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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사진 rousou 열린마당톡 2015.04.26 신고
'공화전선'이라는 신화
'공화전선'이라는 신화
[79호] 2015년 04월 01일 (수) 15:41:16 조엘 공뱅 정치학자
3월 29일 실시된 프랑스 지방도의회선거 2차 결선투표에서 니콜라지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이끄는 우파성향의 제1야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이 압승을 거뒀고, 마리 르펜이 대표인 극우정당 국민전선(FN)도 다수의 도의원을 배출하며 선전했다. 이 선거에서 국민전선의 부상에 맞서 정치인들은 공화전선 연대를 강조했다. 그런데 공화전선이라는 것이 실제 존재하는 걸까?

공화전선에 대한 논란은 몇 년 전부터 프랑스 정치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논의의 시점은 국민전선(FN)이 부활한 시점과 때를 같이 하고 있다. 국민전선은 우파가 국민운동연합(UMP)으로 통합되어 국민전선의 강력한 경쟁자가 된 이후인 2002년에서 2010년까지 침체기를 겪었다. 침체기를 지나 국민전선이 선거에서 승리를 할 때마다 공화전선에 대한 문제는 지속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런데 매우 모호한 개념인 공화전선은 이성적이고 사실에 근거한 논의가 아니라 신화일 뿐이다.

‘공화전선’이라는 용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날 사용되는 공화전선이라는 말은 ‘공화주의’ 정당이 ‘반공화주의’ 정당에 맞서 싸운 구체적인 전통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선거를 위해 국민전선을 이용

실제로 공화전선은 1955년에 만들어진 좌파 선거연대를 지칭하는 것으로, 장 자크 세르방 슈레베르(1)가 만든 용어다. 기 몰레의 국제노동자 프랑스지부(SFIO), 피에르 망데스 프랑스, 프랑수아 미테랑, (자크 샤방 델마를 포함한) 좌파 드골주의자가 푸자드운동(2)의 부상을 막고 알제리 전쟁으로 위기에 처한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공화전선을 형성했다. 물론 공화국을 지키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지만, 3공화국(1870∼1940) 내내 공화전선은 언제나 좌파 세력의 규합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1935년 나치즘과 파시즘에 대항해 좌파가 구성한 인민전선과는 달리 프랑스공산당(PCF)은 공화전선에서 제외되었다. 1956년 총선에서는 샤를 드골의 프랑스국민연합과 프랑스공산당을 견제하기 위해 5년 전에 채택한 새로운 선거연대법(3)에 따라 너나 할 것 없이 공화전선에 참여해 공화국을 구하고자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8년 5월 13일 발생한 알제 폭동 이후 공화국이 불명예 속에 가라앉는 것을 막지 못했다.

공화전선 구성이 역사적 전통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프랑스 정치사에 확고히 자리 잡은 관례가 하나 있다. ‘공화주의를 위한 사퇴’가 항상 지켜진 것은 아니고 선거제도에 따라 방식이 달라지긴 했지만, 공화 진영의 후보들은 결선투표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위해 사퇴를 하곤 했다(1880년대 좌파가 좋은 예이다). 이 관례는 1914년까지는 공화체제를 지키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면, 그 이후에는 반동세력에 대한 좌파의 선거연대라는 단순한 형태로 변했다. 이 형태는 제5공화국 하에서 지배적이었던 결선투표제 덕분에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벽-미로>, 1996 - 피에르 즈디
공화전선의 문제는 국민전선이 선거에서 승리를 하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에 다시 제기되었다. 용어 자체는 1989년 3개 지역 보궐선거에서 다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드루와 마르세이유 국회의원 선거와 살롱 드 프로방스 지방의원 선거에서 사회당 후보들이 모두 1차 투표에서 탈락하고 국민전선 후보들이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후보들은 지지자들에게 우파에게 투표를 해서 극우 세력을 막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 노력은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드루와 살롱 드 프로방스에서 국민전선 후보가 승리했다. 그런데 피에르 모루와 당시 사회당 대표와 미셸 로카르 총리가 주도한 이 공화전선이 당 내에서 만장일치 지지를 받은 건 아니었다. 쥘리앙 드레, 샤를르 에르뉘 등 많은 수의 사회당 의원들이 반대목소리를 냈고 더욱 놀라운 것은 많은 수의 우파 정치인들도 사회당이 내민 손을 거부했다. 당시 공화국연합(RPR, UMP 전신)의 대표였던 알렝 쥐페는 사회당이 제안한 ‘부자연스러운 연합’을 거부하며, 사회당은 한 손은 내밀면서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공화전선을 둘러 싼 논란은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좌파는 파시즘에 맞서고 우파와의 상호성을 희망하며 공화전선 구성을 옹호한 반면에, 우파가 더 많은 정치적 여지를 갖고 우파가 극우와 가까워지질 가능성이 있고 또한 우파가 과연 ‘보답을 할 것인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공화전선을 반대하기도 했다. 우파의 경우, 중도세력은 극우파에 대한 거부라는 좌파와 공통되는 기본적인 가치를 내세워 공화전선을 찬성하는 반면, ‘강성’ 우파는 좌파에게 투표하고 나아가 좌파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한다면 우파 유권자들을 잃게 되어 결국에는 국민전선이 유리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우파가 국민전선에게 호의적이거나 나아가 연합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1983년 드루 지방선거에서 RPR과 FN은 후보단을 공동 구성했는데, 그 결과 국민전선은 역사상 처음으로 지방정부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1986년에 국민전선의 당선자들은 우파가 정권을 잡은 여러 지방의회에서 부의장이 됐고, 1988년에는 바르와 부슈 뒤 론에서 1차 투표가 끝난 후에 RPR, 중도우파 계열의 프랑스 민주연합(UDF), 국민전선은 결선투표에서 당선 가능성이 더 높은 후보를 위해 사퇴한다는 데 합의했다.

