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주춧돌
적지 않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살아온 세월이 결코 평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드라마틱하였노라고 말하기엔 조금 부족함이 있다고 하겠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에 어떤 사람들을 만났느냐에 따라서 삶에 모양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이민생활에서는 공항에 누가 나와서 기다려주었느냐에 따라 그 사람처럼 살게 되었노라고 모두들 고백 아닌 고백을 한다.
그런데 그게 사실인 경우가 대부분이 아니던가? 물론 용감한 사람들 환경을 빨리 개선하는 사람들 또한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나는 흔히 말하는 공항에서 기다려준 사람을 따라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목사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전에 다니던 교회는 감리교회였는데 Pick up 해주신 분을 따라 장로교 목사가 되었다.
사실은 내 인생의 3분의 스승님이 계시다. 중학교 입학을 전적으로 책임지어 주신 6학년 담임이셨던 송소년 선생님 지금은 106세가 되셨는데 아직도 살아 계시다. 100세 되던 해에 한국에 나가서 뵙고 왔으니 6년이 지나서 106세가 되셨다.
또 한분은 중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이신데 미국에 살고 계셔서 두 달에 한번 정도는 찾아뵙는다. 늘 새벽 5시 반이면 일어나셔서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신다는 제자 해바라기시다.
마지막 한분 바로 공항에서 기다려주셨던 분이시다. 초등학교 3학년 대부터 주일학교 시절 노래와 연극 등을 가르치시며 우리 형제자매를 모두 꿰뚫고 계셔서 만나면 이야기가 길어진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군목으로 가셔서 모교를 떠나시곤 줄곳 외국에만 계셨는데 월남 참전용사, 호주 선교사, 그리고 미국에 오셔서 교회를 하시면서 사시는데 늘 서로 그리워하며 사는 형편이다. 8순이 넘으신 목사님 아직도 바쁘시기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운 분이시고, 거지생활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 많은 나와는 만나려면 전화를 셀 수 없이 해야 겨우 통화가 되어 견우 직녀 만나듯이 만날 수 있는 분이시다. 동생과 나는 늘 함께 다니기에 물론 만날 때도 함께 만난다. 아니 동생이 더 목사님을 챙기는 편이다. 사모님 왈, 친 시누이보다 어려운 시누이들이라며 항상 반겨주신다.
이 목사님께서 월남전에서 얻은 고엽제 후유의증으로 인해 시력을 잃으셔서 운전도 하실 수 없는 형편이시기에 사모님 아니시면 한 걸음도 밖으로 다니실 수조차 없으신 분이시다. 얼마전에 집에 계시면서 수영장 둘레에서 넘어지셔서 눈을 다치셔서 조금씩 자전거 바퀴만한 돋보기로 신문을 읽으시고, 설교나 강의 준비를 하셨는데 그나마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셨단다. 이제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볼 수 없어 전화기조차 보이지 않아서 손에 계시다가도 전화가 오면 아무거나 누르셔서 받기는커녕 꺼버리게 되노라고 짜증을 내시는 정도였다. 그러니 아무데도 갈 수 없어 집에만 있노라고 하시기에 동생과 함께 댁을 찾아갔는데 이건 또 웬일, 아니 계시는 게 아닌가.
나가실 수조차 없으시다기에 팥죽과 녹두죽을 두 그릇씩 사가지고 소풍삼아 갔는데 아니 계시니 말이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인기척이 없는 거였다. 뒤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서 수영장 옆에 놓여있는 탁자에서 가지고 간 죽을 우리 둘이만 먹으면서 기다렸으나 아무런 연락이 없는 거였다. 전화기 다이알은 계속 꾹꾹 계속 눌러가면서... 대답없는 이름이여!
허무하기가 짝이 없었다. 마침 주위를 둘러보니 대추나무에 대추가 주렁주렁 열려있는 게 아닌가. 전에 만나 뵈었을 때 언제든지 와서 따가라고 하시지 않으셨던가. 우리는 신나라 대추를 따서 바구니에 넣고 허무한 마음을 달래며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오늘 겨우 통화가 되었다. 눈을 수술하셔야 하는데 의사가 부족해서 계획을 잡을 수는 없고, 시시때때로 오라고 해서 진찰만 하기에 언제 오라고 할 지 모르니 토요일에만 오라고 하신다. 토요일은 거지들 잔치날인데... 알았어요, 조금 더 기다리세요.
