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대전 100주년
단기승부' 예상이 악몽으로…발칸·중동 분쟁 불씨도 남겨'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유럽 열강은 정치, 경제, 과학,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1914∼1918년 4년간 이어진 1차 대전으로 약 1천만 명의 유럽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유럽 경제는 파탄이 났다.
1차 대전 결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기존 강국을 대신해 미국이 세계 최고 강국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게 됐다.
1차대전은 2차대전의 씨앗도 품고 있었다. 독일은 자국에 엄청난 배상금을 부과한 1차대전 평화협정인 베르사유 조약에 불만을 품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유럽 열강들의 총력전 = 1914년 6월28일, 발칸반도 사라예보에서 10대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쏘아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오스트리아는 이 암살의 책임을 물어 세르비아에 굴욕적인 조건을 제시했으나 세르비아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이를 거부했다.
사라예보 암살 사건을 계기로 시작한 제1차 세계 대전은 연합국(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과 동맹국(독일, 오스트리아, 오스만 제국) 등 31개국이 참전하는 역사상 최초의 세계 전쟁으로 기록됐다.
1914년 여름 유럽 대륙에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당시만 하더라도 영국군의 구호는 "크리스마스는 집에서"였다.
또 빌헬름 2세 독일 황제는 군인들에게 "나뭇잎이 떨어지기 전 고향에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독일은 단기에 승부를 볼 생각이었다.
중립국인 벨기에를 침공하고 나서 파리로 진격했으나 1914년 9월 서부 전선의 마른 전투에서 진격이 저지됐다.
전투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장기적인 참호전의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그 결과 교전국은 징병제에 의한 병력 증강이나 경제력의 총동원을 추진한 '총력전' 체제를 구축했고 독가스, 전차, 폭격기 등 파괴력이 높은 무기가 처음으로 사용되면서 피해도 급증했다.
벨기에 예페르 전투와 프랑스 로렌의 베르됭 전투 등에서는 수십만 명의 군인들이 사망해 군인의 무덤으로 불리기도 했다.
1917년 혁명으로 러시아에서 군주제가 붕괴한 후 들어선 소비에트 정권은 독일과 단독 강화를 맺고 세계대전에서 빠져나갔다.
이후 독일이 잠수함을 이용해 미국 상선을 포함한 선박을 무차별 공격하자 1917년 미국이 참전함으로써 전쟁은 연합국의 승리로 기울었다.
1918년 독일 킬 군항에서 해군들이 폭동을 일으키면서 빌헬름 2세는 퇴위했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됐다.
1918년 11월 11일 연합국과 독일 간의 휴전이 성립됨으로써 전쟁은 끝났다.
◇원인과 파장 = 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적 야욕을 가진 유럽 열강들의 패권 다툼과 상호 간 두려움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당시 급성장한 독일은 바다에서 영국 해군의 지배권에 도전했으며 이는 영국에는 두려움이 됐다.
독일 역시 식민지 욕심이 커지면서 기존에 거대한 식민지를 건설한 영국, 프랑스와 갈등이 커지게 됐다.
1차대전 전문가인 게르트 크루마히 독일 뒤셀도르프대 교수는 "1차 대전 발발의 원인은 의심할 여지 없이 유럽 국가들의 경쟁이다"라면서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모든 국가는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 국가 발전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고 여겼다"고 분석했다.
4년 넘게 지속한 1차 대전은 19세기와 20세기의 진정한 분수령이 됐다.
이 전쟁으로 제국과 왕국이 잇달아 붕괴했다.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제국 등의 전제국가들이 무너지거나 해체됐고, 유럽 국가들의 절반에 가까운 국가에서 공화정이 수립됐다.
유럽 지배의 야심을 품은 독일과 전대미문의 파괴력을 지닌 현대식 무기가 결합하면서 그 피해도 엄청났다.
이전까지 총과 칼, 말과 야포를 동원한 재래식 전쟁의 모습은 사라졌으며 참호전과 전투기, 전차, 독가스, 기관총, 수류탄 등 많은 신무기가 새롭게 전쟁터에 등장했다.
그 결과 1차 대전에서 7천만 명 이상의 군인이 싸웠고 940만 명이 전사했다. 또 1천500여만 명이 부상했다.
독일에서 200만 명, 프랑스 130만 명, 영국 70만 명, 러시아 180만 명이 사망하는 등 무수히 많은 젊은이가 죽어나가면서 유럽 각국에서는 전쟁 후 수십 년이 지나도록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지기도 했다.
민간인 수백만 명도 전쟁에 휘말리면서 목숨을 잃었다.
1차 대전으로 모든 참전국이 빚더미에 올라서면서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수십 년 동안 국제관계는 삐거덕거리게 됐다.
특히 독일은 장기간 전쟁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고, 실직자가 속출했다.
더욱이 베르사유 조약으로 말미암은 과다한 배상금은 독일에서 아돌프 히틀러 집권과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의 원인이 됐다.
오스만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발칸 반도와 중동 지방에서는 많은 독립국이 생겨나게 되는데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분쟁의 불씨가 됐다.
