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통찰력, 불이(不二)
불이(不二)
-가섭스님 -
사찰의 불이문은 분별하며 살던 우리의 삶을 원융한 삶으로 전환하여 현상적인 분별에 현혹되지 않는 지혜로운 삶을 이루게 하는 가르침이 있다. 둘이 아니지만 하나도 아닌 불이사상은 불교의 철학이 집약되어있는 것으로 현상적으로는 이분법적인 모습이지만 본질적으로 하나의 괘로 함께 작용하는 이치다.
하늘과 땅이 그러하고 낮과 밤이 그러하며 음과 양이 그러하다. 그래서 부처님의 세계로 가기위해서는 반듯이 갖추어야하는 지혜의 눈인 것이다. 그래서 불교의 가치 중 으뜸으로 꼽을 만한 것이 불이사상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얼핏 보면 현상들은 모두 둘로 나누어 존재한다. 그래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인해 항상 대립하고 갈등을 한다. 이러한 분별들은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욕망이 되어 마음의 틀을 이룬다. 서로의 접점을 찾지 못하고 나누어 인식하는 습관들은 서로를 경쟁과 정복해야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결과로 남는 경우가 많다.
현대문명을 한계점으로 몰아온 분리와 경쟁과 정복과 지배의 논리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문명을 건설할 수 있는 패러다임을 우리는 불이(不二)사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 불이는 현상적 차별에 대하여 분별이 없는 것이나 온갖 분별을 초월한 것을 의미한다.
얼핏보면 세상은 둘로 나뉘어서 대립
심화된 현대사회의 ‘불이사상’이 대안
현상적 모습은 독립적인 고정된 실체를 갖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연기적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이는 발생론적인 측면보다는 관계론적인 측면이 더 강하다. 불이사상은 이 우주 속의 모든 것들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통찰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는 삶에서 이분법적 인식의 틀과 방식을 전환해야 얻을 수 있는 마음이다.
불이는 범아불이(梵我不二), 자타불이(自他不二), 생사불이(生死不二)라는 큰 가르침이 있다. 범아불이는 종교적인 측면에서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닌 존재라는 것이다. 우주적 존재의 힘에 지배되거나 지배하는 관계가 아닌 모든 존재들과 화해하고 협력하는 공생과 상생의 관계라는 것이다.
자타불이는 사회적 관계에서 우리가 남들에게 한 짓이 자신에게 한 짓이며, 남들의 고통이 우리의 고통이고, 남들의 기쁨이 자신의 기쁨이라는 통합적인 사고를 통해 세상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참으로 위험한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면서도 갈수록 평화통일의 미래가 불투명한 것 또한 이를 반증하는 것이다.
또한 사회의 계층간, 지역간, 세대간 갈등관계도 좀처럼 쉽게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것도 자타불이라는 이치를 망각한 결과이다. 심화된 현대사회의 갈등구조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불이사상은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정에서도 남편과 부인,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도 자타불이는 조금 더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생각의 바탕이 될 수 있다. 생사불이는 수행을 통해서 성취할 수 있는 가장 불교적인 가르침이다. 그래서 이해가 아닌 체득을 해야 한다. 생사불이는 났다 없어졌다 하는 생멸(生滅)이 하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체득해 허망과 집착에서 마음에서 벗어나 진솔한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는 지금 당장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불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지금부터 불이적 관점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내려놓자. 물론 지금 우리의 모습이 거짓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분법적으로 인식된 현실과 현상도 참이다.
하지만 불이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거기서 마음의 평화를 얻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새로운 세기를 리드할 엄청난 사상을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면 세상은 불이(不二)적 세계이기 때문이다.
-가섭스님 -
사찰의 불이문은 분별하며 살던 우리의 삶을 원융한 삶으로 전환하여 현상적인 분별에 현혹되지 않는 지혜로운 삶을 이루게 하는 가르침이 있다. 둘이 아니지만 하나도 아닌 불이사상은 불교의 철학이 집약되어있는 것으로 현상적으로는 이분법적인 모습이지만 본질적으로 하나의 괘로 함께 작용하는 이치다.
하늘과 땅이 그러하고 낮과 밤이 그러하며 음과 양이 그러하다. 그래서 부처님의 세계로 가기위해서는 반듯이 갖추어야하는 지혜의 눈인 것이다. 그래서 불교의 가치 중 으뜸으로 꼽을 만한 것이 불이사상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얼핏 보면 현상들은 모두 둘로 나누어 존재한다. 그래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인해 항상 대립하고 갈등을 한다. 이러한 분별들은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욕망이 되어 마음의 틀을 이룬다. 서로의 접점을 찾지 못하고 나누어 인식하는 습관들은 서로를 경쟁과 정복해야하는 대상으로 인식하는 결과로 남는 경우가 많다.
현대문명을 한계점으로 몰아온 분리와 경쟁과 정복과 지배의 논리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문명을 건설할 수 있는 패러다임을 우리는 불이(不二)사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 불이는 현상적 차별에 대하여 분별이 없는 것이나 온갖 분별을 초월한 것을 의미한다.
얼핏보면 세상은 둘로 나뉘어서 대립
심화된 현대사회의 ‘불이사상’이 대안
현상적 모습은 독립적인 고정된 실체를 갖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연기적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이는 발생론적인 측면보다는 관계론적인 측면이 더 강하다. 불이사상은 이 우주 속의 모든 것들의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통찰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는 삶에서 이분법적 인식의 틀과 방식을 전환해야 얻을 수 있는 마음이다.
불이는 범아불이(梵我不二), 자타불이(自他不二), 생사불이(生死不二)라는 큰 가르침이 있다. 범아불이는 종교적인 측면에서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닌 존재라는 것이다. 우주적 존재의 힘에 지배되거나 지배하는 관계가 아닌 모든 존재들과 화해하고 협력하는 공생과 상생의 관계라는 것이다.
자타불이는 사회적 관계에서 우리가 남들에게 한 짓이 자신에게 한 짓이며, 남들의 고통이 우리의 고통이고, 남들의 기쁨이 자신의 기쁨이라는 통합적인 사고를 통해 세상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참으로 위험한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면서도 갈수록 평화통일의 미래가 불투명한 것 또한 이를 반증하는 것이다.
또한 사회의 계층간, 지역간, 세대간 갈등관계도 좀처럼 쉽게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것도 자타불이라는 이치를 망각한 결과이다. 심화된 현대사회의 갈등구조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불이사상은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정에서도 남편과 부인,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도 자타불이는 조금 더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생각의 바탕이 될 수 있다. 생사불이는 수행을 통해서 성취할 수 있는 가장 불교적인 가르침이다. 그래서 이해가 아닌 체득을 해야 한다. 생사불이는 났다 없어졌다 하는 생멸(生滅)이 하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체득해 허망과 집착에서 마음에서 벗어나 진솔한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는 지금 당장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불이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지금부터 불이적 관점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내려놓자. 물론 지금 우리의 모습이 거짓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분법적으로 인식된 현실과 현상도 참이다.
하지만 불이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거기서 마음의 평화를 얻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새로운 세기를 리드할 엄청난 사상을 경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면 세상은 불이(不二)적 세계이기 때문이다.

좋아요 0
태그
DISCLAIMER
이곳에 게시된 글들은 에이전트 혹은 사용자가 자유롭게 올린 게시물입니다. 커뮤니티 내용을 확인하고 참여에 따른 법적, 경제적, 기타 문제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케이타운 1번가는 해당 컨텐츠에 대해 어떠한 의견이나 대표성을 가지지 않으며, 커뮤니티 서비스에 게재된 정보에 의해 입은 손해나 피해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