아쉬운 점은 재기발랄한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저자 자신 게릴라식 문제 제기에 그칠 뿐 문제의식을 본격적인 실증적 연구로 채워 넣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책 역시 옛 원고의 먼지를 털고 덧칠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기초공사로 골격을 다시 세우고 전체 조망을 재조정했다고 밝힌 것과는 달리, 평자가 판단하기로는 내용과 시야가 각 글의 발표 당시로부터 크게 나아가지 않은 듯하다.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1부는 '우리가 알고 있던 프랑스혁명은 없다'라는 표제 아래 서양·백인·남성적 편견으로 서술된 기존해석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2부 '영상으로 서술한 프랑스혁명'에서 프랑스혁명에 관한 세 편의 극영화 <메리쿠르>, <슈앙>, <나폴레옹>을 살펴본 후, 3부 '프랑스혁명의 문화적 전환'에서는 프랑스혁명을 '문화적 사건'으로 재조명한 해외 연구들을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먼저 혁명은 여성을 배반했다. 수많은 여성이 집회와 봉기에 참여하고 클럽을 조직해 혁명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혁명은 여성에게 능동시민의 지위도, 참정권도, 무장권도 허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혁명이 가장 급진화한 시기에 자코뱅은 여성의 정치활동을 법으로 금지했다. 나아가 남성 역사가들은 프랑스혁명의 실패를 가톨릭 여성들의 퇴행적 역사의식과 반혁명 행위 탓으로 몰아간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남성도 반혁명에 적극 동조했으므로 혁명의 실패를 여성 탓으로 비난하는 것은 근거 없는 마녀사냥이라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을 인용한다. 여성의 시각에서 혁명을 읽어내고자 노력하는 것은 필요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여성사의 시각에서 중요한 것은 "여성이 혁명의 적이었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은 혁명을 지지하기도 했고, 반대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혁명이든 반혁명이든 여성이 '주체'로서, 부추김, 선동, 퇴행성 탓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판단에 따라 참여함으로써 혁명을 자신의 무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성을 위한 혁명은 없다'라거나 '혁명은 여성을 배반했다'는 표제는 이미 혁명을 남성과 동일시하고 여성을 혁명의 타자로 전제한다. "자코뱅 정권에 버림받고 나폴레옹에게 따귀 맞고 부르봉 왕정복고기에 숨죽여 지내야만 했던 여성들의 억울한 원혼"(51쪽)에 관심을 갖는 것은 감사한 일이나, 여성을 시공초월의 희생자로 보는 시각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다음으로 저자는 '노동과 복지를 위한 프랑스혁명은 없다'는 제목 아래 그 논거로 혁명기의 세 인권선언을 소개한다. 그 중 저자의 논지와 관련해 중요한 것은 산악파가 민중봉기를 통해 권력을 독점한 후 선포한 1793년(혁명력 1년)의 인권선언일 것이다.
이 인권선언은 인간의 보편적 권리와 소유권의 신성불가침성을 선포한 1789년 선언에서 더 나아가 "사회는 불행한 시민에게 노동을 제공해주거나 노동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자들에게는 생존수단을 보장해줌으로써 생계의 의무를 지닌다"고 선언했다. 그것은 지롱드파인 콩도르세의 초안과 산악파인 로베스피에르의 초안을 모두 수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테르미도르 쿠데타로 산악파가 몰락한 이후 잔존 국민공회가 선포한 1795년의 인권선언은 "소유권의 유지 여부에 전 사회질서가 달려 있다"고 선언하고 노동권과 공공부조권을 배제했다.
'빵과 혁명력 1년의 인권선언'은 테르미도르 이후 19세기 중엽까지 노동자와 사회주의자들의 끈질긴 구호이자 요구였다. 혁명기 마지막 인권선언이 그것을 부정했다고 해서 노동과 복지를 위한 프랑스혁명은 없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까? 그런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상퀼로트의 역할과 혁명의 급진화, 그에 따라 고조된 노동권과 소유권을 둘러싼 산악파 담론과 의회 내 논쟁, 제정된 헌법을 시행할 수 없었던 상황 등이 검토되어야 한다. 그럴 때 세 인권선언은 프랑스혁명이 어디까지 나아갔고 어느 지점에서 왜 멈추었는지 드러내준다. 독자에게 강한 임팩트를 주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뽑았겠지만 저자는 세 인권선언의 특징을 열거하는데 그칠 뿐 제목을 책임 있게 입증하지 않는다.
