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오해>-[펌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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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 만남을 통해서 이런저런 인연들이 맺어지고, 그 인연의 연결고리를 통해 조화로운 관계를 맺으며 한 단계 성숙해지기도 한다.
.
하지만 어느 순간 부조화속에 그 인연들이 부질없는 것으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그 저간에는 우스개로 말해서 '이해(二解)에다 삼해(三解)를 더한' 오해(誤解)가 있다.
.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시를 가지고서도 세상을 놀라게 한 사람이지만, 이 세상이라는 큰 마당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관계도 날카롭게 묘사한 사람이다. "세상은 오직 오해에 의해서 진행 되는 것이다.
.
모든 사람이 서로 합의 하는 것은 전반적인 오해에 의해서다. 왜냐하면, 만약 불행하게도 서로 상대를 알게 된다면, 결코 합의 할 수 없을 터이니까." 보들레르의 내밀 일기에 실린 글이다. 탁견(卓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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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아닌 오해에서 비롯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 이해와 오해의 불협화음속에서 사람들은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우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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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는 그 오해를 다음과 같이 옹호하고 있다. ."거의 모든 인간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랑에 있어서도 우호적인 합의는 오해의 결과이다. 오해, 그것이 곧 기쁨이다.
.
사내가 외친다. '오! 내 천사!' 여자는 우 짖는다. '엄마, 엄마!' 그러고는 이 두 바보들은 자기들이 똑같이 생각한다고 확신한다.".
.
어디 보들레르만 그랬을까?
법정 스님도 잠언 속에서 오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누가 나를 치켜세운다고 해서 우쭐댈 것도 없고, 헐뜯는다고 해서 화를 낼 일도 못 된다. 그건 모두가 한 쪽만을 성급하게 판단한 오해이기 때문이다.
.
오해란 이해 이전의 상태가 아닌가.
문제는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달린 것이다. 실상은 말 밖에 있는 것이고, 진리는 누가 뭐라 하든 흔들리지 않는다. 온전한 이해는 그 어떤 관념에서가 아니라 지혜의 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 이전에는 모두가 오해일 뿐이다.".오해와 이해, 그 설명하기 힘든 짧은 간극 속에 요지경 같은 인간들의 삶이 있다. 그래서 헤라클레이토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불협화음에서 가장 아름다운 협주를 만들어낸다."
그렇다,
오해와 이해 사이의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차이에서 항상 주저하고 망설이는 것이 우리네 삶이며, 종국엔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다.
우리는 그렇게 세상에서 잠시 살다 가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 만남을 통해서 이런저런 인연들이 맺어지고, 그 인연의 연결고리를 통해 조화로운 관계를 맺으며 한 단계 성숙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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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느 순간 부조화속에 그 인연들이 부질없는 것으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그 저간에는 우스개로 말해서 '이해(二解)에다 삼해(三解)를 더한' 오해(誤解)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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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는 시를 가지고서도 세상을 놀라게 한 사람이지만, 이 세상이라는 큰 마당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관계도 날카롭게 묘사한 사람이다. "세상은 오직 오해에 의해서 진행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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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서로 합의 하는 것은 전반적인 오해에 의해서다. 왜냐하면, 만약 불행하게도 서로 상대를 알게 된다면, 결코 합의 할 수 없을 터이니까." 보들레르의 내밀 일기에 실린 글이다. 탁견(卓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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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아닌 오해에서 비롯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 이해와 오해의 불협화음속에서 사람들은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우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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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는 그 오해를 다음과 같이 옹호하고 있다. ."거의 모든 인간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랑에 있어서도 우호적인 합의는 오해의 결과이다. 오해, 그것이 곧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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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가 외친다. '오! 내 천사!' 여자는 우 짖는다. '엄마, 엄마!' 그러고는 이 두 바보들은 자기들이 똑같이 생각한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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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보들레르만 그랬을까?
법정 스님도 잠언 속에서 오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누가 나를 치켜세운다고 해서 우쭐댈 것도 없고, 헐뜯는다고 해서 화를 낼 일도 못 된다. 그건 모두가 한 쪽만을 성급하게 판단한 오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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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란 이해 이전의 상태가 아닌가.
문제는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달린 것이다. 실상은 말 밖에 있는 것이고, 진리는 누가 뭐라 하든 흔들리지 않는다. 온전한 이해는 그 어떤 관념에서가 아니라 지혜의 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 이전에는 모두가 오해일 뿐이다.".오해와 이해, 그 설명하기 힘든 짧은 간극 속에 요지경 같은 인간들의 삶이 있다. 그래서 헤라클레이토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불협화음에서 가장 아름다운 협주를 만들어낸다."
그렇다,
오해와 이해 사이의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차이에서 항상 주저하고 망설이는 것이 우리네 삶이며, 종국엔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다.
우리는 그렇게 세상에서 잠시 살다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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