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서방의 세상이야기(낙엽 단상-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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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글을 퍼 왔는지부터 설명을 하는 게 옳은 순서가 될 것 같다.
12/31/2013년 이 사람이 #19332 “박 서방의 세상이야기(송구영신)”에서
“우리네 인생이란
원래가 무시무종인 걸......”
이라는 대목에서 “무시무종”에 대한 설명과 증명을 요구하는 댓글을 주신 분이 있었다. 그래서 간단한 설명은 되지만 증명까지는 어렵겠다는 짧은 답 글을 하였다.
그리고 이 사람은 새해를 아들네에서 보내기로 하여 집을 비워 책상을 멀리 하고 있었던 차에 고맙게도 이 답을 두 분, Zen Nirvana Bin Kahn 님이 해주신 걸 나중에 읽어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설명은 내가 해도 그 이상은 설명이 필요치 않을 만큼 아주 좋은 자세한 설명이라 보였지만 댓글을 주신 분께서는 그 설명이 마음에 차질 않은 것 같은 댓글을 또 주었다.
이런 차에 오늘 아침 산책을 나갔다가 낙엽을 밟으면서 낙엽도 하나의 잎새로 있을 때의 그 연록의 풋풋함은 어디론가 없어지고 이젠 바람에 딩굴다 돌이나 주위에 부닥쳐 부서지고 우리들 산책자의 발에 밟히다가 종내는 그 낙엽의 형체마저 없어져 가루가 되고 먼지가 되어 어디론가 갈 것이다.
그럼 이 낙엽은 어느 것이 시작이고 어느 것이 끝이란 말인가를 생각하다보니
어제의 그 분의 심기를 상하게 하지 않고 이것으로 그 설명이 대신 되었으면 해서 [낙엽단상]이란 글을 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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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펌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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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창훈(면역학자)의 글 -
낙엽수들은 왜 가을이 되면 잎새를 땅으로 떨굴까?
생물학에서는 낙엽이 되는 과정을 이층형성(Abscission)이라 일컫는다. 이층(異層)이란 말 그대로 단일한 존재였던 한 덩어리에서 일부가 다른 존재로 변화되어 이룬 층을 의미한다.
가을이 되기 전까지 잎새는 가지와 한 몸이었다.
가을이 되어 해가 짧아지고 온도가 내려가면서 잎에서 벌어지던 광합성 작용은 감소되기 시작한다. 그 상호작용으로 뿌리에서 올라오던 물길은 더 이상 잎새까지 이르지 못하고 무기 영양분들도 발길을 감추기 시작한다.
나무 안에 있는 호르몬 중 수베린이라는 물질이 가지로부터 잎으로 연결되는 수관과 체관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결국 그 관들이 막히다시피 하면서 그 흐름이 끊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관이 막히면 다시 광합성에 필요한 물질들이 잎까지 전달되지 못하여서 잎에서의 광합성은 사실상 종료된다.
이로써 잎은 엽록소 고유의 빛깔 즉 초록색을 잃고 때론 갈색으로 때론 빨강색으로 변색된다. 어찌보면 매정한 자연의 섭리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현상들을 유심히 들여다 보고 있다 보면 생명의 원리와 관련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끊임없는 외계와의 조화를 통해서만 생명체는 항상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구름과 아침 햇살, 바람과 새들의 흔적, 애벌레들과 작은 생명체들, 빗줄기들과 산책하는 사람들의 입김과 발자국, 건너편 인가에서 번져오는 굴뚝 연기와 가축들의 배설물.
자가 영양을 하는 낙엽수는 일조량의 변화와 습도의 변화 그리고 주변에 미만한 공기의 조성이 바뀌는 것에 조응하며 제 몸 구석구석을 생장시키고 변모시키고 사멸시키는 부단한 작업을 한다.
나무는 수동적으로 환경에 영향을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또한 영향을 주기도 한다. 호흡과 광합성을 반복하며 주변 대기의 조성을 변모시키고, 습기를 머금기도 하고 다시 밖으로 배출하면서 주변에서 벌어지는 습도의 변화에 일조하기도 한다.
제 몸으로 바람을 막거나 그 흐름을 변화시키기도 하고 빗물을 제 몸에 받아들여 비탈로 흐르는 물줄기의 양과 흐름을 조절하기도 한다.
사람의 몸 안이 이루 헤아리기 힘들만한 복잡계이듯,나무가 그 주변과 어울리고 영향을 서로 주고받는 양상 역시 헤아리기 힘들만치 다양한 변수들의 조합을 통해 만들어진다.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가 단지 시인의 상상력을 기술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생명이 한번 기지개를 켜고, 흔들리고, 몸을 변모시키는 매 순간 순간마다 사람의 짧고 둔한 머리로는 파악하기 힘든 온갖 인연들의 합주가 재연되고 또 재연되는 것이다.
꽃이 피고 낙엽이 지는 것은 이러한 기적들 가운데 아주 일부가 우리 눈에 선명히 윤곽을 드러내는 것일 따름이다. 낙엽은 떨어져 유기체로서 그 생명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람에 마르다가 조각 조각나고 일부는 비나 눈의 도움을 입어 땅 속에 스며들어 다시 나무의 영양분이 되어 나무와 한 몸을 이루게 되고,
일부는 가루로 날리다 벌레들과 산새들과 산책하는 사람들의 입 속으로 타고 들어가 그 생명체들의 세포 속에 이러 저러한 유기물 무기물의 형상으로 스며들게 된다.
