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고 행복합니다.
고맙고 행복한 날입니다.
거의 잊고 지낸 꾸러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 동안 찾아뵙지 못해서 정말 죄송하답니다.
자꾸 자꾸 용서해 달라는 말을 거듭하네요.
사실 아들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살아있다는 확신의 목소리에 반갑고 또 반가웠습니다.
목소리는 다소 저음에 떨리는 듯했습니다.
“너 별일 있는 건 아니지? 무슨 사고 쳤어?”
“아니야 이모. 난 사고치지 않았어.
그냥 살기가 힘들어서 이모 못 찾았어. 이모 건강해?”
동생과 함께 식당 씨즐러에서 만났습니다. 저녁을 함께 하자고 했지요.
마음이 급해서 조금 일찍 도착했더니 아직 보이지가 않더군요.
전화를 걸었더니 벌써 왔느냐며 금방 오겠노라기에 잠시 기다렸더니
정말 믿기지 않는 아들이 나타났습니다.
건장한 체격에 멀끔한 모습인 그가 눈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눈이 마주치자 무조건 끌어 앉더라구요. 그리고 놔주질 않는 것입니다.
물론 동생에게도 마찬가지였죠.
“그래, 너 죽지 않고 살았구나.
난 네가 아프카니스탄에 가서 전사한 줄 알았지.”
“이모 전사했으면 이모가 생명보험을 탔겠지.
내가 이모 이름으로 들었다고 했잖아.”
드디어 밥상에 마주했습니다.
아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어찌나 눈물을 많이 흘렸던지
아들의 두 눈이 벌겋게 젖어 있었습니다.
아들은 왜 연락을 하지 않았느냐고 닥달이나 할 줄 알았나 봅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돌아왔는데 어찌 닥달을 하겠습니까?
그저 고맙고 반갑기만 했지요.
비록 배 아파서 난 아들은 아닙니다.
소위 가슴으로 난 아들입니다.
중3 때부터 나와 또 다른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사춘기의 아픔을 많이도 겪은 아이였지요.
어머니는 4학년 때 자살을 하셨다네요.
그 때 아버지는 곁에 계시지 않아 6학년이 되면서
미국으로 혼자 보내졌는데 LAX 국제공항에서
아버지가 나타나지 않아 국제고아가 되었었다는 겁니다.
이 집 저 집을 돌고 돌아 우리 집으로 왔었지요.
어려서부터 어른들의 사랑을 받을 기회가 없었던 아이는
말씨 조차나 어눌했지요. 다른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해서
늘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어지간히 말썽을 부린 편이기도 하구요.
소위 왕따의 자리를 스스로 만든 꼴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유난스럽게 사춘기의 병을 앓았다고도 할 수 있지요.
그 때 너무 우울증이 심해서 이모를 많이 괴롭혔다고 미안하다고 하네요.
세월이 흘러 18세가 넘었지만 마땅히 갈 곳이 있을 리가 없었죠.
군에 입대를 종용하게 되었습니다.
20세가 다 되어 그것도 해병대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군에 입대하던 날 앓던 이 빠진 것보다 시원하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러나 마음 한 구석이 아렸습니다.
몇 달이 지나고 전화가 왔습니다.
무슨 졸업식을 하는데 꼭 와서 봐 주어야한답니다.
먼 길 찾아갔었지요. 눈에 보이는 아들의 모습 믿기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늠름하던지...
그 후에도 몇 번 전화가 왔습니다.
부대를 옮기는데 꼭 와야 한다나요.
몇 시간을 걸려 또 찾아가곤 했습니다.
연병장에 질서정연하게 정열되어 있는 해병대, 그 속에 아들이 있었습니다.
얼마 후 어떤 그룹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데 어떤 그룹은 흩어지는 겁니다. 어쩔 줄 모르고 군인들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데 이 아들이
저희 앞에 나타났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군인들은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부모가 온 군인들만 자유로 부모를 만나는 시간을 허락해 주었다는 거예요. 단 1시간이었습니다만, 행복해 하는 그의 모습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1시간을 만나려고 6시간을 운전해야 했던 것입니다.
언젠가는 전화를 하고 하는 말이, “이모 나 성공한 놈이야”
크게 외치던 놈입니다.
그러니까 군 생활을 무난히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 때 하는 말이 이 훈련이 끝나면 아마도 이락이나 이란 혹은
아프카니스탄으로 가야 할 거라고 했었지요.
그리곤 지금까지 소식이 끊어졌던 겁니다.
군 생활을 5년이나 했다면서 무지 힘들었노라고 말하더라구요.
아무튼 이렇게 멋진 아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이제는 자주 찾아온다네요. 고맙고 행복합니다.
