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로마에 free sex를 근절
알렉스슨상이 구약의 레위기 18장을 인용해서 근친상간을 금하는 구절이 주저리 주저리 언급됐다고 하시면서, "네 여편네 하나에 만족하라"는 엄명을 여호와께서 하셨다고... 그러시면서 로마군인들이 남자의 물건을 노출했었고 여자는 홋껍데기만 걸치고 기회가 있으면 instant satisfaction을 할 수가 있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요 앞글의 댓글에서...
상당히 신빙성이 있어보는 것이, 로마제국의 첫 황제였던 Augustus의 딸이 그 짓을 했다고 먼 외딴 섬에 귀양보내져서 절교(絶交)하는 신세로 인생을 끝내주었고, 그 다음의 어느 황제(누군지 얼른 이름이 생각않나는)의 부인이 로마의 사창가에서 쎄기로 이름난 galbo와 그 짓을 겨루어 봤다나? 결국 황녀가 승리로 끝났다 합디다.
AD 79년에 나폴리 근방에 위치한 베스비우스 화산(Mt.Vesvius eruption)이 폭발하는 통에 폼페이(Pompeii)와 헤르쿨라네움(Herculaneum)의 도시들이 잿더미가 됐다가 금세기에 발굴되었다. 특히 '헤르클라네움'에서 公娼(공창)의 벽에서 발견된 벽화에는 온갓 소위 더러운 장면(?)이 노골적으로 그려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다. 나는 가보지 못했으니...
당시에는 이런 것이 아무렇지 않게 성행하던 시대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독교의 총본산이 그 복판에 자리잡고 있고, 신부나 수녀는 죽을 때까지 수절을 약속해야 하지 않습니까? 쉽게 말해서 그 성(sex)에 관한한 가장 문란했던 고대도시에 기독교가 전파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긴 얘기 다 빼고, 구약의 레위기 18장이 비록 잔소리가 많았다 하더라도 그 말이 드디어 그 땅에 먹혀들어 갔기 때문에 人倫(인륜)의 어떤 기준을 잡는 계기가 되었다고 나는 생각합네다. 오죽했어야 그토록 자세하게 설명했을라구... 지금도 無腦들이 많다만, 그 당시에는 더욱 많을 것이 분명합네다. 알레스선사이 원하시는 것처럼 단 한마디로는 이 사람들이 이해를 못해요.
'그게 아니다'라고 말하실 분에게 내가 할 말이 있오. none of your busines, because I believe so. 말하자면 젓국에는 소금이 들어가야 완전히 썩지를 않고 적당하게 간국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하겄지. 완전히 썩을 정도면 살 재미가 없을 거고,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내두면 개판이 되고 말 것이외다.
실상 레위기라는 것이 모세가 지어낸 것도 아니고 데이빝나 솔로몬도 아니고, 유태백성이 바빌론에 끌려갔다가 '사이러스' 황제가 가엽게 봐서 에루살렘으로 돌려보낸 BC 444년에 완성된 것이다. 그 전에 제1차의 구약이 있었으나 반나절의 분량으로 흐지부지 했다가 바빌론에서 막 돌아와서 성문란의 문제를 닥아잡아야 할 이유에서 한 나절의 일주일을 낭독했어야 했으니 문제의 심각성을 조히 알만 하지 않을까?
그 원인은 요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여자가 일생에 한번 '아프로다잇'의 신전에서 아무넘이나 붙잡고 한번 해야 하는 그런 짓을 예루살렘에서는 다시 하지 말자~... 마 그런 취지에서 시작됐다면 약간의 구라가 섞은 얘기가 아닐까요? 섞여도 많이 섞였다고 항의할 분이 계신다면, 그게 아니고 이거다 케사문서 한마디 해보시던가... 말리지 않겠오.
그거이 로마사람들에게 전달되면서 그들의 고민을 해결하는 하나의 지침으로 인정받고, 오랜동안 금기하다가 보니 습관이란 것이 바뀌게 되지 않았을까? 2,000여년을 이런 금욕주의를 하다가 보니 요새는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희롱하는 판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감이 있기는 합니다만.