낙엽은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이 역시 생명이 부단히 간직해온 항상성을 이루는 한 모습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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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왜 이글을 퍼 왔는지부터 설명을 하는 게 옳은 순서가 될 것 같다.
12/31/2013년 이 사람이 #19332 “박 서방의 세상이야기(송구영신)”에서
“우리네 인생이란
원래가 무시무종인 걸......”
이라는 대목에서 “무시무종”에 대한 설명과 증명을 요구하는 댓글을 주신 분이 있었다. 그래서 간단한 설명은 되지만 증명까지는 어렵겠다는 짧은 답 글을 하였다.
그리고 이 사람은 새해를 아들네에서 보내기로 하여 집을 비워 책상을 멀리 하고 있었던 차에 고맙게도 이 답을 두 분, Zen Nirvana Bin Kahn 님이 해주신 걸 나중에 읽어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설명은 내가 해도 그 이상은 설명이 필요치 않을 만큼 아주 좋은 자세한 설명이라 보였지만 댓글을 주신 분께서는 그 설명이 마음에 차질 않은 것 같은 댓글을 또 주었다.
이런 차에 오늘 아침 산책을 나갔다가 낙엽을 밟으면서 낙엽도 하나의 잎새로 있을 때의 그 연록의 풋풋함은 어디론가 없어지고 이젠 바람에 딩굴다 돌이나 주위에 부닥쳐 부서지고 우리들 산책자의 발에 밟히다가 종내는 그 낙엽의 형체마저 없어져 가루가 되고 먼지가 되어 어디론가 갈 것이다.
그럼 이 낙엽은 어느 것이 시작이고 어느 것이 끝이란 말인가를 생각하다보니
어제의 그 분의 심기를 상하게 하지 않고 이것으로 그 설명이 대신 되었으면 해서 [낙엽단상]이란 글을 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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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창훈(면역학자)의 글 -
낙엽수들은 왜 가을이 되면 잎새를 땅으로 떨굴까?
생물학에서는 낙엽이 되는 과정을 이층형성(Abscission)이라 일컫는다. 이층(異層)이란 말 그대로 단일한 존재였던 한 덩어리에서 일부가 다른 존재로 변화되어 이룬 층을 의미한다.
가을이 되기 전까지 잎새는 가지와 한 몸이었다.
가을이 되어 해가 짧아지고 온도가 내려가면서 잎에서 벌어지던 광합성 작용은 감소되기 시작한다. 그 상호작용으로 뿌리에서 올라오던 물길은 더 이상 잎새까지 이르지 못하고 무기 영양분들도 발길을 감추기 시작한다.
나무 안에 있는 호르몬 중 수베린이라는 물질이 가지로부터 잎으로 연결되는 수관과 체관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결국 그 관들이 막히다시피 하면서 그 흐름이 끊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관이 막히면 다시 광합성에 필요한 물질들이 잎까지 전달되지 못하여서 잎에서의 광합성은 사실상 종료된다.
이로써 잎은 엽록소 고유의 빛깔 즉 초록색을 잃고 때론 갈색으로 때론 빨강색으로 변색된다. 어찌보면 매정한 자연의 섭리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현상들을 유심히 들여다 보고 있다 보면 생명의 원리와 관련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끊임없는 외계와의 조화를 통해서만 생명체는 항상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구름과 아침 햇살, 바람과 새들의 흔적, 애벌레들과 작은 생명체들, 빗줄기들과 산책하는 사람들의 입김과 발자국, 건너편 인가에서 번져오는 굴뚝 연기와 가축들의 배설물.
자가 영양을 하는 낙엽수는 일조량의 변화와 습도의 변화 그리고 주변에 미만한 공기의 조성이 바뀌는 것에 조응하며 제 몸 구석구석을 생장시키고 변모시키고 사멸시키는 부단한 작업을 한다.
나무는 수동적으로 환경에 영향을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또한 영향을 주기도 한다. 호흡과 광합성을 반복하며 주변 대기의 조성을 변모시키고, 습기를 머금기도 하고 다시 밖으로 배출하면서 주변에서 벌어지는 습도의 변화에 일조하기도 한다.
제 몸으로 바람을 막거나 그 흐름을 변화시키기도 하고 빗물을 제 몸에 받아들여 비탈로 흐르는 물줄기의 양과 흐름을 조절하기도 한다.
사람의 몸 안이 이루 헤아리기 힘들만한 복잡계이듯,나무가 그 주변과 어울리고 영향을 서로 주고받는 양상 역시 헤아리기 힘들만치 다양한 변수들의 조합을 통해 만들어진다.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가 단지 시인의 상상력을 기술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생명이 한번 기지개를 켜고, 흔들리고, 몸을 변모시키는 매 순간 순간마다 사람의 짧고 둔한 머리로는 파악하기 힘든 온갖 인연들의 합주가 재연되고 또 재연되는 것이다.
꽃이 피고 낙엽이 지는 것은 이러한 기적들 가운데 아주 일부가 우리 눈에 선명히 윤곽을 드러내는 것일 따름이다. 낙엽은 떨어져 유기체로서 그 생명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람에 마르다가 조각 조각나고 일부는 비나 눈의 도움을 입어 땅 속에 스며들어 다시 나무의 영양분이 되어 나무와 한 몸을 이루게 되고,
일부는 가루로 날리다 벌레들과 산새들과 산책하는 사람들의 입 속으로 타고 들어가 그 생명체들의 세포 속에 이러 저러한 유기물 무기물의 형상으로 스며들게 된다.
낙엽은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다.
이 역시 생명이 부단히 간직해온 항상성을 이루는 한 모습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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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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