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창작

[내 마음의 隨筆] <삼대륙(三大陸)의 르네상스 인간(人間)과 AI 時代(시대)의 創意的 思考(창의적 사고)>

2026.03.06

[내 마음의 隨筆]


<삼대륙(三大陸)의 르네상스 인간(人間)과 AI 時代(시대)의 創意的 思考(창의적 사고)>


歷史(역사)를 돌아보면 서로 다른 大陸(대륙)과 文化(문화) 속에서도 놀라울 만큼 비슷한 人間型(인간형)이 나타난다. 朝鮮(조선)에는 노련한 외교관이자 뛰어난 文人(문인) 최립(崔岦, 1539–1612)이 있었고, 歐洲(구주)에는 르네상스의 代表的 天才(대표적 천재) Leonardo da Vinci(1452–1519)가 있었으며, 北美(북미)에는 實用的 智慧(실용적 지혜)의 象徵(상징)인 Benjamin Franklin(1706–1790)이 있었다. 이 三人(삼인)은 서로 다른 時代(시대)와 文化圈(문화권) 속에서 살았지만, 學問(학문)과 藝術(예술), 科學(과학)과 社會(사회)를 넘나드는 르네상스型 知性(지성)이라는 共通點(공통점)을 지닌다.


먼저 朝鮮(조선)의 선비(士) 崔岦(최립)을 생각해 보자. 그는 ‘稀代(희대)의 天才(천재)’라 불리웠던 外交官(외교관)이고 學者(학자)이면서도 詩人(시인)이었고, 自然(자연)과 人間(인간)의 삶을 깊이 省察(성찰)하는 文學的 精神(문학적 정신)을 지녔다. 그의 文章(문장) 속에는 人間과 自然, 學問과 生活이 서로 分離(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調和(조화)로운 世界(세계)로 連結(연결)되어 있다. 崔岦에게 學問은 단순한 知識(지식) 蓄積(축적)이 아니라 人間의 마음과 世上(세상)을 理解(이해)하기 위한 綜合的 思惟(종합적 사유)의 過程(과정)이었다.


歐洲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또 다른 形態(형태)의 르네상스 人間이다. 그는 畵家(화가)이면서 科學者(과학자)였고, 工學者(공학자)이면서 發明家(발명가)였다. 人體 解剖學(인체 해부학)을 硏究(연구)하며 藝術 作品(예술 작품)을 完成(완성)했고, 鳥類 飛行(조류 비행)을 觀察(관찰)하며 機械 設計(기계 설계)를 構想(구상)했다. 그의 삶은 藝術과 科學이 서로 分離되지 않는다는 事實(사실)을 보여 준다. 다빈치에게 創意性(창의성)은 한 分野(분야)의 專門性(전문성)에서만 나오지 않았다. 서로 다른 學問이 만나 새로운 發想(발상)을 만들어 내는 過程에서 創造力(창조력)이 꽃피었다.


그리고 美國의 벤자민 프랭클린은 實踐的 르네상스 人間이었다. 그는 科學者이면서 政治家(정치가)였고, 發明家이면서 外交官(외교관)이었다. 雷電(뢰전, 번개)의 性質(성질)을 硏究하여 電氣 現象(전기 현상)을 說明(설명)했고, 同時(동시)에 國家 建設(국가 건설)의 過程에서 重要(중요)한 外交的 役割(외교적 역할)을 遂行(수행)했다. 그의 삶은 知識이 社會와 連結될 때 얼마나 큰 變化(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三人을 比較(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特徵(특징)이 나타난다. 崔岦은 思索(사색)의 르네상스, 다빈치는 探究(탐구)의 르네상스, 프랭클린은 實踐(실천)의 르네상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三種(삼종)의 精神(정신)은 서로 따로 存在(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調和(조화)될 때 더욱 큰 力量(역량)을 發揮(발휘)한다. 思索은 探究를 깊게 하고, 探究는 實踐을 豊富(풍부)하게 만들며, 實踐은 다시 새로운 思索을 낳는다.


이러한 綜合的 知性(종합적 지성)의 重要性(중요성)은 오늘날 ‘AI 時代(인공지능 시대)’에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人工知能(인공지능)은 膨大(방대한)한 情報(정보)를 分析(분석)하고 計算(계산)하는 能力(능력)에서는 人間을 앞서고 있지만, 서로 다른 分野의 知識을 連結하여 새로운 意味(의미)를 發見(발견)하는 能力은 여전히 人間의 ‘創意的 思考(창의적 사고)’에 크게 依存(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現代 社會(현대 사회)에서는 한 分野에만 머무는 知識보다 ‘學際的 思考(학제적 사고)’와 ‘創造的 融合 能力(창조적 융합 능력)’이 더욱 重要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人工知能 技術(인공지능 기술)을 發展(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컴퓨터 科學뿐 아니라 倫理學(윤리학), 社會學(사회학), 哲學(철학), 藝術的 想像力(예술적 상상력)까지 함께 필요하다. 技術이 人間 社會에 미치는 影響(영향)을 理解하려면 다양한 學問 分野가 서로 對話(대화)해야 한다.


이런 意味에서 다빈치의 綜合的 探究 精神(종합적 탐구 정신), 프랭클린의 實踐的 智慧(실천적 지혜), 그리고 崔岦의 깊은 人文學的 思索(인문학적 사색)은 오늘날에도 매우 重要한 知的 模範(지적 모범)이 된다.


結局(결국) 三人의 삶은 우리에게 하나의 共通된 敎訓(교훈)을 전한다. 創意性은 한 分野의 狹小(협소)한 境界(경계) 안에서만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思想(사상)과 學問이 만날 때 새로운 發想과 創造가 탄생한다. 朝鮮의 선비(士) 崔岦, 歐洲의 天才 다빈치, 그리고 美國의 實用家 프랭클린은 모두 自身의 時代에서 그러한 統合的 思考(통합적 사고)를 實踐한 人物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AI 時代는 어쩌면 새로운 르네상스를 要求(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技術과 人文學, 科學과 藝術, 知識과 社會를 서로 連結하는 ‘學際的 創意性(학제적 창의성)’이야말로 未來(미래)를 여는 가장 重要한 열쇠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우리는 三大陸의 르네상스 人間들이 남긴 永續的 智慧(영속적 지혜)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


2026. 3. 6. 


崇善齋에서

{솔티}


English Translation: 

日本語 飜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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