어느 시대고 어느 곳이던 간에 사람들이 먹고 살만 하면 다음에 찾는 것이 바로 그 공짜色찾기를 시작하는게 보통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역사가 증명하는 거니까 더 이상 언급을 삼가하겠오 마는, 한국에서 요즘 그런 것들에 혈안이 돼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둥 말둥 하다던데요. 나야 미국에 살다보니 잘 모르겠오만 들려오는 풍문에는 배부른 다음에 허리 아렛운동을 많이 하는 모양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禪涅槃
상당히 신빙성이 있어보는 것이, 로마제국의 첫 황제였던 Augustus의 딸이 그 짓을 했다고 먼 외딴 섬에 귀양보내져서 절교(絶交)하는 신세로 인생을 끝내주었고, 그 다음의 어느 황제(누군지 얼른 이름이 생각않나는)의 부인이 로마의 사창가에서 쎄기로 이름난 galbo와 그 짓을 겨루어 봤다나? 결국 황녀가 승리로 끝났다 합디다.
AD 79년에 나폴리 근방에 위치한 베스비우스 화산(Mt.Vesvius eruption)이 폭발하는 통에 폼페이(Pompeii)와 헤르쿨라네움(Herculaneum)의 도시들이 잿더미가 됐다가 금세기에 발굴되었다. 특히 '헤르클라네움'에서 公娼(공창)의 벽에서 발견된 벽화에는 온갓 소위 더러운 장면(?)이 노골적으로 그려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다. 나는 가보지 못했으니...
당시에는 이런 것이 아무렇지 않게 성행하던 시대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기독교의 총본산이 그 복판에 자리잡고 있고, 신부나 수녀는 죽을 때까지 수절을 약속해야 하지 않습니까? 쉽게 말해서 그 성(sex)에 관한한 가장 문란했던 고대도시에 기독교가 전파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긴 얘기 다 빼고, 구약의 레위기 18장이 비록 잔소리가 많았다 하더라도 그 말이 드디어 그 땅에 먹혀들어 갔기 때문에 人倫(인륜)의 어떤 기준을 잡는 계기가 되었다고 나는 생각합네다. 오죽했어야 그토록 자세하게 설명했을라구... 지금도 無腦들이 많다만, 그 당시에는 더욱 많을 것이 분명합네다. 알레스선사이 원하시는 것처럼 단 한마디로는 이 사람들이 이해를 못해요.
'그게 아니다'라고 말하실 분에게 내가 할 말이 있오. none of your busines, because I believe so. 말하자면 젓국에는 소금이 들어가야 완전히 썩지를 않고 적당하게 간국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하겄지. 완전히 썩을 정도면 살 재미가 없을 거고,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내두면 개판이 되고 말 것이외다.
실상 레위기라는 것이 모세가 지어낸 것도 아니고 데이빝나 솔로몬도 아니고, 유태백성이 바빌론에 끌려갔다가 '사이러스' 황제가 가엽게 봐서 에루살렘으로 돌려보낸 BC 444년에 완성된 것이다. 그 전에 제1차의 구약이 있었으나 반나절의 분량으로 흐지부지 했다가 바빌론에서 막 돌아와서 성문란의 문제를 닥아잡아야 할 이유에서 한 나절의 일주일을 낭독했어야 했으니 문제의 심각성을 조히 알만 하지 않을까?
그 원인은 요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여자가 일생에 한번 '아프로다잇'의 신전에서 아무넘이나 붙잡고 한번 해야 하는 그런 짓을 예루살렘에서는 다시 하지 말자~... 마 그런 취지에서 시작됐다면 약간의 구라가 섞은 얘기가 아닐까요? 섞여도 많이 섞였다고 항의할 분이 계신다면, 그게 아니고 이거다 케사문서 한마디 해보시던가... 말리지 않겠오.
그거이 로마사람들에게 전달되면서 그들의 고민을 해결하는 하나의 지침으로 인정받고, 오랜동안 금기하다가 보니 습관이란 것이 바뀌게 되지 않았을까? 2,000여년을 이런 금욕주의를 하다가 보니 요새는 남자가 남자를, 여자가 여자를 희롱하는 판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감이 있기는 합니다만.
어느 시대고 어느 곳이던 간에 사람들이 먹고 살만 하면 다음에 찾는 것이 바로 그 공짜色찾기를 시작하는게 보통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역사가 증명하는 거니까 더 이상 언급을 삼가하겠오 마는, 한국에서 요즘 그런 것들에 혈안이 돼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둥 말둥 하다던데요. 나야 미국에 살다보니 잘 모르겠오만 들려오는 풍문에는 배부른 다음에 허리 아렛운동을 많이 하는 모양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禪涅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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