우파와 국민전선의 동맹을 부추기는 데 일부 좌파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물론 공개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장 마리 르펜이 TV 토론에 참여할 수 있었던 데에는 미테랑 대통령의 막후 도움이 있었고, 사회당 소속의 가스통 드페르 마르세이유 시장은 1983년 마르세이유 지방선거에서 ‘안전한 마르세이유’라는 구호를 내건 국민전선과 선거연대를 구성했고, 국민전선을 국회에 진출시키기 위해 1986년 총선에서는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변경했다. 이외에도 사회당이 극우파를 부활시켜 이득을 취하려했다는 증거는 많다. 총리를 지냈던 피에르 베레고부아가 이미 1984년 6월에 “극우파의 약진은 우리에게 유리하다. 그렇게 되면 우파가 선거에 이길 확률은 낮아진다. 사회당에게는 둘도 없는 호기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공화전선’을 둘러싼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

공화전선이라는 개념이 모호한 것은 ‘공화주의 가치’라는 허상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목적에 따라 입장이 바뀌기 때문이다. 정치적 목적은 선거에서 유리한지, 당내 역학관계에 유리한지 두 가지 차원에서 고려된다. 그렇기 때문에 공화전선은 선거에서의 역학관계, 선거제도, 당내 입장 차이 등 여러 가지 문제를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방정식이다. 알렝 쥐페가 1983년 드루에서 RPR과 FN의 연대를 수락하고, 1990년에 당시 RPR 당대표였던 알렝 카리뇽이 빌뇌르반 보궐선거의 결선투표에서 사회당 후보에게 투표하라고 지시하고, 2011년부터 2014년까지 공화전선은 좌파가 우파에 던진 함정이라고 거부한 우파가 올해 2월 두 국회의원 보궐선거 결선투표에서 사회당 후보를 지지한 것은 바로 이 복잡한 방정식에서 나온 것이다.

선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좌파에서는 사회당에 비판적일수록 공화전선의 구성을 반대하는 경향이 크다. 예를 들어, 올해 1월 로브에서 있었던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좌파당의 대표 장 뤽 멜랑숑은 UMP 후보 지지를 거부했다. 하지만 프랑스공산당은 국민전선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로 참여했다. 지역에서는 많은 사회당 후보들이 UMP 후보에 투표하라는 중앙당의 지시를 거부했다. 카트린 아르킬로비치(2012년 카르팡트라)와 실비 후셍(2013년 루아즈) 후보는 자신들의 경쟁자인 UMP 후보가 국민전선의 후보만큼 공화주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지지를 거부한 전례가 있었다.

2010년부터 국민전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선거가 3강 체제가 되어 결선투표제에 혼란을 가져왔다. 국민전선의 득표수에 따라 선거결과가 극적으로 변하는, 대의정치가 왜곡되는 현상이 생겨났다. 2011년부터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주도로 사회당 후보 지지도 거부하고 국민전선과의 동맹도 거부하는 것이 UMP의 당론이 되었다(그 유명한 ‘양비(兩非)전략’이다). 그런데 공화전선에 대한 논란은 2011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전선이 194개 선거구에서 결선투표에 진출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다시 시작됐다. 그런데 UMP의 거부로 공화전선이 구성되지 않았음에도 국민전선은 두 군데에서밖에 승리하지 못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국민전선에 대한 전략적 입장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공화전선’이 프랑스 정치 운명을 결정짓는 신화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공화전선에 대한 논의가 수면에 떠오를 때마다 공화전선을 구성했던 때가 황금시대였던 것처럼 기억하지만 실제로는 한 번도 존재하지 않은 시대였다. 게다가 1998년 이후에는 극우파와의 연대를 확실하게 제외시키는 일종의 ‘방역선’이 만들어졌다.

