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에 의하여 신(神)이 된 예수
투표에 의하여 신(神)이 되어 버렸 예수
퍼온글입니다. 작자는 미상
주여 자비를 베푸시고 진리의 말씀을 께닫게 하소서.....
제1차 종교회의(니케아)
324년에 콘스탄티누스가 로마제국의 동부에서 그의 정적인 리키니우스를 이기고 정권을 장악하자, 그는 325년 니케아에서 최초로 종교회의를 개최했다. 당시 교회는 예수의 신성(神性)문제를 둘러싸고 생겨난 아리우스 논쟁 때문에 분열의 위기에 놓였다. 콘스탄티누스는 이 분쟁이 국가적 차원에서 분열이 조장될 것을 걱정하여 황제 자신의 주선으로 그 당시 황제의 거주지인 니케아에서 종교회의를 개최케 했는데, 이 회의의 동기는 아리우스 논쟁 즉,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아리우스파(派)를 이단(異端)으로 단죄하여 분열된 교회를 통일시키기 위함이었다.
이 회의를 통해서 예수는 투표에 의하여 신(神)이 되어 버렸는데, 기존의 상당수의 기독교는 예수를 신으로 여기지 않았다. 삼위일체 설의 허구성에서 신약의 저자들도 복음서를 기록할 때, 예수와 여호와를 동등하지 않게 기록했음을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초대교회사람들에게 예수는 신의 독생자로 모든 창조물 중에 으뜸가는 존재요, 모든 선지자중에 으뜸인 인간으로, 신과 인간의 중간에 놓인 중보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은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 속에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후기에 이르러서 기독교는 차츰 미트라의 영향을 받아가면서 그 당시 대표종교이었던 미트라교의 성 삼위일체 설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기독교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정통파 아리우스파와 미트라의 삼위일체 설을 받아들인 아타나시우스파로 갈려지게 된다. 미트라교의 숭배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니케아 종교회의를 개최하면서 아리우스파를 단죄하려고 했다. 당시 콘스탄티누스는 세례도 받지 않은 상태로 종교회의를 사회하면서 공포적인 분위기로 회의를 주도해갔다. 콘스탄티누스는 모인 사람 중 몇 명을 추방하고 종교회의의 다수 규칙을 따르지 않는 자는 누구나 죽이라고 명령했다. 교회의 불일치는 제국의 분열을 가져올 것이므로 연합하지 않는 자는 죽이라고 명령을 내려 회의장은 그야말로 공포의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 회의의 참석자는 318명이라고 하나 분명치 않다. 이들을 감독들(교부)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은 각자 장로 두 명과 수행원 셋을 거느리고 니케아에 모였다.
결국 기독교의 삼위일체 설은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전두환 의장에 의해 강제로, 그러나 투표에 의해서 통과된 계엄령과 같은 것 아닌가요? 결국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는 의도적인 소설이라는 것 입니다. 그것도 콘스탄티누스 황제 자신이 신봉하던 미트라교의 교리를 기독교에 옮겨놓은 짝퉁 입니다.
퍼온글입니다. 작자는 미상
주여 자비를 베푸시고 진리의 말씀을 께닫게 하소서.....
제1차 종교회의(니케아)
324년에 콘스탄티누스가 로마제국의 동부에서 그의 정적인 리키니우스를 이기고 정권을 장악하자, 그는 325년 니케아에서 최초로 종교회의를 개최했다. 당시 교회는 예수의 신성(神性)문제를 둘러싸고 생겨난 아리우스 논쟁 때문에 분열의 위기에 놓였다. 콘스탄티누스는 이 분쟁이 국가적 차원에서 분열이 조장될 것을 걱정하여 황제 자신의 주선으로 그 당시 황제의 거주지인 니케아에서 종교회의를 개최케 했는데, 이 회의의 동기는 아리우스 논쟁 즉,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아리우스파(派)를 이단(異端)으로 단죄하여 분열된 교회를 통일시키기 위함이었다.
이 회의를 통해서 예수는 투표에 의하여 신(神)이 되어 버렸는데, 기존의 상당수의 기독교는 예수를 신으로 여기지 않았다. 삼위일체 설의 허구성에서 신약의 저자들도 복음서를 기록할 때, 예수와 여호와를 동등하지 않게 기록했음을 언급한 바 있다. 당시 초대교회사람들에게 예수는 신의 독생자로 모든 창조물 중에 으뜸가는 존재요, 모든 선지자중에 으뜸인 인간으로, 신과 인간의 중간에 놓인 중보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은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 속에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후기에 이르러서 기독교는 차츰 미트라의 영향을 받아가면서 그 당시 대표종교이었던 미트라교의 성 삼위일체 설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기독교는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정통파 아리우스파와 미트라의 삼위일체 설을 받아들인 아타나시우스파로 갈려지게 된다. 미트라교의 숭배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니케아 종교회의를 개최하면서 아리우스파를 단죄하려고 했다. 당시 콘스탄티누스는 세례도 받지 않은 상태로 종교회의를 사회하면서 공포적인 분위기로 회의를 주도해갔다. 콘스탄티누스는 모인 사람 중 몇 명을 추방하고 종교회의의 다수 규칙을 따르지 않는 자는 누구나 죽이라고 명령했다. 교회의 불일치는 제국의 분열을 가져올 것이므로 연합하지 않는 자는 죽이라고 명령을 내려 회의장은 그야말로 공포의 분위기였다고 한다.
이 회의의 참석자는 318명이라고 하나 분명치 않다. 이들을 감독들(교부)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은 각자 장로 두 명과 수행원 셋을 거느리고 니케아에 모였다.
결국 기독교의 삼위일체 설은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전두환 의장에 의해 강제로, 그러나 투표에 의해서 통과된 계엄령과 같은 것 아닌가요? 결국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는 의도적인 소설이라는 것 입니다. 그것도 콘스탄티누스 황제 자신이 신봉하던 미트라교의 교리를 기독교에 옮겨놓은 짝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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