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기만 하고 생각지 않으면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우니라. (學而不思則罔思而不學則殆 /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공자
나는 인터넽란 것이 세상에서 시작되던 1980代 중반부터 이를 통하여 '주식거래'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Wall Street Journal에서 운영하던 Tele-market이라던가 하는 system을 이용하여 한번의 주식거래를 하려면 commission으로 수백불씩 지불했었다.
이런 짓을 하다가 주식시장에 혁명이 일어나서 '인터넽'라는 전자시장이 생기면서 요즘은 7-8불에 사고 팔 수가 있다. 이런 추이를 따르다가 보니 email이란 것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됐고, Blog라는 자기만의 화면에서 글을 쓰는 시대가 도래했던 것도 일찌기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발전해서 오늘날에는 각종 web sites들이 독자를 부르고 거기에 자기의 글을 쓰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있다. 내 학교친구들이 벙어리가 되어있는 이유가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알지 못하면서 '컴맹'으로 한 세상을 살고 갈 모양인데 그동안 뭣들을 하고 살았다는 건지... 물론 한글타자를 처야할 이유도 없고, 뭔가 머리에 든게 있은 것도 아니고.
내 교회, 내 고교, 내 대학의 동창들의 웹싸이트에 글을 올린 지가 거의 20년이 넘는다. 한국일보의 열린마당에서 활동한지도 꽤 되는데, 징검징검해서 6-7년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이런 전자의 세계에서 내가 알게된 것이 하나 있다. 요즘은 위에 서두로 달아놓은 孔子의 명언..., 즉 배웠으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기현상이 일어나리라. 특히 앞의 부분이 날이 갈수록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뭔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글을 쓰지 않던가, 아니면 쓸 줄을 몰라서 남이 해놓은 것만 옮겨놓고 뭔가 대단히 有識(유식)한 척 하는 풍조를 보아왔기 때문이다. 어느 웹페지던지 가보시라. 소위 '펌'이란 거나, '좋은 글'이란 것들이 판을 치고있다. 글을 올리거나 보내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얘기이고, 이런 것을 찾아다니면서 하루를 보내는 독자들의 경우는 아예 입도 뻥끗하지 못하던가, 댓글이란 것으로 좋고 싫고..., 하여간에 "자기의 생각"이란 것들을 표현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어떤 사람은 아예 東西古今(동서고금)에 알려진 名言(명언)들을 구술꾀듯이 줄줄 줏어섬기는 天材(천재)도 있더군. 그것도 모자라서 죽어 없어진 Latin 말까지 곁들이면서 "나는 이렇게 많이 안다"고 설치는데... 글세올시다. 그래서 정말 뭐를 알고 있는지 본인도 모르는 얘기를 줄창 외어대는데...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생각을 전달하려는지 도무지 알길이 없다.
그러한 색동저고리의 인용이 서로가 앞뒤로 어울리던가 어떤 일관된 생각을 지속한다면야 학문하는 사람들의 '자랑꺼리'라고 인정해주겠지. 아니면 주장하는 각설이의 정당함을 증명하는 수단이 될 수는 있다. 소화가 전혀 않된 끝없는 인용의 연속은 결국 배우기만 하고 생각지 않은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소화불량에서 헛배를 불리고 있다고 봐야 하겠지.
또 한가지...
내 고교동창들이 내게 보내주는 소위 글이란 것들은 하나같이 Forwarding한 것들이다. 자기의 생각이란 거기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더군. 이들은 한국에서 알아주는 수재들이다. 학교시절에 줄곧 우등생들이 배우기만 해서 좋은 학벌을 가지게 됐건만, 스스로 생각할 줄을 모르는 바다. 책을 놓은지 반세기가 되는 지라, 하긴 할 얘기가 별로 있을 수가 없다. 단지 남의 것을 옮기는 기술 밖에는...