참 이 세분들의 공통점이 있다. 우리가 간다고 하면 3시간 전에 밖에 나와서 기다리셔서 가는 시간을 언제나 2-3시간 늦춰서 말씀드려야 한다. 세분 모두 나와 동생을 동일시 여기시기에 늘 쌍으로 뵈러 간다. 이 세분을 만났기에 나의 인생길은 험해도 험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에 어떤 사람들을 만났느냐에 따라서 삶에 모양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이민생활에서는 공항에 누가 나와서 기다려주었느냐에 따라 그 사람처럼 살게 되었노라고 모두들 고백 아닌 고백을 한다.
그런데 그게 사실인 경우가 대부분이 아니던가? 물론 용감한 사람들 환경을 빨리 개선하는 사람들 또한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나는 흔히 말하는 공항에서 기다려준 사람을 따라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목사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전에 다니던 교회는 감리교회였는데 Pick up 해주신 분을 따라 장로교 목사가 되었다.
사실은 내 인생의 3분의 스승님이 계시다. 중학교 입학을 전적으로 책임지어 주신 6학년 담임이셨던 송소년 선생님 지금은 106세가 되셨는데 아직도 살아 계시다. 100세 되던 해에 한국에 나가서 뵙고 왔으니 6년이 지나서 106세가 되셨다.
또 한분은 중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이신데 미국에 살고 계셔서 두 달에 한번 정도는 찾아뵙는다. 늘 새벽 5시 반이면 일어나셔서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신다는 제자 해바라기시다.
마지막 한분 바로 공항에서 기다려주셨던 분이시다. 초등학교 3학년 대부터 주일학교 시절 노래와 연극 등을 가르치시며 우리 형제자매를 모두 꿰뚫고 계셔서 만나면 이야기가 길어진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군목으로 가셔서 모교를 떠나시곤 줄곳 외국에만 계셨는데 월남 참전용사, 호주 선교사, 그리고 미국에 오셔서 교회를 하시면서 사시는데 늘 서로 그리워하며 사는 형편이다. 8순이 넘으신 목사님 아직도 바쁘시기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운 분이시고, 거지생활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 많은 나와는 만나려면 전화를 셀 수 없이 해야 겨우 통화가 되어 견우 직녀 만나듯이 만날 수 있는 분이시다. 동생과 나는 늘 함께 다니기에 물론 만날 때도 함께 만난다. 아니 동생이 더 목사님을 챙기는 편이다. 사모님 왈, 친 시누이보다 어려운 시누이들이라며 항상 반겨주신다.
이 목사님께서 월남전에서 얻은 고엽제 후유의증으로 인해 시력을 잃으셔서 운전도 하실 수 없는 형편이시기에 사모님 아니시면 한 걸음도 밖으로 다니실 수조차 없으신 분이시다. 얼마전에 집에 계시면서 수영장 둘레에서 넘어지셔서 눈을 다치셔서 조금씩 자전거 바퀴만한 돋보기로 신문을 읽으시고, 설교나 강의 준비를 하셨는데 그나마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셨단다. 이제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볼 수 없어 전화기조차 보이지 않아서 손에 계시다가도 전화가 오면 아무거나 누르셔서 받기는커녕 꺼버리게 되노라고 짜증을 내시는 정도였다. 그러니 아무데도 갈 수 없어 집에만 있노라고 하시기에 동생과 함께 댁을 찾아갔는데 이건 또 웬일, 아니 계시는 게 아닌가.
나가실 수조차 없으시다기에 팥죽과 녹두죽을 두 그릇씩 사가지고 소풍삼아 갔는데 아니 계시니 말이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인기척이 없는 거였다. 뒤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서 수영장 옆에 놓여있는 탁자에서 가지고 간 죽을 우리 둘이만 먹으면서 기다렸으나 아무런 연락이 없는 거였다. 전화기 다이알은 계속 꾹꾹 계속 눌러가면서... 대답없는 이름이여!
허무하기가 짝이 없었다. 마침 주위를 둘러보니 대추나무에 대추가 주렁주렁 열려있는 게 아닌가. 전에 만나 뵈었을 때 언제든지 와서 따가라고 하시지 않으셨던가. 우리는 신나라 대추를 따서 바구니에 넣고 허무한 마음을 달래며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오늘 겨우 통화가 되었다. 눈을 수술하셔야 하는데 의사가 부족해서 계획을 잡을 수는 없고, 시시때때로 오라고 해서 진찰만 하기에 언제 오라고 할 지 모르니 토요일에만 오라고 하신다. 토요일은 거지들 잔치날인데... 알았어요, 조금 더 기다리세요.
참 이 세분들의 공통점이 있다. 우리가 간다고 하면 3시간 전에 밖에 나와서 기다리셔서 가는 시간을 언제나 2-3시간 늦춰서 말씀드려야 한다. 세분 모두 나와 동생을 동일시 여기시기에 늘 쌍으로 뵈러 간다. 이 세분을 만났기에 나의 인생길은 험해도 험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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