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서방의 세상이야기(등산과 절(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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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많이 젊었을 때, 산 오르길 좋아했다.
딱히 오르길 좋아했다기보다는 산의 가슴에 묻히길 좋아했다.
20대 후반부터 시작한 등산 병은 아직도 남아 아무대고 나무만 많이 보이면 들이고 산이고 무턱대고 그 사이 사이로 걷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그래서 당시 토, 일은 당연하고 연휴엔 어김없이 산으로 치닫곤 하여 아무도 서울에선 날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었지...
이렇게 된 데는
처음엔 젊은 나이에 시작한 딱딱한 관료생활에서 오는 이유 없는 거부반응 같은 것으로 거저 탈출 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산을 찾았으나 해가 거듭되면서 이런 관직생활이 결국 나의 사고를 어느 한 쪽으로 경직화 되게 만들어 더욱 산을 찾게 되었다.
이렇게 사고의 경직화를 느끼게 된 난 취미로서 등산이 아닌 엿새간의 찌든 나의 정신 상태를 하루라도 바로잡아 보자는 뜻으로 나 자신을 치유(治癒)차 더욱 산을 찾게 되었다.
관직생활?
이렇게 살다갈 수는 없어 하고는 20년의 공직을 내 발로 차고 새 삶을 찾아 45의 젊지도 늙지도 않은 어정쩡한 나이에 미국행 비행기를 탔지만 관료조직의 병폐는 정말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가 어려울 것으로 본다.
이런 병폐의 근본적인 원인을 어느 특정인이 그렇게 만든다거나 공직자의 청렴성 부족에서 찾는 식의 획일적 판단은 옳지 않다.
여기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관조직의 상의하달 운영방식이 급변하는 시대에 부응하지 못 하는 유연성 부족과
국가라는 거대 조직을 이끌고 갈 국가의 동량(棟梁)을 훈련시키고 만들 생각은 않고
만들어진 정치꾼을 찾고 있는 낮은 민도가 주된 원인이라고 본다.
일례로 이러기 위해선
한국의 지자제의 단체장과 그 의회는 정당 공천제에서 예외가 되어 정치 지망생으로서의 아무에게도 눈치 보지 않고 오직 민의만 생각하는 그런 바른 소신과 경력을 쌓게 하는 마당이 된 다음 더 큰 일을 할 수 있게 제도화 되어야 한다.
민도와 관조직의 병폐를 얘기 해보면
이는 한 인간이 커 가면서 잘 잘못을 스스로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얻고
그 앎대로 행하여 바른 인간이 되고 그런 바른 사람들이 많아짐으로써 사회가 더불어 깨끗해져
그런 병폐가 사회에 발붙일 곳이 없게 되는 민도의 성숙이 선행되어야만 근본적으로 관조직의 병폐는 치유가 가능하다고 본다.
공직자의 부정부패가 사회에 미치는 역기능은 이미 여러분이 다 아는 터이나 반드시 이런 역기능만 있는 게 아니고 순기능도 있다는 것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이건 이 사람이 100% 깨끗했다거나 아니면 벌을 받지는 않아도 지탄을 받을 정도의 깨끗하지 못 했다는 사적인 얘기가 아니다.
이런 문제의 답은 아마도 사람 사는 곳엔
지고(至高)도 지순(至順―)도 없다는 옛말을 생각해보면 그 답이 나올 것으로 본다.
얘기가 너무 옆으로 나간 것 같아 돌아가 산 얘길 계속하면..
그래서 산에 오르다 힘이 부치면 등은 나무 밑뚱에 신세를 지고 발은 바위에 허락도 없이 올려놓고는 흘러가는 뜬 구름을 멍하니 쳐다보며 피웠던 그 담배 맛....
나뭇가지 사이로 흩어져 머얼리 머얼리 날아가다 금세 보이지 않게 되는 그 연기를 따라가노라면 무엇이 언제 어쨌다는 거냐는 듯 찌들어진 자신이 연기처럼 사라진다.