교회를 다니는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일컬어 신앙의 '율법주의'에 매어서 습관적으로 평생을 기독교 신자라고 자부하는 모양인데, 성경의 그 많은 교훈적인 말들을 한번도 깊이 생각해 본적이 없는 것이 역역하더군. 그걸 어떻게 아느냐구요? 그들의 일상생활의 어느 구석에서도 예수님의 200여개의 parable 즉 교훈적 예화대로 그들의 삶에서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오. 멍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얼마나 사람됨됨이가 좋아졌는가는 전혀 문제가 않되는 생각없이 사는 사람들이 새벽부터 넘쳐나더군.
심지어 돈버는 문제에서도 마찬가지... 돈이 많아야 대접받는다는 그것 하나 때문에 건강을 망쳐가면서 돈에 혈안이 돼있는 내 친구, 그리고 인터넽의 독자들의 생활태도에서 "돈이란 풍족한 정도를 넘지 말아야 하는 철학의 빈곤"을 과연 아는지 마는지. 입만 열었다 하면 뭐를 가졌네, 무슨 여행을 했네, 무슨 특권층에 속하네, 얼마짜리 집에 자가용을 타네... 돈 놓고 키재기 하는 사람들.
미국에서는 얘기가 사뭇 다르다.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소화해서 essay 즉 작문하는 것을 아주 어릴 때부터 매우 중요시 하더라. 그래서 그런지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의 글줄기를 대하다 보면 사리분별이 뚜렸하고 주장하는 생각에 일관성이 있더군. 책이란 것은 학교 문턱을 넘어서고 나서는 다시 잡아보지 못하고 그저 그 남어지는 forwarding이나 그 잘난 댓글로써 뻐기는 한국사회와는 天地差異(천지차이)가 있다는 얘깁네다.
禪涅槃
나는 인터넽란 것이 세상에서 시작되던 1980代 중반부터 이를 통하여 '주식거래'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Wall Street Journal에서 운영하던 Tele-market이라던가 하는 system을 이용하여 한번의 주식거래를 하려면 commission으로 수백불씩 지불했었다.
이런 짓을 하다가 주식시장에 혁명이 일어나서 '인터넽'라는 전자시장이 생기면서 요즘은 7-8불에 사고 팔 수가 있다. 이런 추이를 따르다가 보니 email이란 것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됐고, Blog라는 자기만의 화면에서 글을 쓰는 시대가 도래했던 것도 일찌기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발전해서 오늘날에는 각종 web sites들이 독자를 부르고 거기에 자기의 글을 쓰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있다. 내 학교친구들이 벙어리가 되어있는 이유가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알지 못하면서 '컴맹'으로 한 세상을 살고 갈 모양인데 그동안 뭣들을 하고 살았다는 건지... 물론 한글타자를 처야할 이유도 없고, 뭔가 머리에 든게 있은 것도 아니고.
내 교회, 내 고교, 내 대학의 동창들의 웹싸이트에 글을 올린 지가 거의 20년이 넘는다. 한국일보의 열린마당에서 활동한지도 꽤 되는데, 징검징검해서 6-7년이 되지 않을까 한다. 이런 전자의 세계에서 내가 알게된 것이 하나 있다. 요즘은 위에 서두로 달아놓은 孔子의 명언..., 즉 배웠으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기현상이 일어나리라. 특히 앞의 부분이 날이 갈수록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뭔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글을 쓰지 않던가, 아니면 쓸 줄을 몰라서 남이 해놓은 것만 옮겨놓고 뭔가 대단히 有識(유식)한 척 하는 풍조를 보아왔기 때문이다. 어느 웹페지던지 가보시라. 소위 '펌'이란 거나, '좋은 글'이란 것들이 판을 치고있다. 글을 올리거나 보내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얘기이고, 이런 것을 찾아다니면서 하루를 보내는 독자들의 경우는 아예 입도 뻥끗하지 못하던가, 댓글이란 것으로 좋고 싫고..., 하여간에 "자기의 생각"이란 것들을 표현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어떤 사람은 아예 東西古今(동서고금)에 알려진 名言(명언)들을 구술꾀듯이 줄줄 줏어섬기는 天材(천재)도 있더군. 그것도 모자라서 죽어 없어진 Latin 말까지 곁들이면서 "나는 이렇게 많이 안다"고 설치는데... 글세올시다. 그래서 정말 뭐를 알고 있는지 본인도 모르는 얘기를 줄창 외어대는데...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생각을 전달하려는지 도무지 알길이 없다.
