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서방의 세상이야기(그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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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시끄러운 일들의 대부분은 사람들의 욕심과 오해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싶다.
욕심에서 일어나는 일은 차치하고 오해의 결과가 낳는 일만 써 볼까 한다.
여기서 오해란 잘 못 알고 있는 것으로 한정 짓는다.
그 중 사회문제가 되면서 우리네 삶과 바로 직결 되는 게 종교문제가 아닐까?
나는 정기적이진 않지만 가끔은 절에 나가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쩌다 나가고 보면 나의 생각과는 다른 면을 느끼고는 허탈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해서 어쩌다 용기를 내어 가던 걸음도 그 횟수가 뜸 해지게 된다.
미국에서의 절 운영은 참으로 어렵다. 어려운 사유야 여럿이겠지만 몇 가질 보자.
우선 절에 나오는 사람들이 노령화되다 못해 이젠 완전히 노인정을 방불케 한다. 거기다 남자들은 찾기가 힘이 들고 이건 할머니들의 소담정(笑談停)이 되었다.
이들은 그냥 불상에 대고는 부처님! 부처님! 하고는 성치 않은 몸으로 기우뚱거리며 연상 절을 해 댄다. 옆에서 이를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딱하단 말 이왼 할 말을 잊는다.
스님이란 사람들도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한다는 법문이나 말끝마다
“죽은 다음에 지옥이니 천당이니 ...” 하고 있다.
불교에서 지옥이나 천당이니 하는 말은 6도(道)라 하여
“천상도(天上道), 인간도(人間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아귀도(餓鬼道), 지옥도(地獄道)를 말한다.
이것들은 중생(우리네)이 하는 업(業)에 따라 위와 같은 6가지의 길을 가게 된다는 뜻으로 이건 사후(死後)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현실에서 우리가 하는 짓거리에 따라 얻어지는 길이란 것이다.
예를 들면
명일이라 하여 온 식구가 모여 즐겁게 먹고 마시고는 그것들 설거지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데 그러지 않고 잠자리에 들고 보니 다음 날 그 많은 사람들은 모두들 떠나버리고 도와 줄 사람도 없는 터에
이걸 혼자서 설거지를 마치고 출근은 해야겠고 그냥 두고 나가자니 호랑이 같은 시어머님 겁이 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설거지를 하고 있다면 이 사람은 현재 어디에 있다고 보면 될까? 바로 이것이다.
그러니 깨우치지 못하는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저지른 일의 결과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을 추상적으로 표현할 때 그런 길이 된다는 얘기다.
아무도 가보지도 못한 사후 세계를 이렇다 저렇다 하고
단정적으로 말할 사람이나 어떤 신(神)도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가보지도 않고
죽어보지도 못한 산 자의 입으로 사후세계를 논 한단 말인가?
여기서 불교의 정법이 무언가 하는 문제를 찾아 공부는 않고
초기 불교에서 우매한 중생들이 설법을 잘 알아듣지 못하다 보니
방편(方便)으로 한 말을 마치 사후를 의미하는 것으로 잘 못 전해오고 있다.
스님들 또한 깨우치려 하지 않거나 아님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함으로써 신도들의 이산(離散)으로 절 살림에 미치는 걸 먼저 걱정하는 웃지 못 할 현실 때문에 이런 일이 오래 오래 내려오다 보니 마치 그게 부처님의 말씀이고 뜻인 양 전해져 왔다.
또한 말이 나온 김에 불교에서 말 하는 윤회란 것도 삶과 죽음의 반복이 아니고 찰나 찰나에 일어났다 없어지고 하는 우리들 마음의 생(生)과 멸(滅)이 바로 번갈아 가면서 바뀌는 현상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말임을 알아야 한다.
이런 현상은 위에서도 지적하였듯 같은 말이라도
초등학생에게 하는 말하는 방법이 있고 대학을 나온 지성인에게 하는 말이 다르다는 의미로 받아드리면 이해가 갈 줄로 믿는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부처님의 참 뜻 임을 알고 불교를 말하면 좋겠다 싶다.
불교란
종교 이전에 바른 삶을 위해 해야 할 일을 일러주는 가르침의 장이라 생각하면 좋겠다.
불교에선 무아(無我) 와 연기(緣起)가 주가 되고 그래서 이런 모든 것도 내 마음이 만든다는 것, 그런 걸 가르치는 곳이 정녕 내가 바라는 불당이 되었으면 한다.
또한 나의 종교가 존중받으려면 남의 종교도 존중은 못 하더라도 배척하거나 무시해서는 옳은 종교인이 아님을 첨언 하고 싶다.
이 모든 시끄러움이 바르게 알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이 어떤 말이던 듣고 스스로 깨우치는 지혜로움부터 키웠으면 세상사가 조금은 덜 시끄럽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게 아닌데..‘라는 제목을 달아보았다.