이렇게 서울의 주변산은 토 일요일에 오르지만 멀리 있는 큰 산들은 연휴를 이용해 친구들과 같이 오른다. 그런데 한국의 대 부분의 큰 산이라고 하면 반드시 길목이나 깊숙이에 사찰이 하나씩은 있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깊은 산속에서 산사를 만나면 아주 반가웠다. 물론 이 당시는 불교에 대해 알지도 못 하였고 그저 사월 초파일에 어른들이 절에 가서 등을 달고 뭔가 빌고 오는 석가모니 탄신일이라는 것 이왼 전연 불교에 대한 문외한 (門外漢)이었다.
왜 이렇게 사찰을 보면 반가운 건지는 대강 이러했다.
우선 그저 불상 앞에 빌면 그래도 하지 않은 것보다야 났겠지 하는 속된 마음과
만일 이 등정에 불상사가 생겨 누군가 우리 일행을 추적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나 여기 들렸다 갑니다 하는 표식을 남기기 위해 절에 들어가 절을 하고 이름을 적어 두기 위해서였다.
그 때, 절을 하면서 나의 마음은 늘 이러했었다.
첫째는 며칠간이지만 이 등정 중 나와 일행들이 무사히 잘 마쳤으면 하는 마음과
다음은 집에 남은 나와 일행들의 식구들이 무탈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전부였었지...
산은 말이 없어 좋고
산은 거짓이 없어 좋고
산은 아무나 다 반겨 줘 좋다.
다행하게도 여기 새로 이사 온 동네엔 산 밑을 따라 한 쪽엔 승마 연습로로 다른 한 쪽은 자전거와 보행자들을 위한 WALKING TRAIL이 약 2마일 정도라서 매일 건강을 위해서라도 기분 좋게 걷고 있다.
하루에 식전 사과 한 알과
만보를 걸으면 의사를 볼 일이 없다고 누가 말했다지요?
여러분!
읽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힘찬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한 때 많이 젊었을 때, 산 오르길 좋아했다.
딱히 오르길 좋아했다기보다는 산의 가슴에 묻히길 좋아했다.
20대 후반부터 시작한 등산 병은 아직도 남아 아무대고 나무만 많이 보이면 들이고 산이고 무턱대고 그 사이 사이로 걷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그래서 당시 토, 일은 당연하고 연휴엔 어김없이 산으로 치닫곤 하여 아무도 서울에선 날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었지...
이렇게 된 데는
처음엔 젊은 나이에 시작한 딱딱한 관료생활에서 오는 이유 없는 거부반응 같은 것으로 거저 탈출 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산을 찾았으나 해가 거듭되면서 이런 관직생활이 결국 나의 사고를 어느 한 쪽으로 경직화 되게 만들어 더욱 산을 찾게 되었다.
이렇게 사고의 경직화를 느끼게 된 난 취미로서 등산이 아닌 엿새간의 찌든 나의 정신 상태를 하루라도 바로잡아 보자는 뜻으로 나 자신을 치유(治癒)차 더욱 산을 찾게 되었다.
관직생활?
이렇게 살다갈 수는 없어 하고는 20년의 공직을 내 발로 차고 새 삶을 찾아 45의 젊지도 늙지도 않은 어정쩡한 나이에 미국행 비행기를 탔지만 관료조직의 병폐는 정말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가 어려울 것으로 본다.
이런 병폐의 근본적인 원인을 어느 특정인이 그렇게 만든다거나 공직자의 청렴성 부족에서 찾는 식의 획일적 판단은 옳지 않다.
여기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관조직의 상의하달 운영방식이 급변하는 시대에 부응하지 못 하는 유연성 부족과
국가라는 거대 조직을 이끌고 갈 국가의 동량(棟梁)을 훈련시키고 만들 생각은 않고
만들어진 정치꾼을 찾고 있는 낮은 민도가 주된 원인이라고 본다.