사회적으로는 남성들이 전쟁에 나가면서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늘었고 민주주의가 발달하는 계기가 됐다.
sungjinpark@yna.co.kr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유럽 열강은 정치, 경제, 과학,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1914∼1918년 4년간 이어진 1차 대전으로 약 1천만 명의 유럽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유럽 경제는 파탄이 났다.
1차 대전 결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기존 강국을 대신해 미국이 세계 최고 강국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게 됐다.
1차대전은 2차대전의 씨앗도 품고 있었다. 독일은 자국에 엄청난 배상금을 부과한 1차대전 평화협정인 베르사유 조약에 불만을 품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유럽 열강들의 총력전 = 1914년 6월28일, 발칸반도 사라예보에서 10대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쏘아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오스트리아는 이 암살의 책임을 물어 세르비아에 굴욕적인 조건을 제시했으나 세르비아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이를 거부했다.
사라예보 암살 사건을 계기로 시작한 제1차 세계 대전은 연합국(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과 동맹국(독일, 오스트리아, 오스만 제국) 등 31개국이 참전하는 역사상 최초의 세계 전쟁으로 기록됐다.
1914년 여름 유럽 대륙에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당시만 하더라도 영국군의 구호는 "크리스마스는 집에서"였다.
또 빌헬름 2세 독일 황제는 군인들에게 "나뭇잎이 떨어지기 전 고향에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독일은 단기에 승부를 볼 생각이었다.
중립국인 벨기에를 침공하고 나서 파리로 진격했으나 1914년 9월 서부 전선의 마른 전투에서 진격이 저지됐다.
전투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장기적인 참호전의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그 결과 교전국은 징병제에 의한 병력 증강이나 경제력의 총동원을 추진한 '총력전' 체제를 구축했고 독가스, 전차, 폭격기 등 파괴력이 높은 무기가 처음으로 사용되면서 피해도 급증했다.
벨기에 예페르 전투와 프랑스 로렌의 베르됭 전투 등에서는 수십만 명의 군인들이 사망해 군인의 무덤으로 불리기도 했다.
1917년 혁명으로 러시아에서 군주제가 붕괴한 후 들어선 소비에트 정권은 독일과 단독 강화를 맺고 세계대전에서 빠져나갔다.
이후 독일이 잠수함을 이용해 미국 상선을 포함한 선박을 무차별 공격하자 1917년 미국이 참전함으로써 전쟁은 연합국의 승리로 기울었다.
1918년 독일 킬 군항에서 해군들이 폭동을 일으키면서 빌헬름 2세는 퇴위했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됐다.
1918년 11월 11일 연합국과 독일 간의 휴전이 성립됨으로써 전쟁은 끝났다.
◇원인과 파장 = 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적 야욕을 가진 유럽 열강들의 패권 다툼과 상호 간 두려움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당시 급성장한 독일은 바다에서 영국 해군의 지배권에 도전했으며 이는 영국에는 두려움이 됐다.
독일 역시 식민지 욕심이 커지면서 기존에 거대한 식민지를 건설한 영국, 프랑스와 갈등이 커지게 됐다.
1차대전 전문가인 게르트 크루마히 독일 뒤셀도르프대 교수는 "1차 대전 발발의 원인은 의심할 여지 없이 유럽 국가들의 경쟁이다"라면서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모든 국가는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 국가 발전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고 여겼다"고 분석했다.
4년 넘게 지속한 1차 대전은 19세기와 20세기의 진정한 분수령이 됐다.
이 전쟁으로 제국과 왕국이 잇달아 붕괴했다.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제국 등의 전제국가들이 무너지거나 해체됐고, 유럽 국가들의 절반에 가까운 국가에서 공화정이 수립됐다.
유럽 지배의 야심을 품은 독일과 전대미문의 파괴력을 지닌 현대식 무기가 결합하면서 그 피해도 엄청났다.
이전까지 총과 칼, 말과 야포를 동원한 재래식 전쟁의 모습은 사라졌으며 참호전과 전투기, 전차, 독가스, 기관총, 수류탄 등 많은 신무기가 새롭게 전쟁터에 등장했다.
그 결과 1차 대전에서 7천만 명 이상의 군인이 싸웠고 940만 명이 전사했다. 또 1천500여만 명이 부상했다.
독일에서 200만 명, 프랑스 130만 명, 영국 70만 명, 러시아 180만 명이 사망하는 등 무수히 많은 젊은이가 죽어나가면서 유럽 각국에서는 전쟁 후 수십 년이 지나도록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지기도 했다.
민간인 수백만 명도 전쟁에 휘말리면서 목숨을 잃었다.
1차 대전으로 모든 참전국이 빚더미에 올라서면서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수십 년 동안 국제관계는 삐거덕거리게 됐다.
특히 독일은 장기간 전쟁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고, 실직자가 속출했다.
더욱이 베르사유 조약으로 말미암은 과다한 배상금은 독일에서 아돌프 히틀러 집권과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의 원인이 됐다.
오스만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발칸 반도와 중동 지방에서는 많은 독립국이 생겨나게 되는데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분쟁의 불씨가 됐다.
사회적으로는 남성들이 전쟁에 나가면서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늘었고 민주주의가 발달하는 계기가 됐다.
sungjin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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