▲ 아벨 강스의 1927년 영화 <나폴레옹>.
마지막으로 저자는 프랑스 식민지 생도맹그의 혁명을 통해 아이티가 탄생하는 과정을 요약한 후 노예제도의 철폐는 "인권선언의 자연스럽고 보편주의적인 결과라기보다 제국주의 충돌이 낳은 부산물"(75쪽)이었다고 지적한다. 또한 삼부회에 제출된 진정서들로 미루어보건대 유색인의 자유와 해방은 애초부터 혁명의 프로그램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자코뱅 지도자 역시 노예해방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유색인을 위한 프랑스혁명은 없다"는 것이다.
틀리지 않다. 그러나 "애초부터" 혁명의 프로그램에 들어 있던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과연 애초에 "혁명의 프로그램"이란 것이 있기나 했던가? 게다가 인류사의 중요한 무엇인가를 인권선언의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결과"로 획득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가? 아이티의 유색인과 노예는 자신들의 전통 위에서 프랑스혁명과 조우했고 그것을 통해 스스로의 혁명, 아이티혁명을 만들어냈으며 그것은 프랑스혁명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만큼이나 그것에 영향을 미쳤다. 중요한 것은 그 구체적인 양상과 과정,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며 이미 수많은 식민지 연구가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혁명이 시작될 때 여성, 노동, 노예에 주목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이들은 혁명의 상승 과정에서 주역으로 대두하여 혁명의 새로운 동력을 이끌어 냈고 그 결과 여러 층위의 혁명을 만들어 냈다. 그런 점에서 여성을 위한, 노동을 위한, 노예와 유색인을 위한 혁명이 없다고 비판하는 것은 초점을 벗어난 것이다. 프랑스혁명 안에는 여성의 혁명, 노동의 혁명, 노예와 유색인의 혁명이 존재하고 바로 그것이 연구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어리석게 혁명의 추억에 더는 매달리지 않기 위해 원조혁명의 앞과 뒤를 재점검"할 것을 촉구한다. 재점검의 결론이 위에 살펴본 '혁명의 배반'이다. 어쨌든 저자가 혁명의 배반을 확인했다면 이제 어찌할 것인가? 그 답은 책의 본문이 아니라 저자의 에필로그에 있다. 저자는 푸코에 의지해 "동질적이며 목적론적인 낡은 혁명관으로부터 저항의 기억을 구출해" 작고 이름 없는 혁명들의 중요성을 재조명할 것을 주장한다.
'혁명의 배반'의 대구를 이루는 '저항의 기억'과 '작고 이름 없는 혁명들'은 이 책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는가? 아마도 저자는 저항의 기억을 구출할 대안적 혁명사 서술을 책의 3부에서 소개하는 혁명기 담론, 축제, 기념물 연구, 일상정치문화사 연구, 바스티유 감옥과 '라 마르세예즈' 변천사 연구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이들 각각의 주제는 매우 흥미로울 뿐 아니라 문화적 소재를 통해 혁명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이들 문화사 연구가 과연 '저항의 기억'이라는 주제에 값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저항의 기억은 문화사가 아니라 차라리 저자가 배반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 노동자, 노예와 유색인의 혁명사로 돌아감으로써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실상 프랑스혁명에 대한 저자의 관점은 에필로그를 읽고서야 명료해진다. 동시에 이 책의 문제도 정리된다. 프랑스혁명에 대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저자의 에세이인 머리말과 에필로그에서 육성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본문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논문들은 저자의 에세이를 실증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하고 이미 축적된 연구 성과를 충실히 따라가지도 않는다.
결국, 프랑스혁명에 대한 이 두 책은 모두 씁쓸하다. 하나는 혁명을 모독하느라 왕에게 골몰하고, 다른 하나는 혁명의 '배반'을 내세우며 결실 없이 비장하다. 혁명에서 폭력만을 부각해 자신의 새로운 정치적 신념을 드러내기만 하는 갈로의 책이 꽤 한심하다면, 애초 혁명이 지닌 역동성과 복합성을 깨부순 뒤 근사한 강령적 선들을 마구 그려 넣는 육영수의 책은 참 심심하다. 그렇게 해서는 프랑스 혁명기 다양한 민중들의 절규와 아우성, 웅성거림과 속삭임을 제대로 들을 수 없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과거의 혁명을 그렇게 형해화해서 이해하면 현재 민중의 다양한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귀도 어느새 사라지고 만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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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영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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