일례로 이러기 위해선
한국의 지자제의 단체장과 그 의회는 정당 공천제에서 예외가 되어 정치 지망생으로서의 아무에게도 눈치 보지 않고 오직 민의만 생각하는 그런 바른 소신과 경력을 쌓게 하는 마당이 된 다음 더 큰 일을 할 수 있게 제도화 되어야 한다.
민도와 관조직의 병폐를 얘기 해보면
이는 한 인간이 커 가면서 잘 잘못을 스스로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얻고
그 앎대로 행하여 바른 인간이 되고 그런 바른 사람들이 많아짐으로써 사회가 더불어 깨끗해져
그런 병폐가 사회에 발붙일 곳이 없게 되는 민도의 성숙이 선행되어야만 근본적으로 관조직의 병폐는 치유가 가능하다고 본다.
공직자의 부정부패가 사회에 미치는 역기능은 이미 여러분이 다 아는 터이나 반드시 이런 역기능만 있는 게 아니고 순기능도 있다는 것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이건 이 사람이 100% 깨끗했다거나 아니면 벌을 받지는 않아도 지탄을 받을 정도의 깨끗하지 못 했다는 사적인 얘기가 아니다.
이런 문제의 답은 아마도 사람 사는 곳엔
지고(至高)도 지순(至順―)도 없다는 옛말을 생각해보면 그 답이 나올 것으로 본다.
얘기가 너무 옆으로 나간 것 같아 돌아가 산 얘길 계속하면..
그래서 산에 오르다 힘이 부치면 등은 나무 밑뚱에 신세를 지고 발은 바위에 허락도 없이 올려놓고는 흘러가는 뜬 구름을 멍하니 쳐다보며 피웠던 그 담배 맛....
나뭇가지 사이로 흩어져 머얼리 머얼리 날아가다 금세 보이지 않게 되는 그 연기를 따라가노라면 무엇이 언제 어쨌다는 거냐는 듯 찌들어진 자신이 연기처럼 사라진다.
이렇게 서울의 주변산은 토 일요일에 오르지만 멀리 있는 큰 산들은 연휴를 이용해 친구들과 같이 오른다. 그런데 한국의 대 부분의 큰 산이라고 하면 반드시 길목이나 깊숙이에 사찰이 하나씩은 있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깊은 산속에서 산사를 만나면 아주 반가웠다. 물론 이 당시는 불교에 대해 알지도 못 하였고 그저 사월 초파일에 어른들이 절에 가서 등을 달고 뭔가 빌고 오는 석가모니 탄신일이라는 것 이왼 전연 불교에 대한 문외한 (門外漢)이었다.
왜 이렇게 사찰을 보면 반가운 건지는 대강 이러했다.
우선 그저 불상 앞에 빌면 그래도 하지 않은 것보다야 났겠지 하는 속된 마음과
만일 이 등정에 불상사가 생겨 누군가 우리 일행을 추적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나 여기 들렸다 갑니다 하는 표식을 남기기 위해 절에 들어가 절을 하고 이름을 적어 두기 위해서였다.
그 때, 절을 하면서 나의 마음은 늘 이러했었다.
첫째는 며칠간이지만 이 등정 중 나와 일행들이 무사히 잘 마쳤으면 하는 마음과
다음은 집에 남은 나와 일행들의 식구들이 무탈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전부였었지...
산은 말이 없어 좋고
산은 거짓이 없어 좋고
산은 아무나 다 반겨 줘 좋다.
다행하게도 여기 새로 이사 온 동네엔 산 밑을 따라 한 쪽엔 승마 연습로로 다른 한 쪽은 자전거와 보행자들을 위한 WALKING TRAIL이 약 2마일 정도라서 매일 건강을 위해서라도 기분 좋게 걷고 있다.
하루에 식전 사과 한 알과
만보를 걸으면 의사를 볼 일이 없다고 누가 말했다지요?
여러분!
읽으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힘찬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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