그러한 색동저고리의 인용이 서로가 앞뒤로 어울리던가 어떤 일관된 생각을 지속한다면야 학문하는 사람들의 '자랑꺼리'라고 인정해주겠지. 아니면 주장하는 각설이의 정당함을 증명하는 수단이 될 수는 있다. 소화가 전혀 않된 끝없는 인용의 연속은 결국 배우기만 하고 생각지 않은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소화불량에서 헛배를 불리고 있다고 봐야 하겠지.
또 한가지...
내 고교동창들이 내게 보내주는 소위 글이란 것들은 하나같이 Forwarding한 것들이다. 자기의 생각이란 거기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더군. 이들은 한국에서 알아주는 수재들이다. 학교시절에 줄곧 우등생들이 배우기만 해서 좋은 학벌을 가지게 됐건만, 스스로 생각할 줄을 모르는 바다. 책을 놓은지 반세기가 되는 지라, 하긴 할 얘기가 별로 있을 수가 없다. 단지 남의 것을 옮기는 기술 밖에는...
교회를 다니는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일컬어 신앙의 '율법주의'에 매어서 습관적으로 평생을 기독교 신자라고 자부하는 모양인데, 성경의 그 많은 교훈적인 말들을 한번도 깊이 생각해 본적이 없는 것이 역역하더군. 그걸 어떻게 아느냐구요? 그들의 일상생활의 어느 구석에서도 예수님의 200여개의 parable 즉 교훈적 예화대로 그들의 삶에서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오. 멍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얼마나 사람됨됨이가 좋아졌는가는 전혀 문제가 않되는 생각없이 사는 사람들이 새벽부터 넘쳐나더군.
심지어 돈버는 문제에서도 마찬가지... 돈이 많아야 대접받는다는 그것 하나 때문에 건강을 망쳐가면서 돈에 혈안이 돼있는 내 친구, 그리고 인터넽의 독자들의 생활태도에서 "돈이란 풍족한 정도를 넘지 말아야 하는 철학의 빈곤"을 과연 아는지 마는지. 입만 열었다 하면 뭐를 가졌네, 무슨 여행을 했네, 무슨 특권층에 속하네, 얼마짜리 집에 자가용을 타네... 돈 놓고 키재기 하는 사람들.
미국에서는 얘기가 사뭇 다르다.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소화해서 essay 즉 작문하는 것을 아주 어릴 때부터 매우 중요시 하더라. 그래서 그런지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의 글줄기를 대하다 보면 사리분별이 뚜렸하고 주장하는 생각에 일관성이 있더군. 책이란 것은 학교 문턱을 넘어서고 나서는 다시 잡아보지 못하고 그저 그 남어지는 forwarding이나 그 잘난 댓글로써 뻐기는 한국사회와는 天地差異(천지차이)가 있다는 얘깁네다.
禪涅槃

좋아요 0
태그
DISCLAIMER
이곳에 게시된 글들은 에이전트 혹은 사용자가 자유롭게 올린 게시물입니다. 커뮤니티 내용을 확인하고 참여에 따른 법적, 경제적, 기타 문제의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케이타운 1번가는 해당 컨텐츠에 대해 어떠한 의견이나 대표성을 가지지 않으며, 커뮤니티 서비스에 게재된 정보에 의해 입은 손해나 피해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