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인스턴트식품이 몸에 해롭다’라는 말은 벌써 꽤나 오래된 것 같다.
라면은 좋지 않는 음식이라고 하면서도 간단한 조리에 짧은 시간을 투자한 것 치고는 얼큰한 국물과 함께 꼬들꼬들한 면 맛의 유혹에 빠져 사게 되고 또 먹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꼬들한 면을 입안에 넣으며 ‘라면’이라는 말이 무슨 뜻을 가진 것인가 하고 온라인 국제시장 골목을 뒤적이다가 뭔가 하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는데 그때는 속은 듯이 몰랐던 ‘유지파동’사건 이였다. 그 잘나가던 삼양라면이 폐업 일보직전까지 가게 됨에 따라 수많은 직원들이 일손을 놓았고 그로인한 관련 업체들도 피해가 막심하게 되었다 한다.
라면을 처음 개발한 사람은 ‘시로후쿠’라는 사업가라고 하는데, 시로후쿠씨의 라면개발 배경을 잠시 보니, 그는 “맛과 영양, 그리고 보관성이 우수하며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먹고 싶을 때 쉽게 조리해서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식품”을 개발하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었다 한다. 그러나 끈질긴 그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언제나 실패! 지칠 대로 지친 시로후쿠씨는 자살을 생각 하게 되었다.
방황하던 어느 날 선술집에서 어묵을 기름에 튀겨내는 과정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어느 순간 ‘아~저것이다!’하고 깨어나게 되었다. 어묵을 튀겨내는 선술집에서 영감을 얻은 시로후꾸씨는 어묵을 튀기듯 국수를 만들어 튀겨 건조시켰다가 뜨거운 물에 끊여보니 그의 소원대로 실용적인 새로운 방식의 튀김 면이 탄생하게 된 것이 라면발명의 시초라한다. 1958년 일본의 일청식품에서 라면제품을 최초로 상품화하여 1961년 일본의 ‘명성식품’에서 현재와 같은 형태로 발전시켜 대량 공급하기 시작하는데 라면은 중국; Ramien, 일본; Ramen, 으로 비슷한 발음이다 그러나 라면의 원조는 중국에서 유래된 음식이라는 유저들도 있었다.
하여간 “우지파동은 1989년 가을, '라면을 공업용 우지(牛脂)로 튀긴다'는 내용으로 익명의 투서가 검찰에 접수되며 시작되었다.” 당국의 조사로 팜유를 사용하던 농심을 제외한 라면 제조업체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되었고 100억대의 제품수거와 3개월간의 영업정지 그리고 ‘우지회사’라는 오명으로 삼양은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불시에 당해버린 삼양이었으나 그러나 침착하게 대응 하였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이 자료를 제출하며 법적 공방을 벌여 왔는데 법적대응 10여년이 지난 1997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결국 모든 혐의가 무죄로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면, 삼양은 왜 우지를 사용 하였는가? 그 배경을 보니,
60년초, 삼양식품 전중융 사장은 기업차원에서 궁민의 배고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의(묘조라면)회사에 전 회장이 직접 찾아가 궁핍한 한국의 식생활을 호소하며 기술 이전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거절당했고 또 거절당하길 수차례... 그러다 수개월에 걸친 호소에 결국 감동한 묘조측은 노하우 전부를 이전해줘서 오늘 날 대한민국 라면의 역사가 시작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대한민국 국민 99%가 쌀을 구경 못하는 상황에서 ‘쇠고기국에 이밥’은 상상도 못하던 최악의 궁핍에서 삼양측은 ‘팜유’대신 당시에 고급일 수밖에 없는 우지(牛脂)로 면을 튀겨 내었다. 이는 일본의 원조라면 회사에서도 원가 절략을 위하여 시도 하지 못하였던 파격적 인 결정이었다 한다.
기름기 없는 궁민에게 라면을 통하여서라도 단백질을 공급한다는 전략은 훌륭하며 신선한 발상 그 자체였고, 단백질 구경 못하던 궁민들은 그 삼양라면 하나 끓여 놓고 기름기 둥둥 뜬 것을 그렇게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면을 먹고 남은 국물이 약간 짭조름하여 남은 국물에 식은 밥 말아 먹으며 행복해 하던 궁민이 어디 하나 둘이었나 말이다.
당시의 대통령이 유일하게 믿고 세무조사를 하지 않았던 기업은 삼양식품과 유한양행이라 하는데 특히, 삼양의 인간존중 기업정신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는 후일담도 있어왔다. 그러한 기업정신으로 국민에게 팜유보다 질이 좋은 우지를 사용한 회사를 단 한통의 투서 그것도 ‘익명의 투서’로 회사가 도산 직전 까지 가게 만든 대한민국! 대단한 대한민국이 아닐 수 없다.
이 사건이 끝나 후 재판과정을 지켜본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하였다 한다.
