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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아내와 딸을 한 놈에게 빼앗긴 남자

2020.02.03


  


            아내와 딸을 한 놈에게 빼앗긴 남자  

                                                              

필자는 하루에도 20여명에 이르는 사연을 20년 넘게 접해온 사람이다. 이러다보니 갖가지 기가 막힌 여러 사연들을 접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그 내용이 너무 지저분하거나 충격적이어서 차마 지면에 옮기지 못하는 사연도 간직하게 된다. 몇 년 전 필자가 접한 이 사연도 활자화하기에는 다소 거북스러움이 있어 유보해왔으나 이제 세월도 많이 지났기에 소개해 보기로 한다. 


기막힌 사연의 주인공 R 씨를 필자가 만난 것은 어느 토요일 오후 업무가 다 끝나가는 시점이었다. 쎄커터리 아가씨를 먼저 퇴근시키고 간단한 뒷정리 끝에 필자가 상담실 문을 막 나서는 순간 수염이 덥수룩한 한 중년 사내가 허겁지겁 다가오더니 상담을 요청한다. "죄송하지만 영업시간이 끝났고 저희는 사전에 예약된 손님만 상담합니다. 보통 2-3일 전쯤에는 미리 예약하셔야 상담을 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 미리 예약하시고 오시죠" 라는 필자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더니 "죄송합니다. 하지만 오늘 상담을 못하면 영원히 상담을 못하게 될지도 몰라서 이렇게 사정하는 것입니다. 한번만 선처해주시죠" 라고 하며 정중히 말하는데 가만히 보니 눈이 크고 선량한 빛인데다가 표정에서 어떤 간절함을 느끼게 하고 말에 진실성이 담겨있는 듯하다. 마주 앉아서 보니 여러 날을 어떤 고민에 시달린 듯 볼은 움푹하게 파여 있고 많은 날 면도를 못했음인지 행색도 초라하다. 


사내의 생년월일시를 물어 주역상 쾌를 짚으니 ‘태지곤’의 쾌가 짚힌다. ‘불지안분 반유괴상’의 괘이니 이를 풀어보면 ‘경거망동하지마라. 운세가 복잡해진다. 타인과의 마찰이 있다. 작은 일이 크게 번진다. 일단 물러나 훗날을 기약하라’ 로 풀이 될 수 있어 ‘급격한 사고수’가 있어 보였다. 필자 왈 “누군가와의 마찰로 큰일을 저지르기 직전의 상태로 보이는데 흥분을 가라앉히고 물러나서 다음을 기약해야 할때라고 보입니다.” 라고 하니 흥분을 가라앉히려는지 긴 한숨을 크게 내려쉰다. 사연은 이렇다.


R씨의 둘도 없는 친구 K씨는 내성적인 R씨와는 달리 매우 유쾌하고 언변이 좋아 주위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고 특히 여자들은 그의 잘생긴 외모와 언변에 금방 녹아났다. K씨 왈 ‘내가 5분 안에 꼬시지 못할 여자는 세상에 없다’라고 할 정도로 K씨는 바람둥이였다. 이에 비해 R씨는 말도 더듬고 매우 수줍어하는 성격이여서 대학 졸업 때까지도 여자친구 한 번 사귀어 보지 못했다 한다. 외모 또한 통통하면서 키도 작은 ‘짜리몽땅’ 체형이여서 더더욱 여자들과는 인연이 멀었다. 하지만 정반대성격과 인물임에도 둘은 대학시절 내내 둘도 없는 단짝 친구였다. 바람둥이인 K씨에게는 오랫동안 떨어지지 않는 애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바람둥이 남자친구 때문에 무던히도 속을 썩었고 속이 상해 울고불고 할 때 R씨가 이 하소연을 다 들어주면서 K씨 애인을 위로해 주곤했다. 결국 K씨는 자신의 애인을 차버리고 조건 좋은 부잣집 따님을 꼬셔서 결혼을 했다. 


충격에 빠진 K씨 애인은 자살소동까지 벌리며 좌절했지만 옆에 있던 R씨의 극진한 위로 속에 점차 몸과 마음이 회복되어갔고 이를 계기로 R씨와 가까워져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K씨는 바람둥이답게 결혼 후에도 이여자 저여자 건드리며 난봉 짓을 하더니 결국 이혼하고 말았다. 이혼하고 난 뒤에 이사 온 곳이 하필이면 막 신혼살림을 차린 R씨의 신혼집 근처였고 툭하면 친구랍시고 찾아와 넉살좋게 밥도 먹고 TV도 보고 하다가 돌아가곤 했다. R씨는 K가 아무리 둘도 없는 가까운 친구라지만 부인의 옛애인이었던 탓에 매우 불편해했으나 정작 K씨와 R씨의 부인 (K씨의 전애인)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 했다한다. R씨가 결혼 1년 만에 딸을 얻자 K는 자신의 딸인 양 귀여워해 주었다. 바람둥이 K가 옛날과는 전혀 다르게 성실남처럼 생활도 바르게 하고 자신의 딸도 무척이나 이뻐해주면서 종종 자신이 번 돈을 R씨의 처에게 지원하기도 해주니 R씨 입장에서는 무척 고마웠다한다. 특히 딸아이가 뇌막염으로 무척이나 위중할 때 K가 보여준 정성과 물질적 도움은 R씨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한다. 


이렇게되자 K에게 처음에 품었던 의심도 사라지고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이 무척이나 후회되었고 K와 자신의 부인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안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아내와 아이 그리고 K가 함께 사라진 것이다. 전셋돈과 값나가는 집안 살림을 다 가지고 없어져버렸다. 퇴근하고 평소와 같이 즐거운 마음으로 퇴근한 R씨는 놀라서 기절할 정도였다. 이곳저곳 수소문을 해보아도 아들의 행적은 오리무중이었다. 요즘같이 개화된 세상에 이렇게 세 사람이 연기 증발하듯이 사라지자 R씨는 거의 실성한 사람이 되어 직장도 때려친 채 이들을 찾아 나섰다. 연놈을 찾아 찢어 죽이는 것은 둘째 문제고 첫째 사랑하는 딸을 찾는게 문제였다. 미친놈처럼 여기저기 찾으러 다닌 오랜 세월 끝에 이들을 태평양건너 미국에서 보았다는 이를 보게 되었다. 무작정 건너온 미국 땅에서 이들을 찾는다는 것은 백사장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 같이 어려운 일이었지만 또다시 오랜 세월 끈질긴 추적 끝에 드디어 이들을 찾는데 성공한다. 


헌데 마누라는 벌써 오래전에 병으로 사망하고 이제는 K이놈이 자신의 딸을 마누라 삼아 살고 있었다. LA바닥에서 막노동을 하며 비참하게 사는 K씨를 보는 순간 죽여 버리고 싶었으나 차마 그러지 못하고 딸을 내놓으라하니 이놈 왈 “그 아이는 이제 내 마누라야 그 아이 없이는 살 수 없어!”라고 하며 눈물을 떨구었다 한다. 몇 날 며칠을 복잡한 분노에 몸을 떨다 다 깨끗이 끝내 버리기로 하고 난 뒤 마지막으로 필자를 찾은 것이다. 자신을 기망하여 병신노릇을 하게하고 아내와 더구나 딸마저 농락한 K씨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그놈을 죽이고 자기도 죽어버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고난 뒤 끝으로 필자와 상담을 하고 싶었다한다. 물론 필자는 결사적으로 이를 말렸고 다행히 R씨도 마음을 돌렸다. 세상에 죽일 연놈들 너무도 많다. 


                                      자료제공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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