거의 잊고 지낸 꾸러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 동안 찾아뵙지 못해서 정말 죄송하답니다.
자꾸 자꾸 용서해 달라는 말을 거듭하네요.
사실 아들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살아있다는 확신의 목소리에 반갑고 또 반가웠습니다.
목소리는 다소 저음에 떨리는 듯했습니다.
“너 별일 있는 건 아니지? 무슨 사고 쳤어?”
“아니야 이모. 난 사고치지 않았어.
그냥 살기가 힘들어서 이모 못 찾았어. 이모 건강해?”
동생과 함께 식당 씨즐러에서 만났습니다. 저녁을 함께 하자고 했지요.
마음이 급해서 조금 일찍 도착했더니 아직 보이지가 않더군요.
전화를 걸었더니 벌써 왔느냐며 금방 오겠노라기에 잠시 기다렸더니
정말 믿기지 않는 아들이 나타났습니다.
건장한 체격에 멀끔한 모습인 그가 눈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눈이 마주치자 무조건 끌어 앉더라구요. 그리고 놔주질 않는 것입니다.
물론 동생에게도 마찬가지였죠.
“그래, 너 죽지 않고 살았구나.
난 네가 아프카니스탄에 가서 전사한 줄 알았지.”
“이모 전사했으면 이모가 생명보험을 탔겠지.
내가 이모 이름으로 들었다고 했잖아.”
드디어 밥상에 마주했습니다.
아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어찌나 눈물을 많이 흘렸던지
아들의 두 눈이 벌겋게 젖어 있었습니다.
아들은 왜 연락을 하지 않았느냐고 닥달이나 할 줄 알았나 봅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돌아왔는데 어찌 닥달을 하겠습니까?
그저 고맙고 반갑기만 했지요.
비록 배 아파서 난 아들은 아닙니다.
소위 가슴으로 난 아들입니다.
중3 때부터 나와 또 다른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사춘기의 아픔을 많이도 겪은 아이였지요.
어머니는 4학년 때 자살을 하셨다네요.
그 때 아버지는 곁에 계시지 않아 6학년이 되면서
미국으로 혼자 보내졌는데 LAX 국제공항에서
아버지가 나타나지 않아 국제고아가 되었었다는 겁니다.
이 집 저 집을 돌고 돌아 우리 집으로 왔었지요.
어려서부터 어른들의 사랑을 받을 기회가 없었던 아이는
말씨 조차나 어눌했지요. 다른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해서
늘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어지간히 말썽을 부린 편이기도 하구요.
소위 왕따의 자리를 스스로 만든 꼴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유난스럽게 사춘기의 병을 앓았다고도 할 수 있지요.
그 때 너무 우울증이 심해서 이모를 많이 괴롭혔다고 미안하다고 하네요.
세월이 흘러 18세가 넘었지만 마땅히 갈 곳이 있을 리가 없었죠.
군에 입대를 종용하게 되었습니다.
20세가 다 되어 그것도 해병대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군에 입대하던 날 앓던 이 빠진 것보다 시원하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러나 마음 한 구석이 아렸습니다.
몇 달이 지나고 전화가 왔습니다.
무슨 졸업식을 하는데 꼭 와서 봐 주어야한답니다.
먼 길 찾아갔었지요. 눈에 보이는 아들의 모습 믿기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늠름하던지...
그 후에도 몇 번 전화가 왔습니다.
부대를 옮기는데 꼭 와야 한다나요.
몇 시간을 걸려 또 찾아가곤 했습니다.
연병장에 질서정연하게 정열되어 있는 해병대, 그 속에 아들이 있었습니다.
얼마 후 어떤 그룹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데 어떤 그룹은 흩어지는 겁니다. 어쩔 줄 모르고 군인들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데 이 아들이
저희 앞에 나타났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군인들은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부모가 온 군인들만 자유로 부모를 만나는 시간을 허락해 주었다는 거예요. 단 1시간이었습니다만, 행복해 하는 그의 모습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1시간을 만나려고 6시간을 운전해야 했던 것입니다.
언젠가는 전화를 하고 하는 말이, “이모 나 성공한 놈이야”
크게 외치던 놈입니다.
그러니까 군 생활을 무난히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 때 하는 말이 이 훈련이 끝나면 아마도 이락이나 이란 혹은
아프카니스탄으로 가야 할 거라고 했었지요.
그리곤 지금까지 소식이 끊어졌던 겁니다.
군 생활을 5년이나 했다면서 무지 힘들었노라고 말하더라구요.
아무튼 이렇게 멋진 아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이제는 자주 찾아온다네요. 고맙고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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