“온 국민이 분노할 그때 아무도 삼양의 편을 거들어줄 지식인이 없었다. 어쩌다 바른말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하여도 말을 못 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독도는 한국땅’이라 하면 불이익이 주워 지는 ‘나’에게 이 말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라면은 좋지 않는 음식이라고 하면서도 간단한 조리에 짧은 시간을 투자한 것 치고는 얼큰한 국물과 함께 꼬들꼬들한 면 맛의 유혹에 빠져 사게 되고 또 먹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꼬들한 면을 입안에 넣으며 ‘라면’이라는 말이 무슨 뜻을 가진 것인가 하고 온라인 국제시장 골목을 뒤적이다가 뭔가 하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는데 그때는 속은 듯이 몰랐던 ‘유지파동’사건 이였다. 그 잘나가던 삼양라면이 폐업 일보직전까지 가게 됨에 따라 수많은 직원들이 일손을 놓았고 그로인한 관련 업체들도 피해가 막심하게 되었다 한다.
라면을 처음 개발한 사람은 ‘시로후쿠’라는 사업가라고 하는데, 시로후쿠씨의 라면개발 배경을 잠시 보니, 그는 “맛과 영양, 그리고 보관성이 우수하며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먹고 싶을 때 쉽게 조리해서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식품”을 개발하려고 무척 애를 쓰고 있었다 한다. 그러나 끈질긴 그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언제나 실패! 지칠 대로 지친 시로후쿠씨는 자살을 생각 하게 되었다.
방황하던 어느 날 선술집에서 어묵을 기름에 튀겨내는 과정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어느 순간 ‘아~저것이다!’하고 깨어나게 되었다. 어묵을 튀겨내는 선술집에서 영감을 얻은 시로후꾸씨는 어묵을 튀기듯 국수를 만들어 튀겨 건조시켰다가 뜨거운 물에 끊여보니 그의 소원대로 실용적인 새로운 방식의 튀김 면이 탄생하게 된 것이 라면발명의 시초라한다. 1958년 일본의 일청식품에서 라면제품을 최초로 상품화하여 1961년 일본의 ‘명성식품’에서 현재와 같은 형태로 발전시켜 대량 공급하기 시작하는데 라면은 중국; Ramien, 일본; Ramen, 으로 비슷한 발음이다 그러나 라면의 원조는 중국에서 유래된 음식이라는 유저들도 있었다.
하여간 “우지파동은 1989년 가을, '라면을 공업용 우지(牛脂)로 튀긴다'는 내용으로 익명의 투서가 검찰에 접수되며 시작되었다.” 당국의 조사로 팜유를 사용하던 농심을 제외한 라면 제조업체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되었고 100억대의 제품수거와 3개월간의 영업정지 그리고 ‘우지회사’라는 오명으로 삼양은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불시에 당해버린 삼양이었으나 그러나 침착하게 대응 하였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이 자료를 제출하며 법적 공방을 벌여 왔는데 법적대응 10여년이 지난 1997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결국 모든 혐의가 무죄로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면, 삼양은 왜 우지를 사용 하였는가? 그 배경을 보니,
60년초, 삼양식품 전중융 사장은 기업차원에서 궁민의 배고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의(묘조라면)회사에 전 회장이 직접 찾아가 궁핍한 한국의 식생활을 호소하며 기술 이전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거절당했고 또 거절당하길 수차례... 그러다 수개월에 걸친 호소에 결국 감동한 묘조측은 노하우 전부를 이전해줘서 오늘 날 대한민국 라면의 역사가 시작 되었다는 것이다. 당시 대한민국 국민 99%가 쌀을 구경 못하는 상황에서 ‘쇠고기국에 이밥’은 상상도 못하던 최악의 궁핍에서 삼양측은 ‘팜유’대신 당시에 고급일 수밖에 없는 우지(牛脂)로 면을 튀겨 내었다. 이는 일본의 원조라면 회사에서도 원가 절략을 위하여 시도 하지 못하였던 파격적 인 결정이었다 한다.
기름기 없는 궁민에게 라면을 통하여서라도 단백질을 공급한다는 전략은 훌륭하며 신선한 발상 그 자체였고, 단백질 구경 못하던 궁민들은 그 삼양라면 하나 끓여 놓고 기름기 둥둥 뜬 것을 그렇게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면을 먹고 남은 국물이 약간 짭조름하여 남은 국물에 식은 밥 말아 먹으며 행복해 하던 궁민이 어디 하나 둘이었나 말이다.
당시의 대통령이 유일하게 믿고 세무조사를 하지 않았던 기업은 삼양식품과 유한양행이라 하는데 특히, 삼양의 인간존중 기업정신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는 후일담도 있어왔다. 그러한 기업정신으로 국민에게 팜유보다 질이 좋은 우지를 사용한 회사를 단 한통의 투서 그것도 ‘익명의 투서’로 회사가 도산 직전 까지 가게 만든 대한민국! 대단한 대한민국이 아닐 수 없다.
이 사건이 끝나 후 재판과정을 지켜본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하였다 한다.
“온 국민이 분노할 그때 아무도 삼양의 편을 거들어줄 지식인이 없었다. 어쩌다 바른말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하여도 말을 못 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독도는 한국땅’이라 하면 불이익이 주워 지는 ‘나’에게 이 말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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