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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사진 naesjic 열린마당톡 2014.06.12 신고
13일의 금요일이 불길한 이유(펌)
문화의 파급력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유럽 문화의 중심부에 있었던 나라들, 프랑스, 이태리, 그리스 정도는 되야 그 징크스의 발원지로 믿어줄 만 하지 싶다. 그런 이유로, 개인적으로 가장 신뢰가 가는 설은 프랑스 템플 기사단 유래 설이다.

카톨릭 세력의 아이콘이었던 템플 기사단은 프랑스에 본부를 두고 있었다. 막강한 영향력으로 당시 전 유럽에 지부를 두고있던 템플 기사단에게 1307년 10월 13일 금요일에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그 광범위한 영향력으로 7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13일의 금요일을 불길한 날로 만든 원인이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


템플 기사단(Templar, 성당기사단)은 1차 십자군 원정이 성공한 1119년경에 프랑스에서 결성되었다. 1차 원정에서 예루살렘을 점령하는 등 뜻밖의 성공을 거둔 카톨릭 군대는 원정이후 병사들이 유럽으로 돌아가고 나자, 심각한 전력(戰力)의 공백을 맞는다. 자기 영토를 빼앗긴 데다가 십자군의 예루살렘 대 학살에 분노한 이슬람 진영은 불타는 복수심에 카톨릭 군이나 성지를 여행하는 카톨릭 순례객들을 무차별 공격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부족한 군사력을 메우고 성지 순례객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프랑스 귀족 위그 드 파앵이 템플 기사단을 창설하자 로마 교황청과 유럽 영주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1128년 1월 13일 정식 기사단으로 승인을 받은 이후 템플 기사단은 교황이 부여한 특권과 유럽 각 국 영주들의 후원에 힘입어 급속도로 성장해 갔다.


템플 기사단은 엄격한 내부 규율을 통해 최강의 용맹함을 이끌어냈다. 우리나라식 임전무퇴를 기본 정신으로, 설령 자신이 속한 부대가 전멸하더라도 다른 부대와 합류해서 전투를 계속 수행했으며 항복을 용납치 않았다. 자신이 입은 하얀색 망토를 붉은 피로 물들인 채 마지막 한 사람까지 전투를 벌이는 템플 기사단이 두려움의 상징이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수 차례 이어진 추가 십자군 원정에서 용맹한 전투력을 증명한 템플 기사단은 프랑스 루이 7세에게 받은 영지(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차린다. 순례객과 유럽 군주들을 대상으로 한 금융업으로 얻어진 경제력, 그리고 거듭되는 십자군 전쟁에서의 명성을 바탕으로 템플 기사단은 유럽 내 가장 영향력있는 카톨릭 무장 세력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베리아(스페인, 포르투칼), 카스티야, 아라곤, 키프로스, 신성 로마 제국, 스코틀랜드 등 거의 전 유럽에도 지부를 설립하면서 어느 덧 그들은 프랑스 국왕조차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거대 정치세력이 됬다.


비극이 시작된 건 이 때였다. 1290년 십자군 원정이 막을 내리면서 템플 기사단의 막강한 영향력이 왕권 강화를 원했던 프랑스 국왕 필립 4세와 충돌한 것이다. 패기에 찬 젊은 왕에게 감히 맞짱뜨려 덤비는 템플 기사단은 제거해야 할 적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더군다나 템플 기사단을 잘 만 요리하면 엄청난 그들의 재산을 빼앗을 수도 있을 뿐더러, 덤으로 필립 4세가 그들에게 지고 있던 막대한 부채도 한방에 해결할 수 있었다. 야망이 컸던 필립 4세가 이 꿩먹고 알먹고, 도랑치고 가재잡는 찬스를 놓칠리가 없다.


1307년 10월 13일 금요일, 필립 4세의 명을 받은 군인들이 프랑스 전역의 템플 기사단을 일시에 체포한다. 수일전 프랑스 전역 군부대에 밀봉된 채 전달된 왕의 친서는 10월 13일 전까지 편지의 개봉을 금하고 있었다. 13일의 금요일 아침 편지를 개봉했을 때 씌여있던 내용은 각 군부대마다 부여된 체포 내지 사살해야 할 템플 기사단 목록이 들어있었다. 비밀 유지에 각별히 신경썼던 작전이었다. 전격적으로 체포된 템플 기사단원들에게 적용된 죄명은 다소 뜬금없는 '동성애' '신성 모독' '악마 숭배'였다. 필립4세의 요구에 따라 당시 교황 클레멘스 5세가 결정한 템플 기사단의 해체 및 활동 금지 처분도 그 뒤를 이었다.


템플 기사단의 상징이었던 위 그림도 논란이 되었다. 두 남성 기사가 서로 살을 맞대고 한 마리의 말을 타고 있는 기사단 상징이나, 가족일지라도 여성과의 신체적 접촉을 금한 규율 자체가 동성애 코드로 제시됬다. 또한 외부에 알려져 있지 않던 입단식 같이 비밀스러운 활동 자체가 악마 숭배를 숨기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됬다. 당시 상황상 '이단' 죄목을 씌우면 범죄 사실 입증 자체가 필요없었다. 단지 익명의 증언과 교황청의 승인만 있으면 즉결 처분이 가능했는 데 둘 다 패기만만한 필립 4세에게는 식은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누명을 씌고 체포된 프랑스내 템플 기사단은 '이단'의 죄목을 인정할 때까지 끔찍한 고문을 받은 후 산채로 화형에 처해졌다. 기사단 재산은 몰수됬으며, 1307년 10월, 13일의 금요일이후 템플 기사단은 역사속에서 사라지고 살아남은 템플 기사단은 지하로 숨어들게 되었다.


