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한국적 민주주의를 기억하는가?

2020.06.23

나는 대학시절에 위수령, 계엄령, 유신시대을 모두 겪었다. 유신이 선포된 학기에는 비싼 등록금 내고 한학기 내내 수업은 커녕 기말시험도 리포트로 대체한 시절에 대학교를 다닌 사람이다.

그 당시, 그래도  우리는 “우리라도”라는 이유 하나로 무언의 시위도 했었고, 반은 찌그러진 누런 주전자에 카바이트 막걸리가 담겨 나와도 그저 외상으로라도 마실수 있게 해줘서 고마웠던 막걸리집이라도 있어서 마음 푸근하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사카린 물에 살짝 적셔져 공짜로 나오던 토막난 생고구마를 유일하게 안주삼아서 “♬울려고 내가왔나♬ 웃을려고 왔던가?♬”를 젖가락이 부러지고 목청이 터지도록 부를라 치면, 왜 그 노래 부르냐고 금지곡 시켜버리고, 그것도 모자랐는지 왜 방정맞게 큰 소리로 노래 부르냐고 고성방가라 해서 또 잡아가고, 당신이나 나나 비틀즈 흉네 낸다고 멋지게 기른 머리 깎일까봐 이 골목 저 골목으로 숨어서 다녀야만 했던 그 시절은 참으로 참담하고 암울했던 시절이었다.

당시 뻑 하면 여기 저기에 잦대를 들이대며 횡포를 부리던 "한국적 민주주의' 문구를 기억하는가?

불 끄라면 불끄고, 

쥐 잡아오라면 쥐 잡아가고,

왜 뛰어가냐고 하면 걸어서 가고,

그저 하라는 대로 무조건 순종하며 숨죽여 살던 방식들이 그 시절의 한국적 민주주의였다..

머리가 왜 기냐고 바리깡으로 박박 밀어버리던 그들,

미니스커트 입고 뽐내던 춘자와 영자를 네거리에 세워놓고 챙피를 주던 그들,

골목마다 진을 치고는 책가방이라도 조금 크게 보이면 가방을 열어보라고 다구치던 그들,

그 권력의 하수인들은 요즘 무얼 하고 있을까?

누구 처럼 자서전을 쓰고있을까?

누구들처럼 희희득 거리며 떼거리로 몰려다니면서 댓글질을 하고있을까?

권력에 기생하던 기회주의자들은 출세도 참 잘하더라.

그런데 말이다.

미니스카트 입었다고 네거리에 잡혀서 챙피 당하던 춘자와 영자는 지금쯤 손자 데리고 다닐 나이일텐데 벌써 치매가 덮쳤는지 한 맺혔던 그때 일들을 모두 잊어 버렸다고 한단다. 그게 언젯적 얘기인데 미국까지 와서 뭣땜시 그 일들을 기억을 하냐고도 한단다. 버들집에서 울분을 토해내며 막걸리 마시던 그 친구 놈들도 "옛날 일인데 뭐" 하며 그때 일들을 죄다 잊어버렸다고 한단다. 아니 잊기로 작정을 했다고 한단다. 그리곤 지금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누구 덕인데 왜 사사건건 시비조냐는 식으로 그들은 살아가고 있단다. 그들은 또한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그나마 지금 잘 살고있는데 무슨 불평이냐"며 그시대 패거리들과 동조해서 히죽거리며 몰려다니고 있단다. 

차라리 나처럼 무관심속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는 소문이라도 들었다면 그래도 내 기억속엔 춘자와 영자와 친구놈들로 남아있을 터인데, 그저 모른채 지켜보고만 있었던 나보다도, 그 시대의 모두를 다 스스로 인정해버린 그들이 더 원망스럽다.


가라앉고 있는 세월호속에서 미쳐 피어보지도 못하고 두려움과 무서움에 울부짖으며 차오르는 물속에서 몸부림치며 생을 마감한 그 어린 학생들을 생각할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마지막까지 "엄마 살려줘" 라고 부르짖었을 모습이 눈에 밟혀서 평생을 한을 품고 살아가야 할 부모님들에게 그들은 또 어떤 막말을 했던가?  위로금을 더 타먹을려고 쇼를 한다고 했다.

기득권 세력들

피도 눈물도 없는 자들,

민중을 개 돼지로 취급하는 자들,
고통이 뭔지를 알고싶어 하지도 않는 자들,

옳고 그름에 상관치 않고 그들만 옳다는 패거리들,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주홍글씨로 낙인을 찍어대던 패거리들,

그들은 어찌 그리도 쉽게 줄 잘서는 방법과 배불리는 방법들을 습득했을까?


이민 온지 30년이 넘은 자는 사고방식이 30년전으로 고정되어 있다는데, 막걸리잔 들고 핏대올리던 친구놈과 네거리에 붙잡혀서 이를 갈던 춘자는 어쩌자고 저들과 동조해버린 걸까? 

바람부는 대로 바쁘게 살아오면서 켄세라세라가 되어버린 걸까? 

그것도 아니면 정지 되어버린 사고의 정체에서 이유를 찾아야 할까? 

며칠전 중앙일보 이종호 OC 본부장님의 글 "나이 들면 왜 보수가 될까" 속에서 그 답을 찾았다.

" 보수(保守)란 한자 뜻 그대로 보전하여 지킨다는 말이다. 무엇을 지킨다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상식을 지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식이란 많은 사람들이 두루 옳다고 여기는 것이다. 

국민의 95%가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데도 여전히 그를 감싸고돈다면 그건 상식이 아니다. 종교로 치면 자기가 믿는 신앙 방식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도 상식과는 거리가 멀다. 보수의 가치는 자유와 평등, 정의와 책임이고 그 지향점은 공동체의 이익 즉, 더불어 잘 사는 것이다. 그러자면 유연한 사고와 열린 태도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자기 주장과 다르다고 다수의 생각과 의견을 매도하는 것은 비상식적이고 비민주적이다. 

보수 진보에 나이가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80대에도 청년인 사람이 있고 20대라도 노인인 사람이 있다. 그 차이는 얼마나 정신이 유연한가 혹은 굳었는가가 결정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상식 안에 머무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정 아름다운 노년이라는 사실이다. 보수든 진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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