2002년 4월 21일 대선에서 좌파가 자크 시라크 대통령을 지지한 것이 공화전선의 신화를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 재선된 시라크 대통령은 자신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공화체제 수호의 상징이 되었다. 역사가들이 다르게 말하고 있지만 시라크 대통령은 언제나 공화전선을 반대했다고 할 수 있다. 시라크 대통령은 1983년 드루에서 국민전선과의 동맹을 축복해주었고, 1985년과 1988년 선거에서는 지역에 따라 RPR과 FN이 연대하도록 놔두었고, 1990년에는 카리뇽 후보의 출마를 승인하지 않았다. 물론 시라크 대통령이 1998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전선과의 연대를 반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어쨌든 시라크 대통령은 4월 21일 대선 승리를 통해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고, 어떤 정치적 영향도 받지 않고 (노동자투쟁당을 제외한) 전 좌파가 참여한 공화전선의 최대 정치적, 상징적 수혜자가 되었다.

정체성이 불확실한 ‘공화전선’

만약 공화전선이 신화라면 그 신화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는 신화는 ‘임기웅변의 지적 논리’라고 말했다. ‘계획이나, 의식적인 모델 없이 손에 잡히는 것을 가지고 건축물을 올리는 게임의 결과’라는 것이다.(4)” 레비 스트로스에 따르면 신화는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행동을 하는 데 근거가 된다. 공화전선의 신화는 정치인들에게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 혼란스러운 정치상황을 이해시켜준다. 국민전선과의 투쟁이라는 고매하고도 긴급한 의무라는 이름으로 정치적 역전을 정당화해준다. 그리고 공화전선은 공화전선 구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들 편에 그리고 공화주의와 공화국이 추구하는 가치들 편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가치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구체적으로 모르지만 어쨌든 국민전선은 속해 있지 않다.

공화전선이 실제로 효과적인 선거 전략인지 증명된 바는 없다. 제롬 푸르케와 다미엥 필리포의 예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5) 2011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전선은 우파 뿐 아니라 좌파를 물리치고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하지만 많은 수의 국민전선 후보들은 공화전선이 구성되지 않았는데도 패배했고 공화전선에도 불구하고 선출된 후보들도 있다. 최근 선거에서 엘자 디 메오 사회당 후보가 사퇴를 했지만 국민전선의 다비드 라쉴린 후보가 프레주시스에서 선출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반대로 필립 로티오 국민전선 후보가 아비뇽에서 1차 투표에서 최다 득표를 했지만 공화전선 없이도 사회당이 승리했다. 정치인과 정당에 대해 불신감을 가지고 있는 유권자들이 당의 투표 지시를 따르지 않았고 지역마다 서로 다른 역학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전선이 결선투표에 진출한 경우 표의 이동을 면밀하게 분석하면, 국민전선의 지지자와 UMP 지지자가 겹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2월에 있었던 두 보궐선거에서 2명의 UMP 지지자 중 1명이 결선투표에서 국민전선 후보에 투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6) (4분의 1은 사회당을 지지했고 나머지 4분의 1은 무효표를 던지거나 기권했다.) 다시 말해, 공화전선 유권자와 국민전선 유권자가 분명하게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우파와 극우파 유권자 사이에 분명한 통합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좌파 유권자의 경우, UMP가 국민전선화되었다고 비난한 마당에 우파를 지지하라는 지시에 따르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화전선이 선거에 효과적인 결과를 내리라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공화전선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중심에 있으면서도 주변에 머물러 있는 국민전선의 모호한 정치적 위치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공화전선’이라는 모호한 용어도 한 몫을 한다. 공화전선은 진영(찬성하는 진영과 반대하는 진영)이기도 한 동시에 대립의 장(場)이어서 정확하고 분명한 내용을 갖지 않는 이상 더 이상 수호해야 할 신념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그 신념이라는 것이 극좌파에서부터 UMP까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걸까?



글 · 조엘 공뱅Joël Gombin
피카르디 쥘베른 대학교 교수.www.joelgombin.fr를 운영하며 정치, 환경 등에 대한 다양한 글을 싣고 있다. 주요 저서로 <프로방스-알프스-코트 다 쥐르 선거에서의 우파>가 있다.

번역‧임명주 mydogtulip156@daum.net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1) Jean-Jacques Servan-Schreiber(1924-2006)은 시사주간지 (1953년)를 창간했으며 급진당을 이끌었다.
(2) 피에르 푸자드가 이끈 프랑스형제당은 중소상공인의 납세반대운동과 식민제국 수호를 주장했다. 푸자드당 소속이었던 장 마리 르펜은 1956년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다.
(3) 이 법에 따라 정당들은 연대를 통해 총 투표 수의 최소 50%를 득표하면 선거구에 부여된 의석 전체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4) Charles Delattre, <그리스 신화 기본서(Manuel de mythologie grecque)>, Bréal, Paris, 2005. Claude Lévi-Strauss, <야생의 사고(La Pensée sauvage)>, Plon, Paris, 1962년.
(5) Jérôme Fourquet, Damien Philippot, ‘2007-2011  ‘국민전선의 부활’(2007-2011, le retour du Front national)’, IFOP Focus, n° 41, Paris, 2011년 8월호.
(6) Cf. ‘UMP, PS’, 2015년 2월 13일, www.salt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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