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동화 운동
`세계2위` 中대사관 특별한 집들이
조촐하게…시진핑 `검소` 주문에 조용히
친근하게…이웃 상인·양로원 노인 모셔
기사입력 2014.01.23 17:20:19 | 최종수정 2014.01.24 07:5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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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중국대사관이 23일 서울 중구 명동에 자리잡은 대사관 개관식을 가졌다. 이 건물은 연면적 1만7199㎡의 10층 규모로 전 세계 중국대사관 중 두 번째로 큰 규모지만 이날 행사는 조촐하게 치러졌다. <이승환 기자>
23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명동에서 주한 중국대사관 개관식이 열렸다.
이번에 새로 문을 연 주한 중국대사관(서울시 중구 명동2가 83-7)은 연면적만 1만7199㎡(약 5200평)로 국내 주한 외교공관 가운데 가장 크다. 광화문에 위치한 미국대사관보다도 2배 넓다.
해외 중국대사관 중에선 미국 워싱턴DC 중국대사관(2만3000㎡)에 버금간다. 10층짜리 업무동과 52가구를 수용할 수 있는 숙소동으로 구성된다. 이번에 명동 시대를 열면서 70여 명의 대사관 직원 중 일부는 직장과 집을 한 보금자리에 두게 됐다. 중국대사관은 연 400만명에 달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관광의 심장부 명동에서 자국민을 맞이하게 됐다.
명동 중국대사관 자리는 임오군란(1882년) 이후 위안스카이(袁世凱) 등 조선에 파견 나온 청나라 관리가 머물던 유서 깊은 곳이다. 위안스카이는 1885년 당시 27세의 나이로 조선 주재 총리 교섭 통상대신으로 이곳에 와 10년간 조선의 정치ㆍ경제ㆍ외교 업무에 간여했다.
한국이 대만과 단교하기 전까지 이 건물은 중화민국(대만)대사관으로 쓰였다. 명동 중국대사관 정문 앞에 옛 `중정(中正ㆍ장제스) 도서관`이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중정은 장제스 전 대만 총통의 본명인 장중정에서 따왔다. 대만대사관 건물은 1992년 한ㆍ중 수교를 맺으며 중국이 양도받아 10년간 중국대사관으로 이용됐다. 2002년 종로구 효자동으로 이전했던 대사관은 12년 만에 옛 자리로 복귀한 것이다.
이날 개관 행사는 `조촐`하게 열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강조하고 있는 부정부패 척결, 호화연회 금지 등 변화에 발맞춰 검소하게 행사를 치러야 한다는 방침 때문이다. 행사에 초대받은 이들도 정부 고위 관료 대신 중구청 관계자와 명동관광특구협의회 회장, 근처 콩국수집 상인, 50년간 명동에서 살아온 토박이, 중구에 위치한 노인회 어르신 등이었다.
천하이 주한 중국대사관 대리대사는 "지난해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방한해 이곳을 둘러봤고 그때 사실상 개관식이라고 여겼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자리는 저희가 이사를 왔으니 함께 지낼 이웃들께 인사를 드리고 주변 상권에도 보탬이 되자고 마련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웃과 친하게 지내라는 본국 외교부의 지침을 따른 것이다. 거나한 연회 대신 중국식 가야금 고쟁으로 첨밀밀과 아리랑을 합쳐 만든 곡이 연주됐고, 모든 행사는 한국어로 이뤄졌다. 한국 친구들 사이로 녹아들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서유진 기자]
조촐하게…시진핑 `검소` 주문에 조용히
친근하게…이웃 상인·양로원 노인 모셔
기사입력 2014.01.23 17:20:19 | 최종수정 2014.01.24 07:5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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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중국대사관이 23일 서울 중구 명동에 자리잡은 대사관 개관식을 가졌다. 이 건물은 연면적 1만7199㎡의 10층 규모로 전 세계 중국대사관 중 두 번째로 큰 규모지만 이날 행사는 조촐하게 치러졌다. <이승환 기자>
23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명동에서 주한 중국대사관 개관식이 열렸다.
이번에 새로 문을 연 주한 중국대사관(서울시 중구 명동2가 83-7)은 연면적만 1만7199㎡(약 5200평)로 국내 주한 외교공관 가운데 가장 크다. 광화문에 위치한 미국대사관보다도 2배 넓다.
해외 중국대사관 중에선 미국 워싱턴DC 중국대사관(2만3000㎡)에 버금간다. 10층짜리 업무동과 52가구를 수용할 수 있는 숙소동으로 구성된다. 이번에 명동 시대를 열면서 70여 명의 대사관 직원 중 일부는 직장과 집을 한 보금자리에 두게 됐다. 중국대사관은 연 400만명에 달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관광의 심장부 명동에서 자국민을 맞이하게 됐다.
명동 중국대사관 자리는 임오군란(1882년) 이후 위안스카이(袁世凱) 등 조선에 파견 나온 청나라 관리가 머물던 유서 깊은 곳이다. 위안스카이는 1885년 당시 27세의 나이로 조선 주재 총리 교섭 통상대신으로 이곳에 와 10년간 조선의 정치ㆍ경제ㆍ외교 업무에 간여했다.
한국이 대만과 단교하기 전까지 이 건물은 중화민국(대만)대사관으로 쓰였다. 명동 중국대사관 정문 앞에 옛 `중정(中正ㆍ장제스) 도서관`이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중정은 장제스 전 대만 총통의 본명인 장중정에서 따왔다. 대만대사관 건물은 1992년 한ㆍ중 수교를 맺으며 중국이 양도받아 10년간 중국대사관으로 이용됐다. 2002년 종로구 효자동으로 이전했던 대사관은 12년 만에 옛 자리로 복귀한 것이다.
이날 개관 행사는 `조촐`하게 열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강조하고 있는 부정부패 척결, 호화연회 금지 등 변화에 발맞춰 검소하게 행사를 치러야 한다는 방침 때문이다. 행사에 초대받은 이들도 정부 고위 관료 대신 중구청 관계자와 명동관광특구협의회 회장, 근처 콩국수집 상인, 50년간 명동에서 살아온 토박이, 중구에 위치한 노인회 어르신 등이었다.
천하이 주한 중국대사관 대리대사는 "지난해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방한해 이곳을 둘러봤고 그때 사실상 개관식이라고 여겼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자리는 저희가 이사를 왔으니 함께 지낼 이웃들께 인사를 드리고 주변 상권에도 보탬이 되자고 마련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웃과 친하게 지내라는 본국 외교부의 지침을 따른 것이다. 거나한 연회 대신 중국식 가야금 고쟁으로 첨밀밀과 아리랑을 합쳐 만든 곡이 연주됐고, 모든 행사는 한국어로 이뤄졌다. 한국 친구들 사이로 녹아들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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