이 사건은 당시 전 유럽인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입단하면 부와 명성이 보장되던 가장 존경받던 단체, 유럽에서 가장 강력했던 무장 단체 그리고 교황이 인정했던 합법적 종교 단체가 하루 아침에 이단과 동성애라는 죄목으로 사라져버렸으니 그들이 받았을 충격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으로 치자면 한나라당이 그간의 노선인 보수를 버리고 앞으로 진보 혁신 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하면서 유시민 후보를 대선후보로 미는 정도의 충격일까 ? 쬐금 더 큰 충격이었지 싶다. 어쨋든 당시 그들에게 씌워졌으나 교황청마저도 후일 부인했던 이단 혐의는 유럽인들로 하여금 필립4세가 이 사건으로 무엇을 원하는 지를 짐작할 수 있게끔 했을 것이다. 합법적 종교 단체에 씌운 죄목이 '이단'과 '동성애'라니...대략 안습이다.


템플 기사단의 영웅담을 듣고 자란 유럽인들이 그들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면서, 이 날을 불길한 날로 인식했을 수 있다. 당시 유럽 문명의 중심 프랑스를 비롯한 거의 전 유럽국가에서 13일의 금요일에 있었던 템플 기사단 숙청 사건은 전 유럽인들에게 그런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후로도 오랫동안 유럽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며 13일의 금요일은 불길한 날로 자리 잡게 되었을 것이다.


1314년 템플 기사단의 마지막 단장인 '자크 드 몰레'가 화형당하면서 그들은 역사의 주류로 두 번 다시 나오지 못했다. 당시 그가 화형당하기 전 마지막 했던 저주들이 다 실현되었다는 점도 템플 기사단이 오랫동안 사람들 얘깃거리로 회자되게 만들었을 것이다.



관련 포스트

추악한 성전 - 십자군 전쟁의 실체 http://blog.naver.com/nicklim/50107794743

Jesus christ superstar - 예수에 관한 음모론 http://blog.naver.com/nicklim/50102413084

[출처] 13일의 금요일이 불길한 이유 |작성자 가우디



------자크 드 몰레 저주------------
http://blog.daum.net/zewxpi/1005 (펌)


마지막 기사단장이었던 자크 드 몰레는 불에 타 죽으면서 "프랑스 왕과 교황이 1년 안에 주님 면전으로 끌려나와 자기 앞에서 죄를 고백하게 될 것다!", 즉 왕과 교황이 죽을 거라고 저주를 퍼부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필리프 4세와 클레멘스 5세 모두 1년도 안 되어서 죽었다. 자크 드 몰레가 필리프 4세의 세 아들들(루이, 필리프, 샤를)에게도 저주를 퍼부었다는 말도 있는데 실제로 필리프 4세의 세 아들들의 자손들은 모두 요절하거나 대가 끊겨 결국 모두 족멸했다. 물론 그 저주가 사실이라는 증거도 없고 저주 탓이라는 얘기는 없으나, 필리프 4세가 죽고 세 아들들과 손자가 차례차례 뒤를 이었으나, 모두 아들없이 죽어 카페 왕조가 무너지고 만다. 마지막 왕이었던 샤를 4세마저 죽자 필리프 4세의 혈족 중에서 3명이 왕위 계승을 주장했다.

필리프 드 발루아: 필리프 4세의 동생인 샤를 드 발루아의 아들이자 샤를 4세의 사촌.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 : 필리프 4세의 차녀이자 샤를 4세의 누나 이자벨의 아들로 샤를 4세의 조카. 나바라 왕 펠리페 3세: 필리프 4세의 동생인 루이 데브뢰의 아들로 샤를 4세의 형인 루이 10세의 사위. 샤를 4세에게는 사촌인 동시에 처남이자 조카사위. 결국 필리프 드 발루아가 왕위 계승을 해서 필리프 6세가 되어 발루아 왕조를 세웠으나, 이 문제는 에드워드 3세의 반발을 사서 백년전쟁의 단초가 된다.


장남 루이 10세("완고왕"): 필리프 4세의 뒤를 이었으며 아들 장 1세가 태어나기 죽에 죽었다.
차남 필리프 5세("장신왕"): 조카 장 1세의 뒤를 이었으나, 외아들 필리프가 1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다만 딸 네 명은 모두 오래 살아서 시집갔고 그 중 이사벨은 후손도 뒀다.
삼남 샤를 4세("미남왕"): 형 필리프 5세의 뒤를 이었으나, 외아들 샤를이 태어나자마자 죽었고 딸 세 명도 모두 요절하거나 자식이 없었다.
손자 장 1세("유복자왕"): 루이 10세의 유복자로 아버지 루이 10세가 죽기 전에 이미 뱃속에서 왕위 계승자로 결정났었다. 따라서 태어나자마자 왕에 즉위했지만 갓난아기가 뭘 할 수 있을리가 없어 삼촌 필리프(필리프 5세)가 섭정을 맡았다. 그러나 생후 5일만에 사망했다.
이렇다보니 프랑스 혁명으로 부르봉 왕조가 몰락한 것이 성당기사단을 계승한 프리메이슨의 음모 때문이라는 음모론 떡밥까지도 존재한다. 루이 16세의 목이 떨어질 때 누군가 "자크 드 몰레, 이제 네 복수가 끝났다!"라고 외쳤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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