이 글로 인해 마음 상하는 분이 없기를 바란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밤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사 시끄러운 일들의 대부분은 사람들의 욕심과 오해에서 비롯되지 않을까 싶다.
욕심에서 일어나는 일은 차치하고 오해의 결과가 낳는 일만 써 볼까 한다.
여기서 오해란 잘 못 알고 있는 것으로 한정 짓는다.
그 중 사회문제가 되면서 우리네 삶과 바로 직결 되는 게 종교문제가 아닐까?
나는 정기적이진 않지만 가끔은 절에 나가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쩌다 나가고 보면 나의 생각과는 다른 면을 느끼고는 허탈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해서 어쩌다 용기를 내어 가던 걸음도 그 횟수가 뜸 해지게 된다.
미국에서의 절 운영은 참으로 어렵다. 어려운 사유야 여럿이겠지만 몇 가질 보자.
우선 절에 나오는 사람들이 노령화되다 못해 이젠 완전히 노인정을 방불케 한다. 거기다 남자들은 찾기가 힘이 들고 이건 할머니들의 소담정(笑談停)이 되었다.
이들은 그냥 불상에 대고는 부처님! 부처님! 하고는 성치 않은 몸으로 기우뚱거리며 연상 절을 해 댄다. 옆에서 이를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딱하단 말 이왼 할 말을 잊는다.
스님이란 사람들도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한다는 법문이나 말끝마다
“죽은 다음에 지옥이니 천당이니 ...” 하고 있다.
불교에서 지옥이나 천당이니 하는 말은 6도(道)라 하여
“천상도(天上道), 인간도(人間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아귀도(餓鬼道), 지옥도(地獄道)를 말한다.
이것들은 중생(우리네)이 하는 업(業)에 따라 위와 같은 6가지의 길을 가게 된다는 뜻으로 이건 사후(死後)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현실에서 우리가 하는 짓거리에 따라 얻어지는 길이란 것이다.
예를 들면
명일이라 하여 온 식구가 모여 즐겁게 먹고 마시고는 그것들 설거지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데 그러지 않고 잠자리에 들고 보니 다음 날 그 많은 사람들은 모두들 떠나버리고 도와 줄 사람도 없는 터에
이걸 혼자서 설거지를 마치고 출근은 해야겠고 그냥 두고 나가자니 호랑이 같은 시어머님 겁이 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설거지를 하고 있다면 이 사람은 현재 어디에 있다고 보면 될까? 바로 이것이다.
그러니 깨우치지 못하는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저지른 일의 결과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을 추상적으로 표현할 때 그런 길이 된다는 얘기다.
아무도 가보지도 못한 사후 세계를 이렇다 저렇다 하고
단정적으로 말할 사람이나 어떤 신(神)도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가보지도 않고
죽어보지도 못한 산 자의 입으로 사후세계를 논 한단 말인가?
여기서 불교의 정법이 무언가 하는 문제를 찾아 공부는 않고
초기 불교에서 우매한 중생들이 설법을 잘 알아듣지 못하다 보니
방편(方便)으로 한 말을 마치 사후를 의미하는 것으로 잘 못 전해오고 있다.
스님들 또한 깨우치려 하지 않거나 아님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함으로써 신도들의 이산(離散)으로 절 살림에 미치는 걸 먼저 걱정하는 웃지 못 할 현실 때문에 이런 일이 오래 오래 내려오다 보니 마치 그게 부처님의 말씀이고 뜻인 양 전해져 왔다.
또한 말이 나온 김에 불교에서 말 하는 윤회란 것도 삶과 죽음의 반복이 아니고 찰나 찰나에 일어났다 없어지고 하는 우리들 마음의 생(生)과 멸(滅)이 바로 번갈아 가면서 바뀌는 현상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말임을 알아야 한다.
이런 현상은 위에서도 지적하였듯 같은 말이라도
초등학생에게 하는 말하는 방법이 있고 대학을 나온 지성인에게 하는 말이 다르다는 의미로 받아드리면 이해가 갈 줄로 믿는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부처님의 참 뜻 임을 알고 불교를 말하면 좋겠다 싶다.
불교란
종교 이전에 바른 삶을 위해 해야 할 일을 일러주는 가르침의 장이라 생각하면 좋겠다.
불교에선 무아(無我) 와 연기(緣起)가 주가 되고 그래서 이런 모든 것도 내 마음이 만든다는 것, 그런 걸 가르치는 곳이 정녕 내가 바라는 불당이 되었으면 한다.
또한 나의 종교가 존중받으려면 남의 종교도 존중은 못 하더라도 배척하거나 무시해서는 옳은 종교인이 아님을 첨언 하고 싶다.
이 모든 시끄러움이 바르게 알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이 어떤 말이던 듣고 스스로 깨우치는 지혜로움부터 키웠으면 세상사가 조금은 덜 시끄럽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게 아닌데..‘라는 제목을 달아보았다.
이 글로 인해 마음 상하는 분이 없기를 바란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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